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제20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7 축제리뷰-2

2017. 8. 7. 20:34Review


두터운 시간과 감수성 연대

제20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7

축제리뷰 @서울월드컵경기장


글_김솔지


올해도 프린지페스티벌에 도착하기까지


6월 말, 3년간 살던 봉천동을 떠나려 이사 준비를 한창 하던 중,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안내와 함께 우편물을 보내주신다는 연락이었다. 매번 잠시 가서 놀기만 하고 후기 하나 못 썼는데, 초대장을 받아도 될지 고민이 됐다. 그래도 그 연락이 감사한 나머지 그만 7월 7일 전까지만 보내주시라고 부탁하고 끊었다. 장맛비가 쉼 없이 내리던 이사 전날, 저녁이 되어 집에 들어가는데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척척히 젖은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온 우편물이 있었다. 그날 밤 분주히 짐을 꾸리는 내 옆으로 프린지 우편물이 서서히 마르고 있었다. 이사 가던 날, 꾸깃꾸깃 마른 초대장과 리플렛을 가방에 담았다. 내가 받은 다정함에 대한 감사함이자, 꼭 가서 보고 쓰고 싶은 다짐이기도 했다.



7월 21일 금요일 저녁,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다. 원형의 경기장,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궁금해 하려던 차에, “way to 프린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어서 프린지 로고가 담긴 대형 현수막, 큰 돌멩이 조각상, 익숙한 얼굴들, 인디스트들의 움직임이 다시금 2016년 프린지 축제의 나를 소환한다. 해가 질 무렵 열린 야시장에서 민소매 원피스를 하나 사 입고 “남자화장실”에 앉아 음악공연을 듣던 2015년도 엊그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 올해는 어떨까.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바다에서라도 날 찾고 싶다. 20도씨의 <마이 그래비티> (45mins)


지난달까지 학과 사무실에서 2년간 조교로 근무했던 나는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공연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월드컵경기장 안의 실내 공간, 의자도 무대도 없는, 옆에 앉은 아이들이 부스럭대고, 공연이 시작한다고 객석의 조명이 꺼지지 않는, 어느 하얀 정방형의 공간 바닥에 앉아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리던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배우의 한 마디에 바로 몰입한 것이다.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오른 조교가 순간적으로 들끓는 분노를 표출하면서 카카오톡으로 다른 팀원과 힘겹게, 힘겹게 어떻게든 공연의 시놉시스를 구상해보려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첫 장면에서 이 공연이 나와 가까운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극단 ‘20도씨’의 <마이 그래비티>는 2017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올릴 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극을 연기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다. 출연하는 세 명의 배우는 함께 연기하는 두 명의 배우와 대부분 분리된 채로 혼자 연기하는 한 명의 배우로 나뉜다. 앞의 두 배우는 (아마도 계약직) 조교, (부모님의 염려를 독차지하는) 연극배우, (‘나’의 연기를 위해 스스로 글을 쓰는) 작가로 사는, 많은 예술인들의 일반적 삶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외적인 삶의 과정을 연기한다. 특히 이 극의 시놉시스를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한 명의 배우가 이러한 부분을 많이 표현하였다. 그는 자신의 중심, 이를 테면 지구의 내핵 같은, 자신을 움직이는 주된 기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민하고, 그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이 극을 통해서.


Wanna find myself by the sea

- The xx의 VCR 가사 중


다른 한 명의 배우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면이란 없다고 믿고 있지만, 자신의 내면의 본질 같은 무언가를 바다에서 찾아보는 친구의 여정에 동행하기로 한다. 바다는 알려주지 않을까. 바다 밖에서는 중력으로 인해 늘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졌지만, 바다로 들어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들은 계속 떠오르기만 한다. 내면을 찾으러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싶기도 하고, 사실은 들어가기 싫기도 하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통해, 삶에서 그들이 갖는 갈팡질팡한 마음을 표현해낸다. 왜 바다인지, 여기서 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한 설명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바다는 명확해야 할 필요가 없기에 바다일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발견될 수도 있는 곳, 그런 광활한 영역일 뿐.



