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느껴지지만 읽혀지지는 않는 우리들의 진심- '운김'의 연극 <그러고 싶지 않아>

2010. 9. 14. 15:57Review



느껴지지만 읽혀지지는 않는 우리들의 진심

연극 <그러고 싶지 않아>

 

글_ 윤나리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 <그러고 싶지 않아>의 그림은 일상 어느 곳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그 장면이었다. 대화를 끌어나가던 초반부 옥탑에 친구들을 불러 고기파티를 연 필경은 영화감독을 언급하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크게 외친다. 그 목소리는 공기 속에 스며들기만 할뿐 그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주인 잃은 이야기들이 대화를 이루고 이어 연극은 끝이 난다.








 

‘part 1’

 

연극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이 만난 시간동안 그들의 대화로 만들어진다.

흔히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러하듯 그들의 대화는 밀려오는 파도처럼 동시에 섞이기도 하고 그 대화는 허공에 흩뿌려지듯이 금새 사라지고 침묵의 상태가 지속되기도 한다.

 

연극은 꽤나 흥미로운 구도다. 연극의 공간이었던 서교예술실험센터의 옥상은 친밀한 공간이다. 배우들과 관객들의 거리가 가까워 마치 옆 테이블의 대화를 엿듣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입장이 되고 마는 식이다.







 

‘part 2'

 

사실 나는 굉장히 화가 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지인과 통화를 하다 끊고나서 갑자기 화가 치민 경우다. 나는 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지금은 잠이 들었을 지인에게 두 세 번 내 화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문자를 보내놓은 상태다. 늦은 시각임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지어 전화도 해봤지만 반복되는 소리만 날뿐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멍하니 앉아 돌아가는 선풍기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화난 이유는 참 명료하게 드러나더라. 단 한마디만 했으면 되는거였는데, 나는 ‘이 말해도 괜찮을까’ 혹은 ‘이 말해도 내가 괜찮아보일까’하는 우려에서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근데 내가 화난 이유는 뭐냐고? 어이없게도 왜 상대방은 이 안절부절 못한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까였다. 단 한마디의 말도, 그 어떤 뉘앙스도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억지같은 아쉬움을 숨기지를 못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결국 분노에 이르고 말았다. 내 탓으로 끝날 문제를 남 탓까지 하고 있는 경우라 비난받을만도 하지만 난 아직도 울컥울컥한다. 내 진심은 드러내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외면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전화로 그저 목소리만 섞었을 뿐인데도 진심을 전하지 못했다는 거, 진심이 통하지 않았다는 게 몸서리쳐질만큼 슬프다. 그런데 직접 얼굴을 보고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만한 친구들이 이런 경우라면 오죽할까. --는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를 하다 --과의 추억을 떠올린다. --는 술에 잔뜩 취해 --에게 사실을 널 좋아한다며 가누지 못하는 몸을 그녀 품에 묻은 채 고백한다. 두고 간 옷을 빙자해 --와 대화를 나누는 --는 미묘한 분위기를 돋게 한다.

 






 

그들의 대화는 주변의 소음에 쉽게 흐려지기도 하나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들을 불러일으키며 다시 굳건해지기도 한다. 대화가 한참 이어지던 연극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많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들의 말로써 전해진 메시지는 받지 못했다. 연극의 의도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각자의 진심을 시원스레 말할 수 없는 대화들. 그들이 연극으로서 구현해낸 대화를 보고 나는 전지적 입장에서 어떤 감정으로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고 있는지를 분명 목격했고 느꼈지만, 그 느낌은 그들이 내뱉는 대화와 참 이질적이었다. 그 모습이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극전체가 아니라 그들의 대화만 본다면 내가 아닌 그들 서로에게 읽혀졌어야 할 진심인데.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진심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가깝고 멀고의, 혹은 깊고 얉음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매번 진정성을 가진 대화를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진정성이 적어도 대화를 하는 나와 내가 아닌 이들에게 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본은 진심이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말해주고 싶은지, 우회적으로 말하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든 조금이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질반질한 무관심에 끊임없이 나가 떨어지는 대화덩어리가 되더라도, 보이지 않는 벽에 스며들 듯 상대방의 가식에 함몰되어버릴 그것이 될지라도.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아니 그 진심이 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아직 내 핸드폰은 고요하기만 하고 아까보다 진정된 마음은 그냥 기다려보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시 전화한다고 해도 쉽게 내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긴하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어쩌면 내 진심이 그렇게 가벼운 건 아니라는 생각에. (지나친 합리주의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쿨럭쿨럭)










운김 <그리고 싶지 않아>
2010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

0820-22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

줄거리
고등학교동창인 필경 훈태 재경 은주.
재경은 이혼을 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찾는다. 필경은 자신의 옥탑방에서 고기파티를 벌인다. 소주는 한병에서 전투적으로 늘어만 가고 그들은 하나씩 묵혀두었던 속내를 드러낸다.
농담처럼 진실은 흐려져가고 그 속에서 누구하나 진실히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 친한 친구들. 우리는 정말 친한 것인가. 헤어지기 두려워 진실을 얘기치 못하는 것인가. 헤어지는게 무엇이기에 두려운 것인가. 오늘도 그들은 어느날들처럼 만남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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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윤나리
영화만 줄줄이 볼 수 있는 휴일을 원하면서도 정작 휴일엔 연애와 술과 잠을 즐기고 평일에 바삐 영화에 쫓기는ㅡ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 
(자기소개 한 줄에 영화가 몇 번씩이나 들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만큼 영화가 좋은 건지도)
nari.peac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