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마실「꿈꾸는 거북이」"그런데 — ‘과정’이 중요해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극단 마실「꿈꾸는 거북이」
그런데 — ‘과정’이 중요해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글_ 강여사






1.

‘달리기’를 원하는 거북이 엉뚱이에게 누군가 다가와 알려준다. “저기 저 먼 곳에 사는 토끼라는 애가 그렇게 달리기를 잘 한대.” 이 말을 들은 엉뚱이는 토끼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런 엉뚱이를 말리는 엄마와의 갈등, 이것이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여차저차 힘들게 엄마를 설득한 후, 엉뚱이는 홀로 길을 떠난다. 산을 넘고 넘어 가는 길에 베짱이를 만나고, ‘오래된 시계’를 만난다. 그들은 엉뚱이의 가방을 탐내고, 잘 달리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엉뚱이의 몸을 망가뜨린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나 토끼를 만나러 떠난다. 힘든 고비 끝에 마침내 토끼를 만난다. 그러나 토끼를 만났다고 해서 당장 달리기 시합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사계절이 지나 다시 봄. 엉뚱이는 토끼와의 달리기를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린다. 그 힘든 기다림 끝에 토끼와의 시합을 하게 되지만, 엉뚱이는 너무나도 쉽게 토끼에게 지고 만다. 엉뚱이는 좌절하며 서럽게 운다. “결국 난 안 돼. 난 달리기를 할 수 없어!”

 

이것이 <꿈꾸는 거북이>의 줄거리다. 무언가 허전하다. 그렇다. 왠지 ‘그러나’ 혹은 ‘그런데’가 붙어야 할 것 같다. 연출가는 후자를 선택한다.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진다.

 

그런데 그 때, 펑펑 쏟아지던 엉뚱이의 눈물이 강과 바다를 이룬다. 무대 위에는 어느덧 바다색의 푸른 물결이 휘감겨 돈다. 느릿느릿 걸어가던 엉뚱이의 팔과 다리가 바다의 자유로움에 감겨 부드러워 진다. 그 안에서 엉뚱이는 전에 없던 자유로움을 느낀다. 반면 토끼는 갑작스런 물살에 기우뚱 몸의 중심을 잃는다. 엉뚱이는 그런 토끼를 자신의 등에 태우고 유유히 바다를 항해한다.

 



극중극 형태를 취하는 <꿈꾸는 거북이> 속 ‘꿈꾸는 거북이’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엉뚱이가 토끼와 함께 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림자극으로 이루어져 갑작스러울 수 있는 상황 전개에 유연함을 더해준다. <꿈꾸는 거북이>는 이렇게 ‘연극의 언어’를 최대한 이용한다. 이 연극은 무대라는 미적 공간을 오브제를 통해 유연하게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예컨대 빨래바구니가 거북이 등껍질이 되고, 빨래줄에 걸려 있던 옷들이 나무가 되고 산이 된다. 인형과 그림자극을 통해 동화적 느낌을 풍부하게 살리기도 한다. 무대 옆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과 지브리쉬도 극에 생생한 음악성을 더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극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지루함 차곡차곡 쌓인다.

극은 네 개의 에피소드가 점층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각 에피소드가 진행되지 않고 안에서 반복적으로 맴돈다. 물론 반복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의 틀에서 동일한 이야기가 소용돌이치듯 반복되어, 전체적으로 보자면 패턴의 반복에 갇힌 채 네 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느낌이다.

 






2.

이러한 지루함과 함께 이 연극은 어딘가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소위 ‘어린이극’이라 불리는 것에서 큰 문제의식 없이, 아니 오히려 ‘긍정적’으로 다루어진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늘 이런 이야기들이 불편했다.


