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창조경제_공공극장편>최종 투표 결과 분석 및 공연 감상

2017. 8. 14. 08:20Review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남산예술센터

최종 투표 결과 분석 및 공연 감상


글_김유진


▲2017년 남산예술센터에서 상연된 창조경제공공극장편 공연포스터





1. 분석에 앞서 : 분석의 조건

최종 투표 결과 데이터는 투표수만 집계한 것으로 빈도수를 세는 이상의 분석 시도가 어려운 상태다. 투표에 참여한 관객들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사 결과 즉, 나이나 성별, 공연에 참가한 경쟁 극단과의 관계 등이 있을 경우 보다 정교한 계량적 분석이 가능하다.

또한, 연극을 참관한 결과 투표 방식이 관객들에게 명징하게 이해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처음 투표 설계는 4개 팀 중 한 팀을 지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경쟁을 반대하는 이의 의견이 별도 이의제기인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 같다. 그러나 공연 진행에 따라 새로 생긴 제안 섹션과 자유롭게 발의하는 섹션이 일차원적으로 나열되면서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공연 마감 하루 전날 연극 관람을 했을 때 섹션 구분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고, 자유발언으로 즉각 생겨나는 의견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입장을 정할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이렇듯 투표 상황이 실험실처럼 통제된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본 원고에서 분석한 내용은 통계적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고 데이터의 경향성을 분석자가 대략 추정하여 해석한 것임을 명시해 둔다.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회차별 투표결과 -1





2. 찬성 vs 반대 득표 결과

9회에 걸친 공연 기간 동안 예외 없이 경쟁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반대한다는 의견보다 많았고, 가장 표차가 적었을 때에는 경쟁 찬성이 55%, 가장 컸을 때는 62%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쟁 찬성 의견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관람객들의 경쟁 찬성/반대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경쟁 찬성 전체 의견 중 44%가 불의 전차 지지 의견인데 불의 전차는 등장 인물수가 다른 팀보다 월등히 많았을 뿐 아니라 주변에 홍보를 많이 했다고 한다. 토요일 대담 내용에서 불의 전차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사건과 갈등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고려했을 때 불의 전차에 투표한 사람들은 공연 상연을 축하하면서 한 표라 더해 도움을 주기 위한 지인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경쟁을 찬성한 경우는 공연의 품질이나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한다기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지지하기 위한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있고 불의 전차 뿐 아니라 각 극단별 지지표가 상당수라고 가정해보면 경쟁 찬성/반대에 대한 뚜렷한 신념에 입각한 의견 표명은 찬성 쪽이 아니라 반대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경쟁 반대와 공정성의 문제

경쟁 반대 의견 중에서 특이한 흐름이 보인다. 상금을 4개 극단에 균등 분배하자는 섹션2의 투표수는 공연 회차가 지날수록 줄어드는 반면, 상금 뿐 아니라 티켓 수입까지 창작진 전체에게 균등분배하자는 섹션4의 투표수가 후반부로 갈수록 많아진다. 언뜻 보기엔 섹션2의 의견이 섹션4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두 섹션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 수는 없다. 동일한 집단이 매일 투표하였다면 이러한 흐름에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공연 관객들은 매일 바뀌기 때문에 전반부 투표가 후반부 투표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이 같은 현상이 우연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관객 성향 데이터가 추가로 더 필요하다. 관객들이 누구인지(우연한 관람객, 평론가, 극단 관계자, 공연 주제에 관심 있어 적극적으로 찾아 온 관객 등), 후반부 관람객들이 이미 공연을 본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와서 이미 공연 상황 전반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추가 조사해야 한다.

막연하지만 왜 이런 변화가 생겨났는지 가설을 세워보자면 1) 관람 전에 투표의 내용이나 언론에 노출된 연극 소개 및 연극평 등 사전 정보를 학습한 관람객들이 증가한 영향을 받았다 2) 투표의 진행 노하우가 후반부로 갈수록 노련해져서 섹션 4의 내용에 대한 관객 이해도가 높아졌다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섹션2 극단에 균등분배 대신 섹션4 창작진 전체에게 균등 분배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는 점은 관객들이 경쟁에 반대할 뿐 아니라 더 '공정한' 분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섹션2보다 섹션4가 우세해지는 현상은 노동 문제에서 단체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가시화되고 성과주의를 배격하면서 개개인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을 주장하는 최근 여론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창조경제_공공극장편> 회차별 투표결과 -2



4. 예술 상업화에 따른 경쟁의 본질은 무엇인가?

찬성 의견에서든 반대 의견에서든, 창조경제 공공극장편의 관람객 의견은 경쟁을 단순히 능력에 따른 공정한 개별 경쟁 vs 함께 사는 공동체주의라는 신화적 레퍼토리의 이분법을 따르지 않는다. 경쟁 찬성 의견 속에는 내가 좋아하고 돕고 싶은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포함되어 있고 경쟁 반대 의견 속에는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나 공정한 개인주의를 향한 열망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딱 흑백으로 나누기 어려운 관객 반응으로 인해 최근 몇 년간 대중매체를 휩쓸고 있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도 능력주의를 토대로 한 공정한 경쟁이라는 모델에서 점차 육성 시뮬레이션 모델로 진화하고 있는데 일본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으며 프로듀스 101 등 최근 프로그램은 일본식 플랫폼을 복제한 것이다.

