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지 않으며 꾸욱 누른 한걸음씩, 얼스 EARLS 2집을 만나다

2009. 4. 10. 14:0507-08' 인디언밥

한눈팔지 않으며 꾸욱 누른 한걸음씩, 얼스 EARLS 2집을 만나다

  • 정나리
  • 조회수 713 / 2008.07.02

 

안부를 묻다

 6월의 어느 날 해질 무렵, 새로 발매된 따끈따끈한 2집 <LOVE×3>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영등포에 위치한 그들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얼스 멤버들과 필자는 팀이 결성될 무렵부터 알고 지내 온 터라, 사실은 인터뷰라고 하기도 취재라고 하기도 애매한, 오히려 ‘그땐 그랬지’에 가까운 수다에 이어 서로의 근황을 편하게 나누는 대화들이 오고 갔다.

 팀의 결성이 2002년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따져 본다면 제법 오래 된 밴드인데 2005년 1집 <Merrymaker> 발매 이후 2년 여 만에 2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Funny day Funky Day>나 <Funky Station> 같은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긴 했지만) 앨범이 너무 뜸한 것 아니냐는 필자의 농담 섞인 퉁박에 멤버들은 말없이 허허 웃고들 만다. 대신 새 앨범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며 자분자분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무엇이 없어도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음악을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2집 <LOVE×3>

 새로 나온 2집의 음악들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뭐랄까, 차가운 샤베트가 얹힌 아주 진하고 달달한 치즈케잌을 맛 본 듯했다. 첫 느낌은 시원하고 경쾌하지만 무척이나 농밀하게 짜여있는 리듬과 화성 등은 이들이 결코 치기어린 음악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조용히 증명해 보인다. 멤버들이 서울재즈아카데미 출신이라는 건 밴드의 바이오그래피의 한 줄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지만, 팀을 만들었을 그 당시부터 이미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던 팀이라는 건 알만 한 사람들은 아는 얘기다. 2003년에 K-Rock Championship'에서 금상을 수상하고(이 때 대상을 수상한 팀이 ‘럼블피쉬’였다), ‘2005 인디그라운드’에서 대상을 수상한 등의 이력도 이들에게 소중하지만, 이들의 실력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 온 것은 그 무엇보다 셀 수 없이 많은 그동안의 클럽공연 경험이다.

 얼스에서는 임승범이 곡마다의 큰 틀을 제시하고 보컬 신승훈이 노랫말을 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물론 그 후에 편곡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 멤버들의 흔적이 조금씩 더해가면서 얼스만의 색깔이 완성되는 것이겠지만, 특히 이번 2집을 통해 밴드의 음악적 색깔을 보다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분명한 중심을 틀어쥐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이 밴드의 연륜(!)이 느껴진다.

 이번 앨범에서는 펑키음악에서 빠질 수 없는 브라스(Brass) 파트로 ‘커먼그라운드’의 멤버 김중우, 어용수, 김성민 등이 참여해 주었고, ‘윈디시티’의 정상권은 어고고(Agogo)와 탬버린, 콩가(Conga) 등의 퍼커션 세션으로 함께했다.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의 타이틀곡 ‘야야야’를 비롯해 멤버들의 연주가 매력적인 'I konw' 등의 신나는 곡들도 좋지만,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면서 들으면 좋을 것 같은 ‘Alway'나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된 ‘Missing you loving you' 같은 편안한 음악도 귀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는 이주한의 플루겔 혼(Flufel Horn)의 아련한 음색이 매력적인 ‘안녕...’도 추천하는 바이다. ‘Ugly man'은 작년부터 방영된 MBC 일요드라마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 OST에 먼저 실려 공개된 곡이기도 하다.


