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9월 레터]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시를 쓰는 대신

2026. 9. 27. 21:10ㆍLetter

 

 

온갖 축제가 일정을 포개가며 터지는 가을입니다. 저는 지난 주엔 제가 프로그래밍한 축제를 올렸고, 이번 주엔 동료 예술가의 해외 공연을 지원하러 따라왔습니다. 다음 주엔 제 전시가 있고 다다음주엔 친구들이 하는 축제에서 워크숍 진행도 합니다. 다다다음주엔 또 공연 리허설이, 다다다다음주엔 내내 공연이 있군요. 복되고 지치는 달입니다. 

 

크고 멋진 무대를 세우는 직업인이었다가, 작고 이상한 무대를 만드는 창작자가 되기를 반복해서일까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또 하고 맙니다. "무얼 이루겠다고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나"라든지, "그냥 일하며 사는 것을 왜 못 견뎌 굳이 예술을 하겠다고 애를 쓰나", "내게만 중요한 이 주제와 디테일을 대체 누가 알아준다고" 같은 거요. 티켓이 팔리지 않는 공연을 올리면서, 어느 평단에서도 읽어주지 않을 무언가를 위해 굳이 밤을 새면서.

 

지갑, 신분증은 아니고 뭔가 잃어버린 것 같긴 한데..

 

언젠가 주현영 배우의 짧은 인터뷰 클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을 함께한 동료들에게 하는 말이었어요. "너흰 누군가 알아봐 주길 기다린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가 서로를 알아봤잖아." 심지후 연출의 <여는 마당: 프로파간다>에서는 하늘에서 텍스트가 내려오고 관객이 그걸 읽게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른 텍스트는 "자기 작업이 지금은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자기도 과거의 작가들이 남긴 것을 먹고 자랐듯 미래의 관객이 이것을 읽어줄 것이다" 같은 얘기였어요.

몸이 지쳐 마음도 물러질 때면 그런 말들이 등대가 되어주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알아보니까, 지금은 몰라도 미래이자 미지의 관객을 믿으니까.

 

 

 

 

 

저는 올 해 두 차례의 시 창작 수업을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를 쓰진 못했지만 함께 듣는 문우들을 조금 웃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 12주 동안 단 한 번도 숙제를 빼먹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자랑스러웠습니다. 최근에 들었던 수업의 첫 과제는 "유년의 여름"이었는데, 노스탤지어 가득한 여름시를 기대하는 것 같아 괜한 심술로 그득한 시를 썼습니다. 그러고는 시상의 전개가 유려하고 문장의 리듬이 기가 막히며 시어 하나하나 감각적으로 느껴지면서 감동까지 있는 다른 분의 글을 보고 "전 이런 시를 쓰고 싶었어요"같은 합평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6주 내내 그런 시는 하나도 쓰지 못했어요. 사실 쓰려는 시도도 안 했고 그냥...계속 심술궂고 우스운 시를 썼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이상한 시를 쓰며 생겨난 행간 사이 비약 앞에 오래 앉아 있기 위해서, 시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풀어가기 위해서 거기 앉아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읽어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창작하는 마음이란 그런 것일까요?

 

저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고 만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크고 멋진 것 말고, 아름답고 누군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하고야마는 노래, 심술궂고 우스운 시 같은 거요. 그리고 인디언밥이 그 비평적 뒷배가 될 수 있으면 기쁠 것입니다.

 

 

인디언밥 편집위원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