거북이 엉뚱이는 달리고 싶어 한다. 거북이에게 ‘달린다는 것’은 자신의 불가능에 도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엉뚱이는 이를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났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전에 엉뚱이는 엄마와의 갈등부터 시작하여, 베짱이, 오래된 시계, 토끼의 숱한 거절과 시합에서의 패배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러한 과정들은 결코 아름답게 그려질 수 없다. 엉뚱이는 그 안에서 많이 울었고 좌절을 겪어야만 했다. 이 연극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앞서 말했다시피 결코 아름답게 그려질 수 없으며,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낭만적으로 포장’되는 단 하나의 계기가 있다.
‘그러나’ 혹은 ‘그런데’가 출몰하는 순간이다. 결말이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될 때, 과정도 훌륭함과 낭만으로 포장된다. 어딘가 불편한 이 말이 생생히 작동하는 건 극 중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여기 현실이다. 이러한 ‘극적인 스토리’를 우리는 사회에서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낭만이 과연 건강한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어린이극을 볼 때마다 불편했다. 이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런데’(혹은 ‘그러나’)라는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극장 밖을 나와서도 당신은 “과정이 결과보다 정말 중요하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결과에 관계없이 오로지 ‘과정’만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난 지금 이 말이 쓰라리게 다가온다. 이것은 극장 밖 세계에 길들여진 나의 속물성 때문인가. 극장 안과 극장 밖 세계의 괴리로 이러한 연극에 대한 신뢰감이 점점 휘발되어 간다.




지금-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물론 미래에 있을 알지 못할 결과보다 지금-여기 내가 처한 현실, 즉 과정 그 자체이다. 그러나 우린 종종 고개를 들어 미래를 꿈꾼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이 시간 끝에 서있을 때 ‘행복해하는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혹시 이러한 불확실한 미래에 저당 잡혀 현재의 열정을 착취당하는 건 아닐까? 그로 인해 지금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가리고, 현실의 부조리를 은폐하려는 것은 아닌가? 지금 내 현실의 고통이 ‘합당’한가? 자신이 좋아한다는 것을 한다는 이유로 너무 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우린 의심해봐야 한다. 좋아한다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상처가 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나?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루어나가는 과정 또한 결과만큼 건강한 것이 좋은 사회 아닐까. “좋아하는 일하는데 그 정도 고생쯤은 당연하지.” “그 정도 생각도 안 했어?” 우리는 친구들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이런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이 연극도 어린이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건네준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치러야 하는 고통을 당연한 대가로 인식하게 된 걸까.


과정 속에서 겪었던 고통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는 건 그 결과가 보상해주기 때문만은 아닌지 나는 끝없이 물어보게 된다. 오늘 날, 이 거친 생존의 레이스에서 ‘살아남는 자’는 소수임을 우린 알고 있다. 소수이기에, ‘결과’는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젠 그 살아남는 소수마저 선택되어진 자들이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세상아, 흔치 않은 ‘성공’의 예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억압당하는 이들의 고통의 현재진행형을 그럴싸한 낭만으로 포장하지 말아달라고. 오늘 날, 낭만은 기만이 되었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엄마, 거북이 왜 저렇게 자꾸 울어? 왜 자꾸 아파?”하고 자신의 아이가 묻는다면, 어머니인 당신은 아이에게 어떤 대답을 줄 수 있을까. 그 때도 아이에게 “거북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려니깐 그렇지.”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극단 마실 - 꿈꾸는 거북이
2011 0208 - 0227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2008년 문화일보홀에서 <이히히 오호호 우하하>라는 공연명으로 초연되었고, 관객들의 호응으로 '동화나라 상주 이야기 축제'와 '제 5회 아시테지 겨울축제'에 초청되었던 작품이다. 2010년 관객과 더 즐겁게 만나기 위해 <꿈꾸는 거북이>로 재구성하였다.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화인 '토끼와 거북이'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로 아이와 어른 관객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연이다.

www.masil.biz


필자소개 _ 강여사
연극이 좋아 시작한 연극에 대해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늘 부딪힌다.
연극과 문화예술로 사회와 만나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는 중.




  1. 전혀 동의가 안 되는 리뷰군요. 저는 이번 작품은 보지 않았고 초연을 보았는데 구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어떻게 저렇게 읽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거북이에게 '달린다'는 꿈은 자아실현이랄 수도 있지만 그 자아실현의 목표라는 것이 온전히 자신에게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상징이죠. 달릴 수 있다는 것은 기어다니는 것보다 멋진 것이라는,세상이 강요한 기준이고 거북이는 그러한 강요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죠. 고난의 과정은 거북이의 간절함과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통이죠. 거북이가 바다를 만남으로써 드디어 세상이 강요한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실현하게 되는 거죠. 어떻게 이 이야기를 고진감래라는 구태의연한 주제로 해석하는지... 정말 그 돌발적인 시선이 놀랍습니다.

