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논리 너머의 것, "죄악의 시대"展 (1)



죄악의 시대 (1)

글 ㅣ 개쏭


-나오는 순간 목 뒤에 면도칼이 박힌다. 날카롭게 배인 정맥은 한 달의 현기증을 불러온다. 


 

친구의 얼굴이다. 아니, 그 녀석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런 얼굴은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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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시작하자.

‘죄악의 시대’는 어떠한 전시인가.

상당히 혼란스러운 전시이다. 어떠한 인간관을 확고히 부여잡는다는, 그런 단일한 틀이 없다. 공동작업이어서 그런 것일까.

‘사적비극의 서’의 경우 입장이 어느정도 분명하다. 사회적 피해자니 등등의 개인적 구체성을 무시하는 담론을 통해 범죄자 내지는 사회적 피해자들을 보지 말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확성은 다른 작품들과의 연계에서는 분명하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범죄에 대한 조사기록부’의 경우 위의 입장이 혼란스러워지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경찰 측에서 바라보는 범죄자들에 대한 신상명세와, 범죄 후 자살한 사람들의 유서, 혹은 예비범죄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은 이 전시가 표방하는 입장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서울시 지도와 그 지도에 표시된 지역별 범죄횟수 등은 정작 다른 작품들의 반경찰적 시선에 대한 최소한의 통일성마저 결여된 듯이 보인다.

라고 말해버리고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불완전한 전시라고 평해버리기엔 무거운 이 마음은 무엇일까. 전시관 안에서는 눈이 떨어지지 않고, 전시관 밖에서는 마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은 더 길어질 전시에 대한 리뷰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범죄는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숨겨진 이야기들,
너의 숨겨진 이야기들은
언제나 일말의 범죄의 냄새를 풍긴다.
견딜 수 없는 상처의 무게,
그 상처가 건드려지는 순간,
우리는 온몸의 잔털 하나까지 도사리고
짧게 자른 손톱의 끝부분,
드리밀 수 있는 가장 날이 선 부분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 사회와 법과 도덕이라는 일반적인 굴종의 체계에 길들여져 있다해도,
충치가 있어서 흔들리는 이빨,
임플란트로 박아넣은 쇠이빨 이라도 꺼내어
으르렁거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별것 아닌 사람의 장난질에 제 스스로 궁지에 몰린 길고양이의 경계처럼.

-2010.1.30. 노트. ‘죄악의 시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다.

 
눈동자가 뻑뻑하다. 속눈썹이 가시처럼 눈동자를 찌른다. 어깨가 돌처럼 굳어있고 허리가 쑤셔 의자에 앉아있기 힘들다. 머리는 연기가 드러찬듯하다. 손톱이 길게 자라났다. 온갖 먼지가 껴서 손톱과 손가락 틈새가 벌어진 느낌이다. 머리가죽에는 각질이 두껍게 일어나 딱지처럼 모공 틈새에 앉아있다. 보일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전압이 문제인지 자꾸만 보일러 전원이 내려간다. 스카치테이프를 둘둘 감아 미봉을 해봐도 오래가지 않아 다시 내려간다. 내 체온도 그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반복하다가, 반복이 습관이 되자 이제는 온돌에 닿아있는 발바닥의 온도만 조금 올라갔다가 많이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손가락발가락이 추위에 굳어올 수록,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는 끈적한 습기와 함께 덥혀진다. 몸을 크게 뒤틀 때마다 찌든 암내가 미적지근한 온기를 타고 올라온다.

 

잠을 재대로 못잔지 2주가 넘어간다. 해가 뜨고 지는 것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다. 그저 나는 눈을 뜨고 있다.

 

.......

내 이름을 밝히지 말아주세요. 마지막 소원입니다. (어느 범죄자의 유서 中)

 
어디론가로 깃들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이 지리한 침묵의 시간들을 깨고 어디론가로,
오랜 잠을 청하듯 두 손을 머리맡에 포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아주 오랜, 그러나 너무 오래진 않은 시간동안, 내 손과 입은 봉해져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말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들 속에서 마치, 관속의 시체가 썩어가듯 천천히 나의 몸은 썩어가고 있었다.

너무 오래진 않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것은, 실은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인
정하기 싫은 자존심, 혹은 나를 나라는 인간으로 지탱하려는 힘 때문에 인지도 모른다.

실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를 더 이상 풀어낼 관절의 마지막 수액이 메마르기 직전인, 아니, 이미 메말라버린,
그런 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드럽게 몸을 놀릴 마지막 유연제마저 떨어진 순간에, 마치 심지를 다 태워먹은 촛불이 꺼질 때 그러듯이, 혹은 필라멘트가 떨어져나가려는 전구가 그렇듯이, 정신이라는 불꽃이 후룩, 하고 꺼져버렸다.

 
짧은 시간동안 꿈도 없는 잠을 잤다.

이제 메마른 뼈마디를 놀려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끝마칠 시간이다.
설혹, 그 이야기가 끝이란 것이 없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가.
한 전시를 보고 난 인간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오직 한 전시의 힘인가.

전시는 혼란했다.

T와 F로 나타낼 수 없는 전시였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그 전시마냥 혼란해졌는가.
전시는, 혼란함과 더불어 혼란이 가진 힘 또한 가지고 있었는데,왜 나에게 그 힘은 전해지지 않고 혼란만이 전해진 것인가.

처음 전시를 보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 전시가 갖고 있었던 혼란을 혼란이 아닌 것으로 정리를 해내고 싶었기 때문에,
혼란을 혼란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혼란이란 단어의 선이 갖는 날카로운 외곽으로 그려내려 했기 때문에,
답을 내려 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혼란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실은 혼란은 혼란으로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죄악의시대>

장소 대안공간루프
일시 2010.1 15 - 2010.1.31

오늘날 매체는 저옛날 무당처럼 제의를 주재한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현대는 초자연의 신비가 제거된 시대라는 것. 그렇기에 제의가 연출되는 무대는 일그러진 난쟁이 꼬마들이 아웅다웅 할 수밖에. 신비는 고사하고, 희극이 연출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 같은 제의는 결국 오락에 가깝다. 매체는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며, 입맛에 맞게 범죄를 요리한다. 당연하게도 개별적 범죄를 일으켰던 사회적 인과관계는 희석되고, 일회적 볼거리만 양산된다. 여기에 권력의 입김이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오락과 도덕은 그렇게 통일된다. ■ 김상우

8명의 작가와 8명의 연구자가 참여하여,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한 생각과 성찰을 작품과 에세이 등으로 풀어내었다. 이 전시는 범죄와  관련한 내용을 소개하고,  국가와 시대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 요즘의 세태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