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4월 레터] 어울리지 않는 삶

2025. 4. 30. 19:00Letter

 




안녕하세요. 4월이 다 가서 2025년 첫 레터를 씁니다. 사실 지난 12월에 올릴 레터를 썼는데, 불나방의 레터가 늦어지기도 했고, 제가 미리 써두었던 글도 12월에 있었던 일련의 거대한 사건들로 인해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되어 하드에 넣어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눈 감았다 뜨니 4월이 다 갔네요. 인디언밥 편집위원들은 매년 연초에 만나 식사를 한 번씩 하는데 올해는 그것도 하지 못했어요. 각자의 일상으로 바쁜 봄입니다. 


저는 독립예술 어쩌구를 잠시 가을로 미뤄두고 우선 여름 음악 축제를 만들러 기업에 들어왔습니다. 사주에선 제게 프리랜서가 더 어울린댔는데, 잠시라도 규칙적인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그것이 제게 지속가능성을 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생리란...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나름 공기관, 재단법인, 사단법인, 사회적기업 등에서 여러 형태로 일했었는데 너무 오랜만인 탓일까요? 세상엔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건 멋진 일이겠지요. 그냥 저만 빼고 다 멋집니다.

출처: X(트위터) 참똘이 명언봇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을 살기란 얼마나 힘든 것일까요? 세상에는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표준모델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할수록 박수받는 게 규칙인 걸까요? 표준 트랙의 삶은 잘 모르지만, 그 바깥의 삶을 사는 이들이 낭만화되거나 비난받곤 한다는 건 알 것 같습니다. 불평이 많을수록 인디언밥 레터와 어울리지 않게 되니 이쯤하고 넣어두겠습니다.


얼마 전엔 혜화동1번지에서 하는 <안전 연극제 불완전>에 다녀왔습니다. 하루 동안 다섯 작품 같은 세 작품을 몰아 보며 그들에게 존경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세월호프로젝트에서 안전연극제까지 담론을 확장해 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 시간이 대단해서요. 그다음 주엔 단편선순간들의 공연을 보러 모래내극락에 갔습니다. 마지막 곡인 '음악만세'를 부를 땐 함께 벅차올라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투쟁!!"을 저도 함께 외쳤습니다. 개인의 애도와 집단적 기억을 넘어 사회에 짱돌을 던지는 작업을 하는 친구와의 프로젝트도 조금씩 진행 중입니다. 작아 보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냥 종교를 갖고 싶어요. 

영화<하나 그리고 둘>, 에드워드양 감독, 2000



입사를 마음먹을 즈음, 새벽 2시의 SNS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10대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그것을 만들어가는 시기였다면, 20대엔 내가 나인 채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김민수로 사는 건 정말 후진 일이고, 내가 몸부림쳐왔던 건 사실 다 등신짓이었다.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다소 새벽 2시 다운 글이었군요. 하지만 볕이 좋은 저녁 7시에도, 규칙적으로 자는 생활에도, 구내식당 밥을 주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완전히 실패한 것 같아요. 



제게 어울리지 않는 형태의 삶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삶이라는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경험이 저를 통과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소리 인디언밥엔 어울리는 글일까요? 다음엔 우중충한 레터 말고 멋진 리뷰 써서 오겠습니다. 해야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어른의 자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