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0. 12:36ㆍReview
우리, 또는 함께 있음이라는 유일한 유토피아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원작_강화길 소설"방"
연출_윤혜숙 / 제작_래빗홀 씨어터, 페미씨어터
글_권혜린
이 연극을 보고 난 뒤,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는 제목 중에서 어떤 낱말에 방점을 찍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 ‘도시’, ‘함께’, ‘도착’ 중 그 어떤 낱말에 방점을 찍어도 모두 잘 어울렸다. 어느 하나를 고르기란 어려웠다.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는 원작인 강화길 작가의 단편소설 「방」에 나오는 첫 문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극 역시 원작 소설의 제목인 ‘방’과 강하게 결부된 듯했다. 수연과 재인이라는 ‘우리’가 ‘도시’에 ‘도착’해서 ‘함께’했던 이유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 때문이다. 방은 다른 말로 생존의 이름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자면 방은 꿈의 다른 말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노력하는 꿈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 좋은 방에서 살기 위한 분투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절실한 노동과 주거라는 키워드와 연결되면서, 재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더욱 치열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이 비극으로 끝날 것은 예측 가능한 결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토피아를 꿈꾸기 위해 제 발로 디스토피아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역설”이라는 포스터의 문구처럼 꿈꾸던 유토피아를 위해 디스토피아의 중심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마음’을 같이 겪어 볼 수 있었다.
그림자들
이 연극에서 특히 돋보였던 것은 재난의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해 조명과 소품을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폭발 사고 때문에 어둠으로 뒤덮인 도시를 밝히는 것은 조그만 손전등뿐이다. 심지어 그 손전등이 관객의 얼굴을 무차별하게 비출 때, 마치 비춤을 ‘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재난 상황이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감지하게 된다. 그 작은 빛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하는 상황은 무대의 한쪽 벽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만큼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실 그들이 도시에서 하는 일 또한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일이다. 그들은 폭발 때문에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부수고 옮기는 일을 한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들, 즉 파편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파편에 나중에는 재난의 피해를 본 사람들까지 포함됨으로써 그 상황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보여 준다. 절대로 들키지 않아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은 바닥에 타르처럼 검게 고인 이미지로 잘 드러난다.
또한 정사각형의 상자 몇 개로 장소를 유연성 있게 변형한 것도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상자 위에 놓인 화장품이나 북엔드 등의 소지품들은 커다란 그림자로 비쳤을 때 도시의 아파트들이 되고, 배우는 그 물건들을 흔들면서 폭발 사고의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렇게 효과적인 무대 장치들을 글로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지만 그 정도로 시각적인 흔들림이 잘 살아 있었다. 그 상자들은 다시 냉장고가 되기도 하고, 식탁이 되기도 하고, 나중에 한 줄로 이어 붙였을 때는 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그림자로 잘 표현된 도시의 재난은 관객도 그 어둠 속에 같이 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교차되는 독백과 하나인 대화
‘우리’, 그리고 ‘함께’라는 말이 연극에서는 인물들이 마주 보고, 함께 달려가고, 나란히 있고, 기대는 자세를 통해 표현된다. 재난을 힘겹게 살아내는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여성, 퀴어, 청년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 주고 있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그러한 정체성을 돋을새김하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린다는 데 있다. 사람보다는 ‘함께 있다’는 자체가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이다.
대사에서도 함께 있음이 잘 드러난다. 등장인물은 수연과 재인, 이렇게 두 명이지만 두 사람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것은 어렵다. 수연이 재인의 말을 독백하면서 재인의 생각이 수연의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나’(재인)의 독백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연극에서는 수연의 입에서 나옴으로써 두 사람은 가시적으로도 더 완벽하게 밀착된다. 이렇게 상대방의 말을 함으로써 두 사람의 말은 교차되면서 겹쳐지고 포개진다.