계급장 떼고 실력으로만 승부하자는 초창기 오디션 모델의 대표적 사례가 ‘나가수’인데, 나가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더 많은 표를 받기 위해 검증된 공연 방법을 출연진 모두가 학습하게 되면서 공연이 획일화된단 점이다. 예를 들어, 기승전결이 뚜렷한 공연 형식을 통해 스토리 전달을 명확히 해야 하고 대중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증명 방식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내세워야 하는 식이다. 나가수 론칭 당시 이러한 논의가 매우 분분했었고 대중은 점차 목소리만 크게 하는 공연을 촌스럽게 느끼게 되었으며 미학적 기준에서 반예술적이며 기계화되는 현상이 있었다.

이러한 촌스러움의 극복을 위해 최근 등장한 프로듀스 101은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한다. 공연 대신 공연자(메세지 대신 메신저)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프로듀스 101은 1등부터 서열을 매기는 완전자유경쟁의 장으로 디자인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 방송을 지속하는 힘은 능력에 따른 서열보단 아이돌을 예뻐라하는 ‘팬덤’에 있다. 팬덤은 사비를 털고 조직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듯 아이돌을 인큐베이팅한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경쟁하는 일이 마음 아프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받고 이에 반응해 기획사 및 방송사를 욕하며 아이돌에 연대해 공동체적 지지를 보내는 방식이다.


▲2015년 혜화동1번지 가을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앤드씨어터 <창조경제_상업극>의 한 장면


한겨레에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지면을 가진 대중문화비평가 이승한은 이러한 현상을 CJ의 ‘인질극’, ‘앵벌이’ 등으로 기사에서 표현하고 있으며 본인이 비평가임에도 이런 종류의 쇼를 시청하지 않는 이유가 “혹시라도 배타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소년이 생기게 될까 두려워”서라고 하였다.  최근 문빠라 불리는 사회적 현상에서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도 정치를 이러한 방송의 프레임에서 해석한 무브먼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팬덤의 활동이 기획사와 방송사를 부정한다고 해서 이들이 민주적이고 혁명적인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오히려 팬덤은 기획사, 방송사와 적대적 공존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팬덤은 아이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아이돌이 키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 투표를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팬덤의 투표 이유는 더 이상 나가수처럼 탁월한 능력을 공정히 평가하는데 있는 게 아니라 외모, 품성, 태도 등 소셜한 자질을 평가하고 나를 대리해 성장할 가능성을 점지하는데 있다. 때문에 인성이 좀 나빠 보이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하는 참여자에 대한 팬덤의 응징은 집단적이며 가혹하다. 실제 프로듀스101에서 팬덤은 방송에서 규정한 룰을 벗어나는 부정행위 출연진들에게 보복 투표를 하고 응징을 위한 여론전을 펼쳤다.

창조경제 공공극장편은 극의 형식 및 취지로 봤을 때 좀 더 탁월한 공연에 투표하라는 점에서 나가수와 유사하지만, 관객 중 상당수가 4개 극단의 지인일 것이라 상정한다면 이 관객들의 마음이나 투표 행위가 프로듀스101의 팬덤과 유사할 수 있어 보인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미 이렇게 길들여졌거나) 실제 불의 전차를 둘러싼 잡음이 그러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인들이 전략 투표를 한 것 아니냐는 여론의 비난이나, 불의 전차가 성실함에도 손가락질 받는 일이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투표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는 다른 극단 대표의 발언 등을 통해 유추해 보자면 말이다.

개인적으로도 공연 관람 중 투표 시간이 다가왔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잘 하는 팀에 투표해야 하나? 내가 좋아하는 팀에 투표해야 하나? 내가 좋았던 팀은 1등이 될 가능성이 없는데 그럼 차라리 경쟁 반대쪽으로 가서 1/n이라도 기회를 획득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나? 등. 머릿속이 번잡스러웠고 결국 10분 내 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연극인(in) 웹진(http://webzine.e-stc.or.kr/)에 실린 관객들의 의견



5. 민주주의라는 질문

여기서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예술에서 투표는 적극적 유권자의 행위일 수 있는가? 경쟁에 동의하지 않는 관객들의 자유발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가? 어떤 경우 이 불분명한 선택권이 만드는 지엽적이고 사적인 전략들의 충돌이 공론장을 퇴화시키는 함정이 되지는 않는가?

또한, 갈등은 언제나 그렇게 선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방법으로 다가오는가? 경쟁과 공동체는 과연 상반되는 것인가? 학생 간 경쟁이 가족 3대에 이르는 경쟁으로, 다시 그것이 강남권 vs 비강남권의 경쟁으로 비화되는 것처럼, 경쟁이란 생존을 위한 공동체의 학습은 아닌가? 블라인드 채용과 같은 방식으로 공정성이 과연 획득될 수 있는가? 여기서 다시 도돌이표 질문 - 개인 간의 특질을 소거해 이상적인 기회의 평등을 만들겠다는 사회적 기획은 지엽적이고 사적인 전략들의 개발을 통해 무력화되는 함정이 되지는 않는가?

창조경제 공공극장편을 관람할 때도, 결과를 분석할 때도 나는 내내 이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이 공연이 최근 보았던 것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유. 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주는 과감한 기획적 실험. 이 실험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동시대적 현상 깊숙하게 파고들기를 기대해도 될는지.


▲<창조경제_공공극장편>과 함께한 앤드씨어터-신야-불의전차-907-잣프로젝트 멤버들



*사진출처_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투표결과 공지 페이지             

**창조경제 SNS 페이지 바로가기 >>>>www.facebook.com/creative.economy.07

 


 필자_김유진

 소개_사회현상, 데이터로 문화 읽는 기획자. 예술로 약간 더 나은 세상을 일굴 수 있다고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