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가 가진 무궁무진한 힘에 대하여 -「인디다큐페스티발 2011 다큐, 재개발」


다큐가 가진 무궁무진한 힘에 대하여
 -「인디다큐페스티발 2011 다큐, 재개발」



글_ 조형석






다큐는 Whatever이다. 그런 점에서 다큐는 누구에게나 무궁무진한 길을 제시한다. 모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기에, 지구촌 환경문제들을<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MBC>, 학생들의 문제들을 다루기도<레즈/76‘37“/선호빈>, 정치 사회적 문제나 가족의 역사도<야만의 무기[Sweet Nuke/102'/이강길]><Grandmother's Flower/90'/문정현>, 개개인의 사사로운 감정마저, 그리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고양이<고양이 춤/76'15''/윤기형>이들마저도 주제가 된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건 다큐가 가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힘에 대하여, 그리고 시장의 자본과 정권의 힘에 흔들려 자칫하면 잊기 쉬운 다큐정신에 대해서 새로운 10년의 첫걸음을 내딛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11(다큐, 재개발)의 이야기이다.

 

 

 

1. 한국인 이야기[Korean Story/36'37"/2010/황윤옥]


워킹홀리데이
. 해외에서 취업과 동시에 어학을 공부하며 여행도 다니는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적은 비용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니 해외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정말 환상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으로 떠난다.

 

한 해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참가하는 약 4만 여명의 한국인이라고 한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한국인 고용주 밑에서 일을 하고,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임금착취와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이 이야기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에 참여한 한국인 워홀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꿈을 찾아 떠난 이들이 낯선 땅에서 같은 한국인에게 더 심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다큐멘터리 도중 한 워홀러가 이런 말을 한다. “워킹홀리데이에는 홀리가 없어요.” 그들은 일도 하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낯선 타지에 도착했지만,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생존의 문제로 전락해버린다. 영어가 수월치 못하니 호주인들도 외국인 워홀러들에게 일을 주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니 그들이 일을 찾아 가는 곳은 청소용역업체나 육우업, 그리고 한국인 이민자들의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많은 문제들이 벌어지는데, 그들이 법적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시간당 10$의 돈을 받아가며 일을 한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매일 초과근무를 하며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하는 것이 두 번째 이다. 낯선 타지에서는 아프기만 해도 서러운데, 그들이 그 곳에서 당하는 심각한 노동문제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근본적 문제임이 틀림없다. 더하여 무엇보다 호주에서 한국 워홀러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이 있다면 그것은 한국인 교포들과의 갈등이다. 낯선 타지에서 유일하게 정을 부칠 수 있는 한국인 이민자들과의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의 만남과 그리고 적절치 못한 노동조건은 그들의 인생에 커다란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한국인 고용주 입장에서는 넘쳐나는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그것도 조금일하다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 그들에게 보장된 임금과 노동환경을 만들어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한국인 고용주들은 시간당 10$이라는 턱도 없는 임금조건으로, 그리고 그 마저도 몇 달은 디퍼짓(deposit)으로 걸어버린 채 한국인 워홀러들을 대하고, 일자리가 없어 생존의 문제가 걸린 워홀러들은 그 굳은 일마저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큐멘터리가 막바지에 흘러가면서 교포들과 워홀러들간의 토론회를 가진다. 그러나 각자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한치의 양보없이 서로간의 입장차만 밝히곤 만다. 얼굴이 붉어져서 격양된 목소리로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말하던 한 교포아저씨는 호주내 교포사회를 들먹이며 지금이 과도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라고 말을 한다. 반면 워홀러 문제에 심각성을 깨eke고 있는 이는 이렇게 말한다. “20년 전에도 과도기라는 말을 썼는데, 언제까지 과도기일 것이냐. 20년전에 9$하던 임금이 지금은 10$인데 무엇이 달라졌냐라고.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 먼 곳으로 나갔을까. 다큐멘터리에서는 청춘 워홀러들의 고된 삶과 한국 교포들과의 갈등에 주목할 뿐 왜 정작 그들이 그 먼 타지에 가서 고생을 하는지에 대한 확실한 문제점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먼 곳으로 나간 이유는 분명 개인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그런 제도를 보장하지 못한 채 적극 추천하는 정부의 잘못이다. MB정부는 해외취업연수프로그램을 들먹이며 이시대의 청춘들에게 저비용으로 세상으로 나가 고효율의 창출을 얻도록 적극 권장하였다. 그리곤 그들이 워킹홀리데이로나 해외취업연수프로그램으로 해외로 나가게 되면 취업이 된 인구로 포함하여 마치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여 지도록 하였다. 그러니 지표상에서는 청년실업이 해결되고 있지만 체감 상 느끼는 실업률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먼 해외로 나가 청춘을 담보로 그 나라의 노동구조의 하층구조(3D업종)에 몸을 담았을 때, 가슴 한구석이 씁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 청년실업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더군다나 4만여명의 한국인 워홀러들이 있는 호주의 청년실업률은 8%를 넘는 수치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청년실업률이 무척 높은 나라임을 입증하고, 한국의 청년실업률보다 더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자국의 실업률도 해결하지 못하는 곳에서 어찌 타국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겠는가. 더군다나 언어소통의 높은 장벽에 부딪힌 청춘들이, 그리고 같은 조국의 사람들에게 마저 무시 받는 이들이 갈 수 있는 장소는 딱히 많지 않다. 그러니 많은 한국 여성 워홀러들이 호주 성매매업에 관여되있다는 자료와, 많은 한국인 워홀러들이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기사들이 흘러나올 수밖에.

