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진수를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고진수를 생각하는 사람 : <근력 연대 운동>

2026. 8. 27. 23:58ㆍReview

 

고진수를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고진수를 생각하는 사람

공연 <근력 연대 운동> 리뷰

 

글_신재욱

 

[편집자 주] 
고진수 활동가는 코로나19 시기 단행된 부당 정리해고에 맞서 철회 투쟁을 이끄는 민주노총 세종호텔지부 지부장으로 명동 세종호텔 앞 천막농성을 비롯해 단식과 고공농성 등 현장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시작에 앞서 소개합니다.

 

 

근 1년 동안 근력 운동을 꽤 꾸준히 하고 있다. 운동을 가르쳐준 선생은 내가 어떤 자세에서 어느 정도로 부하와 통증을 느끼는지를 항상 체크했다. 그래야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줄 수 있으니까. 선생도 어디가 문제인지 짐작은 하겠지만 결국에는 내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내 몸은 나의 것이니까. 타인의 몸과 경계가 분명한 나의 몸.

 

 

 

〈근력 연대 운동〉(이하 공연)은 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몸’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공연이다. 공연의 기반 자체가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고진수와 ‘근력 운동으로 연대’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몸이 바뀐다.” 공연 막바지 오로민경의 나레이션 중 한 대목이다. 이 대목만 들으면 농성장에서 운동 열심히 했나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아님), 극장에서 공연을 ‘체험’한 이들은 ‘몸이 바뀐다’라는 말을 몸으로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세종호텔 농성장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시민단체 상근자로 일하게 되면서 점점 일과 관련된 현장에만 가게 되고 ‘자발적인’ 현장 방문은 뜸해졌다. 그전에는 혼자 다녔다. 현장에 가면 항상 오래 연대해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친숙함이 부러웠다. 물론 다가갈 생각은 하지 못했다. 구석진 곳에 머무르다 집회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왔다. “쭈뼛쭈뼛.” 세종호텔 농성장에 방문하게 된 권효원의 나레이션에 나오는 말이다.

 

그 느낌이 정말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어떤 어색함? 현장과 겉도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 괜히 누가 쳐다보는 것 같고 얼굴이 붉어지는. 공연 후반부, ‘쭈뼛쭈뼛’의 당사자는 나레이션에서 그 불편함이 고진수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나’의 불편함에서 ‘그’에 대한 걱정으로. 나는 그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몸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몸몸몸거려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결국 나는 〈근력 연대 운동〉을 ‘현장에서의 몸의 변화’가 과연 무엇일지 전달하고자 하는 공연으로 읽었다. 그렇기에 이 리뷰 역시 ‘몸이 바뀐다’라는 감각에 대해 내가 공연에서 받아들인 바를 정리한 것이다.

 

 

 

바닥의 지지감

 

내가 파악하기로 공연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은 연출이자 운동 선생이기도 한 희범과 함께 하는 ‘근력 연대 운동’ 시간이다. 2막은 ‘농성장의 밤’이다. 조명이 꺼지고 참여자들은 공연장 바닥에 눕는다. 조명이 명멸하고 사이렌과 차가 달리는 도로의 소리가 섞인 다양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3막은 ‘농성장의 일상’이다. 여러 연대자들의 인터뷰와 현장 영상, 피케팅과 삼보일배 퍼포먼스 등이 이어진다(각 막의 제목은 내가 멋대로 붙였다). 이렇게 보면 이 공연이 농성장에 대한 일종의 재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관객석과 무대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공연장에는 집회 현장에서 사람들 앉으라고 깔아 놓는 긴 은박지 돗자리의 조각들이 놓여 있다. 공연 참여자(보통 ‘관객’이라 부르지만 여기서는 참여자라고 하겠다)들은 그 조각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있다. 고공에서의 고진수와 실제 근력연대운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 재생되고, 이후 희범이 공연장 중앙에 들어선다. 희범의 가이드에 따라 참여자들은 몇몇 운동을 수행한다. 여느 운동 지도자들이 그렇듯 희범의 어조 역시 신뢰를 주는 침착하면서도 친숙한 목소리다. 그 목소리로 몇 차례 반복해서 언급한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내 몸과 맞닿아 있는 바닥의 지지감을 느껴보세요.’

