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들어줄래, ‘당신과 나의 연대’를 위하여 <당신과 나의 전쟁>


 

  들어줄래, ‘당신과 나의 연대’를 위하여
<당신과 나의 전쟁> 




| 강여사




1.  
  
 겨울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3월 2일 저녁 7시.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때, 조금은 우둔한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에 사람들은 웃었지만 난 진심으로 궁금했다.


  "쌍용차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싸움의 끝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끝은 없다"


  사람들이 나의 질문에 왜 웃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사실 웃음 따윈 상관없다. 다만, 내 질문의 무게가 사람들의 웃음으로 인해 ‘덜’해졌을까봐 싶은 염려는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하나의 전쟁이 '마무리'될 때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산발적으로,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쌍용차 파업 현장에 있던 그들은 말한다. 이 나라는 '해고' 대신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이라고. 그렇게 쌍용차 77일간의 투쟁에서 여섯 명이 숨을 거뒀다.



2.  

  작년 2009년 여름, 평택에서 일어난 쌍용자동차 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은 시종일관 불편하리만큼 '담담한' 입장을 취한다. 카메라는 영화를 찍기 위해 현장에 뛰어들었으나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과 동화되어 부당한 사회를 비판하며 날을 세우기보다, 끝까지 주변인의 시선으로 쌍용차 사태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귀에 들려오는 음악과 눈에 보이는 화면, 즉 청각과 시각은 서로 겹쳐져 동일선의 감정을 달리지 않고 음악은 도리어 눈앞에 펼쳐지는 화면에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감정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낯설게 하기’를 시도함으로써 스크린 속 화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대상화한다. 즉, 카메라의 렌즈는 동일화의 관점보다 타자의 시선을 택한다. 


  이미 이 사건에 대해 편향된 시선과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 영화가 취하는 태도는 불편했다. 그렇다, 난 어두운 극장에서 몸을 숨긴 채 마음껏 분노하고 싶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그 때처럼, 그 날도 난 비겁했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더 끌어올려주길, 한 두 방울 찔끔찔끔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 수 있도록 내 분노를 더욱더 일으켜 세워주길― 난 바랐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나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다. 영화의 시선은 건조하다. 어떠한 작품을 만들 때, 대상에 대해 동정적 시선으로 다가서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던가. 영화를 보러가기 전까지 난 아마 그러한 시선의 영화를 기대했던 것 같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국가가 가한 폭력을 ‘우리’의 입장을 담아 억울함을 해소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이 한 편으로는 얼마나 비겁한 것이던가. 쌍용차 파업이 일어나던 지난여름, 난 무엇을 했나. 그 해 소나기가 오던 날, 습한 날씨를 느끼며 지인에게 썼던 한 통의 메일에는 그 날의 내 모습이 담겨있다. 그 때, 난 그저 ‘비가 오니 시원하니 좋구나’라고 느끼고 있는 내 자신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문을 통해, 뉴스를 통해 그들의 소식이 들려오면 들려오는 대로,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분개하며, 하지만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 시스템 속에서 나라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무력감을 느끼며, 극한의 대치를 이루고 있을 그들을 종종 떠올렸었다. 그렇다, 그저 ‘떠올렸을’ 뿐이다. 그들은 언제나 내게 ‘타자’로서 존재했으며, 매일 같이 일어나는 각종 사회문제 중의 ‘하나’였다.


  또 무엇을 했던가. 지난여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노란 풍선에 휩싸였다. 나 역시 그 속에 있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에 빠져 한 달을 멍하게 보냈고, 그를 떠나보내던 날, 수업도 빠진 채 서울역에서 이 날의 분노를 잊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죽은 자를 그리워하며 노란 풍선에 그를 떠나보낼 때, 평택 공장 그 곳에서 산 자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며 쌍용차 노동자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한나라의 전 대통령도 죽이는 정권인데, 우리가 이 정권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 그리고 그들은 결국 '협상에서 졌다'.





3.  

  그 후, 두 번째로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내가 속한 모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고라>(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서울 ‧ 경기 독자 모임, 이하 <르 디플로>)에서 <당신과 나의 전쟁> 공동체 상영을 주최하게 되면서이다. 두 번째로 마주하던 날, 처음 보았던 그 날의 충격과는 다른 물음들이 나를 덮쳐왔다. 이미 한 번 봤었던 영화기에 조금은 담담한 태도로 볼 수 있었던 그 날, 날 괴롭혔던, 그리고 여전히 괴롭히고 있는 물음 —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은 대개 쌍용자동차 파업이 일어났던 그 때, 그 당시 그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신을 후회하며 반성한다. 이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하다. 반성과 성찰을 통해 게으르고 무지했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효과다. 하지만 이 긴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의 반성은 ‘인식적 반성’이다. 몸에 자국으로 남은 상처가 아니라, 육화된 고통이 아니라, 단지 인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충격일 뿐이다. 기억은 망각을 통해 스스로를 지운다. 그것이 후회고 반성일지언정, 어쨌거나 지워진다. 그렇게 관성의 법칙처럼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산다. 

