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극단 수'의 <비계 덩어리> "인간이란 무엇인가?"

2010. 6. 19. 12:15Review


 

비계 덩어리
<극단 수>

"인간이란 무엇인가?"



 조원석



극단 ‘수’의 연극, ‘비계 덩어리’는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가 원작이다. 소설을 연극으로 옮기면서 인물과 시대 배경을 한국인의 정서와 어울리게 바꿨지만 줄거리는 원작에 충실하다.



이야기
 

6.25 전쟁.

전쟁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

명문가 출신의 배부장 부부.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춘삼 부부. 민주투사라 불리는 지식인 오병구. 그리고 수녀와 창녀 수향.

 

<전쟁이 두려워 떠난 사람들 중에 수향은 예외로 해야겠다. 수향은 군인이 싫어서 떠났다고 말하니까>




눈보라. 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허기에 지친 사람들.
사람들 앞에 먹을 것을 내 놓는 수향.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
창녀, 수향에 대한 혐오가 누그러진 걸까?

수향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들.

다시 마차는 달리고.

군사 작전 지역에 머무르게 된 사람들.
그리고 다시 수향을 기피하는 사람들.

국군 장교에게 통행증을 제시하지만 통행을 허가하지 않는 장교.

수향을 품고 싶어 하는 장교와 군인을 싫어하는 수향.

장교의 의중을 안 사람들은 수향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애국심이 등장하고,
희생정신을 찬양하고,
신의 힘을 빌린다.


타인을 위한 행동이라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더라도 신은 용서해 줄 것이라는 수녀의 말에
결국 장교에게 몸을 바치는 수향.

그런 수향에게 돌아오는 것은 혐오에 찬 따가운 눈빛이다.


다시 마차는 달리고.

다시 수향을 혐오하는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서 흐느끼는 수향의 울음소리와 함께 연극은 막을 내린다.





<비계 덩어리>는 수향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연극이 끝나면 이 시선의 화살표가 바뀐다.
수향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수향을 혐오하는 이중성을 지닌 인물들을 보면서
관객은 <비계 덩어리>를 떠올리게 된다.


<비계 덩어리>는 수향을 향할 땐 육체를 가리키지만,
다른 인물들을 가리킬 땐 영혼을 가리킨다.


몸을 파는 수향과 영혼을 파는 인물들.


<비계 덩어리>가 가리키는 것은 영혼이 없는 몸이다.

영혼과 몸은 하나가 아니다.
영혼은 영혼이고, 몸은 몸이다.
그래서 영혼을 팔기도 하고 몸을 팔기도 한다. 

 

영혼과 몸의 관계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와 같다.
영혼이 ‘나’라면 몸은 ‘타인’이다.


타인에 의해서 고통 받고, 즐거움을 얻듯이,
몸을 통해 고통 받고, 즐거움을 얻는다.
타인을 향해 사랑을 표현하고 미움을 표현하듯이,
영혼도 몸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고, 미움을 표현한다.

몸을 가꾸는 경우와 몸을 훼손하는 경우가 그렇다.
영혼과 몸이 하나인 양 있는 것이 인간이듯이,
나와 타인이 하나인 양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란 나와 타인과의 관계다.
‘나’ 만 있다고 해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몸이 없는 영혼처럼 죽은 자의 모습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나’가 타인을 향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인간이 된다.



몸이 훼손된 수향이가 타인을 향해 희생을 감수한 것은
몸을 다시 회생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수향이의 몸이 다시 회생된 것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타인을 향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었다.
‘나’가 없기 때문에 ‘타인’을 향해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이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 왜 ‘나’가 없는 가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달면 삼키도, 쓰면 뱉는 이중성을 보이는 자들은
그런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
아니 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것이다.
‘나’가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중적인 모습, 또는 다중적인 모습.
처음에는 진짜 ‘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짜인 ‘나’를 만들다가 결국은 진짜도 가짜가 되었다.



인간이 아름답게 보일 때는 언제일까?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남에게 내세울 스펙을 쌓고,
‘나’만이 아름다워진다고 해서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가 아름다울 때 ‘나’도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아름다운 ‘인간’을 보게 된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나’는 ‘인간’이 ‘사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꽃이 될 수도 있고, 하늘이 될 수도 있고, 전쟁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다. 
미움, 즐거움, 슬픔, 괴로움이 될 수도 있고, 각종 오물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간’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수향이의 흐느낌은 인간의 눈물이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다.
영혼이 몸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고,
‘나’가 ‘타인’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다.
이 눈물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수많은 ‘나’들이 ‘타인’이 되어 수향을 보는 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나’와 ‘타인’이다.

'나’와 ‘타인’ 사이에 인간이 있다. 




 

극단 수(秀)

비계덩어리


공연일시
2010.6.4(금) ~ 2010.6.27(일)

공연장소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 극장


작품소개
6.25 남북전쟁이 한창인 한반도. 서울의 유력자 몇 명이 부산으로 탈출하기 위해 이동 허가증을 손에 넣고 마차를 탔다. 승객은 막걸리 장사로 돈을 번 이춘삼 부부, 종로에서 잡지사를 운영하던 배부장 부부, 그리고 민주주의자 오병구와 수녀, 젊은 창녀 수향이 전부였다. 비계덩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매혹적인 몸매의 이 창녀는 매끄러운 살결에 검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탈출하는 데 정신이 쏠려 먹을 것을 준비해 오지 못했으나, 다행히 수향이 자신이 준비해 온 음식을 다른 일행에게 기꺼이 나눠 주는 덕에 배고픔을 면할 수 있었다. 일행은 국군 대위의 검문을 받고 대전에 잠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젊은 창녀에게 눈독을 들인 국군 장교는 수향에게 잠자리를 요구하고 이를 계속적으로 거절하는 수향 때문에 수향과 함께 하는 일행들을 부산으로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덩달아 어쩔 수 없이 붙들려 버리게 된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