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뜨거운 정의, 차가운 복수<헤카베>

2017. 6. 28. 08:47Review

 

뜨거운 정의, 차가운 복수

<헤카베>

창작집단 LAS /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

 

글_권혜린

 

얼핏 ‘정의를 위한 복수’는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단어이며, 복수는 주관적이고 사적인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가 개인의 이익에 따라 전유되고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반대로 복수 역시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 혹은 목표를 위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라는 주제로 올라갔던 산울림고전극장 중 재공연된 그리스 비극 <헤카베>는 복수와 정의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이는 고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이어지는 고민이기도 하다.

 

 

 

진실을 위한 재판

헤카베는 스스로를 ‘모든 여자 중 가장 비참한 여자’라고 할 정도로 불행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자식이 전쟁에서 죽고 자신도 포로가 되었으며, 딸 폴릭세나는 아킬레우스의 제물이 된다. 사위인 폴뤼메스토르에게 양육을 맡겼던 아들 폴리도로스마저 재물에 눈이 먼 폴뤼메스토르에게 살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카베가 선택한 방법은 ‘복수’이다. 그녀는 트로이의 여인들과 함께 폴뤼메스토르와 아들들을 막사로 유인해 아들들을 죽이고, 폴뤼메스토르를 장님으로 만든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줄거리를 따르면서 재판 형식을 사용하여 아가멤논을 재판장으로, 헤카베를 피고인으로, 폴뤼메스토르를 피해자로 놓고 양측의 변론을 듣게 한다. 고전을 재판으로 각색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자신의 죄가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내세우는 ‘정의’라는 단어가 양측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헤카베와 폴뤼메스토르 모두 진실의 편에 서겠다고 하지만 폴뤼메스토르는 계속 거짓말을 한다. 그가 장님이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는데 그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공공의 정의’를 위한 말들이 나온다. 폴리도로스를 죽인 이유는 그가 ‘반역자’이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반역을 실제로 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반역을 할 것이라고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반역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처형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을 낙인찍는 일은 고대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다. 이는 폴뤼메스토르가 사적인 죄를 공적인 명분으로 가리기 위한 것으로서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그는 자신의 행동이 미케네와 그리스 연합을 위한 것이며, 이 때문에 자신이 오히려 수난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적인 일을 했다고 강조함으로써 사적인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헤카베가 자신의 입장을 말할 때는 폴뤼메스토르가 거짓말로서 ‘말하기’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복수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로 드러낸다. 작품이 시작될 때에도 붉은 무대에서 플라멩코를 추면서 헤카베를 비롯한 트로이의 세 여인이 폴뤼메스토르의 눈을 찌르고 그의 두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여 주었었다. 붉은색의 강렬한 무대만큼 ‘분노’라는 감정이 생생하게 전이된다. 분노라는 감정 이전에는 불안이 있었다. 전날 밤 폴리도로스의 죽음을 암시하는 예지몽을 꾼 헤카베는 불안해한다. 검은 그림자가 사슴으로 변했는데 아킬레우스가 늑대로 나타나 그 사슴을 물어뜯었던 것이다. 헤카베는 처음에는 제물이 되는 폴뤽세네가 사슴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사슴은 예기치 못한 폴리도로스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은 폴뤽세네를 데리러 온 호송자인 오디세우스에게도 향한다. 그는 헤카베가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배반하고 국가의 위기만 내세운다. 헤카베는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마음대로 쓰면 안 되고, 운이 좋은 사람도 운이 항상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공적인 명분만 내세운다. 결국 폴뤽세네는 죽음의 길을 가면서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고, 헤카베에게 더 강한 사람과 싸우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그 뒤에 폴리도로스의 시체까지 발견한 헤카베는 자식을 잃은 상황에서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분노로 인한 복수가 정당하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헤카베의 감정과 행동은 진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폴뤼메스토르의 거짓말이 공적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힘을 갖지 못한다. 진실이 힘 있는 편에 서게 된 것이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복수

