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타맨과의 세 번째 만남 - 극단 풍경「기타맨」



기타맨과의 세 번째 만남
- 극단 풍경 「기타맨」



글_ 최숭기


 


내가 처음 기타맨을 만난 것은 4, 5년 전쯤의 일이었다. 그 때 나는 틈틈이 회현지하상가에 들러 천원이나 이천원에 파는 중고 LP판을 사곤 했다. LP라는 매체는 특히 시각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비롯한 많은 매니아들은 그 커버의 그림이나 사진 때문에 음반을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오년 전의 그 날 내가 우연히 발견했던 앨범 커버에는 밴드 멤버들의 그림과 함께 ‘Guitarman’이라는 영어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밴드의 앨범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기타맨이라는 제목과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 나는 덜컥 그 음반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음악도 나쁘지 않았다. 음악으로 돈을 조금은 벌어볼 생각이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음악이 좋아서 기타를 계속 치겠노라 선언하는 듯한 그들의 노래를 나는 이후에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

 

2년 반 전의 어느 날, 내가 커피 집에 앉아서 쓰던 짧은 영화 대본에도 기타를 치는 남자가 등장했다. 물론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밀어닥치는 그 이상하고도 순간적인 영감에 나는 굴복하고 말았다. 그 영감(inspiration)의 회오리는 내게 어느 시인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했다. 내가 그런 건 못하겠다고 하자, 그 이상한 회오리는 다시 나를 달래며 속삭이기를, 원래 시인은 류트를 뜯는 악사였으니, 그처럼 시를 노래하고 연주하는 음유시인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인물 하나를 그려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한 두 시간 혼자 고민하다가, 그저 거리나 공원에서 기타를 좀 쳐보겠다고 까부는 어느 철없는 녀석의 하루 정도를 그려 보기로 했다. 대체 왜, 어떤 방식으로 그런 착상이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귀엽고 낭만적인 소품 하나를 만들어 볼 생각으로, 아니 아예 영화화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기분 전환이라도 해볼 양으로, 나 자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나 써보았던 것이다. 기타를 정말 못 치는 녀석, 그래서 아무도 그의 음악을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길 위에 버려진 곰 인형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던 녀석... 그 날 짧은 대본 하나를 완성하면서 나는 혹 제작될지도 모르는 그 영화의 제목을 ‘기타맨’이라 정했다.

 

최숭기 감독의 영화 '기타맨'




세월은 무심히 잘도 흘러 작년 이맘때 나는 마침내 ‘기타맨’을 영화로 만들었고, 다시 일년 후 ‘기타맨’이라는 연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동명이인이 많기도 하고, 노래나 소설의 제목 중에서도 같은 것들이 꽤 있기는 하지만, 막상 내가 만든 영화와 같은 제목의 연극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브래드의 기타맨이 제일 선배, 그 다음엔 나의 기타맨,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기타맨. 아마도 누군가가 이 연극을 보라 권하지 않았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 연극을 보고 리뷰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세 번째 기타맨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이라는 수필에서 1인칭 화자는 아사코라는 일본 여인과 세 번 만나는데, 독자들에게 솔직히 밝히기를, 세 번째는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 ‘기타맨’이라는 이름과 더 이상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만남은 나에게 아마도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고, 그리하여 나 스스로가 두 번째 만남을 주선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남, 그것은 다분히 복잡하고 미묘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 즉 내가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 동안, 나는 아마도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나의 ‘기타맨’을 떠올리고 있었다.

 


2011년 1월 11일, 대학로 정보극장에서 공연되었던 ‘기타맨’은 모노드라마였으며, 대본은 노르웨이의 작가 욘 포세(Jon Fosse)의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나의 눈은 무대 위의 허공을 보고 있었고, 나의 머리는 정말 바쁘게 작동하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모든 생각을 버리고 그냥 현재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그 제멋대로인 ‘생각’이란 녀석이 나를 이리 휘몰고 저리 떠밀었다. 작년 겨울의 뼈를 파고드는 추위와 이미 제작이 끝난 나의 ‘기타맨’에 대한 회한, 아쉬움 등이 내 머리에서 갖가지 장면들을 연출했다. 연극을 보고 있었지만, 실재로는 만들어지지 못한 어떤 영화를 상상하고 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이 글은 연극 ‘기타맨’에 대한 심층적 리뷰가 아니라, ‘기타맨’이라는 이름을 세 번 만난 어떤 사람의 짧은 소회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극단 풍경의 연극'기타맨' - 욘포세 작/박정희 연출




어쨌든 이 희곡의 작가는 기타맨의 독백을 통해 성공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얘기, 아니 어쩌면 자신의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그는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의 자기 고백 같은 글을 써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한 사람의 독백을 통하여 진행되는 희곡 ‘기타맨’은 논리적이라기보다 무작위적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다른 장치를 거의 쓰지 않고, 오로지 ‘기타맨’이 들려주는 말에 기대었는데, 흥분했다가 차분해지기를 반복하는 그의 감정 리듬과 반복되는 몇몇 단어, 구절들은 작가가 얼마나 언어의 형식에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들려주는 말의 내용을 잘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고, 그 말을 옮기고 있는 연출가와 배우의 해석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우리에게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기타맨’의 이데아, 혹은 어떤 전형이 있는 것일까? 모든 기타맨은 각기 다른 외모와 사정과 고뇌를 갖고 있지 않을까? 왜 배우는 먼저 자기 자신이 되지 않고, 그 자신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데아가 되려고 노력했을까? 왜 연출가는 그와 같은 ‘기타맨의 탄생을 유도했거나 허락했을까?

 

어쨌든 나와 기타맨의 세 번째 만남도 이제 끝이 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했을까? 아니다. 이게 다 기타맨과의 인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내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디선가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해져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기타맨을 잊고 지내자. 이젠 다른 이름의 누군가를 만날 때가 됐으니까..



연극 기타맨
극단 풍경, 욘포세 작/ 박정희 연출
2010 1228 - 2011 0116 대학로 정보소극장

수년 전부터 같은 지하도에서 매일 동전을 얻기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악사, 기타맨. 사람들은 그의 곁을 지나가지만 그의 노래를 관심가지고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느 추운 겨울날, 기타맨은 바에 앉아 평범한 도시의 끝자락에 서 있는 외톨이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기타맨은 기타의 현을 하나하나 끊어버리고,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영화 기타맨
감독 최숭기, 2010

기타맨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주려 하지 않고,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의 음악이 그리 훌륭한 것 같지 않고, 그래도 계속 누군가에게 들려주려고, 들려주려고, 들려주려고 하다가 결국 자신처럼 기타를 연주하는 누군가를 발견하여 그녀에게 들려주려 하는데, 그녀는 음악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하고...



 필자소개

이 글을 쓴 최숭기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 영화 <기타맨>을 만들었고, 그 인연으로
연극 <기타맨>을 보게 되었습니다.






  1. 영화 <기타맨>에 출연한 저 친구는 손배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