    뭐 작품은 읽기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고,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혹은 다른 관객들과는 다른 자신의 시선이 있을 수 있죠. 그렇더라도 최소한 나의 시선도 하나의 목소리라는 경계심은 가지고 글을 썼으면 좋겠군요.

    • 참고로 제 댓글에 열받아서 어 이거 작품만든 사람이랑 관계있는 자가 똥싼 댓글이야 하고 안이하게 넘어갈까봐 밝히는데, 저는 이 작품 관계자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연극보는이님 :)
      우선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전 별로 열받지 않는데(...) 아래 댓글에 조금 거칠어 보이는 글을 남기셔서 오히려 그걸 보고 혼자 쭈뼛거리게 됐습니다.

      전 제 이 글이 이 연극에 대한 '절대적인 의견'이라고 단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인디언밥>이라는 공개된 매체에 종종 제 글을 싣는 이유는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터무니없는 비난이 아니라면, 그 어떠한 다른 의견도 반갑게 들을 마음이 있습니다.
      연극보는이님의 의견에도 공감합니다.

      전 이 연극을 보고 난 후, 어딘가 지루하고 불편했습니다.
      그 때 느꼈던 기분에 대한 솔직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 최소한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대화의 자세를 갖추기 바랍니다. 내가 느낀 것은 다 진실인가요? 뭐 그럴 수 있죠. 하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느낌이 진실이었다 해도 위에 적어 놓은 저 글이 진실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위의 글이 독자와의 대화, 작가와의 대화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고, 자유롭게 쓰기 위해서는 주례사비평보다 더 책임있게 써야 합니다. 그래 너도 맞고... 하면서 슬쩍 내글도 맞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마십시오.

    • '느낌'과 '진실'이 어떠한 관계가 있나요?
      '느낌'은 주관적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진실'은 사실(fact)에 관련된 부분 아닌가요.

      저는 '슬쩍 내 글도 맞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연극보는이님이 제 글이 불편하셨다면 그 불편한 감정을 저는 수용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연극보는이님은 저의 이러한 태도가 불편하셨던 건가요.
      만약 '불편'하셨다면 이는 느낌이라는 주관적 영역입니다.
      님이 느끼셨던 불편한 감정을 토대로 '당신은 틀렸다'라고 저의 태도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신다면
      저는 님의 그러한 타인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라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 최대한 수용하자는 입장입니다.
      제가 '틀렸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극보는이님의 의견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 푸하하~ 짧은 댓글도 파악이 안 되나요?
      아고 지금 사전놀이 하자는 겁니까?
      제가 말한 건 대화의 자세예요.
      난 당신의 느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꿈꾸는 거북이>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지겨워할 수도 있고... 아님 이따위 연극은 없어져 버려야 해 라고 비분강개할 수도 있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지돈 내고 지 꼴리는대로 보면 되지.
      하지만 글을 쓰겠다면 왜 그런지 자신의 주장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난 지금 당신의 글에 대해 말하는거예요.
      저의 선의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죠.

    • 연극보는이님이 말씀하시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란 무엇인지 저는 정확히 모르겠군요.
      어떠한 모습이 '책임감'있는 모습입니까?
      타인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면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내가 첫번째 했던 주장만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인가요?
      그것은 아집이 됩니다.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려는 저의 자세-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 너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식의-가
      님께는 줏대없는 어영부영한 태도로 읽힌 걸까요.
      그러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고 식의 나이브한 태도를 갖자는 것이 아님을 염두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의견도 '틀리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그것이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주관의 영역(생각과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고루한 사전놀이를 하는 게 아닙니다.
      연극보는이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대화의 자세'를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전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드러내보이면서도 서로의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며,
      그렇게 다름을 수용할 때, 그 대화는 조금씩 진전이 있는 것 아닌가요?

      전 제 생각이 '틀렸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글에 대한 제 생각의 근거를 아래 댓글까지 포함하여 충분히 설명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에 대해서는 제 손을 떠난 문제이니 관여치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연극보는이님께서는 제 모습이 '책임없는 자세'로 보이셨나 봅니다.
      저와의 대화를 그만두신다면, 저 역시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2. 와! 정말 반가운 댓글 이로군요! 좋아요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어요.