 

근력 운동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어려운 자세를 취하거나 무거운 무게를 들 때는 특히 그렇다. 근력연대운동은 10미터 높이의 고공에 있는 고진수가 부디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0미터 아래 지상에 있는 연대자들이 진행했다. 떠 있는 고공과 단단한 지상에서 느끼는 ‘바닥의 지지감’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고진수와 같은 동작을 하면서도 거듭 그의 안부를 묻게 된다. 매 순간 어찌할 수 없는 낙차를 마주한다. 그 거리감에 때때로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나는 그 흔들림의 감각이야말로 그들이 연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선 ‘나 아닌 누군가는 나 대신 고통스러운 풍경을 항상 마주하며 산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2막에서 참여자들은 천장을 보고 누웠다. 사이렌과 차 소리. 바람과 메아리. 잠을 청하기 어렵게 만든다. 336일 동안 고공에서 고진수가 매일 밤 들어야 했을 소리들. 그의 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있기에

 

고진수와 ‘근력연대운동’을 하면서 먼저 몸의 변화를 체험한 이들이 공연을 마련했다. 참여자들은 공연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시 몸의 변화를 체험했다. 고진수를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던 사람을 경유해 고진수를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게 된 사람. 다소 느슨하게 얽힌 이 관계 역시 연대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기억은 몸에 새겨진다고 믿는다. 연대하는 여러 몸들은 함께 기억을 나눠 갖는다. 얽힘으로 생겨난 일종의 공통감각이 몸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3막에서 농성장 곳곳의 모습을 비추는 프로젝터는 고정된 곳을 향하지 않고 계속 떠다닌다. 장면은 벽과 벽 사이, 천장에 걸린 하얀 만장 등을 오가며 때때로 공연 참여자의 등판에 영상을 비추기도 한다. 현장과 연대에 관련한 여러 인터뷰들 사이로 갑자기 공연팀이 공연장 주변을 돌며 삼보일배를 하기 시작한다. 공기가 조금 가라앉는다. 여전히 영상과 소리가 이어지고, 삼보일배는 고요하게 계속된다. 왠지 거기 동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하진 못했다. ‘근력 연대 운동’에 게을렀던 탓이다. 그럼에도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실제 현장이 아닌 곳에서 부지불식간에 이와 같은 느낌을 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짚고 싶은 것은 결국 나의 몸과 타인의 몸이 분명히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분리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연장에는 공연팀과 지인들이 주고 받은 편지들이 놓여 있다. 그 중 하나의 편지에서 발견한 문구다. ‘떨어져 있기에 타인에 대해 생각한다.’(은빈) 수많은 밤마다 각자의 잠자리에서 고진수를 떠올렸을 사람들을 떠올렸다. 고진수를 경유해 서로 다른 몸들이 연결된다. 그들의 좌표를 잇는다. 별자리가 생겨난다. 

 

 

 

 

 

필자 소개

신재욱 

시민단체 활동가. 좋은 무언가를 감상하면 쓰고 싶어집니다. 물론 생각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공연 소개

《근력 연대 운동》



일시 : 2026년 7월 30일(목) 19:30, 7월 31일(금) 15:00, 19:30, 8월 1일(토) 15:00, 19:30
장소 : 신촌문화발전소 공연장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2나길 57)

공동창작/출연 : 권효원 손나예 오로민경 최희범
구성/연출 : 최희범
드라마터그 : 박이현
프로듀서 : 이호연
기록 : 이서연
조명디자인 : 이동현
영상기록 : 이정훈 (피그리프 스튜디오)
홍보물디자인 : 강과하늘
주최/주관 : 최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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