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 예술가가 포기하지 않는 것

2010. 12. 16. 14:55Feature


예술가가 포기하지 않는 것

- 화천-뛰다와 호주-스너프 퍼펫의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④

 

글_ 엄현희(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워크숍 과정의 기록의 네 번째 순까지 왔으니, 당신도 이제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핵심 성격이 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대립적 관계를 무너뜨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이야기도 워크숍의 참여자들에게서 나오고, 인형 제작의 전과정도 참여자들 손으로 이뤄짐으로써 참여자들은 예술의 생비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사실 블로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웹 3.0 시대에, 누구나 일상에서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을 실험 중인 지금에, 이 같은 구도는 전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이야기도 참여자들이 구성하고, 제작도 그러하다면, 예술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에서의 ‘그’는 확실히 전통적으로 해 왔던 생산의 상당 부분을 그 동안 소비에만 머물렀던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스너프 퍼펫의 앤디 프리어가 스스로의 세계관을 투영시키는 ‘작가’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전통적인 의미의 ‘작가’로서의 역할에서 스너프 퍼펫이, 앤디가 포기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기에 그 긴장 관계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아마 그것은 앤디가 의식적으로 지켜 온 것이라기보다는 10년간의 스너프 퍼펫의 작업 중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정신일 것이다.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의 후반부는 참여자들의 상상력을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연출의 기술이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앤디의 취향이 작품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난 지점은 화려한 색감의 인형의 색깔이었다. 즉 인형제작의 마무리 단계인 인형의 피부 마감 및 디테일 잡기에서 앤디의 취향은 드러났다. 물론 인형에 씌운 천에 페인트칠로 색을 입히는 작업 역시 참여자들 손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인형의 피부를 마감하는 과정에 이르자 앤디는 워크숍 과정에서 처음으로 참여자들의 채색 작업에 대해 "이것은 아니다"란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작품의 시각적 요소의 전체 톤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앤디는 컬러감이 강렬한 원색 계열을 선호했다. 또한 무늬를 그려 넣을 경우 복잡하고 정교한 패턴보다 단순하고 분명한 표현을 선택했다. 따라서 인형은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거칠고 투박하면서 원초적인, 원시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하였다. 특유의 채색에 의해 마치 고대의 상상 생물들처럼 표현된 앤디의 인형들은 우선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워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으며,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했다.



 

▲ 우리의 채색 작업




환상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색깔의 캐릭터들




앤디는 환상성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앤디의 인형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성은 인형을 뒤집어쓴 사람의 존재를 완전히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물고기들은 허리에서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천으로 덮여 인형 조종자의 하반신을 완전히 감쌌으며, 발조차도 지느러미 모양의 물고기 신발을 제작해 숨겨서 사람은 완전히 인형 속에 들어가도록 고안되었다. 이는 환상적인 스펙터클의 효과 외에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기능적인 역할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의식이 발동하는 것을 막아주어 무대가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도 상연의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인형연기를 요구하는 이 프로젝트가 뛰다의 배우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는 것은 한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뛰다의 배우들은 늘 무대에서 인형과 함께 노출된 채, 즉 인형과 거리를 가진 채 연기하는 무대 어법을 체득해 왔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인형과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과연 연기의 측면에서 관객과의 관계 맺기에 순기능으로 작용할까.

 

리허설 장면

  

리허설 장면
 - 아직 덜 완성된 인형들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인형 작업은 꼼꼼하게 공연 직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쳤다.



앤디가 스스로의 세계관을 작품에 투영시키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또 다른 부분은 드라마터지와 동선 그리기를 통한 무대 미장센을 통해서다. 드라마의 구성은 물론 참여자들의 아이디어와 뛰다의 스태프인 스크립터, 연출가의 공동의 논의 과정에서 이뤄졌으며, 동선의 짜기 역시 공연 전까지의 총 5번의 리허설의 시간 중에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앤디의 선택에 의해 작품의 전체적인 톤이 완성되었으며, 그것이 채색을 통한 인형의 마무리 작업 과정과 동일 선상에서 진행된 것은 분명하다. 워크숍의 마지막 이틀간은 이 같은 연출가의 선택에 의해 작품의 구석구석 디테일이 결정되었으며, 그의 손길은 확실히 참여자들의 상상력을 하나의 작품으로 뒤바꾸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의 퍼포먼스의 줄거리는 왕과 여왕의 갈등이 핵심 축이다. 군인들을 다스리는 왕, 물고기들을 다스리는 여왕, 이 둘의 싸움에 의해 댐을 건설하겠다는 왕의 결정이 대두되고, 댐에 의해 죽어가는 물고기들이 분노하여 군인들을 잡아먹는 이야기다. 아주 단순하고 흔하며 심지어 교훈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별 매력 없어 보이는 줄거리에 그러나 앤디의 채색은 드라마터지에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입혔다. 왕과 여왕의 싸움의 이유가 사랑했지만, 그냥 사랑이 식어서 싫증이 나서라는 것, 평화롭게 지내던 군인과 물고기의 사이가 벌어진 것이 물에 오줌을 싸는 군인들,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의 본능 때문이라는 앤디의 설정은 결코 화해나 통합에 이르지 않는, 서로 팽팽히 대결하는 두 힘이란 잔혹한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군인 인형의 모습은 특히 앤디의 취향을 잘 반영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고대의 생물들 같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군인 인형은 작은 크기에 조잡하고 우스꽝스러우며 몰개성적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군인들의 직선의 동선과 상대적으로 거대한 물고기들의 원형의 동선들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앤디의 세계관을 무대 미장센으로 반영함으로써 그 작지만 무섭게 생긴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잔인한 일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일조했다. 다섯 번 정도의 리허설 속에서 인형들의 액팅은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구축되었으며, 입이나 눈, 지느러미 등을 움직이는 인형 조종의 기술 역시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며 참가자들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지속하게끔 도와주었다.

 

잔인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군인 인형



 

예술가로서의, 작가로서의 프로페셔널을 포기치 않는 앤디의 워크숍 후반부 작업은 결과적으로 워크숍의 참가자들에게 그동안 자신의 상상력을 발화시키는 것에 두었던 관심을 점차 그것이 과연 어떻게 보이는가 로 점차 옮겨가도록 이끌었다. 뛰다의 배우들은 이 순간 참여자들의 인형 연기를 어떤 모습인지 바깥에서 바라봐주며 조언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참여자들이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종반의 과정으로 우리의 퍼포먼스는, 열흘간의 체험을 끝낸 채 발표에 다다르게 되었다. 10년간 작업을 해 온 스너프 퍼펫의 앤디 프리어의 공력은 화천에서의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발표물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을까.

 

 

 

 

 


사람과 인형 프로젝트
기간 : 2010년 11월 30일 ~ 12월 11일
발표 : 12월 11월 저녁 6시, 화천산천어축제점등식 행사
장소 : 화천공연예술텃밭, 화천청소년수련관
주관 : 스너프 퍼펫, 공연창작집단 뛰다 
주최 : 공연창작집단 뛰다
후원 : 강원문화재단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