 

사실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한국보다는 호주에서 많은 인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교포들과 워홀러들간의 갈등, 한국인 워홀러들이 호주내에서 노동구조의 하층부분을 도맡아 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각종 성매매와 마약에 그들이 관여되어있다는 점에 호주정부도 적잖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확실하게 보호라는 울타리를 쳐주기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한국과의 많은 협의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이 문제점에 대해서 방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과 호주는 1995년 워킹홀리데이를 체결한지 어언 1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워홀러들의 문제는 세월만큼이나 급증하였다. 무엇보다 워홀러들의 문제점을 다루면서 신기한 점은 정작 호주인들이 한국에 워킹홀리데이를 오지 않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 내에서 한국교포들과 워홀러들간의 갈등은 진흙탕싸움으로 밖에 비치질 않는 것이다.


워킹홀리데이의 취지가 더 이상 변질되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워홀러를 꿈꾸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고문은 없어야 할 것이며
, 호주 내 한국인 워홀러들을 위한 확실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정직하게 일한만큼 정직한 임금을 보상해야 할 것이며, 너저분한 시스템으로 인해전술처럼 그들을 해외로 넘겨선 안 될 것이다.

 

 

2. 잔인한 계절[Cruel Season/60'/2010/박배일]
 

우리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고,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본질적 가치에 대해 말한 다큐멘터리. ‘일은 남기려고만 하는 사람들을 기록하기보다 치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기록해야 한다.’라는 취지의 소외받고 무심히 지나쳐가게 된 이들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모두가 잠들어 가로등마저 조심히 비추는 달동네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가 있다.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턱 하고 막힐 것만 같은 그 가파른 동네를 쓰레기를 제때 치우기 위해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닌다.

 


먹고살기 위해 쓰레기 장사(쓰레기를 치워주고 돈을 받는)를 하는 아저씨도 있다. 아저씨는 말한다. “쓰레기는 매일 나오잖아. 그래서 어머니 제사도 제시간에 제때 못 들여 봤어.”

 

온갖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비추며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려져있는 전단지들, 그리고 그 위로 지나다니는 젊은이들을 카메라가 비추며 또 다른 아저씨는 말한다. “남들은 술 마시고 놀기 위해 나오는 이 거리에 나는 치우러 나와. 나는 이 일의 의미를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비록 용역업체지만 하는 일은 공적인 일이니까 나는 사회에 공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그렇게 대우를 해주지 않아...”

 

대부분의 청소미화원아저씨들은 용역업체직원들이다. 그 용역업체는 미화원아저씨들에게 돌아갈 수당을 중간에서 많은 수당을 떼먹는다.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그것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해운대에 사는 아저씨는 구청에 일인시위를 하러 나간다. 그러나 구청은 아저씨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긴 커녕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대답만 한다.

 

공중화장실 변기의 세균보다 2.5배나 많은 세균을 매일같이 다루는 환경미화원들의 고된 삶을 토로하던 아주머니는 옷 갈아입을 장소마저 없는 취약한 환경에 대해 울분을 토한다.

 

달동네의 쓰레기를 치우던 아주머니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선거에 출마한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많은 것을 보여주고 거창한 질문을 던진다기보다
, 다큐멘터리 그자체로서 담담히 보여준다. 주름살이 깊게 패인 아저씨가 스스로를 쓰레기장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고, 남들이 치우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 더럽던, 똥 묻은 변기를 치우다가 그만 똥독에 올랐던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 죄송한 마음과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건 이 작품을 본 모든 이의 마음일 것이다.

