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표현하는 움직임, 2007한국마임

2009. 4. 10. 08:0707-08' 인디언밥

모든 것을 표현하는 움직임, 2007한국마임

  • 김아미
  • 조회수 750 / 2007.11.16

당신은 마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제는 공연이나 TV를 통해 제법 자주 접하게 되었지만 마임은 아직도 관객에게는 ‘특수한’ 예술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임하면 검은 옷에 얼굴에 흰 칠을 한 공연자를 연상하고, 보이지 않는 벽을 손으로 짚고 제자리에서 걷는 흉내를 내는 모습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임은 그렇게 한정된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특수한 예술’도 아니다.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마임. 그것을 “한국마임 2007”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마임”은 한국마임협의회의 회원들이 신작을 소개하고 그 해의 작품 활동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현재의 한국 마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매년 늦가을, 10월 말에서 11월 초 즈음이면 어김없이 대학로에서 “한국마임”이 펼쳐진다.

작가에게 신작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품은 끊임없는 고민 속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버티고 부단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나오게 된다. 창작을 ‘뼈를 깎는 고통’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매년마다 신작을 소개하는 무대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마임협의회의 회원들은 꾸준히 “한국마임”을 치러왔다. 그것은 새로운 작품의 신선함과 실험성이 마임을 발전시키는 힘이 되리란 믿음에서였다. 그렇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이어온 공연이 어느덧 올해로 19년째다. 그렇게 묵묵히 걸어온 걸음이 마임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될 수 있는 힘을 키웠고, 점차 마임이 관객에게 주목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마임 2007”은 19년이라는 시간을 인식한 듯, 평소의 공연 프로그램 외에도 토크 퍼포먼스 ‘트렌드, 물결, 흐름’을 특별행사로 진행했고 얼마 전 작고한 마르셀 마르소를 기리는 ‘마르셀 마르소의 밤’ 공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국마임 2007”은 마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보여주는 뜻 깊은 자리라 할 수 있다.


아쉽게도, 공연을 제대로 본 건 11월 6일 뿐이었다. 그러나 다섯 편의 공연이 한 번에 오른 자리라, 올해 “한국마임 2007”의 작품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 마임”은 중견 공연자부터 젊은 공연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각자의 개성을 살린 작품을 보여주면서, 한국 마임의 현재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정훈의 [오!엔트로피]는 ‘엔트로피’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끝없는 발전 속에 오히려 과도한 무질서로 무너져 가는 지구를 그렸다. 지구를 실험이 행해지는 비커로 상정하고 그 안에서 원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비커에 물이 가득 차서 인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물밑으로 내려가 탐욕스럽게 온갖 것들을 따먹는다. 이윽고 이정훈은 비커를 상징했던 비닐 막을 한 번에 끌어내리며 실패한 실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물소리와 부대끼는 비닐 소리 등, 움직임뿐 아니라 소리까지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관객을 자극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프로젝트 판은 세 개의 짧은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송창식의 동명 노래를 바탕으로 극을 구성한 [담뱃가게 아가씨]는 짧으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노래가사를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표현하여 노래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 한편으로 독립된 작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판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가면을 쓰고 나와 눈길을 끌었는데, 이는 가면으로 캐릭터를 확실히 하여 관객이 쉽게 역할을 파악할 수 있게 한 효과를 얻었다. 예를 들어, [담뱃가게 아가씨]의 아가씨는 남자배우이고 남자들은 여자배우가 연기했다. 그러면서 더욱 코믹스러움을 연출했는데, 분장을 하는 것보다 정형화된 표정을 가진 가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성별을 바꾸어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배우의 얼굴을 가리고 온전히 몸짓으로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있지 않았나 싶다. 프로젝트 판은 그 외에도 [웬일이니 1,2]를 통해 우리가 실생활에서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엮어 소개하면서 어렵지 않은,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마임 공연을 선보였다.

 

 

이윤재는 [흔적]을 통해 의자라는 오브제를 독특하게 사용하여 재미를 선사했다. 온 몸에 걸쳐진 의자를 하나하나 떼어내는 과정을 관객은 약간은 코믹스럽게 바라보지만, 이어 그가 자신의 얼굴과 손과 발을 살펴보다 다시금 힘들게 떼어낸 의자를 짊어지는 것을 보며 그것이 단순히 의자가 아니라 삶의 흔적임을 알게 된다.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의자를 겹겹이 짊어진 강렬한 이미지가 인상 깊었으며, 의자를 통한 기발한 에피소드로 즐거움을 선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철학적 사유까지도 가능하게 한 작품이었다.

김봉석(마네트)은 [현대인 2007_욕망의 아우라]라는 제목 그대로를 잘 표현했다. 제자리에서 굼벵이처럼 구르는 듯 모습을 통해, 매우 바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현대인을 재미있게 보여주었다.



가장 관심이 간 작품은 아무래도 유홍영의 [꿈에 2007]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임을 해온 중견공연자이자 극단 사다리의 예술 감독인 만큼 기대가 되었는데, 그것이 헛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술에 취해 귀가하던 남자가 꿈속에 빠지고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꿈의 모습을 보여준다. 휴지라는 흔한 오브제를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돋보였고 각각의 꿈의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중견의 공력을 보는 듯했다. 코믹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특히 과장되지 않으면서 편안하고 그러면서도 긴장을 잃지 않는 움직임이 좋았는데, 오랫동안 마임을 해오면서 움직임이 몸에 배여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했던 배우들은 사이좋은 선후배의 모습으로 손에 손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 마임”이 단지 관객에게 보여주는 공연 일뿐 아니라, 한국마임협의회의 회원들이 가족처럼 모여 준비하는 공연임을 느끼게 하는 훈훈한 순간이었다.


유홍영씨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마임을 하게 된 이유를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표현방식인 마임을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해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관객들은 마임이 말이 없는 공연이기에 어렵고 낯선 장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예술장르뿐 아니라, 인간의 표현의 기본이 움직임이다. 흔히 보는 연극, 무용은 모두 움직임이 기본이 되고, 하다못해 사람이 말을 하려고 해도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모든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마임과 다를 바 없음을 설파했다.

그의 말처럼 마임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임은 움직임이고 우리는 늘 움직임을 보아왔다. 우리가 친근하게 느끼는 예술장르의 기본도 움직임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표현이 가능했다. 우리가 마임을 생소하게 여기는 것은 움직임이 독립적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상시 움직임은 다른 것에 가려져 있었다. 소리나 장식, 말에 의해서. 그래서 가장 순수한 표현을 쉽게 읽어내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몸의 움직임이 소외되어 가는 세상이다. 세상은 점점 움직이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고, 효율성을 이유로 최소의 동선을 제시해준다. 사람들은 그 소외감을 무의식적으로 떨쳐버리려는 듯이 제자리 러닝머신을 뛰면서 자신을 억지로라도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마임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어느 때보다도 요즘에 주목받게 될 표현예술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다시 우리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순수하게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면,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몸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움직임이 상상하게 하는 세상 속에서 무한한 세계가 펼쳐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임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알고 보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가 그 움직임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마임은 비로소 꽃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마임 2007”은 그 가능성을 안은 채로 꾸준히 전진하고 있었다.   

보충설명

* 한국마임 2007
10월 30일-11월 11일 / 우석레퍼토리 극장
* 한국마임협의회 홈페이지
www.komime.net

필자소개

글로 모든 걸 표현해보고 싶지만, 말이 더 많고
그래서 말없는 마임에 관심이 많은 작가지망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