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쏭노인 퐁당뎐」- ⑤ 질문은 미로가 아니라 빛이다!

2011. 5. 18. 15:15Feature

화천 뛰다와 호주 스너프 퍼펫의 대형거리인형퍼포먼스 「쏭노인 퐁당뎐」
- ⑤ 질문은 미로가 아니라 빛이다!


글_ 엄현희
(공연창작집단 뛰다 드라마터그)

 

우연은 필연보다 운명적이다

고단한 도시노숙 생활 와중에, 불편하기만 한 공동생활 와중에, 머릿속에 늘 따라다닌 물음은 "나는 왜, 이 사람들은 왜, 부러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였다. 답은 언제나 "다 내 책임인걸. 내가 연극한다고 나서서 그런거지. ."라며 자승자박의 고통으로 떠올랐다. 신기한 것은 그 고통이 유희로 미끄러지게 한다는 것이다. 처음 연극을, 세상을 대할 때의 순수하게 찬란하게 빛나던 나의 과거를 불러와 마치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듯한 '시간의 유희'를 발동시킨다. 유희는 날씨의 도움으로 끈질긴 긴장 관계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지속된다. 쨍쨍한 햇빛 가운데 뼈 속까지 파고드는 찬바람 혹은 흐렸다 개었다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곤 하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우리는 제정신을 차리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그 혼미함 가운데서 공연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우리의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란 현실이 아찔하게 찾아들기 때문이다.

<쏭노인 퐁당뎐>은 현재 안산과 서울을 거친 후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안산과 서울의 사람들을 만나는 와중에서 작품은 점차 만들어져갔다. 그리고 <쏭노인 퐁당뎐>은 공연과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갖가지 반응들에 의해 지금도 생성되고 있는 중이다. 5월 달 의정부음악극축제와 국립극장 무대에서 또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가운데에서 운명적으로 태어나기 위해.

 

우리가 도시유목생활을 벌인 텐트. 줄로 간단히 경계를 만들기는 했지만, 가끔 텐트 안을 엿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하기도 했다.


 

잡종(雜種)이 아닌, '별종(別種)'

<쏭노인 퐁당뎐>은 아주 범상치 않은 제작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이 '유연함'이라 말한다면 너무 잘라 말하는 듯이 보이는가. 하지만 '유연함'은 특히 <쏭노인 퐁당뎐>의 독특한 특성의 근저라 할만하다. <쏭노인 퐁당뎐>의 유연함은 엄밀함과 정밀함에서 나왔다. 작품은 주인공 쏭노인이 물속 세상의 여행 끝에 죽어가는 물고기 앞에 울다가 되살아난 물고기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 마지막 축제가 음산하며 괴기스럽다. 외로웠던 쏭노인이 물고기 친구들을 마침내 얻게 되었다는 결론인데, 왜 음산하게만 보일까. 그 으스스한 느낌은 사실 물고기와 인간은 전혀 다른 종()이란 발견을 해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잡종(雜種, : 섞일 잡)이 아닌, '별종(別種, : 나눠질 별)'<쏭노인 퐁당뎐>에서 핵심적인 미적 원리로 자리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섞여지는 듯이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결코 섞여지지 않았던 결말은 공연의 특성인 '유연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할 수 있다.

 

목이 잘린 쏭노인과 큰 물고기

 

<쏭노인 퐁당뎐>은 전체 7장면으로 구성돼 있는데, 장면마다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목표를 중심으로 이뤄짐으로써 각각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시작은 편안하며 느슨하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물고기 잡는 재미로 산다는 쏭노인의 낚시 행위는 납득할 만하며, 물고기가 그의 낚시질에 기꺼이 잡혀주는 듯이 부드럽게만 흘러간다. 부드러운 분위기는 다음 장면에서 잘려진다. 물고기들이 쏭노인의 목을 치고 잔인하게 가지고 놀 때 장면은 뜨거운 보복의 열기로 위로 치솟는다. 이때 아주 커다란 물고기가 등장해 쏭노인의 머리와 몸을 붙여주고 간을 찾아오라는 과제를 줌으로써 작품을 다시 묘한 평형 상태로 되돌린다. 아주 큰 물고기와 쏭노인은 대척의 관계이지만, - 물고기는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병들었고, 쏭노인은 큰 물고기에 의해 먹힐 운명이지만 - 그들의 관계는 또 한편으론 커플처럼 정다워 보이며 편안하다.

이어지는 장면의 테마는 불안함이다. 별나게 생긴 심해어들과 노인들이 한 무리를 이뤄 행진한다. 피켓과 메가폰, 마이크로 무장한 이들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데, 이 존재들의 이 같은 모습을 경험한 적 없기에 무섭다. 쏭노인의 물고기 세상 참 세상, 평등 세상 만세.”란 시위의 연설은 너무나도 평범해 보여 불안함이 이제는 정체모를 것으로 뒤바뀌며 진화한다. 노인들은 심해어들이 퇴장한 후, 동창생 기념 크루즈 여행 중 버뮤다 삼각지대에 휘말려 물속에 오게 되어 이렇게 살게 되었다는 사연을 들려주는데, 이들의 말은 시 같고 몸짓은 무용 같아 다시없이 몽환적이다. 현실의 이야기들조차 -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이 장면은 참여자들의 실제 사연들이 최대한 꾸밈없이 삽입되었다 - 너무 리드미컬하게 들려져 대사의 정확한 의미는 흩뿌려지고 리듬이 도드라지며 장면을 이룬다.