 


4. 

  그 시간 이후, ‘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영화를 처음 본 날로부터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났다. 글쎄, 잘 모르겠다. 사실 신문을 못 본지 조금 됐다. 최근에 민감하게 소식을 접하고 있는 것은 홍대 앞 ‘두리반’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르 디플로> 모임에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자립음악가들이 벌인 ‘뉴타운컬쳐파티 <51+>’에 후원을 하고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홍대 앞 용산’이라고도 불리는 두리반은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거대 괴물에 게 짓밟혀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현재 그 곳은 올해 2월부터 삼삼오오 모인 홍대 자립음악가들의 연대의 장소가 되었고, 5월 1일 ‘음악가도 노동자다’라는 구호 아래 성공적인 <51+>를 성사시켰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되고 있다. 두리반에서는 매일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이고 또 그 곳에서 상주하는 이들이 있지만 언제, 어디서 용역들이 쳐들어와 그들을 쫓아낼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불안 속에 그들은 살고 있다. 자신이 ‘있어야 하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거주권은 인정받지 못한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칼날에 그들의 삶은 날카롭게 베인다. 



  글의 첫머리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던졌던 질문과 대답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 “……그렇다면 이 싸움의 끝은 무엇입니까.”

   “끝은 없다.”





5.  

  월요일 저녁, 집에서 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모니터를 마주 하며 이 글을 쓴다. 컴퓨터 자판을 누르는 손끝이 심장을 콕콕 찌르듯 찌릿하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던 ‘부채감’이 피부를 감싸온다. 이럴 때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한가하고 편안한’ 시간마저 죄가 되는 것 같아 죄스럽다. 무거워지는 심장의 무게와 떨리는 숨을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무엇을 망설이는가. 내가 갖고 있는 물음들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다. 나의 곁에 당신이 있다면, 이것은 ‘나만의’ 삶이 아니라, ‘당신의’ 삶이기도 하지 않은가.    

  지금도 쌍용차 사태와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인데 현재의 나(‘나’는 곧 ‘당신’이기도 하다), 미래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나는 내 외부의 타자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내 감각의 촉수를 곤두세워 타자의 슬픔에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대체 어느 선까지 난 타자와 연대할 수 있을까. '함께' 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과거, 그 사건에 대해 무관심했던 내 자신에 대해 후회했다면,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타인의 아픔에 무던해지지 않도록 예민해져야 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의 모든 사건들에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고—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며— 그렇다면 그 후, 시간이 흐를 때마다, 그 때마다 당시 '모르고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매번 부채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


  흔히 ‘운동권’, ‘진보’라는 쪽에서 “부채감 때문에
       을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거창하게 들릴 것 같아 조심스럽다만, 나 또한 내 오늘의 삶이 과거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삶임을, 내 오늘의 풍요가 타인의 가난에 힘입은 것임을 느끼며 어느 정도의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부채감'은 과연 날 위한 것인가, 타인을 위한 것인가? 

  부채감을 가진 채,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타인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아픔에 함께 하고 슬픔 속에서 타자와 만날 때, 나의 부채감과 너의 부채감,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 나의 슬픔과 너의 슬픔, 이 만남이 진정 '연대'인걸까.


  가슴 속에서 울음 맺힌 물음이지만, 일상에 빠져 살다 보면 이 또한 종종 잊혀 진다. 가슴 속에서, 머릿속에서 구성된 물음이기에. 내 육체에 고통스레 자국으로 남겨진 물음이 아니기에. 안에서 형성된 물음이기에 내 안에서만 부단히도 시끄럽게 아우성친다. 이 물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연대하여 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살아남은 자로서 난 어떻게 한 사람의 몫의 삶을 지탱해나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그저 역사 속에서 이렇게 끊임없이 경계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만큼의 오늘을 지탱해올 수 있었다고 자위하듯 살아갈 것인가?


 

  마지막 이 물음이 거칠었다면, 작은 이해를 구한다.



6. 