 

예전과 달리 우리가 먹는 것이나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대해서 환경문제를 신경 쓰게 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부터 이분들은 사회에 보여 지지 않는 천사처럼, 묵묵히 우리가 벌려놓은 모든 것들을 받으셨다. 많은 이들이 말로 환경보호를 외치고, 지구 온난화에 열을 쓰고, 흔히 말하는 웰빙 푸드에 눈이 충혈이 되면서 까지 애를 쓰지만, 정작 올바른 분리수거와 음식물 낭비를 줄이는 실천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환경보전의 첫걸음임을 쉽게 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우리가 쓰고 남긴 쓰레기들을 치워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임을.

 

번번한 노후대책 없이, 그리고 씻을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환경지킴이에 앞장서는 분들을 위해서 시, , 구청에서는 민간업체를 통하지 말고 이분들을 정식 채용하여 생계를 보장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에 앞서 우리의 이기적인 시선을 고쳐야 함은 물론이겠다.

 

최근 길을 나가면 길거리 자판대나 버스에 환경미화원아저씨들을 위한 상을 광고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던 그 길에 환경미화원분들의 노고가 담겨있음을 알리고 싶었던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

 

 

3.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We Are Not Warriors/41'/1994/박기복]

 

무척 오래된 다큐멘터리이다. IMF가 시작되기도 전의 90년대 초반의 이야기로써 탑골공원에서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본 작품이다. 꽤 시간이 지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회자될 수 있었던 점은 첫 번째로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사람과 대상과의 전과 다른 새로운 구도였고, 두 번째로는 삶의 낙오자로 무시되어오던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비춰줌으로써 사회의 다른 면을 보여준 점이다.

 



감독은 김진석’(이하 진석씨)이정자’(이하 정자씨), 두 부랑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조금 다른 접근법으로 이들의 삶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더불어 감독의 카메라가 이들을 단순 쇼잉(showing)으로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텔링(telling)하고 있다는 점이 작품의 묘미이다.

 

진석씨는 탑골공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이유에대해서 감독이 물어보자, 자신이 해병대출신이고, 빠르기 때문이라며 횡설수설하면서 천진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관객들은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당황하게 된다. 부랑자의 삶이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일 터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서 진석씨는 감독과 편한 대화를 나누며 감독을 걱정해 주기도 한다. 밥을 먹으러 가자는 감독에게, 백원짜리 밥이 어떠냐며, 감독이 무슨 돈이 있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시점을 전후로 하여 진석씨는 낙오된 삶의 부랑자에서 사회의 구성하는 개인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리고 감독과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과, 길거리 노래테이프장사에게 아침이슬을 듣자고 청하는 장면과, 길거리 악사에게 어메이징그레이스를 청해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감독은 진석씨가 삶의 가치를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감독과 정자씨의 관계는 진석씨의 경우와는 다르다. ‘진석씨는 매우 근접한 촬영과 흔들리는 앵글이 말해주듯이 감독과의 관계가 가까웠음을 말해주지만, ‘정자씨는 감독과 카메라를 귀찮게만 여긴다. 그렇기에 진석씨를 촬영한 장면은 조금 먼 거리에서 안정된 앵글로 그를 바라본다. 과거 서커스 단원이였던 정자씨는 지하철에서 구걸하여 하루를 연명한다. 돈이 조금 모이면 몸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동방여인숙의 쪽방에서 묵곤 한다. 감독이 조금이라도 질문을 하거나 가까이 다가가면 저리가라 한다. 대화가 지속되지 않는다. ‘진석씨의 경우가 텔링(telling)의 경우로 끝났다면, ‘정자씨의 경우는 단순 쇼잉(showing)에서 끝나고 만다. 깊게 패인 주름에 언제 손질했는지 모르는 머리카락을 만지며 다리를 아파하는 그에게서 관객은 동정이상의 씁쓸한 기분마저 들게 된다.