도시 바깥에서 따로 살 때도 둘은 물론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시 안에 와서 비로소 함께 살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대화 역시 더욱더 강렬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이제 한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시 바깥에서 버는 돈의 다섯 배를 벌 수 있는 위험한 일은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게 많지만 동시에 짧고도 강렬한 행복을 준다. 매일 함께 일을 나가고, 함께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음식을 같이 먹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수연은 재인에게 ‘같이 살자’고 말할 수 있었고, 계속 같이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계속 같이 사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수연의 몸이 점점 굳고, 나중에 입이 굳어서 말을 하지 못할 때까지 독백은 중첩되고 대화는 하나로 이어진다. 재인은 계속 도시를 떠나자고 하지만 수연은 더 있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이 그 뒤에 따라붙는다. 어쩌면 자기 주문일지도 모를 이 한마디가 그들을 그곳에서 출발하지 못하게 한다. 디스토피아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그곳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는 그들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현재의 위치에서 잘 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도시 안에서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도시 바깥에서의 삶이 희망이 될 수 없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 새로운 것이 좋은 곳이기를 바라는 것. 그러기 위해서 도시로 가는 것은 위험한 희망을 담보한 절박한 선택지가 되었고 그것이 그들이 도시에 함께 도착한 이유였던 것이다.
빛이 사라진 방
수연과 재인이 자신들이 꿈꾸던 방을, 차리고 싶은 카페를 이야기할 때 조명은 더 밝고 따뜻한 것처럼 보인다. 좋은 방에서 살면서 함께 카페를 꾸리는 일은 한 상자 가득 두고 실컷 먹고 싶은 복숭아처럼 달콤한 꿈이다. 최종 목표가 될 장소가 지금 이곳에 없는, 저 너머의 곳에 있기에 도시에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사는 방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이 된다. 화장실에서 점점 번져 가는 곰팡이가 이를 잘 드러낸다. 거친 록 음악으로 표현되는 곰팡이는 전염의 이미지를 지닌다. 수돗물을 끓이지 않고 먹었던 수연이 석회가 섞인 물 때문에 몸이 점점 석고처럼 굳어갈 때, 병은 곰팡이처럼 온몸에 퍼지기 시작한다. 그 병은 점점 퍼져 도시의 삶 전체가 된다.
이렇게 몸에서 하얀 가루가 떨어지고,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하며, 수돗물만 끊임없이 마서야 하는 삶은 빛이 사라진 방을 드러낸다. 그들의 꿈도 점점 빛이 꺼져 간다. 그런 와중에도 재인은 스스로 물을 먹지 못하는 수연에게 호스로 물을 마시게 해준 뒤 계속 일을 나가야 한다. 수연의 몫까지 더 많은 돈을 벌고, 빨리 벌기 위해 더 위험한 일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도시 밖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버는 만큼 먹자는 신념 아래 잘 먹고 잘살고자 했던 그들의 목표는 점점 최초의 지점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그러나 도시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그들의 삶 자체에서 빛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함께, 그러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을 것
전염병 때문에 봉쇄된 도시는 어둠의 끝을 드러낸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수연과 재인은 끝까지 함께 있게 된다. 나무처럼 굳어 버린 수연에게 재인이 기댄 자세로 말이다. 바깥을 상상하던 그들은 ‘없는 장소’라는 뜻을 지닌 유토피아처럼 말 그대로 바깥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수연이 괜찮지 않은 상태에서도 늘 ‘괜찮다’고 주문처럼 말한 것은 이제 재인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할 듯하다. 살아 있는 화석처럼 변해 버린 수연의 곁에서 재인은 수연이 그랬던 것처럼 괜찮다고 하면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 재인에게 수연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과 함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예전처럼 서로 마주 보면서 웃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서로에게 연약한 버팀목이 된 채 연극은 끝난다. 사실은 괜찮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함께 도착한 도시에서 홀로 떠나지 않는 것(떠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재인에게 수연을 두고 도망치는 것 역시 선택지에 없었을 것이다.)이 마지막으로 괜찮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재인이 수연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말이다.
이들이 겪는 재난을 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상징이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현실과 상징의 경계쯤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답게 어두운 분위기지만, 연극을 보고 난 뒤 생각나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면서 음식을 맛깔스럽게 먹는 장면이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렇게 소박하지만 큰 행복이었다. 여전히 함께 있으니, 그러니 그들은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 사소하지만 가장 큰 희망일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재인이 더 위험한 일을 하면서 구덩이 속에 던졌던 기형적인 몸들 속에서 본,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이 자신들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끝의 시작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엄청난 용기일 테니 말이다. 함께 있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유토피아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여러 가지 안타까움과 한 줌의 희망을 느끼며 그들이 노력했지만 얻을 수 없었던 꿈에 대해,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는 연극이었다. 유토피아를 잠식하는 디스토피아가 곧 오늘날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으니 말이다.■
*사진제공_페미씨어터
**SNS페이지 바로가기 >>> 페미씨어터 facebook.com/femiplay
래빗홀씨어터 facebook.com/rabbitholetheater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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