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원스> 뭐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영화<원스> 뭐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 김목인
  • 조회수 883 / 2007.11.01

오전에 영화 <원스>를 보고 왔다. 며칠 전 원고청탁 전화를 받았는데, <원스>를 보았냐고 했다. 아직, 이라고 하니 볼 예정이냐고 물었다. 뭘까, 보여주는 건가? 아무튼 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게 되었고, 나에게 리뷰를 제안한 것은 뮤지션, 특히 거리 공연을 하는 뮤지션의 입장에서 <원스>를 보고 글을 쓰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나처럼 편안하게 부담 없이! 하지만 늦게 본 바람에 ‘글을 쓰려고 영화를 보게 된’ 어색한 모양새로 오늘 오전 영화관에 갔다.


  영화는 잔잔했고, 음악은 가득했다. 마음은 따뜻했고.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리 공연을 하는 뮤지션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물론, 영화의 첫 부분에서 ‘저 주인공 거리에서 마이크 없이 하는데도 목소리가 참 크네.’ 생각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거리 공연을 하는 뮤지션의 입장이라고 하긴 힘드니까. 게다가 주인공이 기타 치는 걸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자꾸 나도 ‘집에 가자마자 기타 쳐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다른 느낌들이 있었는데, 글쎄 그것을 음악에 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느낌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말없이 거리를 걸어오면 그 장면이 분명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이 세상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것은 정말로 뭘 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라기보다는 현재와 인생 전체에 대해 순간적으로 멍하게 환기시켜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모든 영화의 중간과 끝에는 그런 장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을 해결한 형사도 그렇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도 그렇고. 그런 장면에서 왠지 주인공은 거리가 아닌 ‘지구’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원스>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 주인공은 목도리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기타를 맨 채 지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조용히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 어쩌다 이 세상에서 음악을 하고 있지?’ 그러자 현재의 모든 것들을 순간적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2007년 10월 22일. 오늘의 나는 밴드를 하고 있었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한 지 이제 4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음악의 신이 특이한 캐릭터로 떠올랐다. 영화 속 주인공과 나에게 음악의 신은 따로 있었다. 뭐랄까, 음악의 신이 알고 보니 여럿이 있었고 우리 같은 뮤지션을 전담하는 신이 따로 있는 것처럼. 그는 신비한 뮤즈가 아닌 약간 술에 취한 느긋하고 걸걸한 신이었다. 그에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저에게? 저는 노래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고, 가끔 기타 연주도 막막한걸요.’ 그러자 음악의 신은 ‘뮤즈’라는 이름이 너무 안 어울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뭐 어떤가? 그래도 내 덕에 몇 푼이나마 벌고, 그 동안 즐거웠지 않나?’


  하긴 맞다. 많은 시간들이 흘러갔고 몇 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노래들이 나에게서 생겨나 그 시간 속을 흘러갔다. 그리고 인생이 노래를 만들었는지 노래가 인생을 만드는 것인지 모를 재미있는 작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멀리 있는 곳의 누군가로부터 음악에 대한 공감을 들어 본 경험도 있었고,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쑥스러워 영영 얘기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사람들 앞에서 노래로 한 적도 있었다. 거리에서 연주를 해 작은 여비를 번적도 있었고 공연 덕에 예전 같으면 가보지도 못했을 곳에 가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음악은 내가 생각지 못했지만 꽤 괜찮았던 방향들로 나를 데리고 왔던 것 같다. 잠시 감사를!

 

 


  음악이 삶을 움직이는 방식이란 이런 것 같다. 가령, 영화 속의 그가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우연히 그녀를 만난다.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의 그녀는 물론, 입으로는 ‘이 음악 당신이 만들었나요?’ 하며 말을 걸었지만 사실 표정은 ‘당신 지금 뭐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였다. 그런 질문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발가벗기고 천사로 만들어버린다. 한 발짝 들여놓은 이 여자를 잠시 성가셔하던 그는 자신이 후버 청소기 수리공이라고 고백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나의 생생한 뮤지션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는데 여기,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이 있고 그가 방금 그 순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곧이어 그의 음악이 생기를 띤다. 그건 그녀의 코러스와 피아노 반주인 것 같지만 사실 그녀가 그의 음악에 말을 건넨 순간부터 그는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 그런 ‘천사 같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을 뿐인데, 음악은 그의 입과 손에서 생기를 띠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화 속 남루한 도시와 지루한 일상과 가난 속에서 음악은 체코의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그녀의 아버지처럼 아무런 힘이 없다. 하지만 음악은 씨디 플레이어용 건전지조차 사기 힘든 현실마저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거의 완성 직전의 가사를 흥얼대며 거리를 걸을 때 그녀의 음악은 그 작은 한 사람을 온전히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잠깐 동안 거리가 아닌 ‘지구’를 걷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을 올려다보게 해 인생의 비밀을 살짝 보여준다.

  영화에는 마치 오래 된 필름처럼 어느 집의 파티에서 열린 아일랜드 식 잼의 장면이 나온다. 식탁에 둘러앉아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오랫동안 감추고 살아왔던 계시를 꺼내어 읽어 내려가는 듯 의기양양하다. 현실은 무겁지만 노래를 부를 때면 ‘달빛 아래를 걷고 억만금을 준다 해도 사랑과 바꾸지 않을’ 힘을 얻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렇게 음악을 간직해 온 것인지도 모른다.

  같이 떠나지는 못하는 그녀와 더블린의 가난한 부모와 친구들, ‘카 테스트’를 해주려고 기꺼이 드라이브를 나가는 프로듀서. 그들이 기적처럼 완성해준 ‘데모 음반’은 말하자면 오랫동안 꺼내지 못한 채 꼬깃하게 접어두었던 삶의 힘이다. 친구들이 음반을 만들어 그에게 선사하는 과정이 가난한 부모가 여비를 꺼내주는 장면과 자꾸만 겹쳐졌다. 때가 될 때까지 모두 마음속에 간직해 온 어떤 것. 그것을 소중히 안고 거리를 걸어가는 주인공. 인생의 눈물겨운 순간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이제 곧 11월이었다. 이런 시기는 왠지 내년을 흐릿하게 만들어 긴장과 설레임을 함께 갖게 한다. 영화 덕분에 나도 잠시 ‘지구’ 위를 걸어가 매점의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가사를 쓰는 수첩에 오늘의 날짜를 적고 영화관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잠시 적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하지. 내가 뮤지션으로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멍하니 와서 영화를 보다 보니 내가 뮤지션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자리에서 문득 지금까지 적은 가사들을 뒤적여보았는데, 그렇다 해도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언제나처럼 짧은 축복의 느낌을 적었다. 음악과 그것이 여전히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해. 몇 년 째 그런 좋은 느낌들을 적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보충설명

영화 <원스(Once)>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once2007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아일랜드의 ‘존 카니’ 감독은 자신이 활동했던 밴드 ‘더 프레임즈(The Frames)'의 보컬 글렌 헨사드와 체코의 피아니스트 마케타 잉글로바를 끌어들여 이 음악적 교감 가득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곡들은 모두 이 뮤지션들이 작곡한 것이며 <원스(Once)>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필자소개

김목인.
약 4년전 밴드 ‘캐비넷 싱얼롱즈’를 결성해 현재까지 기타연주와 노래, 작곡을 하고 있다. 연주경험이 없는 친구들이었던 캐비넷 싱얼롱즈는 놀이터와 공터 등에서 연습을 시작했고 2년 후 앨범 <리틀 팡파레>를 발매했다. 그리고 여전히 버스킹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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