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11. 나는 고재경씨와 맨날 싸우는 기분이다.

2010. 5. 6. 11:33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열한 번째 기록


글| 강말금

*들어가는 말 

말금씨는 극장에 있었어요.


현수씨의 질문에 대답한다. 두 번의 수업에 나오지 못했다. 현수씨와 호경씨가 좋은 글을 써 주셨다. 현수씨는 그런 기회가 있어 좋았다고 하였다. 다른 분들도 혹시 생각이 있으시면 기록을 남겨보셨으면 좋겠다.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오늘 수업은 에너지의 방향 - 수직과 수평에 대한 수업이었다. 워킹과 스탠딩에 관한 수업이었다. 수업은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그 동안은 시간 순서대로 글을 썼는데 오늘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리대로 글을 써볼까 한다.

 




에너지의 방향 - 수직과 수평 / 워킹과 스탠딩


 

우리는 두 번째 시간에, 엎드린 상태에서 등을 up/back하는 엑서사이즈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아래와 같은 자세로 선생님의 up/back구령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갔다.




   




 

등의 상태에 따라 생성되는 기운이 달랐다. 등을 솟구치고(자동적으로 가슴이 닫힌다) 갈 때는 방어적인/두려워하는 기분이 들었고 등을 내리고 갈 때는 여유로운/지위가 상승된 기분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음이 되었는데, 어슬렁어슬렁은 사자의 것이다.



자, 보세요.

고재경씨는 우리 앞에서 등을 up/back 하며 기어가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어떤 느낌이 들어요?

‘땅굴’ 생각이 났다. 땅굴이라는 공간이구나.



수평이예요. 에너지의 방향이 수평이죠.



이제 우리는 섰다. 엎드린 연습은 결국 서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는 등을 솟구친 (가슴을 닫은) 상태에서, 4단계에 걸쳐 등을 쫙 편 (가슴을 연) 상태로 만들어 보았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어깨를 쓰지 않는 것이다. 가슴이 닫히고 펴지는 것에 따라 따라오는 정도로 움직이게 한다. 어깨의 경직은 펴진 가슴을 통해 발산되는 배우의 존재감을 보이지 않게 한다.






     

     



이번에는 걸으면서 4단계를 거쳐보았다. 1의 상태에서 한 걸음, 2의 상태에서 한 걸음, 3의 상태에서 한 걸음, 4의 상태에서 한 걸음, 그리고 선다.

고재경씨는 우리 앞에서 다시 시범을 보여주었다.

우리 예전에 처음 스탠딩할 때, 넓은 수평선 위의 수직으로 선 등대 얘길 했었죠? 그 수직이예요. 보세요. 걸어온다. 수직이 다가오는 거예요. 선다. 그 수직이 서는 거예요. 넓은 수평선 위의 등대로.






그런데, 걷다가 서려면 어떻게 되야 되요? 멈추는 당위성이 있어야 되죠. 자, 한 번씩 걸어봤으니까 말해보세요. 왜 섰어요?

- 누가 불러서요.

- 친구를 만났어요.

- 강아지가 있었어요.



자, 좋아요.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죠. 또 반가움, 슬픔과 기쁨, 여러 가지 정서가 따라올 거예요. 그런데, 생각이나 정서 이전의 원리가 있어요. 정서가 형용사라면, 이 원리는 동사예요. 에너지의 방향이 어떻게 되었을 때 배우가 설 수 있는가.





  


    

  

전진하는 수직의 에너지가 수평으로 확장될 때 배우는 설 수 있어요. 가고, 솟구치는 에너지가 수평으로 확장되면서 배우의 존재감이 생겨나요. 이 원리는 동사예요. 배우는 동사예요. 이 원리의 상태에서, 생각과 정서가 입혀져야 되요.




나는 처음 연극을 할 때 생각과 정서를 위주로 하였다. 이 인물이 왜 이렇게 움직이지? 어떤 기분일까? 그 때는 선생님이 없었고 선배들로부터 전승된 것과 선배들과 싸워 얻은 것으로 연극을 하였다.

