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현준, <시간--몸--극장--그릇-->@신촌극장


장현준, <시간--몸--극장--그릇-->

: ‘말은 변화의 움직임을 추동한다!’

@신촌극장


글_김민관


장현준 안무가의 말은 움직임에 흡착된다. 언어는 질문과 사유의 단초이다. 동시에 움직임을 시간으로, (시간의) 변화로 바꾸어낸다. 말이 노정하는 움직임 이후 움직임은 말이 체현하는 크기를 가진다. 말과 말 사이, 말과 말을 잇는 시간이 된다. 말을 움직임의 메타포로 두는 방식은 지난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몸으로 거론한다는 것>(2016)은 세월호 이후 예술의 불가능성으로부터 작가의 사유의 가능성을 추출하는 작업으로,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이라는 예술이 빠지기 쉬운 양날의 함정을 비켜가면서, 동시에 말과 움직임이 교차하고 상승하는 지점, 곧 춤에 대한 언어적 탐문, 움직임이 갖는 언어성을 수행했던 것이다.


▲ 장현준, <시간--몸--극장--그릇--> ⓒ Sang Hoon Ok


장현준은 입을 열기 전에 혀로 입안을 매만진다. ‘혀는 움직인다!’ 움직임이 있다. 말이 잠재되는 움직임이 있다. 장현준의 발성은 안정적이며 따라서 탁월하다. 한편으로 말은 성대라는 매체로부터의 기술(記述/技術)이며, 다른 한편으로 말은 그런 성대를 비롯한 온몸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말은 움직임과 처음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이미 움직임의 다른 층위였을 뿐인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건 말이 움직임의 간극을 메우는, 아니 그 반대로 작동하는 어떤 과정이다.

장현준은 극장-시간-움직임, 이 세 개의 상관항을 찾는 언어가 아닌, 그 사이에서 작동하는 언어를 발설한다. ‘나는 여백이 없는 온전한 하나의 공간(극장)이다. 나와 너, 공연자와 관객의 사이에는 여백이 있다. 여백은 곧 공연이 일어나는,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여백은 간극이 아니라 접면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여기서 ‘여백’에 포함될 수 있는 “거리”는 “분별”의 부정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따라서 극장은 여백이 가시화되는/여백으로서 가시화되는, 공동체가 자리하는 장소의 시간적 총합이라 할 것이다.


▲ 장현준, <시간--몸--극장--그릇--> ⓒ Sang Hoon Ok


<몸으로 거론한다는 것>에서 장현준은 죽은 이의 자리를 말과 움직임으로 상상/상정한다(‘몸으로 거론한다’). 텅 빈 움직임으로 상정된 움직임의 여백에 물이 들어오고, 숨이 가빠온다. 그러니까 장현준은 직접적인 죽음의 언급, 피해자의 재현 대신, 단지 텅 빈 움직임이 그것들을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말로 거론하지 않은 채. 우리가 결코 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움직임이 말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세월호에 대해 사실 너무 많은 말들을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점에서.

장현준은 시간을 쓰거나 시간이 흐른다거나 하는 시간의 말의 쓰임을 언급한다, 공연 처음에. 그런 말의 쓰임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잴 수 있다. 시간이라는 상수는 나라는 단일한 주체를 상정/상상하는 데 유용하다. 시간을 상수로 놓는 환상 대신, 시간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사건’이라는 사유의 순간들의 총합으로 삶을 정의할 수도 있다. 팔을 옮기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거나 시간을 쓴 것일까라는 질문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향하는데, 움직임은 시간의 흘러감, 아니 어떤 변화 자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움직임은 말에 뒤따르며 말과 복합적인 층위를 형성한다, 시간 혹은 변화를 물질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측정하는, 아니 사유적으로 혹은 이념적으로 탐문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 장현준, <시간--몸--극장--그릇--> ⓒ Sang Hoon Ok


공연이 끝난 이후 장현준이 작업을 하며, 작업을 위해 쓴 글과 스코어 등의 종이가 극장 곳곳에 붙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찾고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부터, 모든 공간을 극장화하는 것이 가능함을 도출했던 어떤 문장과 같이, 거기에는 사유 실험이 있었다. 그리고 말과 최소한의 움직임들이 또한 관객에게 질문들에 대해 사유하기를 요청했다. 말과 움직임의 동시적 요청이 오히려 말과 움직임의 간극, 분리를 확정하고 마는 어떤 무용 공연들과 비교해서도 이 작업은 특별한 지점이 있었다. 또한 말의 부속적 수사가 되는 움직임의 양상을 띠는 실험적 연극이라 불리는 것과도. 곧 말과 움직임은 서로를 요청하고 있었다, 하나의 몸에서, 하나의 몸이 분기하면서.


