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헝거스톤, 눈물이 맺힌 렌즈 사이로: 콜렉티브 뒹굴 <꿈의 방주:Hunger Stone>

2022. 12. 18. 00:19Review

헝거스톤, 눈물이 맺힌 렌즈 사이로

콜렉티브 뒹굴 <꿈의 방주:Hunger Stone>

글_윤석

 

9월 24일을 하루 앞두고 본 연극 헝거스톤은 내가 삼 년에 걸쳐 열심히 잠재워놓은 어떤 심기를 심히 거슬렀다. 다음날 전국에서 3만 5,000명이 모인 924기후정의행진 사이에서 그 마음을 살펴야 했다. 답을 찾아서 열심히도 걸었다. 헝거스톤은 일종의 사기극이다. 팜플렛에 적혀있는 수 명의 배우들은 온데간데없고, 객석 안내자(지나고 보니 연기를 하던) 김정은 배우 혼자 독백을 이어가더니 마지막에는 춤도 추고 랩도 하며 짱 멋있게 퇴장한다. 허탕하고 충격에 휩싸인 채 나오는 길에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성지수 연출가가 “오보요. 오보.”하며 정정된 다른 팜플렛을 쥐여준다. 고양이가 그려진 짱아찌도 줘서 잘 먹었다. 같이 본 친구는 끝날 때까지 연극이 왜 시작 안 하나 했을 정도니까 일단 뭔가 성공하긴 했다. 

 

제공 : 콜렉티브 뒹굴

 

예술계(?)가 기후위기에 화답하고 있는 마당이다. 문학에서 기후소설인 클라이파이(Cli-Fi)가 나온 것처럼 예술에서도 기후 환경 지구 어쩌구로 가득찬 전시나 공연을 자주 보게 된다. 예술의 역할이 대개 선각자로 알려진 것에 비해서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무척 팔로우업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기후활동가로서 늘 목이 말랐던 터라 되는데로 챙겨봤다. 나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엇비슷했다. 이제야 기후 이야기가 알려지는구나. 사회적 의미는 있지만 내게 별로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알려졌으면 좋겠어서 쓰는 글마다 인용은 했지만, 돌아서면 가볍게 정리되는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이 작품, 헝거스톤은 무언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 느낌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종종 찾아온다. 똑똑. 사라져가는 검은머리물떼새가나오는 영화¹를 보다가도 비둘기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배우의 “구구구”가 떠오르고, 베트남에 지어지는 석탄발전소에 대한 글² 을 쓰다가도 폭우참사를 언급하는 배우의 떨림이 떠오른다. 

 

연극 내내 불안이 좌중을 압도했다. 좌중 전에 내가 압도됐다. 중간에 나가서 배우를 다독여야 하나, 떨리는 손을 잡아줘야 하나 싶었다. 감정 동조화가 선을 넘어서 요가에서 배운 호흡법을 되새겼다. 이해를 위해 기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야 할 것 같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앓는 것으로 알려진 기후우울(Climate Grief)은 이제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서도 공인된 심리 질환이다. 소극적으로는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적극적으로는 위협적인 미래를 앞둔 세대가 겪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폭넓게 이른다. 인류에게 세상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니 특별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에 대한 불안은 질적으로 다르다. 근대인이 사는 세상은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리바이어던에서 썼던 것처럼, 자연에 대한 원초적 공포를 바탕으로 사회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가정하고 꾸려졌다. 사회는 자연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태동하여 거대한 불안을 조그만 불안으로 바꾸어 개인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 불릴 정도로 기후·생태위기가 정점에 다다라 공멸을 앞둔 우리의 심정은, 원시림 앞에 마주한 선사인의 넓은 세계에 대한 불안과 비교를 불허한다. 많은 기후활동가의 마음에 내리꽂힌 이 문장이 더 잘 설명해줄 것이다. “우리는 인류가 지구에 입힌 손상을 처음으로 깊이 자각한 세대이자 번영과 발전의 정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세대다.” ³ 공멸을 앞둔 미증유의 위기가 생명에게 주는 감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질문이 계속 떠오를 뿐이다. 망해가는 지구에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그 속에서도 왜 함께 기후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너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희망찬 미래를 그릴 수 없는 생명이 활력을 가지기란 어렵다. 우리의 불안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보다 섬세하고 체계적인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사진 제공 : 콜렉티브 뒹굴