나머지 한 명의 배우는 물리적으로는 조교 둘 사이에 있지만, 그들과 하나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연기한다. 그는 연극학과 신입생으로, 과제로 주어진 안톤 체홉의 <세 자매> 대본을 연습한다. 고전이 등장했다. 올가, 마샤, 이리나라는 세 자매 중 맏언니 올가 역을 맡았는지 올가의 대사를 반복한다. 올가가 대사를 읊으면 바다로 들어가려던 두 배우는 마샤, 이리나가 된다. 대학생 때 영미희곡 수업에서 <세 자매>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 자매는 그 수업에서 다룬 대여섯 개의 희곡 중 가장 흥미롭지 않았다. 러시아 중산층의 음울하고, 난처한 세 자매의 상황과 그들의 반응이 나에게는 <인형의 집>(헨리 입센) 같은 사실주의극 뿐만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같은 부조리극보다도 불투명도가 높아 지루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이 그래비티>의 <세 자매>는 조금 달랐다.

극 안으로 <세자매>를 들여옴으로써, 연기하는 사회초년생의 불안정함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층 더 암울해진 러시아 중산층 지식인의 무능력한 세 자매의 삶이 희미한 줄로 이어진다. 물론 두 극의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등장인물들이 삶에서 느끼는 중력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루하기만 했던 <세 자매>는 <마이 그래비티>에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발화되어 선명하게 전달된다. 극의 내용을 강화하고, 형식의 한 축을 담당한다. 두 번째로 프린지페스티벌에 공연을 준비하는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을 사실적이면서도 허구적으로 표현하면서, 그들이 가졌던 불안감, 만족과 불만족을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 엮어내는 면이 인상 깊었다. 지금의 사회초년생 혹은 신진예술가가 만들어내는 사실주의, 또는 부조리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올가) 아아, 나의 사랑하는 동생들, 우리의 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굳세게 살아가자! (...) 그리고 머잖아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것만 알 수 있다며, 그것만 알 수 있다면!”

- 체홉, <세자매>, 신정옥 번역본에서 발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아카이브 전시 : 1998~2017>, 프린지가 이어온 시간들


1998년부터 2017년까지, 두터운 시간을 쌓아온 프린지페스티벌은 20주년 아카이브 전시를 기획했다. 월드컵경기장의 통로에 TIME TREE(영상과 인터뷰), FRINGE ARCHIVE(포스터와 프린지의 작은 역사(小事), 연도별 기념티셔츠, 사진들) FRINGE OBJECT(프린지에서 만들거나 파생된 오브제), FRINGE LOUNGE(공간디자인 스케치, 프린지 기념품)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분야 <올해의 예술상>(2006년)과 안정희의 석사학위논문 「다원예술 현황 및 활성화 방안 연구: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중심으로」(2008)를 보며, 다원예술 분야에서 프린지의 영향력을, 2016년 확인된 블랙리스트 등재에서 우리 사회에서 프린지가 상징하는 바를 확인한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유물들, 즉 필름을 인화한 사진들과 2001년을 기록한 비디오테이프, 인디스트의 낙서가 가득 찬 기념 티셔츠들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의 축적을 본다.



다행히 김송요 도슨트의 마지막 회차 전시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홍대앞 문화연구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익힌 홍대앞의 여러 이야기와 변곡점들이 ‘프린지’ 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지금 ‘프린지페스티벌’이라고 부르는 이 연례축제는 1998년 8월 대학로에서 자유참가를 원칙으로 삼은 ‘독립예술제’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2001년부터 십년 넘게 홍대앞을 거점으로 삼았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 상암월드컵 경기장 안과 밖의 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2000년에는 퀴어축제와 만났고, 2007년에는 이 글의 지면을 담고 있는 매체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이 만들어졌다. 2010년에는 프린지가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되었다.

