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7월 레터] 먼 곳이라는 말

먼 곳이라는 말

 

8월에는 정동진독립영화제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있어 마음이 미리부터 들떴습니다. 그 전에 중국 시닝에서 열리는 퍼스트국제청년영화제에도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차여서 긴 동선을 짰습니다. 지내고 있는 상하이에서 서른 시간 넘게 기차를 타야 갈 수 있는 시닝으로, 또 집에 가기 전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홍콩으로 건너 건너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티벳고원을 품고 있는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에서 열리는 퍼스트국제청년영화제는 젊은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자연스레 중국 국내와 해외의 독립영화를 다수 접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전 정보도 없이 SNS 공식채널을 팔로우해두고 영화제가 언제 열리는지, 티켓팅이 언제 시작되는지 딱 두 가지 정보만 알아둔 채로 기차표를 사고 숙소를 구하고 영화표를 샀습니다. 만 하루하고도 한나절을 꼬박 넘겨 도착한 시닝에서는 서로 붙어 있는 세 군데의 극장과 그 사이에 있는 야외무대 상영을 종종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뒤늦게 알았지만 보통 시닝에 여행을 오면 도심에서 다시 차를 빌려타고 몇백 킬로미터를 더 달려서 소금호수나 사막에 간다고 해요


저는 영화제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데다가 여길 반드시 또 오겠다고 다짐한 터라 대자연을 느낄 기회쯤은(?) 아주 쉽게 단념을 했습니다. 산이 둘러싸고 있는 도시도, 종종은 거칠고 덜컹거릴지라도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영화들도 좋았지만은 그보다도 자원활동가들을 만난 덕이 크지 않았나 합니다. 이전달 갔던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선 상영관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이 주는 맛이나 자원활동가와 스태프, 관객과 영화 만든 사람들이 주는 분주한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던 터라 더 그랬습니다. 대부분 학교를 다니는 20대라는 자원활동가들은 상영 앞뒤로 관객과의 소통을 맡고, 기념품 홍보를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든든하게 영화제를 견인했습니다. 들뜬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이들이 주는 기운이 참 대단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건만 예기치 않게 익은 얼굴도 보았습니다. 지하철은 고사하고 버스도 이삼십 분에 한 대가 오는 마당이라 한참을 기다려 겨우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버스가 요술이라도 부렸는지 절대 못 도착할 것 같던 시간에 극장 앞에 도착해서, 못 볼 것 같던 섹션 상영관에 극적으로 들어가 숨을 돌리는데, 뒤이어 입장한 관객이 친구더라고요. 제가 영화를 보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옆자리 티켓을 끊어서 들어온 거였어요. 정저우가 고향이고 상하이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는 이 영화제에서 고향이 배경인 영화를 보곤 반가움 반 낯설음 반으로 이게 정저우야!”하고 외쳤습니다.


티켓이 없어도 관람 가능한 야외상영에는 시닝 인구의 상당수을 차지하는 티벳 장족이나 무슬림 회족 관객, 가족 단위의 관람객과 산책을 나왔다 자리 깔고 앉은 노인 관객 분들이 많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찾아온 한편으로 먼 곳에서 온 관객들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둘째날 야외상영작이었던 <까로미오벤>을 볼 때엔 시안에서 온 관객이 관람 후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본인도 특수학교 출신이기에 특수학교를 다룬 이 한 편의 영화를 꼭 보고 싶었다고, 오로지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시닝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특수학교를 다니기 전엔 시안에서 시닝까지 혼자 기차여행을 할 수 없었을 자신이 장거리 열차를 타고 도착해 본 영화가 이 한 편이라는 것에 마음이 울컥한다고도요. 이제는 필름도 아니고 어디로든 옮길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일 뿐인 것만 같은 영화라는 게, 여전히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는 게 새삼스럽게 마음에 닿았습니다.

 

영화제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시닝에서 광저우를 지나 홍콩으로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른 시간이 넘는 기차여행 끝 중간체류지인 광저우에서 아주 조금의 시간이 생겨서, 길거리를 조금 걷고 광동성박물관과 광저우도서관에 갔습니다. 볕이 뜨거운데도 박물관 앞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기차 시간이 다가와 미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기차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그랬기 때문인지, 관객의 마음이란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느린 완행열차를 타고, 뙤약볕 아래 줄을 서서, 무엇을 보게 될지 알 수 없는 채 이어지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작품을 만나는 관객의 필연과 우연에 대해서요.

 


상암에서 프린지를 하게 되었을 때 듣던 멀다소리가 떠올라요. 상암은 멀고 외딴 곳이라서 찾아오기가 더 번거롭다고요. 이번에 문득 그생각이 났습니다. 8월 한복판 경기장의 열기가 기대 이상의 염려를 동반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멀어서 갈 수 없는 곳이라면 조금 슬플 수는 있겠다고요. 그러는 동시에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당연하게 기본형이자 지척의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또한 생각하게 됐습니다. 멀다 소리를 들은 게 서울이라서 먼 것이 아니라 상암이라서 먼 것이라는 점에서요. ‘상암이라고 불렀을 때 서울인 것을 아는 것도 사실 서울사람 얘기인 것을요. 어떻게 어느 장소가 모두에게 먼 곳일 수가 있을까요. 내게는 멀더라도 거기 사는 사람들이 있고 지척에서 놀러 오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큰 힘이 현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란 건 너무 당연하지만 쉽게 잊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먼 곳이라고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먼 곳이 그립고, 먼 곳이 기껍고, 먼 곳이 반가운 마음도 분명 있겠지요. 먼 데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 먼 데까지 찾아오는 마음, 그 마음 또한 빠짐없이 소중합니다. 그 마음마음들을 생각하면서 저는 또 버스에 지하철에 기차에 몸을 싣고 바쁘게 걸어다니려고 합니다.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815일부터 18일까지예요!


731일 

인디언밥 필자 

김 송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