 

오해하지 않기를, 이 연극이 기후우울 버튼을 누르기에 25금 유해 매체로 선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라투르(Bruno Latour)의 책 이 말해주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은 생명이 물을 마시고 공기로 숨을 쉰다는 자명한 사실을 망각한 대가를 혹독히도 치르고 있다. 연극은 그런 자명한 망각의 세상에서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일깨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감을 잡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기후우울의 무게가 짙어진다고 생각한다. 치유의 시작은 불안의 인정과 객관화이다. 김정은 배우를 보면서 기후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지독히도 아프고 살 떨렸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볼 수 있었다. 내게 기후우울이라는 질병이자 상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덕에 치유나 승화를 이어갈 수 있다. 친구들이 생각이 났다. 내가 지나보낸 시간들 동안 내 친구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자기만의 방에서, 혹은 광장에서, 혹은 공론장 어딘가에서 친구들은 어떤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까. 김정은 배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는 함석헌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비극의 어떤 지점에 가닿고 와닿고 그것을 말하고 듣고 하는 전 과정에서 다음 국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전환의 싹이 피어나는 것 같다. 아직 기후위기에 대해 감도 못 잡은 얼어붙은 우리 사회를 녹이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할 거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헝거스톤 팜플렛에 쓰여있는 “이것은 절대 기후 연극이 아닙니다.”는 말은 가소롭기까지 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하면 코끼리만 생각나니까. 그러나 아마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것은 기후연극이다. 새 장르가 만들어졌다. 이 연극은 무궁한 해석과 속편을 필요로 한다. 고생한 연출자와 연기자에게 답까지 달라고 하는 건 무례함이겠다. 의도인지 의도치 않았는지 연극 속에서 남겨놓은 힌트들로 답을 찾고 길을 찾아가는 것은 나의, 연극을 본 청중들의 몫이겠다. 중언부언이 길었다. 얼른 보세요. 

 

 

덧붙임 : 이 평론인지 편지인지 모를 글의 정체를 아는 데 도움이 되도록 우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겠다. 성지수와 김정은과 나는 스스로를 연구활동가(액티비스트리서치, Activist Research)라고 부르는 아야프(AYARF)라는 장에서 처음 만났다. 액티비스트리서치는 연구와 활동의 경계를 허무는 연구방법론이자 정체성이다. 말이 고상하지 돈 말고 기후에 도움되는 거는 다하는 앤잡러다. 기후를 연구도 해 활동도 해 쟤네는 연극도 하고 그림도 그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우리는 같이 일도 했다. 김정은 배우는 내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경이로운 녹색전환 삽화를 만들어준 작가님이고 성지수 연출자는 내가 사랑하는 녹색당의 옆자리 활동가다. 연극 이후에 나는 삼 년간 묵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계속 기후위기를 말하고 쓸 것임에게도, 나는 내게 맞는 옷을 찾아서 기후활동가를 은퇴하기로 했다. 그래도 우리의 만남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업자 이전에 동지, 그 전에 동심(同心)이니까.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고 우리가 되니 이 관계망에서 창발되는 많은 빛들이 미증유의 시대를 헤쳐가는 우리의 앞길을 환히 비췄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욕심인가? 기후 때문이다. 

 

 

1) 황윤 감독, 2022, 수라.

2) 장윤석, 2022, 생태학살(Ecocide)을 넘어서 - 녹색분칠(Green Washing)에서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으로: 한국의 마지막 석탄발전소 베트남 붕앙-2를 둘러싼 기후행동을 연구활동하기, 숲과나눔.

3) 케이트 레이워스, 2017, 홍기빈 역, 도넛 경제학, 학고재.

4) 브뤼노 라투르, 1991, 홍철기 역,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 

 

필자 소개

윤 석

은퇴할 기후활동가이자 성지수와 김정은의 동심同心

 

작품 소개

연극 [꿈의 방주: Hunger stone]



일시 : 2022.9.21 ~ 9.25. 평일 20:30, 주말 15:00
장소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제작 : 콜렉티브 뒹굴
출연제외전부 : 성지수
출연까지전부 : 김정은
후원 :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