[리뷰] NEWStage 선정작 <우리별> 음악적인 연극, 연극적인 음악

2017. 2. 8. 18:23Review

 

음악적인 연극, 연극적인 음악

NEWStage 선정작 <우리별>

연출 신명민 (시바 유키오 작, 이홍이 번역)

 

 

글_정은호

 

 

 

 

1. 공간감

연극과 다른 시각 예술이 구분되는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시각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하나 꼽자면, 현장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녹음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진행되는 음성의 현장감. 영화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기록일 수밖에 없지만, 연극은 현재진행형의 예술이다. 또한 녹음된 것들을 편집하여 하나의 결과만을 남기는 영상물이 아니기 때문에, 연극배우의 발음이나 뉘앙스는 되풀이되는 연극에서도 미묘하고 생생한 차이를 만든다. <우리별>은 이 특성이 다른 연극보다도 특화되어 있는데, 랩의 특성상 발음된 것의 기호 그 자체가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별>을 보며 처음 느꼈던 것은 바로 그 육성의 힘이었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은 작고 밀폐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배우의 목소리가 크게 어우러지면 어떤 공명을 발생시킬 수 있다. 리듬감 있게 이어지는 배우들의 음성이 작은 공간을 큰 소리로 울리게 만든다. 이것은 서사에 대한 사유나 작품의 주제에 대한 관념적 해석으로 연결되기도 하지만, 우선 본질적으로 신체적 경험이다. 인간의 성대를 통해 발생하는 소리라는 것을 다시금 낯설게 체감하는 것이다. <우리별>은 도입부부터 여러 배우들이 힘차게 대사를 이어나가는데, 그 리듬감 자체로 나는 다소 신이 났으며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의 느낌과는 별개의 음악적 경험을 했다. 공간 그 자체가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경험이었다. 소극장이기에 가능한 공명, 음향의 공간감을 <우리별>은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2. 리듬의 구조와 이야기

<우리별>에 대해 리뷰를 쓸 때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면 바로 랩일 것이다. <우리별>은 ‘랩극’이므로. 나는 ‘랩극’을 처음 접했지만 크게 새로운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예술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혼용하는 것은 내게 다소 일반적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우리별>이 연극 형식에 대한 전위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랩이라는 이질적인 발화 방식이 연극의 대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별>은 힙합의 ‘라임’과 ‘플로우’라는 두 가지 제약을 잘 준수하며 대사를 전달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라임’이라는 언어기호적 형식에 더 무게를 둔 것 같아 ‘플로우’라는 발음기호적 형식의 생동감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특색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랩’ 형식에 대한 연극적 고찰도 중요하겠지만, 더 나아가 이 ‘랩’이라는 것이 <우리별>의 서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지금은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수없이 발생했지만, <우리별>이 집중하는 것은 2010년대가 아닌, 과거의 풍경으로 보인다. 공동체적 정서가 더 짙던 시절, 삼대가 함께 사는 이들이 많던 시절의 이야기 말이다. 극 내에서 언급되는 ‘해태’나 ‘선동열’과 같은 명칭을 보면 그 시대가 언제인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별>은 80~90년대에 위치하며, 그 당시 공동체적 정서가 가지고 있던 모종의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별>에서 ‘랩’은 그 반복적인 기호 활동을 통해 지루하지만 평화롭던 일상의 안온함을 표현한다.

 

 

 

 

 

3. 퍼포먼스

<우리별>은 복잡한 갈등을 설계하지 않았다. 내게 <우리별>은 인물 간의 갈등과 그 해결을 통해 주제를 모색하는 내용 중심적 작품이라기보다는, ‘랩’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주제를 전달하는 형식 중심적 작품에 가까웠다. 극 중에서 이런 퍼포먼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된다. 두 배우가 박자에 맞춰 서로의 역을 바꿔가며 대화를 나눈다던지, 일렬로 선 배우들의 순서에 맞춰 정해진 대사들을 되풀이하는 행동은 랩의 반복적 형식을 연극 대사로 어떻게 구체화시킬까 고민하며 탄생한 형태일 것이다. 특히 내게 연극 후반부의 ‘우주여행’ 장면은 크게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일렬로 선 배우들의 이동에 따라 정해진 대사를 반복-변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였다. 관객의 입장에서 나는 이런 고정된 반복을 통해 음악적 재미를 느꼈다. 눈앞에서 배우들이 서는 장소를 바꿀 때 오는 시각적 자극과, 그에 따라 변경되고 반복되는 대사들이 어우러지면 문장 단위의 반복에도 어떤 리듬감이 생겨났다. 배우는 ‘우주여행’에 대한 문장 단위를 반복하는데, 이때의 문장들은 ‘우주여행’이라는 큰 체계를 연극적 서사로 구현하기 위해 다소 추상적인 서술의 형태를 띤다. 관객이 억지라고 느낄 수도 있는 이 추상성에 설득력을 주기 위해 <우리별>이 선택하는 건 더 자세한 문장의 설명이 아니라 퍼포먼스다. 우주 이동 그 자체를 학문적으로 관객들에게 설득하기보다는, 신체의 움직임으로 그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다. <우리별>은 감정과 대사의 드라마를 통해 감동을 준다기보다는 ‘랩’이라는 제한적 행위 내의 표현을 통해 경이감을 준다.

 

 

 

 

4. 발화와 서사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별>은 랩이라는 형식을 차용하여 연극적 발화를 시도했다. 나는 여기서 <우리별>이 성공한 지점이 있는 반면 실패한 지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별>의 장점은 역시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청각적 체험일 것이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우리별>의 단점은 내러티브의 단순함이다. ‘별이 빛나고 있다’는 이야기의 희망적 진술에서 내가 느끼는 건, 그것이 너무 손쉬운 위로라는 것이다. 나는 문학적 위로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상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오히려 문학은 우리가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정확히 직시해야 하며, 그것으로부터 손쉽게 탈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고독에 대한 문제,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로움에 대한 문제를 그대로 우주에 비유할 때, 나는 <우리별>이 주제의 첨예함으로부터 다소 도피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랩’이라는 커다란 형식적 제약 속에서 그것을 표출해내는 것은 일반의 연극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별>은 일방향적으로 진행되는 서사가 아니라, 파편화된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가는데, 그것은 음악적으로 음미해볼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형식적으로 뛰어나다. 다만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겪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는, 다양한 서술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피상적이게 된다. 각 인물들은 캐릭터를 명확히 획득한다기보다는 음악극의 소재로서 차용되는 느낌이 강하다. 나에겐 이 인물들이 각각 하나의 악기들로 제시되는 것 같았으며, 입체적인 감정을 가진다기보다는 평면적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별>은 ‘대사’로 이루어지는 연극에 ‘랩’이라는 ‘제약’을 걸었다는 점에서 도전적이었고, 그 도전적인 형식의 실험이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지만, 인물과 주제의 질감에도 조금 더 힘을 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음악적 연극에 대한 실험적인 고민, 그리고 대사를 통해 표출되는 연극적 음악에 대한 고민은 관객으로서 즐겁게 누릴 수 있는 체험이었다. 특히 소극장에서 느낄 수 있는 육성의 울림과 그것의 공간감은 <우리별>의 큰 무기일 것이다.

 

 

 

본 리뷰는 ‘뉴스테이지(NEWStage :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 연극분야)'의 공연에 대한 젊은 필자들의 비평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제공_서울문화재단

 

 

 필자_정은호

 소개_시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