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옥형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보고

2010. 8. 31. 19:07Review




조옥형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를 보고


글_강말금






* 들어가는 말

조옥형씨는 나의 친구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친구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로맨스 단계다. 그리고 이 공연은 조옥형씨의 단독 콘서트 같은 공연이다.


이런 관계의 사람이 공연을 보고 쓰는 글은 어떠해야할까를 가장 많이 생각하였다. 옥형씨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도 생각하였다. 음. 그렇지만 공연감상문은 옥형씨만 읽는 것이 아니니까 줄거리도 좀 들어가고 해야 다른 독자 분들도 공감 하실 테고...... 어떤 형태로 쓰던 그분에게 쓰는 편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해서 그냥 쓴다.






* 내가 아는 조옥형


콘서트에서 가수 소개가 빠질 수 없듯 옥형씨의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그분은 여자고,  삼십 대 후반이고, 결혼을 안 했고, ‘새시대예술연합’이라는 단체에 포함되어 있는 극단 ‘꾼’의 단원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것 같다. 술을 좋아한다. 고기는 먹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씩 단식을 한다.

우리는 ‘고재경마임워크샵’에서 만났는데, 함께 공연까지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무게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래된 힘이 있는 것 같다. 싸움을 하면, 꼬집거나 할퀴는 쪽이 아니라 주먹으로 배를 깊게 칠 것 같은 느낌이다. 나같이 약속 잘 하고 취소 잘 하는 사람은 그 분같은 사람과 공연팀을 해야만, 팀이라는 하드웨어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분을 둘러싼 문화는 나와 많이 다르다. 나를, <서양의 철학과 예술 / 도시 / 개념 / 막내 / 비역사적인 것 / 아나키즘 / 개인주의> 등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단어들의 반대말이 필요할 듯하다.











*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야외극이다. 등퇴장 및 옷을 갈아입기 위한 제목천이 하나 있고, 공연은 그 앞에서 이루어진다. 젬배를 치는 남자 악사와, 코러스를 담당한 여자 악사가 무대 왼편에 앉아 있다. 젬배는 판소리의 북치는 사람으로 보면 된다. 공연이 시작되면 조옥형씨가 검은 사각 팬티에 턱시도 윗도리를 입고, 지휘봉을 들고 나온다. 교향곡이 울려퍼지면 근엄한 표정으로 지휘봉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분의 원맨쇼 공연임을 보여주는 의식.

음악이 끝나면, 옥형씨는 턱시도를 벗고, 두 손에 때밀이 수건을 낀다. 주인공의 직업은 때밀이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입은 옷은 런닝과 빤쓰이다. 때밀이 수건으로 난리를 치며 춤을 춘다. 유쾌하고 귀엽다.







때밀이 아줌마의 나이는 오십 쯤으로 추정된다. 첫 이야기는 때밀이의 고충이다. 평상에 앉아 ‘수상한 삼형제’를 보면서, 관객한테 이런 저런 넋두리를 한다. 뚱뚱한 손님, 싸가지 없는 손님, 임신한 손님. 아줌마는 아들인지 딸인지 귀신같이 맞춘다.

그 중엔 아픈 손님도 있다. 때를 밀다가 손님 가슴의 멍울을 발견하였다고 얘기하며 혀를 찬다. 곧 무대뒤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 손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의 독백을 한다.

이제 다시 때밀이 아줌마로 돌아온다. 아줌마는 딸의 전화를 기다린다. 전화를 한 통 받긴 하는데 딸이 아니다. 오늘이 엄마 제사임을 알리는 전화이다. 깜박했던 것이다. 이것이 본론의 시작이다. 이 연극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다시 무대 뒤에서 갈아입고 나오는 옷은 환자복이다. 배우는 이제 때밀이 아줌마의 엄마가 되었다. 방사선 치료 때문인지 모르지만 암환자처럼 모자를 쓰고 있다. 엄마는 달을 보면서 얘기한다. 달처럼 이쁜 딸을 갖고 싶었다고.






배우는 어느 순간 모자를 벗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엄마의 부음을 듣던 당시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당시로 돌아간다. 부음전화를 받고 있는 그녀에게 여자악사가 검은 상복을 입혀준다. 영정사진을 안고 아줌마는 운다. 사연이 있었던 것 같다. 아줌마의 남편은 젊은 시절에 먼저 돌아갔는데, 그 죽음이 엄마의 방문과 우연히 연결되었던 것 같다. 아줌마는 후회한다. 슬픔의 시간이다.

그러나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전화 안 하는 딸을 타박하고, 같은 목욕탕의 주인 아줌마에게 일찍 퇴근해도 되는지 애교로 부탁한다. 심술궂지만 인정 많은 주인은 퉁명스럽게 허락해준다. 전화가 온다. 아줌마의 친구인 것 같다. 달이 떠서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한다.