P.S. 1. 공간-극장!?

오귀스탱 베르크의 『외쿠메네』라는 책은 근대의 공간 개념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관계적인 측면에서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공간은 전통적으로 ‘그릇’의 알레고리와 연동된다. “공간은 둘러싸는 외피에 의해 경계가 정해지는 빈 곳”(*)이다. 이는 ‘장소’와의 비교를 통해 확연해지는데, 통상 ‘공간’은 ‘장소’의 쓰임과 달리, 실내의 일정 정도의 부피가 있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런 빈 고정된 영역으로서 공간의 개념은, 공간을 추상적인 영역으로 개념화가 가능한 시점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원래 공간은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오지 않았다.

“공간이라는 낱말은 라틴어 spatium에서 왔는데, 이것 자체는 인도-유럽어의 어근인 pet로부터 비롯되었다. Pet는 무엇보다도 pas(걸음)와 passer(지나가다)를 낳은 개방과 전개의 관념을 표현한다. Spatium은 ‘공간’을 의미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의미에서이다. 경마장, 무언가가 점유한 장소, 산책로 등 말이다”(***) 근대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개념화한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에 따르면, “인간이 공간을 구성하고 자기 주변에 공간을 펼치는 존재인 한에서만 존재”하는 인간과 공간의 밀접한 관계의 측면에서 공간에 대한 사고 역시 제고된다.

따라서 장현준 작가가 상정한 공간의 측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개념화한 ‘그릇으로서 공간’에서 하이데거 이후의 공간의 개념, 곧 관계 맺음의 공간으로 도약한다. 이는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몸으로 거론한다는 것>에서 관객은, ‘세월호’ 이후의 관객, 그것을 공통으로 따로 또 같이 겪는 (특정한) 공동체 속 (불특정한) 개인의 한 명으로 위치한다]. ‘극장’이라는 것/곳은 이곳의 공고함을 주장/지시하려기보다는 늘 그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측면에서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 자체의 바깥으로 질문을 확장한다, 아니 그럼으로써 존재한다, 연극은, 극장은. 극장(theater)은 그 자체로 극장이라는 공간/장소이자 연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극장은 언제나 그 내부라는 어둠의 심장으로 들어가는 이행의 통로이면서 동시에 그 외부라는 미지의 영역을 꿈꾸는 일탈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장이란 장소이면서 동시에 비(非)-장소이다.”](****).


2. Turn Leap: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

‘Turn Leap: 극장을 측정하는 작가들’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공연에 이어, 남동현, 정세영, 차지량, 황수현 네 작가의 총 네 작품이 하나의 극장에 오르게 된다[12월 26일(화)~27일(수) 20:00,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장현준 작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작가들은 “올해 정기적인 모임과 리서치 세미나 등을 가지며 극장에 대한 담론을 발전시켜 왔”다. 전제된 큰 질문은 극장은 어떻게 다시 질문되고 사유될 수 있는가라고 하겠다. 장현준 작가가 큰 틀에서 극장이라는 유비에 대한 사유의 움직임을 제시했다면, 다음 작가들의 작업은 극장에서 발생하는 미시적 사건들을 호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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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오귀스탱 베르크, 『외쿠메네』,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p33.

** 앞의 책, p38.

*** 앞의 책, p115.

**** 최정우, 「극장: 역설의 시공간」, 계간 연극, 국립극단, 2011, p15.




 필자_김민관

 소개_아트신(artscene.co.kr) 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시간--몸--극장--그릇--
-장현준
형식: 퍼포먼스
러닝타임: 35분 

장현준에게 주어진 '극장'이라는 질문은, 그 질문 자체의 유효성 여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여러 질문들을 낳고 또 낳았다. 장현준은 이 상황을 정리하고픈 바람을 버리기 위해 애쓴다. 장현준의 몸은, 작곡가 강이다의 음악과 함께, 이 무수한 질문의 틈, 여백에서 움직이며 다음 질문의 발생으로 향한다. (음악: 강이다)

장현준은 미술교육과 무용교육을 받았다. ‘과정’이라는 가치에 집중하여 몸, 움직임과 즉흥의 가능성을 빌려 여려 미디어작가들과 극장 전시장 거리에서 몸으로 작업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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