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편소설극장전 : 코끼리 - "남자는 홀로 있었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홀로 있었다라고 말했다
- 단편소설극장전 마지막 작품 : 극단 청년단 「코끼리」

 

  글_ 정영경

 

남자는 홀로 무대에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홀로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여러 사람이 들어있다. 동생 경모, 어머니, , 아들, 전처 그리고 만동. 그렇지만 그들은 남자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할 뿐 등장인물은 여전히 그 혼자뿐이다. 무대는 소파와 그 옆에 편지가 들어있는 몇 개의 서랍이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고 그 위에는 전화기가 있다. 그의 존재가 전화와 편지로만 소통하고 있는 상태라는 게 드러난다. 암전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조명이 들어오면 남자는 소파에 앉은 상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어진다.

 


모든 이야기는 과거형이다. 그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것이다. 극은 크게 세 부분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그와 그의 가족의 대화, 그리고 그의 꿈 이야기와 꿈 꾼 다음날 이야기이다. 첫 번 째 부분인 그가 가족과 나눈 대화는 단 하나의 목적, 돈을 좀 빌려달라는 가족들의 요청과 그가 그것을 수락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가족 중 누구이든 그 과정은 비슷하다. 가족 모두가 자신들의 힘든 처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남자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만 도와달라고 매달린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가 돈을 빌려줄 것을 알고 있다. 남자와 가족의 이런 대화는 전화와 편지로만 이뤄진다. 남자와 남자의 가족 사이에 오가는 것은 돈 뿐이다. 남자는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주변에게 돈의 공급처로 존재한다. 가족들의 요구가 버겁지만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상황에서 그는 호주에 가고 싶어 한다. 호주는 그에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다. 그러나 그 자신도 또한 가족들도 그가 호주에 못 갈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호주는 이뤄질 수 없는 꿈, 그저 환상이다.

 

이어 남자는 꿈 이야기를 한다. 꿈은 극에서 변화의 촉발제이다. 그가 대여섯살쯤 아이로 돌아가 아버지의 무등을 타는 꿈, 이혼하기 전 상황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꿈, 그러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다가 자신이 아들 차의 창문을 발로 차면서 협박하는 꿈이다. 호주가 환상이라면 그의 꿈은 그의 실제 과거의 삶에 기반해 있다. 아버지에게 무등을 타서 양팔을 벌리고 마치 코끼리를 탄 듯 했던 그는 현재 삶의 짐을 벗고 든든한 존재에 의지해 편안하고 자유롭게 있는 상태를 대신 겪는다. 아내와 아이들과 좋았던 한 때 역시 가족과 따듯하게 관계하는 상태를 겪는다. 그리고 점점 현실에 가깝게 돌아와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분노를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그는 꿈에서 그가 가장 원하는 상태를 겪고 다시 현재의 삶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현실과 환상으로 분리되어있던 그의 상태가 꿈이라는 공간에서 하나로 통합되게 된다.


 



그 뒤 그의 마음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 그는 더 이상 호주를 꿈꾸지 않고 그런 자신을 인식한다. 코끼리를 타고 있는 아이이고 싶지만, 가장으로서 이제 자신이 코끼리가 되어 누군가를 태우고 가야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출근길 걸으며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의 마음에 희망이 생긴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걸어서 출근하기로 하고 가는 길, 지난 밤 꿈에서처럼 양팔을 벌려본다. 그리고 그의 직장 친구 만동이가 그를 보고 불러 차에 태운다. 만동이는 빌린 돈으로 차를 수리했다며 달리기 시작한다. 남자도 이내 응한다. 차는 전속력으로 달린다. 달라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와 그 후에 달리는 차 안에서 구속된 자유를 맛본다.

 

극 전체에 남자만이 등장인물인 것은 홀로 살아가는 그의 쓸쓸한 삶의 처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불어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 또한 이에 큰 몫을 한다. 그의 이야기는 있었던 일을 지금에 와 설명하는 방식을 띄는 데 이것은 남자가 마치 누군가를, 결국에 관객을 대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 때 경모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어떤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대답했어요. 어머니가 그랬죠. 이러 저러한 일이 있었어요.” 등의 대사는 남자가 마치 관객석에 앉은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관객과 남자 사이의 경계가 약화된다.

