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경의 마임워크숍]-20. "5년 후에는 누가 거리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스무 번째 기록 

"우리의 수업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관점에 대한 수업이었다.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귀한 것이다"


글| 강말금



 

* 들어가는 말

오늘 수업에서는 우리가 처음 만나서 했던 놀이 - 제자리 준비 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를 다시 했다. 별 생각 없이 만났던 놀이에 많은 비밀이 숨어있었음을 재확인했다. 이것이 다예요, 하고 선생님은 말했다. 마지막 시간인 만큼, 내가 알아듣고 행할 수 있는 것, 알아들을 듯 말 듯 한 것, 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행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그러나 마지막 시간의 포인트는, 하나하나의 기술이 아닌 ‘호흡’이다. 

  




1. 제자리 - 준비 - 땅 - 출발 - 달리기(슬로우) - 도착

 

우리는 첫 시간에, 100미터 달리기의 제자리-준비-땅 놀이를 했었다. 그 때 강조되었던 것이 있는데, ‘준비’의 호흡이다. 고재경씨는 이렇게 말했었다.

 


“제자리도 움직이지 않고, 준비도 움직이지 않아요. 그럼 다른 게 뭘까요? 상황/분위기가 달라요.
 준비 다음은 땅이니까요. 육상경기에서의 준비를 생각해봐요. TV로 봐도 고요해요.”


“최초의 움직임이 준비예요. 움직이고 있지 않지만. 점을 생각해봐요. 움직이지 않아요.
 하지만 이게 생성의 시작, 존재감이에요.”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준비’의 호흡이었다. 그런데 첨가된 것이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제자리-준비-땅 까지만 하였다면, 이번에는 땅, 하고 나서 결승점까지 뛴다.

 


땅-출발 후 몇 걸음(리얼 속도)-달리는 과정(슬로우)-결승점 통과 후 헉헉거리며 몇 걸음(리얼 속도)

 


선생님은 두 군데의 속도변환구역을 지정해주었다.
이제 시작한다. 최초의 호흡은 준비부터다. 땅, 하면 진짜 달리기를 하듯이 출발한다.


두세 걸음 후 속도변환구역이 터닝포인트다. 그 순간 슬로우로 변환되지만, 준비 때의, 출발 때의 에너지가 변하지는 않는다. 슬로우로 몇 걸음 가는데, 이 몇 걸음은 실제 90m정도의 거리일 것이다. 슬로우는 그 긴 거리를 달리는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제 다음 터닝포인트를 통과하면서, 속도는 다시 리얼로 돌아간다. 그 순간은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이다. 통과하자마자 호흡은 헉헉거리는 형태로 변한다.

 

우리가 첫 시간에, ‘준비’의 호흡, 최초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결승점까지 뛰면서 그 호흡의 변환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초의 호흡은 ‘준비’에서 시작되고, 리얼 출발 - 슬로우 - 리얼 도착 의 단계마다 형태가 바뀌지만, 에너지의 크기가 변하지는 않는다.

 


다음 우리는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았다. 헉헉거리며 도착 - 슬로우 - 리얼 출발 - 준비, 제자리 의 진행이다. 잘 되지는 않지만 재미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뒤로 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향은 계속 결승점에 있다. 우리의 몸은 앞으로 향하는 밸런스를 잃지 말아야 한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공간의 제약이었다. 연습실의 벽이 보면서 하려니 겁이 나서 리얼한 속도의 출발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연습의 방법을 얻었으니 공터에서 한 번 해보자. 기분이 어떨지.
그리고 다시 작은 공간 - 무대로 돌아오자.

 

 

 

2.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정지포인트의 놀이다. 그런데 우리가 첫 시간에 배웠던 것, 마지막 시간에 다시 확인한 것은 ‘호흡’이다. 호흡은 이런 단어로 대체되어 쓰일 수 있다.

 


호흡 / 에너지 / 마음 / 내적충동

 


놀이가 긴장감 속에서 시작되면, 최초의 호흡으로 사람들이 움직인다. 선생님의 ‘피었습니다’에 맞추어, 우리는 정지한다. 움직이는 에너지는 정지해 있는 시간 동안 그대로 보존된다. 긴장감으로 인해 에너지는 오히려 증폭될 수 있다. 선생님이 ‘무궁화꽃...’을 다시 외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움직이지만, 정지 때의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정지의 호흡이다. 선생님은 첫 시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호흡을 잡으세요. 움직이다가 멈추지만, 그러니까 운동에너지가 정지에너지로 변하지만, 에너지 자체는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증폭되어야 해요. 학생들이 교실에서 떠들다가 선생님이 나타나면, 갑자기 조용해지죠? 그 에너지는 강력해요. 우리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돼요."