    인디언밥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것 정말 내심 바라고 있는 일이에요. ㅎㅎ
    강여사님 나와라 오바!! 어서 댓글을 달아 주셔요!!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구는 무책임한 운영자네요ㅎㅎ

    참고로 말씀 드리면 저는 공연을 <이히히~> 때 무척 좋게 보았고 이번에는 관람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강여사님의 시선도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 하여 약간의 고민을 거쳐 발행을 한 입장이랍니다.

    사실 매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애정을 기반으로한 리뷰가 가장 기쁘고 고파요. 필자와 작품의 궁합이 잘 맞는 경우를 찾기가 어찌나 어려운지요!

  3. "연극보는 이"님의 글에 마음을 같이 합니다.
    저는 <이히히 오호호 우하하> 때부터 극단 마실의 <꿈꾸는 거북이> 모두 관람한
    관객이며 아동청소년극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이입니다.
    물론 연극보는 이님의 의견과는 또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꿈꾸는 거북이>의 엉뚱이는 달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는 거북이지요.
    자신이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무엇, 즉 마음껏 달리는 상상을 하며
    모험에 뛰어들게 되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현실 - 자신은 달릴 수도,
    날 수도 없는 - 을 이해하게 됩니다.

    토끼와의 경주를 통해 열심히 앞으로 달려나가지만
    거북이는 그것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다를 맞닥뜨리면서 엉뚱이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흡사 날아오르는 새처럼 자유롭고 아름답습니다.

    이 연극이 과연 과정중심의 교육적 효과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계몽극이라고 생각하시는 지 다시 여쭙고 싶네요. 결과 중심의 세태를 좇는
    현실로부터 아이들을 도피시키려 했다는 것은 전혀 불가해한 의견입니다.

    이런 리뷰 하나로 "극단 마실"이 받는 타격이나 작품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보다
    강여사님이 언급하신 "소위 어린이극"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아동청소년극의
    수준 전체가 매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위의 리뷰에 대해서 저 역시 참으로 불편한 마음입니다.
    강여사님께서 작성하신 글이 주관적인 느낌,본인의 시선과 감정을 담은
    일기장에 작성되었다면 무방하겠지요, 저 역시 이런 답글을 달지 않아도 되고요.
    그러나 서울프린지네트워크를 통해 발행되는 이 뉴스레터가 공적으로
    퍼블리시 되는 만큼 좀 더 신중하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동청소년극의 힘님 :)
      우선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그에 대한 불편함을 말씀해주셔서 또 다시 감사합니다.
      제가 '소위 어린이극'이라는 표현을 통해 너무 거칠고 성급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동청소년극의 힘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제가 생각의 초점을 맞추었던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푸른천이 무대를 휘감았을 때, 약간의 전율을 느끼며 이 부분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함에 감탄하며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이 연극은 어땠을까?'
      거북이가 바다를 만나지 못하고,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업고 유유히 헤엄치는 장면이 없었다면 말입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만나 지는 모습에서 이 연극이 끝이 나도, 이 연극이 '아름답게' 끝날 수 있을까란 물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전 '그런데'라는 접속사에 방점을 찍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쓰지 않았습니다만, 이 글을 쓰는 내내 제 머릿속에 차올랐던 것은 이상하게 (얼마 전 한겨레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던)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 생각이 위의 질문을 촉발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 역시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작가였던 김은숙씨도 '새우깡 한봉지로 사흘을 버틴적이 있다'며 작가가 되기 전엔 도시빈민이었다고 합니다.
      이 둘 삶이 제게 대조적으로 비춰졌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치열하게 하는데 '성공'이라는 사회적 기준, 즉 '그런데(혹은 그러나)'라는 것이 출몰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 둘의 삶은 언뜻 다르게 읽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다름'을 사회는 포장하고 (거칠게 말하자면) 지배이데올로기로 꾸민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겐 이 '그런데'가 위에 거북이가 바다를 만나게 되는 시점의 '그런데'와 동일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된 것입니다.

      저 자신이 어느덧 <꿈꾸는 거북이>에 이를 투사하면서 글의 방향이 이렇게 전개된 건 아닌지 되돌아보며 조금 반성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눈에 보이는 것에 다른 것을 투사하여 쓰는 글쓰기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논리적 비약이 있었던 글이었습니다.

    • 인디언밥에서도 좀 더 신중히 기사를 발행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되는군요.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코멘트 부탁드려요.
      발전하는 인디언밥이 되겠습니다.