아줌마는 기분이 좋다. 달이 떴다고 전화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니.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를 관객과 함께 부르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판에서 벌어지는 야외극이고, 일인극이고, 관객에게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극이고, 전통가락의 노래극이다. 러닝타임은 삼십분.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이다.








* 마음 아팠던 이야기


나는 공연을 보기 전날 부산에서 올라왔다. 엄마와 언니와 밥 먹고 쉬다가 돌아왔다. 부산을 떠난 지 육 년이나 됐는데, 집에서 돌아올 때 마음이 가벼웠던 적이 없다.

나는 엄마가 밖에도 좀 나가고 엄마의 기획으로 바빴으면 좋겠는데 별로 그렇지 않다. 엄마는 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걱정도 되게 많이 한다. 비오면 비온다고 걱정하고 더우면 덥다고 걱정한다. 때밀이 아줌마가 목욕탕을 뱅글뱅글 돌면서 딸 전화 안 온다고 타박하다가 걱정하다가 괜찮겠지 하다가 또 일하고 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 엄마도 집에서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 이쁜 살


내가 느낀 이 공연의 매력포인트는 배우들의 살이었다. 조옥형씨는 조금 덜 민망한 빤쓰를 입고 나오는데, 배와 허벅지가 나 같다고 생각하고 웃었다. 서른이 넘은 보통 여자의 몸을 보게 돼서 너무 기분 좋았다. 때밀이 아줌마처럼 한 쪽 다리 올리고 앉은 모습도 이뻤다.

그 사람이 이뻤달까. 그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배우 자신 뿐 아니라 보는 사람도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게 해 주었다.

살 하면서 여자 악사 얘기가 빠질 수 없다. 옥형씨가 보통 사이즈의 여자라면 그녀는 뚱뚱한 여자이다. 그런데 뚱뚱한 여자라기 보다는 센스있고 귀여운 여자이다. 이번에 여러 가지 역을 맡았는데, 라운드 걸, 뚱뚱한 손님, 진상 손님, 전화벨, 목욕탕 주인 등을 너무나 감칠맛나게 해냈다. ‘전화받으세요’ 아이 목소리 전화벨은 압권이었다. 공연 끝나고서도 동행이랑 흉내내면서 많이 웃었다.






* 옥형씨에게 부탁함


옥형씨는 이번에 용기있게 옷을 벗었다. 그러나 그분이 편안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많이 아쉽다.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하지 않은 점이.

어머니 부음 전화 받을 때 한 번 그분 자신의 목소리가 나왔다. 볼륨이 작았지만 순간 집중이 되었다. 나는 솔직히, 이 공연에서 그 부분이 가장 소중하다. 왜냐하면, 나는 조옥형이라는 배우를 보러갔으니까.

그 공연을 본 사람은 다 느꼈을 것이다. 그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좋은 공연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의 레퍼토리가 되려면 때밀이 아줌마라는 캐릭터가 옥형씨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언뜻 떠올리는 때밀이 아줌마는 ‘세다’. 목소리가 크다. 아무데서나 철퍼덕 앉고 배 드러내놓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정도 있고 사연도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거기서 그치면 안 되지 싶다.

내가 인생을 살다가 때밀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그럼 나는 어떤 캐릭터의 때밀이가 될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답은, 결국 나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관객한테 진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공연이 옥형씨의 오랜 레퍼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크지 않아도 좋으니(와이어리스가 있으니까) 조옥형의 목소리로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웃기지 않아도 좋으니 더 여유있었으면 좋겠다.
때밀이 아줌마가 때밀이 아줌마스럽기보다는 조옥형스러웠으면 좋겠다.






* 삼 년 후


조옥형씨는 이번에 할 일이 정말 많았다. 여자 악사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거의 혼자의 힘으로 야외의 산만한 관객을 붙들고 있어야했다. 웃기고 울려야 했다. 노래하고 춤춰야했다. 얼마나 어깨가 무거웠을까. 그분의 고충을 이해한다.


첫 일인극이라고 들었다. 이 공연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숙제를 가지게 됐을까? 배우는 숙제를 풀기 위해 세월을 쓴다. 그래서 나는 한 배우를 오래오래 보고 싶다.


삼년 후에 이 공연 또 볼께요.
파이팅 조옥형.



 











공연정보

새시대예술연합 '조옥형'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0 참가작

작품의도
악사와 함께 나의 삶에서 사랑을 주고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의 인생에 담긴 웃음과 눈물은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 것이다. 내가 먼저 나를 꺼내어 보이며 나누고 치유하고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공감의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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