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LIG아트홀 작곡가 시리즈 사운드 디자이너 <최수환, 소닉 카루셀 sonic carousel>

2010. 8. 5. 10:30Review


LIG아트홀 작곡가 시리즈
사운드 디자이너

최수환, 소닉 카루셀 sonic carousel





  글│ 성기완

 




1.


최수환, 이 사람을 ‘뮤지션’이라고 불러야 하나? 여전히? 한 때 그는 분명히, 정확하게,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뮤지션이었다. 물론 종류는 달랐다. 그가 드럭에서 ‘빨간머리’로 통할 때, 그 때가 벌써 십 몇 년 전이다, 아직도 드럭 출신 친구들은, 예를 들어 크라잉 넛 같은 애들은 여전히 최수환을 빨간머리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수환은 ‘옐로우 키친’이라는 밴드를 했었다. 당대 최고의 불친절한 밴드였던 옐로우 키친은 심지어 무대에서 등을 보이고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무대에서 등을 보이고 연주하는 친구들은 꽤 늘어났지만, 한국에서 그런 모습을 처음 보여준 밴드는 아마도 옐로우 키친 아니었나 싶다. 소닉 유스 Sonic Youth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밴드를 연상시켰던 그들의 사운드 역시 불친절했었다. 전기 기타와 드럼의 음향들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노이즈들이 록적인 리프와 섞였다. 가사도 모두 영어였다.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떤 의미로는 전달이 잘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글 가사가 주는 감정적인 선입관들이나 정서적인 공감대를 거부하기 위해 이들은 영어를 채택했을 것이다. 그들이 <Our Nation> 1집을 크라잉 넛과 스플릿해서 공유했다. 나는 그들의 녹음과정을 목격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소리의 레이어들은 지금 들어도, 약간은 세월의 흔적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 최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최수환은 그 후 컴퓨터를 주요 무기로 삼게 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컴퓨터를 잘 해서라기보다는(물론 잘 하기도 하지만), 컴퓨터가 간편해서였다. 컴퓨터는 혼자서 작업하거나 소규모로 독립적인 방식의 움직임을 기획할 때 없어서는 안 될 강력한 개인용 화기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노이즈의 종류들이 점차 확장돼 갔다. 일상적인 사운드를 채집하고 편집하는데 그 어떤 도구보다도 간편한 컴퓨터를 통해 최수환과 옐로우키친은, 나중에 ‘아메바’가 된 그 집단 또는 개인은 펑크 일변도의 한국 인디 씬에서 ‘정통’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중심을 점점 빗겨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점차 아방가르드-화 되어 갔다. 전자음악, 노이즈 록, 이런 것들을 거치고, 최수환은 결국 일종의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쪽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움직인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최수환은 뮤지션인가?


그러나 여전히, 그는 소리를 중심에 놓고 있다. 소리에 민감하고 어떻게 어떤 소리를, 어떤 전자음향을 발진시키고 배치시켜야 알맞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소리를 중심에 놓고 그것을 다양한, 특히 시각적인 감각의 활용과 동기화시키는 아티스트라고 하면, 여전히 그는 뮤지션일 수도 있겠다.



 


2.


LIG 아트홀 작곡가 시리즈에서 기획한 ‘사운드 디자이너’는 최수환, 권병준, 류한길, 이 셋을 묶었다. 신선한 모듬이었다. 셋 모두 필드에서는 많이 알려진 아티스트지만 그들이 요즘 어떤 소리를 내는지에 관해 폭넓게 알릴 기회는 드물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사운드 아트는 소수의 클럽이나 갤러리에서 많이 소비되어 왔다. 제한된 전문가들이 서로 공연하고 관람하는 순환고리를 사운드 아트가 천천히 빠져나와 일반 청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이 기획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첫날인 2010년 7월 14일 수요일에 최수환의 공연이 있었다. 제목은 <소닉 카루셀 Sonic Carousel>. 그는 공연 개요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혹은 누군가의 기록 속에서 소리를 채집한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고 계산한다. 그리고 연금술사처럼 빛과 소리를 모아 가상의 사운드트랙을 만든다. 이것은 기억의 콜라쥬, 기억 속 이미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리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카프카가 그려낸 뒤틀린 세계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뮈샤의 포스터 속에 그려진 장식용 패턴이 되기도 하며 사티가 만든 소리 가구이기도 하다.”


카루셀이면 회전목마인가? 소닉 카루셀이면 소리나는 회전목마. 또는 소리회전목마. 회전목마는 빙글빙글 도는 영사기를 연상시킨다. 실제로 공연은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 상영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파운드 푸티지 found footage들, 만들어진 영상들, 그리고 소리를 내는 도구인 컴퓨터의 모니터를 실시간으로 촬영한 화면들을 그가 채집한 소리들과 동기화시켜나가는 과정이 마치 무성영화 시대에 영상과 동기화될 소리들을 영상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 나가며 실시간으로 작업하는 ‘옛날’ 영화음악가의 작업과정과 비슷했다. 영상에 소리들은 가까스로 동기화된다. 그것이 무성영화다. 무성영화라고 해서 소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리는 영상의 바깥에서 자율적으로 ‘듀레이션’, 그러니까 시간적 지속을 담보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성영화에서 소리는 영상과 동기화되어 있지만 그것들이 영상에 구속되어 있는 토키 이후의 소리와는 굉장히 다르다. 소리를 일부러 영상 바깥에서 동기화시켜야만 한다는 점, 그래서 오히려 소리들이 자유로웠던 셈이다.