우리의 음악,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

 사실 밴드라면 능히 넘어야 할 산이지만, 여럿이 머리를 맞대어 음악을 만들고 다듬어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멤버들이 오랫동안 멤버십을 유지하면서 팀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잠시 옆길로 주제를 유도했다. 도중 멤버들이 각자 좋아하는 음악 혹은 뮤지션들을 물어봤다. 지나치게 전형적인 질문이라는 건 알면서도, 얼스라는 밴드의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다채로울지, 그리고 그것이 이 밴드의 음악에 결과적으로 어떤 색깔을 입혔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먼저 보컬을 맡고 있는 신승훈은 스티비 원더를 꼽았다. 쉽고 대중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스티비 원더의 음악은 그 자신 뿐 아니라 얼스 음악의 정체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이번 2집에 실린 ‘Mr. Wonderful'이 바로 스티비 원더에 대한 헌정곡이라고 하니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할 듯. 키보드를 담당하며 대부분의 곡을 작곡하는 임승범은 이상은, 이적 등의 국내 뮤지션들과 함께 라이딘 썸(Ridin' thumb), 잭 존슨(Jack Johnson), 이니그마(Enigma) 등으로 다양했고, 팀의 막내이자 기타를 치는 정인성은 제프 버클리(Jeff Berkley), 존 메이어(John Mayer) 등을 꼽았다. 드러머 최경민은 요즘 드럼 위주로 음악을 듣는 취향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음악들을 듣고 있다고 한다. 음악에 담긴 멤버들의 연주를 들으며 각자마다의 취향을 되짚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난 6월 20일 드럭에서 있었던 얼스 2집 발매 기념 공연 현장>

 

진정성

 가수가 노래를 잘한다는 건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일까. 밴드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또 어떤 말일까. 우울함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격한 분노든-감성을 표현할 무언가를 (예술의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이 드러내는 자신의 모습은, 팔아치우기 위한 상업적인 작품 속에서의 그것과 분명 다름이 있다.

 그렇다면 그 실력이라는 것의 기준은 어쩌면 진정성에 있지 않을까. 기교가 뛰어나거나 현란한 연주,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박자나 리듬, 음감도 물론 실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빗줄기 속에서조차 겅중겅중 뛰게 만들고 환한 대낮에 길을 걷다가도 문득 눈물 한 방울 툭 떨어지게 만드는 그런 힘. 무대 위에서 음악하는 이들 스스로가 즐겁고 슬프고 간절해서 스스로 취해 버리는 그 자체로 감동이 되는 그런 음악. 나는 그걸 진심이 담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얼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리고 공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 자신이 무대를, 음악을 즐기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우리 모두 다함께 즐겨봅시다, 라고 하는 무언의 몸짓들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진다.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하는 팀들의 공연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런 무대 위에서의 호흡을 관객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얼스의 음악은 라이브공연으로 봤을 때 훨씬 더 신나고, 더 뜨겁고 진하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팀으로 함께 해 온 이들의 모습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서로가 서로를 단단하게 잇고 있는 끈-소위 팀웍이라고 부를 수 있는-은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한결같다. 멤버들이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얼스가 오래 전 EP 앨범을 발매했을 때 필자가 맡고 있던 모 신문의 꼭지에 앨범 리뷰를 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5년 쯤 뒤에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음악을 하고 있을까. 아마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한결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건 기대도 희망사항도 아닌, 그냥 막연하지만 알맹이 있는 믿음 같은 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고 흐뭇했던 건, 아마도 그런 기운이 내게 전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보충설명

<얼스 EARLS 프로필>

2002 재즈아카데미 정규, 고급과정 졸업, 밴드 얼스(Earls)로 활동 시작
2002 'Feel the Groove'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2003 'Funny day? Funky day!'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2003, 2004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재즈아일랜드” 참여
2003 대한민국 Rock festival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장상'(금상) 수상
2005 "Funky station"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2005 광명 음악밸리 공연
2005 SKY 인디그라운드 연말 결선 인디지존(대상)-
2005. 12. 29. Earls 정규1집 "The Merrymaker" 발매
2007. 12월 MBC 일요드라마 '비포 앤 애프터 성형 외과'OST참여
2008. 5월 2집 'Love X3 Now!' 발매
클럽 Evans, 천년동안도, 사운드홀릭, DGBD, F.F, S.H., 프리버드, 롤링 스톤즈, 클럽피닉스, soul live 등 약 5년간 다수의 클럽 활동

필자소개

작곡가, 음반 및 공연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