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저들 각자의 삶을 살게 하는 자는 우리다" - 극단 다리「없는 사람들」

2011. 7. 22. 15:18Review

 "저들 각자의 삶을 살게 하는 자는 우리다"
 - 극단 다리「없는 사람들」

글_ 정영감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접속사가 없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허허롭다. 조세희는 열락과 행복, 고통과 슬픔의 마음 풍경을 드러내는 추상명사를 탈탈 털어서 버리고 주어와 동사가 가까이 붙은 단문으로 인물들의 행동만을 엄정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없는 접속사’에 담기는데, ‘없는 접속사’를 지금 이곳으로 불러내 읽지 못할 때 마음은 ‘없는 마음’이 되고 소설집은 ‘없는 집[宇]’이 된다.


극단 ‘다리’의 「없는 사람들」은 조세희가 쓰지 않은 마음-접속사를 무대 위에 펼쳐 놓는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상 가장 낮고 거친 바닥을 제 몸으로 끌어당기며 움직이던 앉은뱅이와 꼽추는 ‘마을버스 기사’와 ‘연희 아빠’로 분해 철제 크레인과 망루 위에서 소리치고 ‘있다’. 저 신산하고 위험한 가계가 30년의 시차를 넘어 지금 이곳에서도 반복되지만 「없는 사람들」은 저들의 마음 풍경을 드러내는데 인색하지 않다. 이제 그만 이곳을 버리자며 연희 엄마가 울먹일 때, 이 참혹한 사태의 의미가 무어냐고 신에게 답을 구할 때, 집 나갔던 남편에게 머릿고기 내주며 나중은 없다고 쏘아붙일 때, 연희의 수의(壽衣)를 대신해 피 묻은 교복을 곱게 빨아놓을 때, 저 뿌리 뽑힌 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내게 스민다. 그들의 말을, 몸짓을, 마음을 읽어내지 못할 때, 그들은 서서히 스러져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만다.




몸 밖으로 나온 혼(魂)이 흩어지지 않도록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산 자다. 죽은 자의 몸을 땅에 묻거나 불사르는 자 또한 산 자다. 죽은 자를 죽은 자의 장소에서 살게 만드는 일 모두가 산 자의 몫이다. 그리고 산 자 모두가 죽어 제 이름을 세 번 불리고 땅에 묻히고 불살라진다. 이 눈물겨운 의식(儀式)의 반복을 다만 신비주의적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여, ‘없는 사람들’은 저들만이 아니다. 곡진한 애도가 산 자의 땅에서 배회하는 유령을 제 자리로 보내는 것처럼, 저들을 저들의 장소에서 저들 각자의 삶을 살게 하는 자는 우리다. 그런 우리가 없어질 때 저들 또한 없어진다. 우리가 저들에게 없는 사람일 때 저들에게 우리 또한 없는 사람이다. 저들이 서서히 스러질 때 우리 또한 스러진다. 우리에게서 배재된 자, 그들이 ‘없는 사람’이며, 그 없어지는 사람의 운명을 우리 또한 걸머지고 있다. 저들과 우리의 있고 없음은 동형이다.


‘없는 사람’을 우리의 이름으로 수락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조각난 장면들 사이에 고이는 침묵이 겨누는 것은 ‘우리 또한 벌거벗은 자’라는 사실이다. 「없는 사람들」은 이 고통을 통해 저들과 우리를 한 데 묶는다. 연극은 ‘연희의 기일’에 각기 다른 공간의 인물들이 한 곳으로 걸어 나와 ‘지금 그곳’의 안부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곳에서 온전히 닫히지 않는다. 망루 위, 적(敵) 없는 대치에 지쳐가는 마을버스 기사가 다시금 ‘없는 사람’이 되고 있다. 연극은 닫히지 않음으로 내게 답한다. 사는 일은-그래서 고통은, 살게 하는 일은-그래서 기쁨은 닫히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나에게 손을 뻗어 서로를 살게 하는 일-이것이 기적의 전부다. 기적은 끝나지 않는다.

 



극단 다리 - 없는 사람들
2011 0714 - 0731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CY씨어터

극작 - 김덕수

연출 - 유환민

얼마 전, 홍대 인근의 작은 용산, ‘두리반’ 식당은 농성 531일 만에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이주 대책 합의를 이뤘다. 1년 5개월여의 시간동안 ‘두리반’에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의 지지로 강제 철거에 맞서 힘겹지만 즐거운 저항으로 얻은 결과다. ‘작은 용산’이라 불릴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두리반’의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는 비단 ‘두리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어느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두리반에서 8차선 도로를 건너 거대한 몇 개의 빌딩을 지나면 가톨릭청년회관 ‘다리’가 있다. ‘다리’가 소개하는 첫 번째 연극 <없는 사람들>은 철거를 앞둔 서울의 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아주 흔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는  끝까지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이제 그만 포기하고 떠나려는 사람들,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분명히 있는(존재하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과연 같은 시간, 이웃 ‘두리반’의 이야기처럼 희망을 만나 볼 수 있을까. 2011년 7월, 가톨릭청년회관 ‘다리’의 첫 번째 정기공연이자, 극단 ‘다리’의 초연작인 <없는 사람들>에서 서울 어느 곳,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필자소개

정영감.
글을 쓰기 위해 연필을 깎고 종이를 가지런히 하고 먼지를 쓸어내는데 사흘이 걸리는 사람. 그러다 술을 마시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 다시 사흘 동안 집을 정리하는 사람. 허나, 일주일에 두 번은 술을 마시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