최수환의 ‘소닉 카루셀’ 역시 기본적으로 영상들과 함께 가는 소리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영상에 시스템적으로 구속되어 있지는 않았다. 소리를 영상에서 해방시키고 오히려 소리가 영상을 끌어가도록 하려면 그것을 영상에서 기술적으로 빼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영상과 동기화되는 소리들은 보다 더 자율적이고 우발적인 것들이 될 수 있다. 최첨단 사운드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전자음악 아티스트가 자아내는 이러한 ‘복고적’인 경향은 미래의 시간이 과거의 시간과 중첩되는 지금 시간의 조건을 보여주기도 한다. 20세기가 상상한 21세기는 어땠나? 무조건 미래적인 시간이었다. 20세기 중후반, 예를 들어 ‘소년 중앙’과 같은 어린이 월간지에 자주 등장했던 21세기에 대한 막연한 동경들, 마치 모든 것이 바뀔 듯이 묘사되는 그 새로운 시간들, 그러나 막상 21세기가 된 지금의 시대는 ‘최첨단’의 시간에 오랜 기억들과 관습과 추억들이 중첩해서 존재한다. 소닉 카루셀이 보여주는 시간은 그런 면에서 ‘미래’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간은 굴레와 같은 것이어서 거기서 빠져나가기 힘들다. 과거에서 빠져나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미래란 있을 수 없다. 그것들은 서로 중첩되고 대화하며 때로는 영향을 미친다. 영상에서 빠져나와 영상과 동기화되는 이 회전목마를 통해서 우리는 카프카적 시간의 본질과 만나게 된다. 시간은,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다가가지지 않고, 아무리 빠져나오려 해도 탈출할 수 없는 어떤 회전목마 같은 것이다.

 



3.


작은 소제목들이 있었다. 대개 고딕체인 그 제목들은 이 회전목마가 챕터를 넘기는 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동시에 그것들은 자막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검은 배경에 하얗게 뚫린 그 글씨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강력했다. 그러나 소리 회전목마는 그 챕터 제목과 내러티브의 흐름을 정확하게 지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흐름을 거부하고 거스른다. 사실 흐름이라는 것은, 정확하게는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것은 우발적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것들이 몽타쥬되고 중첩되면 거기서 저절로 흐름이 생긴다. 그런데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은 의외로 영상이 아니라 소리다. 소리가 흐름을 생성하는 경우가 영상 자체가 흐름을 만들어내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많은 경우에 소리는 들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의 흐름이다’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존재한다.


최수환의 이번 작업은 그렇게 ‘어떤’ 지속, 그러니까 우발적인 듀레이션을 생성해내는 소리들의 접합들을 실험했다. 말소리, 일상적인 노이즈, 전자음향, 음악적인 소리 등등 다양한 소리들이 접합되는 과정에서 듀레이션은 저절로 생성된다. 소리는 지속을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지표가 된다.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더 정교하고 복잡하고 더 우발적인 방식으로 더 많은 소리들이 그 지속에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실 그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왜? 소리는 시간이니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작업을 최수환은 계속 할 것 같아 보이는데, 시간과 지속과 자율적인 어떤 것들, 해독 불가능한 과거의 것들, 일정한 시간을 점유하며 존재했었다는 표시로서의 소리, 그것들을 멀티미디어적인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나갈지, 앞으로의 시간도 기대가 된다.








 

LIG 아트홀 기획공연 │ 작곡가 시리즈 2010
사운드 디자이너 Sound Designers


2010년 7월 14일 최수환-Sonic Carousel
                17일 권병준-모든 것을 가진 작은 하나
                20일 류한길-북 소사이어티의 보이지 않는 힘 & 다른 것을 위한 서술법

최수환
90년대 중반 포스트록/전자음악 밴드인 옐로우키친의 멤버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옐로우키친은 "Random Elements 60" 등 다수의 음반을 발표하였고, 정기적인 클럽 공연 및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였다. 최근에는 생성 예술,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의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전자음악 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로 작품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Sonic Carousel
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혹은 누군가의 기록 속에서 소리를 채집한다. 때로는 시간과 공간을 측정하고 계산한다. 그리고 연금술사처럼 빛과 소리를 모아 가상의 사운드트랙을 만든다. 이것은 기억의 콜라쥬, 기억 속 이미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리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카프카가 그려낸 뒤틀린 세계 속의 한 장면이기도 하고 뮈샤의 포스터 속에 그려진 장식용 패턴이 되기도 하며 사티가 만든 소리 가구이기도 하다.



 

필자
성기완
시인,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