 


우리는 하나하나 행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떼조각상으로 볼 때, 우리는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것은 한 마음이고, 하나의 큰 호흡이고, 강력한 에너지이다.

 








3. 다양한 움직임과 터닝포인트 - 호흡

 

계속 해오던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정지포인트와 터닝포인트’라는 소제목으로 기록했다.

 


연습실에 띄엄띄엄 서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선생님의 신호를 터닝포인트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움직임을 행했다.

 

리얼속도 걷기 / 좀비 걷기 / 줄인형의 움직임 / 슬로우 움직임 / 좀비 슬로우 / 밸런스 걷기 /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뛰기 슬로우

 


이미 기록한 것이지만 다시 기록하는 것은, ‘호흡’ 때문이다. 마지막 시간인 만큼 선생님의 강조는 큰 언어, ‘호흡’에 있었다. 다양한 디테일들 수많은 지적사항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다 빼고 선생님은 호흡을 얘기하셨다.

 

각 움직임마다 호흡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 크기는 유지된다. 터닝포인트의 순간이 중요한 것은 최초의 호흡이 소멸되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깐깐하게 하나하나 연습시키던 선생님이(자신에게는 더 심하겠지?) 공연은 마음으로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최초의 호흡을 일으키는 것은 마음이다. 그 호흡을 소멸시키지 않고 다른 움직임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기술이고, 개념의 이해이고, 결국은 연습인 것 같다.


그것이 다 마음이다.




4. 마지막 발표

 


‘모든 것을 종합해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한 명씩 나가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퍼포먼스를 했다.

 


배 위에 섰다가

노 젓고

그물 던졌다가

끌어올린다

 


내 생각으로, 이 안에는 이런 요소들이 들어있다.

 

배 위에 섰다가 - 작용점, 공간

노 젓고 - 막대기 잡기, 정지포인트, 터닝포인트, 막대기 움직이기의 기준점, 갈등(물의 저항력)

그물 던졌다가 - 공간에 뿌리기, 몸의 분리

끌어 올린다 - 정지포인트, 갈등(엄청난 물고기의 무게!), 몸의 분리

 

그런데, 내가 행할 때는, 절대 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마음으로 하는 거군,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정말이지 확신이 부족했군. 마음이 엉망이었군. 하는 생각이 든다.

 



    



 

5. 둥글게 앉아 한 명씩 이야기

 

워크샵은 끝났다. 둥글게 앉아 한 명씩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쉽게도 참석 못 하신 분이 몇 분 있었다. 마지막 수업의 날짜조정 때문이다. 그리고 한 분, 강학수씨는 뒷풀이 안주 회를 뜨러 가셨다.(으흐흐) 둘러앉았던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볼까 한다. 녹취 자료가 없어 한 분 한 분 모두의 이야기를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람군, 말금이, 정호경, 류호경, 세진이, 비봉이, 경락이, 옥형이, 진아, 선영, 다연, 지훈, 유미.


 

선생님은 우리가 마임 맛보기를 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발바닥부터 하느님까지 다 소개받은 느낌이다. 그래서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마임/배우/연기의 깊은 세계와 큰 매력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아쉬웠다. 극단 사다리의 배우인 공주씨는 말했다. 다음에 수업이 또 있다면, 더 단순한 것을 반복하는 형태였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마임배우는 워킹만 죽어라 몇 년을 할 것이다. 나도, 소중한 것들이 몸에 들어오기 전에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아쉬웠었다.


역시 사다리의 배우인 진아씨는 두 번 째 듣는다고 했다. 지난해 워크샵에서 너무 몸이 굳어있어서 많이 아쉬웠다고 하면서, 두 번 들으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노라고 했다.


역시 두번째 들은 비봉씨는 고재경씨와 술을 먹기 위해 다시 왔는데, 많이 먹질 못해 아쉽다고 하였다. (대신 나랑 많이 먹었다.) 워크샵의 참맛은 역시 젯밥이다.


