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판소리 투나잍 <구전심수>에 대한 너른 생각

2015. 11. 14. 13:27Review

 

뼈대의 의미를 생각하며 :

판소리 투나잍 <구전심수>에 대한 너른 생각

 

글_율

 

몇 년 전부터 판소리만들기 자는 이리까페에서 <판소리투나잍>이라는 이름의 공연을 열어왔다. 공연장 외의 공간에서 음악 공연을 하는 것은 이미 많은 예술공간들 안에서 이루어져 온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국악 계통의 공연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홍대 일대의 라이브 클럽에서 비교적 자주 공연을 여는 몇몇 국악인들의 이름을 떠올려 낼 수 있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그러한 공연들과도 구별될 수 있는 지점은 공연의 ‘지향점’ 에서 비롯된다. <판소리투나잍>은 전승 판소리 5바탕과 민요를 전통적 방식으로 연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젊고 감각 있는 국악인들이 시도하고 있는 타 예술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실험하려는 공연도, 국악기 외의 것들과 같이 연주하여 다른 논법을 시도해보려는 연주회도 아닌 것이다. 상수동의 한 카페 안에서 열리는 이 공연은 지극히 전통적이기에 홍대 속에서 만나게 되는 국악 공연들과도 다르다고 할수 있다.

 

▲ <판소리투나잍> 공연사진 이향하(제자고수) 이자람(소리꾼)

 

커피와 음식을 팔던 카페가 판소리를 하기 위한 공연장인 ‘판’으로 변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카페 안의 탁자들을 모두 밀어내서 빈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관객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끌어다 놓는다. 맨 앞줄에는 방석도 몇 개 둔다. 여기에 막걸리와 간단한 먹을 거리도 준비한다면 ‘판’을 위한 준비는 끝난다. 조명, 음향기기 등 별다른 장비가 없어도 공연을 감상하는 데에 크게 상관은 없었다. 비어있던 공간을 ‘판’을 위한 장소로 짜내는 충분조건은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관객뿐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은 공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약들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전통 판소리의 경우, 연행 공간 양식은 엄격하게 정해져 있진 않다. 물론, 어떤 공간이든 무대와 관객석이 물리적으로 분할되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구 연극이 유입되고 실내 극장이 잇따라 설립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판소리 또한 여타 연행 장르들과 같이 극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서양 연극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프로시니엄 무대 위에서 공연하기 위해선 그 물리적 틀 속에 판소리 공연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고, 따라서 개조 과정에서 많은 요소들이 삭제되고 약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판소리를 가장 크게 변화시켰던 제약 중 하나는 ‘관객석과의 분리’ 였다.

 

▲ <판소리투나잍> 공연사진 이희문(스승), 신승태(제자)

 

어느 공연예술에서든 관객은 고려되지 않을 수가 없는 요소이지만, 판소리에서의 ‘관객’은 물리적 현존을 넘어서서 연행자의 작품 해석과 판단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존재다. 명창들은 관객의 호응이 좋은 부분에 있어서는 힘을 더 할애하여 분량을 더 늘리기도 하고, 더 나아가 개작을 하거나 아예 새로운 대목을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이본들과 더늠이 풍부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만큼 관객석은 판소리라는 장르에 생명력을 불어넣던 즉흥성과 현장성의 근간이 되어주는 요소였다. 그렇기에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위계가 생겨난 공연들과, 원형을 보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문화재제도의 출범은 소리꾼들이 변형과 창작을 추구하기보단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을 갈고 닦으며 답습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판소리투나잍>과 같이 공연장 외부로 다시 돌아오는 공연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현장성에서 비롯되었던 요소들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관객과 소리꾼 사이의 교류가 원활히 일어날 수 있는 ‘판’이 짜지기 위해선 단순히 연행자와 관객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 예시로 코우스(KOUS : 전통공연장)는 전통 판소리를 프로시니엄 무대 위에 올리는 공연장이지만 연행자와 관객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편이다. 이는 그 공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다수가 판소리 문화에 익숙한 청자(귀 명창)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다 좋은 전통 판소리 공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관객들 또한 연행자에게 적절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

 

▲ <판소리투나잍> 공연사진 이희문(스승), 신승태(제자)

 

