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우리의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



우리의 사소한 순간들에 대해

- 화천-뛰다와 호주-스너프 퍼펫의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③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중간 과정은 참 들여다볼수록 별 것 아닌 단순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자르고, 붙이고, 아니다 싶으면 떼어내고, 다시 생각해서 그려보고, 또 다시 톱질 가위질 쓱싹쓱싹…. 옆에서 우리의 작업을 바라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왜 이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작업의 중반쯤에는 나를 비롯한 스테프 뿐 아니라, 그냥 흥미로워하는 사람들까지 무작정 인형 만들기에 뛰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이 여기에서 온종일 스티로폼 조각들을 날리며 글루건에 범벅이 된 채 본드로 붓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곧 다다르게 될 거대하고 기이한 모습의 인형극에 대한 기대가 사람들을 드라이브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과정 중에 분명히 존재하는 단순 노동이 주는 순수 쾌락에 주목하고 싶다. 단지 재미를 쫒을 따름인 아마추어리즘이, 전혀 대단치 않은 단순한 수작업들이, 그렇다면 도대체 연극은, 예술은 무엇인가 란 연극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는 본질에 관한 질문을 일깨우는, 역설적인 사소한 일들로 채워진 채 클라이막스를 지나가는 중이다.

 

 

▲ 우리의 상상의 잔해가 흩날리는 가운데서, 열정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아마추어리즘의 속성이 '즐거움'이란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작업이 유쾌한 농담 같은 순간들로 채워져 있음을 짐작할 것이다. 앤디 프레이어는 작업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참가자들 전원이 뛰고 즐기는 여러 가지 게임을 진행했다. 스피드 단체 줄넘기, 몇 가지 룰이 있는 전쟁 게임, 쫒고 쫒기는 게임까지, 몸을 직접 움직이는 놀이들은 참가자들 전원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놀이에 빠져들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거리를 줄어들게 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감, 공동체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팔을 더 길게할까 말까를 의논하는 와중에, 어떤 천이 더 적합한가 고르는 와중에, 참가자들은 너무나 스스럼없이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들을 꺼내놓았고, 작품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상의 조각들은 "맞아, 우리 엄마도 그랬어."라는 공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인형 얼굴의 표정으로, 혹은 특유의 실루엣으로 녹아들었다. 인형은 사람들의 바로 그 순간의 영감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덧붙여지는 가운데 서서히 탄생돼 갔다.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의 모음이라 할 만한 이해불가의 기이한 모습으로.

 


자연 어머니와 왕과 왕비의 모습




모든 것을 관장하는 자연 어머니. 그녀는 왕과 왕비의 싸움을 단지 지켜볼 뿐이다.
생과 사가 공존하는 자연처럼

 

 



 

우리가 모은 쓸모없어 보이는 일상의 조각들이 마치 누군가의 꿈에서나 등장할 법한 기괴하면서도 단순한 형태의 실루엣으로 드러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자연 어머니, 왕과 왕비, 물고기와 군인들, 큰 물고기, 음악팀의 악기들까지 총 18개의 거대한 인형들을 만들고 있는데, 이 캐릭터들은 여러 사람들의 의논과 생각이 덧입혀지는 가운데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결같이 신체 비율이 부조화스럽고 기괴하다. 하지만 낯선 가운데 친숙하기도 하다.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분명히 물고기이며 왕과 왕비이다. 이 같은 캐릭터들은 참가자들에게서 꺼낸 이야기의 첫 출발점이 화천에 관한 사실의 이야기와 물과 관련된 거짓의 이야기 양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혹시 앤디는 이 초현실주의적인 인형들이 농협, 장터 골목 주차장, 꽃집 등의 단층짜리 건물들이 낮게 자리한 화천의 시골 길거리를 다른 세계로 바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워크숍의 참가자들에게 그의 기이한 생각은 이미 전염된 듯하다. 현재 각각의 캐릭터가 꾸려갈 이야기는 아주 러프하게 나온 상태다. 대지의 여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과 여왕의 갈등, 사람들과 물고기들의 싸움. 그리고 화해까지. 현재 물고기들을 만들고 있는 화천의 여고생들은 물고기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을 재미있어하며, 빨리 물고기 속에서 사람의 팔을 머리를 뜯어먹는 연기를 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만화 같기도 한 얼토당토않은 잔혹한 상상에 모두가 몸을 담근 채, 진지하게 상상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음악팀의 방문은 우리의 집중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퍼포먼스의 자리에서 아코디언, 기타, 퍼커션, 생황으로 이뤄진 음악팀이 라이브 연주를 들려줄 예정인데, 음악팀은 참가자들이 만드는 캐릭터에 대해 인터뷰 한 후, 즉흥 연주를 통해 짓궂으면서도 유연하게 선율들을 배합시켜 갔다.

 

음악팀의 작곡의 모습. 퍼포먼스에서 이들이 쓸 인형도 제작 중이다.

 





나로선, 이 모든 제작의 과정이 너무나 짧은 시간만 허락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인형을 뒤집어쓰고 인형 속에 들어가 몸을 움직여 본 액팅은 단 한번 이뤄진 상태다. 사실 그 전에 스너프 퍼펫의 작업을 사진들로만을 봤을 때, 지역민들과 쉽게 한데 어울려 인형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인형의 제작 과정을 간단하게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직접 체험한 스너프 퍼펫의 인형 만들기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일반인과 함께 하되, 작업의 전과정은 아주 프로페셔널하게 성실히 행해진다. 어느 한 과정도 쉽게 넘어가지 않은 채 평범한 인형의 모습은 거부한다. 때문에 이 아름다우며 독특한 인형들이 활개를 치며 거리에서 움직이게 될, 사람들의 동선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는 작업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생긴다. 어쨌든, 평범한 시골 거리 화천 읍내는 퍼포먼스의 순간에 과연 어떻게 변신하게 될까.

 

연극을, 예술을, ‘단지 즐기기 위해서’ 한다고 말하면, 너무 무책임해 보이나. 하지만 그 단순히 재미를 쫒는 무목적성이 현재 서른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일상을 정지시키고서, 아주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며 심지어 힘들기까지 한, 인형 만들기 작업에 몰두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제 곧 화천의 읍내를 뒤바꿀 우리의 사소한 순간들은 지속되고 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커지는 가운데에서.

 



물고기들의 액팅 모습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기간 : 2010년 11월 30일 ~ 12월 11일
발표 : 12월 11월 저녁 6시, 화천산천어축제점등식 행사
장소 : 화천공연예술텃밭, 화천청소년수련관
주관 : 스너프 퍼펫, 공연창작집단 뛰다 
주최 : 공연창작집단 뛰다
후원 : 강원문화재단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