 

사실 카메라 하나만으로 종로에서 이들의 삶을 담아내기란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흔들리는 앵글과, 잦은 줌을 통해 촬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게 고생하여 찍은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부랑자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뤘고, 그 이후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들의 삶에 조명을 비춘 많은 작품들이 나오게 하는데 시초가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된 지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지금과 비교하였을 때, 지난 90년대의 노숙자나 거리의 부랑자들의 모습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고 하여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도시, 빠르게 다니는 사람들과 차들에 도취되어 시대의 흐름에 편승되지 못한 그들이라도 결코 삶의 낙오자가 아니고 패배자가 아니다.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음악을 듣고 슬퍼할 줄 알고, 쪽방에 앉아 아픈 다리를 걱정하기도 하는 지극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는 목적 없이 이리저리 세상에 취해 다니는 우리들이 삶의 낙오자이지 싶다.

 

당시 운동권 시대 사람들이 민중이라면, 그 민중의 월계관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그리고 그 민중이 전사라면 전사가 되지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독은 단순히 노숙자나 거리의 부랑자에 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한다.

 

 

 

 

 

 

 

4. 할매꽃[Grandmother's Flower/90'/2009/문정현]

 

 

영화는 추어탕집에서 시작한다. 남원 추어탕집 보다 더 맛있는 집이라며 자부하시는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가족사를 영화로 만들어 보라 적극 나서신다. 그렇게 나는 외갓집에 초점을 둔다. 평소 그렇게 무서워하던 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일기장을 펼쳐본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평생을 정신병에 시달리셨고, 새벽 3시면 동네 교회의 종을 울리곤 하셨다. 그리고 붉은색을 보면 발작을 하셨다. 작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끝없는 비극적 가족사와 마주하게끔 한다. 작은 할아버지가 평생을 정신병에 살았던 이유는 밤손님(빨치산)으로 활동하였던 형님(나의 외할아버지)의 면회를 갔다가 경찰이 쏜 공포탄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밤손님으로 활동하던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의 간곡한 호소에 의해 그만 산에서 내려와 경찰에게 잡혀있던 도중 이였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에게 산에서 내려오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밤손님으로 활동하던 외할머니의 오빠가 경찰에 자수하러 가는 와중에 동네 친구인 경찰에게 총을 맞는 것을 보고 식겁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후 외할아버지는 평생을 술로 사시며 외할머니를 원망하며 사시다 돌아가셨다.


비극은 세대를 타고 이어진다
. 외할머니의 동생은 자신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총련계 재일교포가 된다. 외할머니의 동생은 조총련 활동으로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지만 박정희 정권 때 고국 땅을 밝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 고향에 왔다가 정권과 언론에 이용당해 조총련 활동에서도 물러나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동생은 자신의 딸을 북으로 보내 가족으로부터 마저 외면 받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돌아와 자신의 밑을 도려내고 혀를 잘라내는 작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했던 작은 외할머니의 이야기에 돌아온다. 평생을 두려움과 한으로 가득했던 작은 외할머니. 그리고 더 큰 자책감으로 살아오신 나의 외할머니.


 

영화는 커다란 맥락을 이어가며 중간 중간 그 당시 왜 나의 외가가 좌익활동을 했는가에도 의문점을 가진다. 그리고 밝혀지는 동네 주민들 간의 계급 갈등도 채 소멸되지 않음을 안다. 나는 이 지역에 있는 마을의 노인회관들을 찾아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인터뷰를 한다. 이 좁은 지역은 상대, 중대, 풍동으로 나뉘는데, 상대와 중대는 양반들이 살던 곳이고, 풍동(옛 하대)은 가마를 지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 한다. 상대와 중대에서는 풍동사람들을 무시하고 풍동사람들은 우리마을사람 몇 명이 가마를 지던 일을 하였다고 우리 마을 전체가 하인이 아니라고 한다. 풍동사람들은 일찍이 마을에 교회가 들어와 우익적 성향을 띄게 되었고, 상대와 중대는 상대적 지식인들에 의해 좌익사상을 일찍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리고 나서도 이어진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 끔찍한 핏빛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해 상대, 중대 사람들은 우익사람들에게 당한 일들이라 여기며 그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고, 풍동 사람들은 좌익사람들의 무자비함에 일어난 일이라 한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까지도 같은 지역 내에서 보이지 않는 적대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영화에 목적에 있어 화해를 중요시 한다. 그리고 외갓집의 역사에 있어 가장 근본적 시작은 외할머니의 오빠가 동네친구에게 총을 맞아 돌아간 이후로 집안의 가세는 급격히 기울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오빠를 쏜 동네친구분의 자제분과 어머니가 연락이 닿으며 지내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모두가 몰랐던 이 숨겨진 사건에 대해 소통하고 용서하고 그리고 각자의 아픔이 보듬어 지길 바란다.