이렇게 헤카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재판이 휴정했을 때, 헤카베는 아가멤논을 따로 불러 자신의 복수를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아가멤논은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자 재판관이지만 헤카베의 딸인 카산드라를 첩으로 삼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과 사가 얽힌 상황에서 갈등하고 있다. 마음은 헤카베에게 기울어졌지만 트라케의 왕인 폴뤼메스토르를 벌할 경우 트라케와 적이 되어 군대에 해를 끼칠 것이며, 특히 카산드라 때문에 감정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오해받을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가멤논은 오히려 헤카베에게 폴뤼메스토르를 용서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론의 동정을 사 목숨을 구하라고 말한다. 복수는 곧 죽음이기 때문에 생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헤카베에게 중요한 것은 삶/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예속의 문제이다. 폴뤽세네가 제물이 될 것으로 결정되었을 때, 이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헤카베를 비롯한 트로이의 여인들이 포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에브로피는 신전에 가서 기도를 드리자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노예로 예속된 상태에서 계속 참는다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자가 죄를 짓는 것을 묵인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러한 희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가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헤카베가 생각하는 정의이다. 헤카베는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이 정의라고 이야기하며, 따라서 자신의 무고한 아들을 죽인 죄도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복수는 곧 개인적인 자유를 위한 것이자 보편적인 정의를 위한 것이다. 헤카베는 결국 아가멤논에게 자신의 복수는 자기가 알아서 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준 트로이의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범을 말하라는 요구에도 침묵한다.

 

 

 

세상에 통하는 정의

불행하게도 세상에 통하는 정의는 헤카베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다르다. 세상에 통하는 정의에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정의’로 손쉽게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아가멤논에게 동맹국인 트라케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폭동 직전의 군대를 신경 쓰라고 한다. 총사령관의 위치를 자각하라는 것이다. 폴뤼메스토르가 실리만 신경 써서 돈 때문에 폴리도로스를 죽인 것과 달리 아가멤논과 오디세우스는 명분을 중시한다. 이렇게 실리와 명분을 따지는 것은 국가 또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내세워졌을 때 세상에 쉽게 통하게 된다.

최후 변론에서도 폴뤼메스토르는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폴리도로스를 끝까지 반역자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말을 바꾸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헤카베는 인간은 결코 혀가 행동보다 요란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살인자의 정의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아가멤논은 결국 폴뤼메스토르의 편을 드는 판결을 내린다. 헤카베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폴뤼메스토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뒤 자결한다. 이는 자신의 복수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완성한 것이며, 비겁하게 살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비록 죽음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헤카베의 진실은 복수가 완성됨으로써 승리했다. 헤카베에게는 자신의 윤리에 따르는 정의가 중요했던 것이다.

 

 

 

동정/분노의 이분법을 넘어

이 연극을 본 뒤 헤카베에게 드는 감정은 스스로 가장 비참하다고 말했던 것과 달리 ‘숭고함’이었다. 헤카베는 재판에서는 피고인인 동시에 개인적인 삶에서는 피해자이지만 동정의 대상도 아니고, 분노의 대상도 아니다. 복수를 용감하게 완성한 헤카베를 동정만 할 수도 없고, 그녀의 행동이 죄라고 생각해서 분노하게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분노의 대상은 오히려 ‘비뚤어진 정의’로 헤카베를 강요하는 쪽이었다. 헤카베가 말하는 정의는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았기에 뜨거웠고,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관철했던 복수는 차가웠다. 복수하는 상황에서 집시들의 한(恨)을 담았다는 춤인 플라멩코를 추는 모습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극장을 나온 뒤에도 극적인 긴장감을 풍부하게 담은 헤카베의 마지막 표정이 잊히지 않았고, 뜨거웠던 박수 소리가 기억에 남았다.

 

 

*사진제공_산울림 고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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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