<판소리투나잍>이 극장보다 좀 더 판소리에 적합한 공간 안에서 행해졌다 할지라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생기는 건 이 때문이었다. 공연장 안에는 휴지, 강세 등의 부분에 적절히 추임새를 넣는 관객도 있었지만, 사투리와 고사로 이루어져 있는 사설 자체를 알아듣지 못해 가사집을 보면서 감상하는 관객도 있었다. 이런 관객 사이의 대조는 3일째 적벽가 공연 때 더욱 두드러졌다. 하지만 사설 자체에 난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창자들의 좋은 가사전달력과 더불어 연행 요소에 몸짓과 연기가 포함되어 있는 판소리의 특징 덕택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승들이 내보이는 원숙한 연행들은 사설에 대한 이해를 차치하고라도 듣는 사람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었다. 몸에서 우렁차게 터져나오는 소리, 그리고 묵직함을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장단을 쪼개는 고법을 듣는 건 정말 만족스러웠다.

국악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전승작업을 이어나가는 것과 색다른 변형을 통해 예술적 실험을 하는 것은 젊은 국악인들이 늘 지고 있는 고민거리다.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중에서도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본래 창작판소리 작업을 중심으로 하며, 국내를 비롯하여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판소리만들기 자가 전통판소리 발표회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판소리투나잍> 공연을 매년 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싶다.

 

▲ <판소리투나잍> 공연사진 김소진(제자) 김홍식(고수)

 

문화재보호법은 도시화, 산업화 등으로 지역사회가 빠르게 해체되던 격변기 속에서 태어난 제도였다.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제도이므로, 시행된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보호-복원-발굴 작업이 주를 이루는 유형문화재에 이를 적용시키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와는 달리 연행 예술이라는 특성 상 제도의 의의인 보존과 전승을 적용시키기엔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무형문화재 제도는 기술을 체득한 보유자를 중심으로 전승자를 양성하는 보유자 인정 제도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지원, 선정 절차, 전승교육, 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 제기가 되어 왔지만, 그것들 중 대다수가 문화재제도의 목적성이자 존립이유였던 원형 유지 원칙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통예술에 대한 수요 저하는 스승과 똑같이 연행하길 요구하는 제도가 동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감각과 전통예술 사이에 크고 깊은 간극을 만들어낸 것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는 보유자에서 전무교육조교, 이수자, 전수 장학생이라는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전해지는 전통문화이기 이전에 하나의 예술이다. 이런 간극이 생겨나게 된 것은 무형문화재를 예술이라는 좀 더 넓은 개념이 아닌 보유자라는 좁은 틀 안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젊은 국악인들은 보존 및 전수라는 선대 국악인들이 맡겨놓은 짐 위에, 정해진 법칙 안에서 예술적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와 대중화시킬 수 있는 출구도 동시에 찾아내야 한다는 고민들도 지고 있는 상태다. 이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풀어야하는 숙제임과 동시에 국악계가 젊은 국악인들에게 기대하고 요구하는 의무다.

 

▲ <판소리투나잍> 공연사진 윤진철(스승) 김홍식(고수)

 

하지만 판소리만들기 자의 작품 행적을 보면 그들의 길을 잘 찾아나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판소리투나잍>은 그들이 판소리라는 장르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내는 것은 기초를 단단히 닦는 과정이 전제되어 있었으며,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는 늘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는 점을 발표하는 공연이다. 살을 붙이기 위해서는 뼈대가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살을 탄탄히 안정적으로 붙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한 뼈대를 가져야 한다. 그 뼈대를 다져나가고 조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판소리 투나잍>이 아닌가 싶다. 그 뼈대 위에 어떤 형태로 살이 붙은 신작들이 만들어질지가 기다려진다.

 

*사진제공 _ 판소리만들기 자

** 판소리 만들기 자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panmanza/

*** 지난 <판소리 투나잍> 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881

 필자 _ 율

 소개 _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판소리만들기자는 예술감독 이자람을 필두로 이승희, 김홍식, 이향하, 신승태, 김소진(기획/지원 조연구, 유현진)이 판소리를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 공연하는 단체입니다.

 판소리투나잍은 판소리만들기자에서 진행하는 동시대-국악 프로그램으로, ‘판’ 과 ‘소리’,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사람’ 에 대해 ‘다시’ 살펴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삼일 저녁동안 판소리 만들기 자와 이리카페에서 진행되며, 보다 친근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납니다.

[프로그램]

10/24 경기민요 - 경기소리 이희문(스승), 신승태(제자)

10/25 강산제 <심청가> - 판소리 사제 윤진철(스승), 김소진(제자) _고수 : 김홍식

10/26 동편제 <적벽가> - 고수 사제 조용복(스승), 이향하(제자) _소리꾼 : 이자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