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Digltal Dance - In a cycle 같은공연 다른시선 : 몸의 움직임을 사랑하는 방법

*편집자주: 이 글은 인디언밥에서 진행하였던 'Digital Dance - In a cycle' 초대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들중 가재님께서 보내주신 리뷰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공연의 이벤트에 당첨되신 MJ님의 리뷰도 함께 발행합니다. 같은 공연을 관람한 두 분의 다른 시각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에 인디언밥 독자여러분도 동참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




Digltal Dance - In a cycle

몸의 움직임을 사랑하는 방법

 


글_ 가재
사진_ 박봉주








1

리뷰를 쓰기 전에, 나는 굉장한 초보관객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리뷰를 잘 못썼다는 비판을 피해가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공연을 보고 글을 쓰는, 한 개인의 맥락이 이 리뷰에서 중요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정식적으로 무용 공연을 본 적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하나, 둘, 셋, ……. 손가락을 동원했던 게 미안해질 정도다. 모두 올해 보았던 공연이다. 그래도, 연극, 음악 등 다른 공연 장르를 통틀어서 제일 많이 본 게 무용 공연이라니, 초보관객 중에서도 왕초보이지 않을까(작년까지 예술문화를 접해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그 많은 공연 장르 중에서 유독 무용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일종의 선망 때문인 것 같다. 중학교 체육시간에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느꼈던, 땀 흘리는 것에 대한 부러움. 움직이는 게 서툰 내 몸에 대한 미움. 축구 같은 단체스포츠보다는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적은 예술로서 무용. 이런 감정들이 한 데 뒤섞이며 나는 일종의 (몸의) 움직임에 대한 로망을 형성해가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2

 

젊은 안무가 이미희가 표출하는 인간의 삶과 정체성의 탐구작 in a Cycle(팜플렛 인용).

내가 보았던 네 번째 무용 작품. 이번 작품은 내가 보았던 지금까지의 무용 작품 중에서(그래봤자 세 개지만) 제일 역동적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조용히 포문을 연 무대는, 점점 역동적으로 변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섯 명의 야릇한 숨소리가 거세게 뒤섞인다. 하지만, 이 구성이 너무 진부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설명 없이 연속적으로 비춰지는 움직임들이 초보관객으로서 좀 난해했던 것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연 중간에 살짝 졸았다.


하지만, 이런 지루함이나 난해함이 오히려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실 무용이란 장르도 영화나 연극, 음악 같은 장르보다 덜 대중적이고, 그건 무용이 현대예술로서 가지는 객관적인 위치이다. 하지만 이런 무용의 프린지(fringe : 주변부, 비주류)스러움이 예술적으로 더 숭고한 가치를 가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정시가 떠난 자리에서 현대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형식으로 사회의 부정적 상태를 증언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방식이다. 예술적 저항의 근거는 예술이 사회에 토해놓은 시끄러운 발언이 아니라, 영원한 탈주를 통해 늘 사회에 불필요한 것으로, 사회의 영원한 ‘타자’로 머무는 예술의 존재 자체에 놓여 있다. 의미를 거부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예술은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남는다. 예술은 이렇게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의 현존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예술은 존재 그 자체가 ‘반사회성’이며, 이 존재의 사실로써 사회를 비판한다. “새로운 예술은 화해의 가상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화해되지 않은 것 가운데서 화해를 견지한다.” 96p,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 아도르노 편

 


 

아도르노라는 철학자는 21세기 현대예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술의 ‘반사회성’ 자체를 주목했다. 주관적인 해석을 보태자면, 진정한 예술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안 되고, 오히려 그들의 인정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예술에서 인디, 프린지, 독립예술, 실험예술 같은 단어들이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더라도 충분히 빛나는 이유가 아닐까. 마치 어느 중학교 운동장 주변에 웅크리고 앉아 축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어린 나에게 ‘괜찮아, 축구를 못해도 넌 충분히 괜찮은 아이야’라고 위로하듯이. 무용은 나에게 객관적으로 그런 위치이다.






