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넷째 주 프리뷰 "은둔하는 세대의 디지털 캠프파이어"

 "초코파이의 비극" - 연극 <비정규 식량 분배자>


이안(異眼). 다른 눈, 이상한 눈, 딴지거는 눈, 대안적인 시선, 다른 쪽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이되 다른 시선, 다르되 하나인 시선, 같음의 오류를 딛고, 다름의 차이를 넘는.

극단 이안이 첫 번째 공연, <비정규 식량 분배자>로 닻을 올린다. 100만원 연극 공동체의 ‘2009 100 페스티벌’ 미래작품상 수상작이며, ‘마방진 극 공작소’가 함께 제작했다.

연극 <비정규 식량 분배자>는 리얼리티 쇼나 다큐멘터리 식의 극적 구성을 취한다. 관객은 전쟁이라는 극한에 내몰린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생생하게 봐야 한다. 90분이라는 실제 시간과 일치된 극적 시간을 경험하면서. 아마도 꽤나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지진 참사로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했던 아이티가 떠오른다. 아이티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쩌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참혹한 전쟁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경택 연출가는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린 이 명제가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전쟁 같은 일상의 순간순간 속에서 너와 내가 동시에 여기에 합의해야 한다. 인간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같이 망하는 어리석은 엔딩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초코파이 하나를 놓고 피터지게 싸움을 한다. ¶ 매버릭  공연정보보기


 

"그 틈 사이엔 뭐가 있을까”, 실험프로젝트 <사이-間>

인간이란 단어는 참으로 오묘하다. 사람 ‘인’과 틈 ‘간’. 이것은 사람 자체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뜻한다. 그 사이, 그 틈에 무엇이 있는가. 또 다른 사람, 어떤 사건, 넘쳐나는 에피소드, 그런 사람들이 모인 세상 등등이 있다. 그래서 인간이라 하면, 가늠할 수 없는 그 수많은 틈 덕분에 재미나게 복작거리며 사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상적인 이야기부터 늘어놓는 까닭은, 이 작품의 틈바구니에 껴보기라도 싶었던 막연함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떡하니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장르의 예술가들이 공동창작한 작품이고 관객과 소통하는, web2.0을 표방하겠다는 것인데...... 간만에 대학로에 실험정신 가득한 작품이 떴다는 것은 분명하다. 반가운 단어와 이름이 여기저기 보인다. 소통, 실험, 박진원(반갑습니다!), 새로운, 창작예술... 이것도 틈이렷다?

틈이 있다는 건, 불안하다. 무언가 새어나가고 스며들어온다. 그러나 사실 틈이 있어 숨통이 트이는 것이 아닐까? 그런 숨통 트이게 해 주는 틈 중에는 가장 아름답고 변칙적이며, 뭉클하면서도 어딘지 불온한 자, 예술가가 있다. 그들은 꽤나 신선한 공기를 준다지. 봄이 오기 전, 한 번 훅 들이켜 볼까나. ¶ 스카링 공연정보보기


 

은둔하는 세대의 디지털 캠프파이어, 그리고 차지량


은둔하는 세대의 디지털 캠프파이어 <세대독립> 번개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20대에 대한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청춘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무엇을 이야기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동세대의 동시대적 발언을 함께 하기 위해 봄이 되기 전 만난단다. 20대든, 30대든, 40대든...우리는 각자 어떤 세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과연 그딴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어찌됐든, 지량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궁금해진다.

은둔하는 세대의 디지털 캠프파이어. 자체발광? 차지량이 친구들을 모아 또 뭔가 일을 벌인다. 얼마 전 만났던 그는 자신의 2010년 화두는 ‘세대독립’이라고 했다. 20대에 대한 그의 재기발랄하며 불온한 발언은 멈추지 않는가 보다. 연간 계속될 거라는 세대독립 프로젝트가 3월 1일 드디어 출발한다. 삼일절 번개는 음악공연, 영화상영, 그리고 아무나 공연하기와 이야기하기. 밤에는 댄스타임도 있단다. 클럽댄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아 막춤을 선호한다니 걱정 마시길. 돈? 공짜다. 먹을 것 싸들고 오는 건 환영. 번개 이후 21일까지 차지량 전시는 계속된다. -20대가 아닌 매버릭


차지량의 전시를 인정하는 이유 

‘당신은 독립된 존재이냐’고 누군가 물었다. 가까운 실제로는 아직 아버지 집에서 살고 있다 보니 선뜻 답할 수 없었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당당한 상황은 아닌 듯 여겨 쭈뼛거림이 더 큰 이유이다.

질문을 던진 이가 참여중인 ‘자체발광’은 우리세대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정의가 아닌, 각자가 인식하고 추진하는 개인의 에너지를 인정하고자 하는데. 주변인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집중한 삶을 살고 있다 여기는 나이지만, 실상은 그 스스로에게 던져대는 끊임없는 반문과 변명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미완성인 자아는 순간의 행복과 나머지의 방황을 통해 ‘독립의 완성’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중인 것인데, 내가 만들어놓은 타인의 시선임에도 나는 그것을 바꾸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듯 같은 학습경로를 거쳤다고 하여 삶의 방식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독립의 내용도, 의미도, 과정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야 하며, 독립되고자 한다면 나 역시 다른 자아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차지량의 이번 전시를 인정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세대의 ‘스스로 독립’을 토닥이거나 우러러보지 않아서이다. 그가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타인에게 동력을 제공할 때의 느릿한 태도는 이렇게 역할하나보다. 부럽긴 한데 따라하고 싶진 않고, 반문하지만 생성될 담론에 일조하고 싶은.

전시를 앞두고 플루에 걸렸단다. 봉긋하게 반짝이는 뺨이 야윌까 걱정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지량을 나타내는 반짝이는 오브제는 그 뺨이었는데 말이지. 전시는 계획대로. -20대인 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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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독립클럽, 번개. 티저영상 from 차지량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