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7. 08:25ㆍReview
진솔한 이야기로의 초대
<이방연애>
창작집단 3355 @제 1회 페미니즘 연극제
글_권혜린
‘제1회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인 <이방연애>는 지난 ‘2017 프린지페스티벌’ 때의 작품을 확장한 것이다. ‘방’과 ‘연애’를 주제로 세 명의 퀴어 여성 예술가들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서울, 여성, 주거 문제로 연극을 만들자고 했던 ‘소문’은 실체 없는 특성답게 말로만 언급될 뿐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고, 한 다리 건너는 소문 대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직접 연극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이야기한다. MC 없는 토크쇼처럼 분위기는 자연스럽고 편하다. 중간중간 무엇을 이야기할지 글씨로 지시하는 것을 화면으로 보여 주는 것도 마치 코너의 제목을 소개하는 듯하다. 다큐멘터리 연극으로서 이 작품은 솔직하고 담백하게 자신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삶 자체가 편하게 흐르지는 않았겠지만 관객들 사이에서 흐르는 낮은 웃음과 내밀하게 형성되는 공감이 작품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게 해 주었다. 마치 비밀 아지트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에 초대를 받은 느낌이었다.
‘살았대’가 아닌 ‘살았데’의 순간
먼저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는 현실은 예술과 노동과의 괴리이다. 예술이 생계를 유지하게 해 주지 못하기에 예술을 하기 위한 노동을 별개로 해야 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지만, 구체적인 경험담이 몰입감을 준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공감은 덤이다.
세 명의 예술가들은 연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일제 노동을 하지 못하고 오전이나 일주일에 2~3일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제빵 일을 하기도 하고, 스피닝 강사를 하기도 하며, 프리랜서로 문화 기획 일을 하기도 한다. 노동과 예술을 병행하는 과정은 역시나 순탄치 않다. 나이 제한 때문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제약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상 편집 능력을 발휘하여 스피닝 강사료를 높였던 일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노동으로 잠을 못 잘 정도로 몸이 붓고 연기에도 집중을 못 하는 고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몸이 재산이니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연극을 하기 위해 돈을 모으지만 고된 노동을 하다 보면 병원비로 탕진하게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예술과 생계가 분리되었을 때의 어려움이 묻어난다. 때로는 분리되지 않아 더 어렵기도 하다. 문화 기획 일을 하면서 작업 언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 인간은 기계나 로봇처럼 그때그때 버튼을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너무나 이질적인 영역은 경계가 무너졌을 때 다소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대’처럼 소문으로, 남의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았데’처럼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한다(사전적인 의미로서 ‘-대’는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간접적으로 전할 때, ‘-데’는 직접 경험한 사실을 보고하듯이 말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쉬운 공감으로 넘어가고 끝나지 않기 위해 ‘나의 각성’ 코너에서는 각자의 각성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람의 화원>을 보고 배우의 꿈을 품게 되고, <헤드윅>을 통해 고백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플라톤의 <향연>을 모티브로 한 <사랑의 기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퓨전으로서 하나의 더 큰 존재로 나아가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얘기, 연애하는 얘기를 구체적으로 듣는 것은 그 자체로 보고 듣는 즐거움을 준다.
이방이 이 방이 되는 순간
물론 삶의 고충 속에는 이성애 신혼부부에게 초점을 맞춘 제도의 혜택에서 제외되고, 애인을 친구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 등 소수자로서의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 이방(異邦)의 삶이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는 것이기에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간혹 존재들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이방’에 ‘다른 나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때, 극 중에서 ‘세상이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은 방에 들어가지만 자신들은 방이 아니라 방과 방 사이 문지방에 누워 있는 기분’이라고 한 것도 수긍이 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문지방도 엄연히 방의 일부이지만 방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처럼 간과되기 쉬운 존재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도나 법 등 현실원칙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와 실감을 살리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이 ‘이 방’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저 방이나 그 방처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처럼 거리가 축소되고 특별하거나 낯설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올 때가 있다. 특히 자신이 살았던 방과 연애의 역사를 프레젠테이션할 때, 그 뒤에 관객들이 직접 방을 그리고 연애의 정의를 적은 종이들이 전시될 때 낯선 것이 아니게 된다. 이 연극에서는 노후 대책, 가족들과의 관계, 경제적인 것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꿈이라는 키워드와 더불어 서울의 2~30대가 최악의 주거 빈곤을 겪고, 성별로 임금 격차가 있으며,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집다운 집’을 위해 ‘자신을 갈아 넣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퀴어 여성 두 명이 함께 살 때 임금 격차가 얼마나 더 커질지에 대해서도 말해 준다. 이는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세 명의 예술가들이 3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자신이 살았던 방들을 나열하는 “나의 연애 프레젠테이션”에서는 500/15에서 500/20으로 건너가는 과정, 예배당 옆방에서 고양이 세 마리와 목련 그림자가 일렁이는 방으로 건너가는 과정, 기숙사 공동생활에서 낙성대 반지하 공동생활로 건너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연애하는 사람에 따라 방이 달라지기도 하고, 연애 대신 삶에 집중하면서 공동생활의 형태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독립한 상황에서 원 가족과 살 수는 없다고 하며, 공동 주거라는 대안이 있기는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애인과 살면서 무상 거주처럼 살긴 해도 정착하고 싶은 집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 이처럼 방의 흐르는 움직임을 따라가는 녹록지 않은 삶도 엿볼 수 있었다.
소문 대신 흐르는 순간
결국 소문은 오지 않는다. 이 연극에서는 소문 대신 노래가 흐르고, 이야기가 흐른다. 연극의 시작에서 막이 오르면 노아가 직접 만든 ‘살아서 걷는 나무’ 노래가 편안하게 울려 퍼진다.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노래 한 잔 내어 주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흐른다. 작품의 중반에 ‘지옥’이나 ‘감옥’처럼 음울한 단어들이 담긴 노래가 흐르기도 한다. 어느 것이든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들이다. 극 중에서 소문은 도착하려면 멀었다고 이야기되지만, 소문은 도착하지 않고 끊임없는 유예만 이어질 것이다. 소문 대신 삶이 틈입하면서 천 리를 가는 발 없는 말이 아닌, 근거리밖에 전달되지 않더라도 발 있는 말들이 주인이 되어 퍼진다.
마지막에 세 명의 예술가들은 각자 택배를 하나씩 받는다. 30대, 40대, 50대의 퀴어들이 보낸 편지들이다. 편지 속에서는 ‘왜 그렇게 조심하면서 살았을까’라고 하면서 1+1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붙어 있는 연애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주말농장을 하면서 무엇이든 다 지나갈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너 지금 진짜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 나아가 방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모든 방은 나의 누에고치이며, 두고 온 방이 사무친다고 한다. 좌석에 하나씩 놓여 있던 종이에 관객들이 그린 방의 모습과 연애의 정의도 하나의 편지가 될 것이다. 화면에 전시된 대부분의 정의는 ‘無’와 관련된 것들이 자주 보이는 등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방의 모습은 다양했다. 그 모든 것이 다 삶일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는 장마와 관련된 노래가 흐르면서 셋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여 준다. 그렇게 천천히, 지금 살아가는 순간들이 흐르는 장면들이 보인다. 다음 예고편도, 다시 보기도 없을지 모르지만 연극 속에서 많은 편지와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괜히 다음을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삶이 계속되는 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테니 말이다.
*사진제공_창작집단3355
**창작집단3355 SNS페이지 바로가기 >>> facebook.com/artists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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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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