 



3


고요하거나, 역동적이거나.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들이 움틀 거리면, 몸이 뒤틀리거나 꼬이면서 기이하게 비춰진다. 그러면 관객인 내게도 숨어있었던 그 근육들이 드디어 존재감을 발휘하며 이리저리 꼬이는 것 같아서 덩달아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몸의 긴장이 번쩍 드는 순간. 이번 공연에서 그런 순간은 두 번 있었다. 도입부와 마지막 부분.


도입부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이 공기 중으로 펼쳐지면서, 한 인간이 수조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요한 신체부분만 가린 채, 그는 온 몸의 근육이 어떻게 하면 기이하게 움직일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인간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추측을 해봤다.


마지막 부분은 역동 그 자체였다. 다섯 명의 움직임이 한 데 어우러지는 건, 역동적으로 움직이다 음악이 사라졌을 때였다. 음악이 사라지면 그제 서야 들리는 헐떡거림. 그제 서야 보이는 땀에 젖은 반짝이는 근육들. 그 사이에서 야릇한 해방감을 느꼈던 사람은 나 뿐 이었을까?


결론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


샤워를 마치고 전신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서, 가끔 이상한 동작들을 해볼 때가 있다.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그 오그라드는 움직임들을, 난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거울에 머리통 뒤로 CCTV가 보인다면 달라지겠지만). 그리고 내 몸에 각인된, 깊은 트라우마를 꺼내어 본다. 공이 싫었고, 축구가 싫었던 그 때,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느끼던 내 몸을 향한 저주의 말들을 하나씩 곱씹으면서 생각한다. ‘이젠 나도 내 몸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In a cycle이란 무용 공연은 사실 많이 난해했다. 많이 무용을 접해보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이 공연의 내부적인 이야기들을 제대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하고 많이도 고민했다. 그 고민과 반대로 내 개인적으론 이 공연은 중요한 물음을 던져 주었던 것 같다. 오그라드는 내 몸도 충분히 멋질 수 있지 않을까, 서툴기만 한 내 몸의 움직임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마 그 방법은 무용을 통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물음, 아니 어렴풋한 확신.

 




PS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무용 공연의 궤적은 이렇다. 봄의 제전(3월 30일, 서강대학교 메리홀)/마리아, 사나운 연인(8월 18일, 홍대앞 놀이터)/자신과의 싸움(8월 22일, 윗잔다리 공원)/In a cycle(10월 7일, 성암아트홀)

 






Digltal Dance - In a cycle (순환속으로)
2010 1007 성암아트홀
총연출, 안무, 작 - 이미희

21C 디지털과 한국춤의 만남

이미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이수자이자 한국전통춤꾼 안무가이다. 
2006년부터 장애(2006), 변형(2006), 거대한 풍경(2008)에서 춤, 음악, 영상기술의 상호소통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시도와 접목에 애를 써왔고, 2009 Interactive Dance Communication Lifecycle”에서 1시간 가량을 미디어, 영상, 컴퓨터음악, 춤의 혼합예술을 선보였다  Digital Dance "In a cycle" (순환 속으로)은Lifecycle 1.5 버전의 업그레이드된 신작이다. 

몸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무용수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기술적인 과정을 거쳐, 춤의 강약, 움직임의 강약, 동선에 따라 음악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전통춤이 지니는 즉흥적 요소를 응용하며 춤 이상의 메타포를 형성한다.








필자소개

가재

“잃은 게 많을수록 배고프다.”

스무 살. 작년까지 수능공부에 편집적으로 매달리다, 올해 완전히 놔버렸다. 완전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고, 예술이란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지난 세월동안 잃은 게 많아서, 조급하다. 접시에 코 박고 허겁지겁 허기를 달래는 모습이 상상이 가서, 체하지만 말아달라고 내 몸에 간곡히 빌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