이후 선생님을 만나 이런 얘기를 들었다. 배우는 호르몬을 생성시켜야 해. 호르몬이 움직이는 에너지야. 생성된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아. 그 에너지를 가진 인물들이 역학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것, 그게 블로킹이야.

나는 매우 감동을 받았고 여전히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믿는 부분과 믿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 말씀의 좌표는 어디 있는가. 내가 배우로서 행동하는데 상위원리로서 가져갈 수 있는 말인가. 맞는 말이고, 앞으로도 계속 간직해야할 말이지만, 내 몸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어떤 자세로 무대에 서지? 어떤 마음으로 배우들과 사람들을 만나지? 어떻게 해야 나를 보러 온 사람들 마음을 풀어서 서로 좀 편하게 마주볼 수 있을까?

사람들이란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가 어떤 말을 해도 곱게 들리기 마련이니까.

그런 사람/배우가 되려면 나의 무엇을 극복해야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재경씨의 동사의 원리를 음미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본다. 정말 허벅지를 딱 치도록 맞는 말이예요. 그런데 배우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죠? 우리는 어떤 상위원리 - 하나의 통행패스를 갖고 싶어요. 수평선 위의 수직으로 서서,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배우의 방법론 - 당신이 얘기하는 동사의 원리 - 를 갖고 싶어요. 당신은 이 수업이 마임의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이라고 했지만, 당신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를 움직이는 원리의 씨앗을 자꾸 생각하게 되요.




음. 뭐 하나 좋은 방법론 없을까?




현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큰 방법론은 릴렉스이다. 이것은 고재경씨가 쓰는 뜻과 좀 다르다. 그는 무대에 선 배우의 상태를 얘기하면서 텐션과 릴렉스를 언급한다. 그는 무대에 선 상태 자체가 일상의 에너지와 다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릴렉스를 배우의 절대적인 태도라고 본다. 배우가 되는 열쇠라고 본다. 그리고 그 릴렉스는 무대에서만의 어떤 상태가 아니고 삶의 태도/생활 태도와 동일하다고 본다.




그래서 고재경씨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용어의 장난일까. 그런데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가 생각하는 무대 위에서의 상태, 워킹과 스탠딩. 내가 지향하는 두엄더미같은 자연같은 배우. 릴렉스. 워킹과 스탠딩.



나는 고재경씨와 맨날 싸우는 기분이다.



너무 뜨거워졌다. 우리가 ‘수평위의 등대’부터 배웠듯이 무대에 서는 것은 맨 처음 배우가 배우는 일이고, 맨 끝까지 가져가야할 숙제다. 잘 서는 법을 익히면 나머지가 다 잘 풀린다고 믿는다. 오늘 걷다가 서는 것을 배웠다. 서는 것을 깨치기 위해 배우들은 피눈물을 흘린다.



아이 몰라. 이까지 쓸란다.


 



 


마무리

 

아홉시까지만 하고 먹으러 가죠.

6일째 먹는 술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옥형씨와 처음 얘기했다. 내가 좋아하는 현수씨와 있어서 좋았다. 비봉씨가 뒤늦게 와서 자기가 쓴 마임공연 시놉시스를 얘기해 준다.

아름다운 얘기다.

고재경씨에게 수업에 음악을 쓰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준비해와요. 해서 기분이 좋았다. 술 먹을 때마다 선생님 말 많다고 놀리곤 하지만 헤어질 때마다 왠지 점점 더 좋아지는 선생님이다. 진짜다.

옥형씨가 작은 공연을 추진하기 위해 쭉쭉 밀었다. 그 분이 있어서 뭐라도 될 것 같다. 열 한 번 째 시간. 이제 중반을 넘었다. 나는 나머지 시간이 좋으리라 믿고, 공연도 작지만 크리라 믿는다. 아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