  나의 물음이 당신의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그렇다면 이것이 연대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지금 내가 ‘한가하다’고 느끼는 월요일 저녁의 죄스러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졌으면—하는 엉뚱한 마음과 약간의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이 글의 끝에 ‘당신과 나의 연대’를 바라본다.





당신과 나의 전쟁


2010
다큐멘터리
감독: 태준식


2009년 여름,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옥쇄파업.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파업, 그 시작과 끝. 그리고 현재. 2009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그 여덟 글자 아래에 숨 쉬는 무수한 목소리들.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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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강여사
방황하며 이리저리 살다보니 현재 4년째 대학 4학년. 
4학년 2학기인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무늬만 학생인 백수, 예비 잉여인간. 
연극이 좋아 시작한 연극에 대해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부딪혔다.
그나저나 그 전에 무엇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나 돈은 어떻게 벌지?
여기 구직자 하나 추가요.








  1. 1.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많이 당혹스러우실까요?
    저는 <당신과 나의 전쟁>을 보면서 죄의식보다는 이런 걸 더 많이 느꼈어요. '저들에게는 싸울 적이 있다. 자본과 싸울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와 구실이 있다. 저들은 진짜 프롤레타리아이다. 저들이야말로 진짜 정치적 주체이다!'

    ...그럼 나는?

    - 이방인.

    그들에게 저는, 타자이죠.
    전 자본가도 아니고, 시민(단 한 번도 정체성을 그리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전 시민일까요?)도 아니고,
    그들과 함께 울며 한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사실상 그럴 수도 없는, 노동자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타자요.

    2.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체제 내에선 모두가 노동자잖아요.
    나에게도 언제든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그리고 이건 머리로 알고 있는 거라기보다는 자명한 사실이라 느끼고 있는 건데,
    그래서 "저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야!" 하고 끝낼 수는 없지만
    "저건 진짜 내 일이야!"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러나 만일 저에게도 그런 계기가 찾아온다면, 전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3.

    월요일 저녁의 한가로움과 편안함을 '방해'하는 부채감만큼은 조금 더시라고 (그것이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하나를 적을게요.

    제가 이 다큐를 두번째로 보던 날, 아트시네마에서도 상영이 끝난 후 제작자들과 쌍차 노동자들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관객으로 오신 분 중 한 분이 쌍차 노동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77일 간의 파업 이후, 본인의 일상에서 달라진 점이 있느냐구요.
    답변 전부를 기억하고 있지는 못 하지만, 그 사태를 몸소 체험했던 노동자 분의 첫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제가 10kg가 쪘어요."

    진리의 사건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흔치 않은 진리의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을 오늘 배웠지요. 주체의 충실성이요.

    • 저 역시 '시민'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규정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들의 투쟁에 '외면하는 대중'이었던 내가 국가의 폭력,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였던 저들과 함께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떳떳하게 같이 설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이방인'이라는 말보다는 '타자'라는 말이 더 적절한 듯 싶습니다. 저들은 '진리의 사건'으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났지만, 정작 정치의 중심에서는 외면받는, 환영받을 수 없는 주체 아닌 주체가 아닐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시각이 내 스스로 경계를 만드는 건 아닐까 싶은 조심스런 마음도 듭니다. 이렇게 저들(쌍차 노동자분들)과 나를 분리함으로써 내 스스로 저들을 '타자'로 모는 건 아닐까요. 우린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 합일점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저들과 나를 굳이 동일화시키지 않아도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나 또한 '자본과 싸울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와 구실'(예를 들자면 등록금 투쟁같은)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감각해서, 혹은 귀찮아서 행동하지 않고 있나(혹은 모른 채 눈감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글은 썼지만 매 순간 '저건 진짜 내 일이야!'라며 뛰어드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 보면 늘 그것이 어렵습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답안이라 이런 말을 싫어합니다만, 그럼에도 '꾸준한 관심'과 무뎌지지 않게 늘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심장을 잃지말아야지- 싶어요. 하지만 역시 최선은 실천과 연대라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마지막에 말씀하신 '주체의 충실성'이란 말에 동감합니다. 법칙성 바깥에서 진리의 사건이 벌어졌고, 그 진리라는 것이 잠시 잠깐 반짝-하는 것이라면, 그 진리를 계속 유지,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 필요하겠죠. 그것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진리의 사건으로 태어난 '주체', 그 '주체의 충실성'일 것이고.
      이번 사건(비단 쌍용차, 두리반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으로 쌍차 노동자분들과 같이 다수의 '주체'들이 태어났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리라,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 국가의 폭력에 대중들은 외면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다룬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스탠리 코언, 창비)이란 책이 있습니다. 읽어봐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읽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