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통 ∴ 세 개의 날개 - 박은주 「Earthrise & Earthset」


고통 ∴ 세 개의 날개
박은주 - Earthrise & Earthset



글_ 박비봉




#1.


2010년 12월 31일. 추운 날씨였다.




그녀는 늙은 마녀의 형체로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을 느낀 제 1의 초점은 표정이었다. 몸은 무거웠고 감정은 더뎠다. 잘근잘근, 조근조근. 나는 거기서 어린시절의 자아를 그리는 어떤 무용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곧 그 곳에서 벗어나는 듯 했다. 여전히 늙은 마녀의 형체다. 하지만 무언가 젊어진 느낌. 감각? 무엇일까? 반짝이는 눈? 아니면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동작은 아직 어딘가 모르게 고통스럽다.

그런 그녀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늙은 마녀가 숲에서 의식을 치르는 모습. 그 의식은 아름답다. 빛과 소리가 형체를 만드는 시간. 그녀의 마법은 지나온 세월을 던지면서 새로운 (어쩌면 지나간 시간 속에 있던 어느 것) 감정을 탐닉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녀는 의식에 성공한 것일까? 그러나 무대가 바뀌고 그녀는 다시 늙은 마녀로 돌아온다.

순환, 그것은 환상이었을까?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본래의 모습에서 환상의 갈망만이 남은 것 같기도 하다. 순환.


신년을 맞이하기 1시간 전 쯤, 반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개인적으로 쓴 리뷰다. 막상 위의 글을 옮겨 놓으니 더 이상 리뷰를 진행해봐야 군더더기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분량이 적은 것 같아 나머지는 쇼맨십으로 덧붙여 보겠다.

 



#2.

공연 컨셉
인간이 자신의 한도를 넘어선 고통을 극복하는 두 가지 방식(무한히 저항하며 자신을 상승, 팽창시켜 나가는 방식과 ‘고통’이라고 느끼는 자신의 무의식적 반응의 기제들로부터 빠져나오는 방식). 그것들을 지나 밝은 심혼에서 나오는 새로운 감수성, 새로운 지각작용을 상상하고 신체와 움직임에 일어나는 변화를 탐색하였다.

 

"나는 기쁨이라는 공증을 만났다. 그것은 기댈 수 있는 단단한 지면이 아니어서 난 자주 더듬거렸고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난 그것이 내게 세 개의 날개를 선사할 것임을 안다."

 




#3.

필자는 시인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어려웠다. 누군가가 나를 시인이라 불러주면 시인이 되는 걸까? 시집을 내면 시인이 되는 걸까? 그저 시를 쓰면 다 시인인 걸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무엇’에 대한 고통을 이겨내고 그 끝에 도달한 자는 그 ‘무엇’이 되리라는 생각. 그래서 찾은 방법은 모든 고통을 ‘무엇’에 넣어버리는 것.

고통엔 여러 가지가 있다. 외부에서 오는 고통과 내부에서 오는 고통, 심리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종교적인 고통, 쾌락적인 고통 등 우리는 고통 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고통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그녀가 말하는 고통은 한계(한도)를 넘어서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고 그 고통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식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공연에서 말하고자 함이 고통 보다는 고통의 다음 단계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을 것이리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말이 어울리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고통은 보다 ‘평범한 고통’이 아닐까?

 


공연이 10분~20분 정도 지나자 그녀 뒤에 한 영상이 비춰졌다. 아마도 지구의 공전을 뜻하는 것이리란 생각. 특이했던 점은 그녀와 비슷한 움직임으로 영상도 움직였다. 그녀는 갈 듯 말 듯 한 동작으로 무대를 갈랐다. 일출 혹은 일몰을 볼 때 태양은 계속 가만히 있는 듯 하면서도 떠오르고 진다. 그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고통을 벗어나 신세계로 들어가는 경계가 이곳이 아니었을까?

여기서 “earthrise & earthset“ 이란 공연 제목을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생소한 단어였다. ‘지구돋이, 지구넘이’. 한글로 풀어써도 생소하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니 감이 왔다. 달에서 봤을 때 지구가 떠오르고 지는 것을 뜻한다.

 





#4.




그녀3: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누 운 나

(발구르고 박수치며
)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누 운 나
(어깨 춤을 추고 박수치며
)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누 운 나

(다시 발구르고 박수치며
)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눈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누 운 나

눈 나 니 눈 나 니 누 운 나

그녀는 흔들고 있다.
그녀는 멈춘다.

그녀는 팔을 올린다.
그녀는 팔을 내린다.
그녀는 다시 눕는다.

누워있는 그녀 위로 햇살이 비친다.

그녀는 흘러내리고 있다.
그녀는 지금 편안하다.




#5.

 

무대 중앙에 책상이 하나 생겼다. 그녀는 그 위에 앉아 있다. 그녀의 표정은 수줍은 듯 밝아졌다. 위의 글은 영상으로 보여주었던 글이다. “눈 나 니”의 반복은 그녀가 부르는 노래다. 그 밑에 글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어 타이핑 된다. 타이핑이 먼저일 때도 있고 그녀의 움직임이 먼저일 때도 있다. 이 부분이 끝나고 그녀는 춤(?)을 춘다. 물론 지금까지도 춤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춤 속의 춤이랄까? 영상은 이전의 영상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어 움직인다. 때로는 위아래로 때로는 좌우로. 그녀는 행복할까?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동작은 처음의 그것으로 돌아가 있다. 그녀는 다시 고통 받는 것일까? 그러나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다. 움직임의 잔상 일지 모르겠지만 행복의 자취가 남아있다.

 

 

박은주 - Earthrise & Earthset
2010 1230-1231 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

컨셉,안무 : 박은주
출연 : 박은주(신체움직임), 임정석(커서움직임)
기획 : 박태훈, 최주영
음악 : 이한주
무대감독/조명 : 문홍식
진행 : 김인숙, 박복란
상기록 : 나태흠
사진 : 최영교




 

  1. 박은주님의 리뷰가 있다니!
    인디언밥 감사합니다~
    몇년전 문래동에서 공연을 보고 큰 감동받았는데
    이번 공연은 못 봐서 아쉬웠거든요..
    리뷰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