세진씨는 평소 자연스런 리듬감으로 부러움을 많이 샀었다. 오늘 알았는데, 피아노를 전공하셨다고 한다. 음악적인 것과 움직임의 원리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수씨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이것은 워크샵을 통해 발견한 비밀이다. 우리의 수업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관점에 대한 수업이었다. 나 또한 현수씨처럼, (그분처럼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을지라도), 이번 워크샵을 통해 어떤 사물을 보는 다른 눈이 생겼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귀한 것이다.

 





* 느낀 점

 
그리고 고재경씨와 같은 예술가를 만난 것. 홀로 가방 하나 들고 다니는 사람. 홀로 꼼꼼히 연습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원리를 탐구하는 사람을 만난 것.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참 귀하다.
그 분이 가는 길이 마임의 길이라는 것도. 마임에 대해서, 어떤 숭고한 느낌을 갖게 된다.

고재경씨가 이야기한 이번 워크샵의 궁극적인 목적은, 서로 마음이 맞는 작업자를 만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은 고재경씨가 프린지에 이야기한 것이고,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이러다가 누군가 마임을 하게 되면 더 좋구요, 라고 말했었다.

우리들 대부분 마임이스트가 되려고 오지는 않은 것 같고, 열정에 불타 선언한 사람이 생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모르지. 5년 후에는 누가 거리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5개월 동안 매주 만나면서, 우리는 귀한 것을 얻었다. 씨앗 같은 것이다.
씨앗을 뿌려주신 농부님께 감사드린다.
함께 한 친구들에게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싶다. 




 


 ★잠깐공지★

안녕하쉽니까 강말금입니다.

5개월여의 마임워크샵의 대단원으로 거리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어설픈 저희를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받아주셨어요.


<공연정보>
-8월 12일 목요일
-프린지 개막식 퍼레이드가 끝난 후, 개막공연 중 저녁 7-8시 사이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 필프린지
 

우리의 공연은 십 분짜리예요. 언어가 없고, 음악과 몸짓이 있는 공연입니다.
음악은 기타와 타악의 라이브입니다.
우리의 몸짓은 추상적인 것을 표현할 거예요.

내용은 3부로 나뉘어집니다. 다음을 보세요.

1부 - 좀비 ; 끝없는 지향, 말하지 못하는 갈망, 목마름, 절실함
2부 - 어린시절 ; 밝음, 되찾은 시간, 회귀
3부 - 혼돈 ; 현재의 모습, 현실

우리의 공연이 관객 분들 보시기에 멋있기를 바라요. 그렇지만 워크샵을 통과한 어린 배우들이기에, 관객 분들에게 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한 공연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세요. 고재경씨는 연습 도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연자들이 공연이 끝났을 때, 마음속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내서 시원한 느낌, 실컷 울었어 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난 후 ‘씨익-’하고 가볍게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를 비워내야 다시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저희 공연의 목적입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비워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가자는 조옥형, 정호경, 강말금, 이현수, 박비봉 입니다.
시간되시면 찾아와주세요. 좋은 만남이 될 거예요.





 




 

  1. 마지막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고하셨습니다.^^

  2. 즐거운 마임 여행이었어요. 스튜디오 좀비들~!

  3. 말금은 잘사나?

    • 잘 살지. 너 그 좀비지? 12일날 같이 밥먹자! 니껀 내가 낼께!

  4. 마임워크숍팀 짱!!! 멋있어요!! 12일 공연 저두 꼭 지켜볼게요 화이팅! :)

  5. 내일이 공연이네요.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맘이 짠허네...ㅋ 오늘 마지막 연습 했는데요, 느낌이 좋았어요. 구경하러들 오시와요!

  6. 오늘 공연 모두 멋졌어요. 제가 항상 원고를 올릴때 사진을 보며 깔깔대며 웃었던 프린지 스태프 정호경씨마저 마치 프로처럼 보였습니다.
    매 회 원고를 받아보기만하는 관찰자의 입장이었지만, (주제 넘는 이야기이지만)오늘만큼은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고재경쌤과 몇몇분들은 한창 달리고 계시겠지요?
    오늘 뒷풀이 자리에서 고재경 선생님의 이 말씀이 인상깊습니다. 제가 그 언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가 함께 공연을 했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좋다." 매 회 이렇게 선생님의 언어를 하나씩 마음에 새겨 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