    • 강여사// 많이 반성하세요. 최고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하던가, 솔직하게 연극을 보면서 최고은이 왜 떠올랐는지 스스로 살펴보던가.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없다면 이 연극은 만들 필요가 없는 연극이죠. 시작-중간-끝, 이게 플롯의 기본 아닙니까?

    • '마지막 반전이 없다면 이 연극은 만들 필요가 없는 연극이죠.'
      - 왜 마지막 반전이 없으면 안 될까요? 이 연극의 그 반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반전이 왜 중요할까요?
      저는 이에 대해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최고은 작가의 죽음이 이 물음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논리적 비약이 있었던 글이나, 그로 인해 나왔던 이 물음이 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꼭 그러한 반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 반전이 이 연극 플롯의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끝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 반전이 출몰하기 전 상황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끝을 맺게 되면 이 이야기는 '만들 필요가 없는 연극'이 되는 건가요?

      연극 무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 삶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올라오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굳이 연극으로 만들 필요는 없겠죠.
      전 <꿈꾸는 거북이>의 이야기가 여러의미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게 이 연극이 중요했던 것은 위와 같은 물음을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연극보는이님께는 이 연극의 반전이 어떠한 의미에서 중요하셨던 겁니까.
      저는 여쭙고 싶습니다.

  4. 후끈후끈하네요!
    이 와중에 저는 '연극보는 이'님이나 '아동청소년극의 힘'님의 연락처를 알수만 있다면, 인디언밥 필자로 활동해주시길 제안해 보고 싶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ㅎㅎ
    익명으로 글을 남겨주시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간만에 시끌시끌한 인디언밥이 반갑네요.
    앞으로도 모두 많은 의견 남겨주셔요. 긍정적인 의견이건 부정적인 의견이건간에요.
    매체를 운영하는 필자와, 운영자도 외로운 예술가 만큼이나 피드백을 필요로 한답니다.

  5. 아~ 이제야 이 소중한 글들을 읽게 되어 참 아쉽고 그러나 너무도 깊은 감동에 잠이 오질 않는군요.
    저는 극단마실 가족들과 함께 이 작품을 2008년부터 쓰고 발전시킨 엄마배우 손혜정입니다. 저희들의 작품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애정어린 시선으로 읽혀졌구나..그리고 이렇게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니 그 자체로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낍니다.
    엄마로 살아가면서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평범한 외모에 특별하지 않은 제가 배우를 꿈꾸며 달려가는 것이 마치 토끼와 경주를 했던 거북이 같아서..아이에게 토끼와 거북이 책을 읽어주다 멈춰서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었지요.


    전 배우의 꿈을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참고 인내한 과정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이 레드카펫 위를 걸어 당당히 여우주연상을 받기 위한 인내는 아닙니다. 엉뚱이가 말하듯 '마음이 말하는 대로 내 손과 발로 달리고 싶어'...마음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여기까지 달려온 것뿐입니다.

    강여사님의 글을 읽으며 아직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깊이 있게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리고 작품이 가야할 방향까지 보시며 칭찬해 주신 연극보는이와 아동청소년연극의힘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이런 관객들도 있다니~~~ 저 정말 행복하네요.

    저희 큰 아들은 축구선수가 꿈입니다. 키도 또래보다 작고 뼈도 약하지요 물론 축구실력도 그저그렇구요. 어릴적부터 배우가 되려고 했던 저를 보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이 원한다면 격려하려구요. 우리 아들도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살아간다면 어차피 나그네 인생 힘든 일과 고난은 계속될 것이지만 그래도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요? 또한 국가선수가 되든지, 축구 용품 매장 사장님이 되든지, 아님 체육선생님이 되든지 반드시 자기 물을 만나는 사람이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직접 이렇게 댓글 달아주시니 저도 감동입니다. ㅠㅠ
      인디언밥은 예술현장의 작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의 힘을 보태드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시다니. 정말 감사드려요.

  6. 저는 연극보는이, 강여사님의 댓글을 보고 조금 흐뭇한 웃음을 짓다가 어느순간 인상을 찌푸리게 되었는데요. 그러한 부분은
    "연극 무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 삶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올라오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를 굳이 연극으로 만들 필요는 없겠죠. " 라는 부분입니다.
    연극에 있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야기나 삶에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이야기해야 연극인지요. 대체 어떠한 기준점을 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지 저는 도저히... 감히 상상할 수도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