 

그런데 이와 함께 그는 상황의 전달자가 아니라 때로 어떤 인물이 되어 말한다. 그것은 그가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처럼 인식되며 그로 인해 무대는 연극의 공간으로서 관객석과의 경계가 생긴다. 관객과 남자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남자와 관객이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것 같은 지점에서 슬며시 거리감을 조성함으로써 남자는 관객과 대화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분리되어 그 혼자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는 관계다운 관계없이 혼자 사는 남자의 고립감을 부각시킨다. 그와 관객이 함께 있다는 느낌을 단절하는 순간을 통해 남자의 고립감이 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대가 관객석과 분리된 연극의 공간으로 존재하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남자는 대상을 상정한 대화가 아닌 혼잣말을 하고 있는 쓸쓸한 가장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극의 시작부터 중후반까지 그는 줄곧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 꿈꾼 다음날 출근길에서는 그는 일어나 관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반원을 그리며 천천히 걷는다. 말로 구현되었던 사실적인 연기가 실제 행동과 움직임으로 구현될 때 남자는 더욱 연극의 공간에서 홀로 존재한다. 또한 시작과 끝의 대사는 암전 상태에서 무대 위의 배우가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녹음된 목소리로 처리되어 남자의 현존감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관객이 있는 곳과 시간을 달리하는, 즉 어느 과거에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관객과 함께 현장에 존재하지 않는 그로 시작하고 끝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았고 우리가 본 그 역시 끝에는 사라져 존재의 소멸로 가게 된다. 관객은 그가 공존감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리하여 그가 기분이 좋아지고 가족의 행복을 비는 변화가 생김에도, 그가 차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 관객에게 그 변화는 희망으로 다가오지 않고 마음 깊이 가라앉는 무거움으로 전달된다.

 

무대 연출의 중요한 부분은 뒤 벽면에 하얀 선으로 그려지는 애니메이션 효과이다. 들려주는 말에 집중하고 절제된 연기 감정 선과 움직임을 고수한 데 비해 애니메이션 영상은 조금 더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움직인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벽면에는 그가 사는 곳인 듯한 공간을 그려졌다가 그가 무대 위에서 말하는 장면이 그려지고 또 그의 내면 상태를 빗댄 것들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렇듯 애니메이션 그림은 일관성 없이 대사나 연기와 조합을 이루면서 공간의 확장으로도 남자의 심리 상태의 확장으로도 기능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절제된 배우의 움직임과 이야기로 진행되는 극 구성에서 애니메이션은 그것과 상호교환하며 극을 확장시켜갈 수 있을 가능성을 가진 채 끝나버리는 것이다.

 



단편소설 극장전의 마지막 작품 <코끼리> (민새롬 연출)는 소설 텍스트가 가진 남자의 외로움을 포착하여 일인극, 대사 전달 방식 등을 통해 그 고립감을 극대화 하였다. 또 남자의 변화의 시점에 남자의 가장 큰 움직임, 소파에 앉아있던 그가 일어나 걷는, 이 일어나는 것은 남자의 변화의 순간을 인식시키는 데 충분했다. 반면, 남자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다루어 그의 내면을 확장하여 전달하는 데는 다소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특히 어머니, 동생, 아들, 딸과의 대화를 이야기할 때 시선 처리 외에 각각을 대할 때 달라질 더 구체적인 감정의 연기선이 드러나지 않는 점은 극 중반까지 남자가 계속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 지루함에 관객을 노출시킨다. 애니메이션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점도 또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관객의 마음에 남자의 삶이 무거움이 진지하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절제함으로 만들어낸 힘이 준 선물임에 분명하다. 다만 남자의 일상과 그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지점까지 초대받지 못한 아쉬움을 느낌에 어쩔 수 없다. 연극 <코끼리>가 남기는 건 결국에, 남자는 홀로 있었다는 것이다.

 


단편소설극장전
극단 청년단 - 코끼리
2011 0622 - 0626  산울림소극장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송금해야 하는 괴로운 한 남자의 모놀로그가 계속된다. 가장 기본적인 배려와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가족 간의 관계, 그 닳고 닳은 관계에서 상실의 감각조차 잃어버린 남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 지 알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가족들의 간곡한 부탁과 타협, 설득의 반복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남자는 잠을 청한다. 어렸을 때, 목마를 타던 자신의 꿈을 꾼다. 자신의 아버지가 코끼리 같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 묵직한 감정들이 홀연히 떠나감을 느낀다. 친구가 태워 준 차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친구는 페달을 누르고 있는 발을 치우지 않는다. 남자는 질주하는 차에 몸을 맡기고 계속 가라고 한다.

극단 청년단의 <코끼리>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작고 미세한 변화와 수용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1인극 형식을 선택해서 보여준다. 헌신의 미덕을 감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사는 ‘미련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삶의 속도를 묘사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관객에게 우리의 잃어버린 감각들에게 대해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 적절한 감상의 ‘속도’와 ‘무게’ 또한 제공한다.

원작 - 레이먼드 카버
연출 - 민새롬

  


필자소개_ 정영경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전문사 과정 재학중
비평과 극작 등 글쓰는 작업을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사랑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