여기서 다 얘기할 수 없는 무수한 이야기들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국내 독립예술의 역사와 더불어 거리예술, 현장예술, 다원예술, 신진예술과 그 궤를 같이 하기에 이번 아카이브의 중요성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올해에 새로웠던 일들이 다음 해에는 흔적이 되어 쌓이고, 계속해서 함께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다정한 프린지를 돌아보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매해 여름 열리지만, 축제 전 과정은 1년 간 진행된다. 축제를 준비하고, 열고, 마무리 짓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다. 또한 보통 3일 정도 사람들을 초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올모스트 프린지’도 기획된다. 이 포럼은 예술계의 주요 현안을 다루지만, 비판의 대상을 한정하거나, 부정적인 현상황을 하나로 갈래로 묶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오히려 문제의 원인과 상황을 펼쳐놓는다. 2년, 3년 전 프린지 포럼에 참여 했을 때 하나의 결론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 프린지의 방식이 부드러우면서도 익숙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프린지가 1년 간 운영되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은 프린지라는 ‘플랫폼’에 수렴되어 다음 년도의 운영에, 프린지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프린지의 유연함과 유동성은 프린지 페스티벌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맺는 친밀한 관계 또는 다정한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영진, 스태프, 자원봉사자인 인디스트의 끈끈하고 친근한 관계, (아카이브전의 마지막 멘트는 인디스트에 대한 감사였다.) ‘프린지씨’라는 프린지의 인격화를 통해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홍보 방식, 힙(hip)하거나 세련된 방식이 아니더라도 소통, 전달에 주안점을 두는 아카이브 전시와 프로그램 설명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축제 티져영상(“안녕, 네 생각이 났어”), ‘프린지와 안녕하는 스무 가지 방법’, 애프터파티 ‘잘했어, 수고했어!’ 등의 문구들에서도 드러난다. 연례행사로서, 이목이 집중될 한두 명의 네임드(유명인사)가 아니라 새롭게 발생되는 예술로 꾸며지는 이 축제를 감싸는 ‘다정함’과 ‘친밀함’의 정서는 프린지가 형성해내는 사려 깊은 전략이다. 다원예술의 장에서 각각의 지향점을 계발시키는 개별자들, 즉 한 명의 예술가, 한 명의 기획자, 한 명의 인디스트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축제는 ‘감수성 연대’ 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들이 동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축제를 막 마무리한 프린지가 2017년의 하반기와 2018년의 상반기에서 사회와, 예술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여 그들의 뼈대를 계속해서 바꿔나갈 지, 이 점이 기대된다.



*사진제공_극단 20도씨(공연사진) / 아카이빙(김솔지)  

**축제 웹페이지 바로가기 >>> www.seoulfringefestiv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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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김솔지

 소개_사회는 예술에, 예술은 사회에 어떤 말들을 던지고, 그 둘은 계속 바뀌어 간다고 얘기한다면, 저의 글은 그 사이에서 본 것들을 또는 그렇게 얻은 말들을 담는 연습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극단 20도씨 <마이 그래비티>


어딘가에 표류중인 여자들. 이들은 아직도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채 표류중이다. 세상에 수없이 재밌는 여행기며 표류기가 많기도 하건만 이 여자들의 표류엔 정말 재밌는 일이 그야말로 1도 없다. 물론 이 여자들이라고 이렇게 재미없는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아직 꿈은 남아있다. 우주로 가보겠다는 헛소리를 해보기도 하고, 세계지도를 훑어보기도 한다. 이 여자들에게 묻고 싶다. 왜 떠나왔는가,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진짜 목적지는 어디인가

  • 아티스트 소개

    비바람과 한파로 꽝꽝 얼어붙은 곳에서
    우리가 깨어나 움직일 수 있는, 또 언젠간 뜨거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온도,
    20도씨를 항상 갈망합니다.

    20도씨는 가천대학교 연극동아리 '아름'에서 만난 인연들이
    졸업 후에도 미련없이 공연하며 재미지게 살아보자고 만든 자유표현집단입니다.
    우리가 계속 꿈 꿀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누구든 환영합니다.

  • 출연진 & 제작진

    출연진 : 전혜정 (배우) 공혜리 (배우) 이한나 (배우)
    제작진 : 윤숙현 (미술감독) 박가영 (스탭) 유리나 (스탭) 정다은 (스탭) 권태욱 (스탭) 박성민 (스탭) 이강준 (스탭) 한이정 (기획)


  • *극단 SNS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facebook.com/20degre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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