전라도라는 지역, 그리고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산속 작은 마을에서는 여전히 계급과 이념이, 그리고 증오와 원망이 뒤섞여있다. 그리고 그 속에 좌익 활동을 했던 이유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이후로 많은 친척일가가 사상연좌제라는 족쇠에 걸려 파혼을 당하고, 선생님이라는 직업도 잃어야만 했던 감독의 슬픈 가족사가 고스란히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마지막에 접어들면서 세월의 상처를 모두 껴안은 채 살아온 외할머니는 결국 숨을 거두신다. 눈도 뜨시지 못하고 가삐 숨을 내시며 병석에 누워계시는 외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감독은 고생하셨다는 말을 전한다.

 

시대의 변동 속에서 눈물과 탄식의 삶을 살았던 감독의 외갓집 이야기는 비단 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에게, 일제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거쳐 반공이 국가의 이념이었던 시절에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들의 이야기이다. 필자역시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법한 필자의 가정사를 듣고 가슴이 울렁임을 느낀 지 불과 채 몇 년이 되지 않았기에 이 영화를 보고, 그리고 이 글을 쓰며 가슴이 먹먹함을 지울 수가 없다. 핏빛 격변의 역사 속에서 삶을 송두리째 유린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얼마나 있으랴. 남과 북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찢겨진 채 살아가는 감독의 외가집 이야기처럼, 부모님 세대의 쉬쉬거림에 차마 전해지지 못했던 가정의 불행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것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윤흥길의 소설 <장마>가 떠오른다. 전라도라는 공간적 배경과 한국전쟁 당시를 시간적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그리고 한 가족의 비극과 극복을 나타내었다는 점에서 <할매꽃>과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소설 <장마>와 달리 <할매꽃>에서는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채 씻기지 않은 슬픔과 탄식이 시대의 편승에 묻혀 흘러가고 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우리사회는 수많은 이념의 갈등과 미처 화해되지 못한 상처들이 뒤섞인 채 흘러가고 있다
. 혹여 누군가 조금이라도 건들이기만 해도, 마치 없었던 일처럼 쉬쉬거리거나 두려워한다. 어머니의 외삼촌을 쏜 분의 자제분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지 않겠냐고 궁추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너는 너무 옳고 그름이 분명혀, 내가 보기에 인간은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거 자체가 모순이여. 내가 살아보니께 인간이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가 없여. 그런게 인간인거 같아 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가 피해자였던 시대에서 과연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겠는가.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 더군다나 감독 자신은 제작을 하며 얼마나 많은 쓰라림과 분노 그리고 울분을 토해냈을까. 보는 관객들도 별다른 재현 없이 마치 어젯밤 이야기처럼 생생히 증언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가슴 울렁임과 슬픔을 지우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담담하게 기구한 집안의 이야기를 사회적으로 풀어낸 점이 바로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의 출발점이 되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였던 이야기를 사회적 가치로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더하여 뿌리 깊은 이념의 대립과 잔존하는 계급갈등 등 많은 사회적 담론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간 중간 하얀 화선지에 붓으로 검은색과 붉은색만을 사용하여 이미지를 담아낸 부분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옛 사진들은 영화가 옛날이야기 듣듯 빠져들게 하는 묘한 자극제가 되었다.


좌와 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 허나 내 편이 아니라면 죽이고 보자는 식의 논리는 여전히 통한다. 결국 순화되지 않은 아픔은 지속된다. 감독은 말했다. 당사자들끼리의 화해는 불가능하여도 우리세대에서는 가능하다고.


색깔론이 잠잠해지면 다시금 나오곤 한다. 그 말이 누구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그분들의 통한을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에 곧잘 재를 뿌리는 거 같다. 비록 과거는 쉽게 청산하기 어려우나 앞으로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1
2011 0324 - 0330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국내 독립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제작자 발굴과 흐름을 주도해온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실험, 진보, 대화 라는 슬로건으로,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성취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구자,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다.

2011년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다큐, 재개발"이라는 슬로건으로 우리의 삶의 터전과 욕망을 '재개발'하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논리에 단호히 맞서나가자는 결의를 다진다.

www.sidof.org



필자소개 _ 조형석
잘하는 건 없고 부족함만 가득한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아! 잘하는 거 하나 있네요. 신도림역에서 1등하는 거.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튀어나가는 필자는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아싸! 오늘도 1등! 뭐 맨날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