다음 장면으론 거대한 해골 군인들과 뼈 강아지가 나오는데, 이들은 비현실적인 존재들임에도 불구, 여태까지의 어떤 장면보다도 차분하며 차갑게 제시된다. 이 장면의 모티프가 ‘6. 25 전쟁 당시 파로호에 수장된 전사자들이란 역사적 사실로부터 비롯되어 그럴 것이다. 쏭노인은 군인들을 얼렁뚱땅 물리친 후 - ‘푸른하늘’ ‘은하수란 암구호를 댐으로써 - 마침내 간을 얻는다.

<쏭노인 퐁당뎐>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비주얼과 음악이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룸으로써 모두를 물속세상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객석의 머리들 위로 하늘하늘한 푸른 천이 흘러가고, 무대에선 노인들에 의해 치유된 아주 커다란 물고기가 비를 불러와 강물이 넘실거려 모두가 물고기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사건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결말은 전혀 다른 종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이기에, 마치 노이즈와 무채색으로 이뤄진 불투명의 세상이 임박하는 듯한 기이한 느낌을 준다. 작품은 네가 물고기를 알아?”란 물고기 축제 노래가 짖궂은 음색으로 흘러나오며 에필로그를 이룬다. <쏭노인 퐁당뎐>은 한편으로 '알 수 없음'이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는가 에 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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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들과 질문하기


거리극의 매력은 관객과 배우가 함께한다는 것이지요. 호주의 스너프 퍼펫과의 공동제작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서가 훨씬 더 잘 느껴지는 공연이었어요.” - 블로거 썬

전체적인 줄거리는 4대강 비판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등급 나누는 것을 우리 사회의 등급 나누기(차별) 문제와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 그리고 우리 사회 곳곳의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풍자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극단 뛰다의 풍자적 연출과 조합되어서 멋진 공연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블로거 유네진

모든 출연자들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역동적이어서 보는 사람들까지 힘을 주는 공연이었어요. 이 연극이 연기자들 뿐 아니라 보는 관중들과 소통하는 연극이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블로거 안선 k

 

이제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상반기 중반까지의 공연을 마친 <쏭노인 퐁당뎐>은 현재 위와 같은 반응들을 얻고 있다. 위의 반응들을 통해 <쏭노인 퐁당뎐>의 특성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우리나라 혹은 우리사회에 대한 초상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둘째, 관객과의 소통에 있어 힘이 있다는 것 이다. 두 갈래의 의견들은 우리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도록 유도하기에 귀하다.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아내되, 세계적으로 소통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고유성보편성과의 대립 관계를, 작품은 우리가 잊지 말고 질문해가야 함을 지시하고 있다.


만약에 당신도 그 질문이 흥미롭다면
, 그 질문이 멈춰지지 않고 지속되길 바란다면, 우리의 유목현장에 찾아오라. <쏭노인 퐁당뎐>은 의정부음악극축제와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를 거쳐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지니까. ‘질문하기가 미로가 아닌, 빛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연창작집단 뛰다 - 쏭노인 퐁당뎐
공연장소 및 일시 :
안산거리극축제 - 5월 5일
하이서울페스티벌 - 5월 9~10일
의정부음악극축제 - 5월 17~20일
국립극장 청소년연극제 - 5월 27~29일

창단 10년째인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올해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해 세 가지 실천이념을 실행 중에 있습니다. ‘진화하는 연극’, ‘저항과 치유의 연극’, ‘공동체 중심의 연극’이란 세 가지 방향성이 뛰다의 앞으로의 10년을 움직이게 할 힘입니다. 뛰다는 특유의 광대 메소드, 인형과 가면 등을 통해 독특하며 실험적인 창작 연극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호주의 스너프 퍼펫은 연출 및 인형 제작사 앤디 프레이어가 대표로, 거대 인형 야외 퍼포먼스를 주로 작업해 오고 있는 단체입니다. 싱가폴, 호주, 대만, 일본 등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인형 퍼포먼스를 2000년대 지속적으로 해 왔으며,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스너프 퍼펫이란 이름이 시사하듯, 잔혹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환상적이며 투박한 이미지의 인형이 인상적이며, 유쾌한 난장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필자소개
엄현희. 77년생.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에 재학 중 <연극평론>을 통해 등단, <컬처뉴스>, <공연과 리뷰>, 경기문화재단 전문가 모니터링 활동 등을 통해 비평 작업을 해오다가 아기를 낳은 후 <‘해체’로 바라본 박근형의 연극세계> 논문으로 졸업한 후,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단원으로 들어가서 단원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함. 현재 극단 일을 열심히 배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