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 ② 가식을 벗고 움직이는 나의 춤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 ② 가식을 벗고 움직이는 나의 춤

 

 

글_ 김혜정

 

 

 



나의 외로움이 춤을 춘다

  


인간은 외롭기 때문에 예술적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최근에 접한 예술 작품들에서 각각의 주체들은 모두 외로움을 끌어 안고 누군가와 소통을 원하고 있었다. 최근 본 무용에서 그들은 무대 위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몸으로 관객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또 요즘 읽고 있는 시집에서 시인은 내 자신의 작고 소소한 감정, 그것으로 사람과 만나는 시를 묵묵히 쓰고 싶다고 했다. 유명한 사진전에서 만난 아프리카의 풍광 속에서 나는 그것을 프레임에 담기 위해 작가가 보냈을 고독한 시간들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미 고인이 된 작곡가의 애절한 음악은 여전히 현재를 살며 나를 위로한다.

이렇게 외로운 이들은 예술을 통해 사람과의 소통을 꿈꾸고, 우리는 모두 외롭기 때문에 예술을 통해 나와 너,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에서 춤을 추며 얻고 싶었던 자유로운 나’, ‘상처의 치유’, ‘소통의 욕구의 기저에도 나의 깊은 외로움이 숨어 있는 것일까. 오디션 전까지 나는 내 몸을 인정하고 내 감정을 응시하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에게 집중되었던 시선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사람을 향하게 되었다. 아마도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오디션 후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작품 연습에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위로 받고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결국 지금의 외로움이 힘이 되어 나는 춤을 추고 있다. 이 외로운 몸짓이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본격적인 공연 연습이 시작되었다.

 

 

앨리스가 되어 첫 무대에 서다

   

 

 

오디션 후 나는 다른 여섯 명의 참가자와 함께 앨리스(허 웅) 샘 작품의 무용수가 되었다. 작품 제목은 ‘I'm the Alice- part2 가식이다. 우리 작품의 제목이 part2인 이유는 안무가인 허 웅 샘이  끼리댄스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작품 제목이 ‘I'm the Alice- part1 pandora’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허 웅 샘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함께 무대에 서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공연 연습은 분명 오디션 전의 연습과는 달랐다. 그 동안의 연습에서는 오디션을 위해 모두 같은 안무를 했다면 작품 안무에서는 각자에게 다른 동선과 안무, 타이밍이 주어졌다. 게다가 안무의 난이도는 물론이고 연습량도 많아졌다. 연습에 임하는 참가자들의 열정이나 눈빛도 한결 더 단단해 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은 안무가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허 웅 샘이 우리를 자신의 공연에 세우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결정이었을까.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한 무대에 겨우 일주일 연습한 일반인을 세운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일까. 안무가로서 무엇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고 싶고, 공연을 앞두고는 상당히 예민해지고 초조해질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은 연습하는 내내 우리에게 잘 하고 있다’, ‘이 장면이 좋다고 격려했다. 잘 못하는 것을 아는데 우리를 북돋워 주는 선생님에게 미안해서라도 우리는 믿고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정된 연습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끼리댄스페스티벌에서 선 보인 허 웅 샘의 공연은 전체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고, 우리는 객석에 앉아 있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무대로 나가게 되었다. 마치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인 것처럼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무대로 걸어나가는 것인데,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딛는 그 순간 긴장감과 짜릿함이 한 순간에 교차되며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실수를 하면 어쩌나 공연 전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는 머리 속으로 동작을 그리고 이미지를 그렸다. 하지만 역시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이런 것인지 막상 무대에서는 몸짓, 팔과 손끝의 느낌, 역동성, 음악을 모두 생각하고 완벽하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한 명 한 명이 앨리스가 되어 무대에 섰고 커튼콜에서 벅찬 느낌으로 서로의 손을 뜨겁게 맞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끈끈한 애정으로 맺어지게 되었다. 공연장 근처 공원에서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을 하고, 서로를 다독이고 챙기면서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이지만, 일반인인 우리를 믿고 무대에 세우고 연습 내내 우리를 격려하고 안심시켰던 안무가와 순수한 열정으로 마음을 모은 사람들과 함께한 이 과정이 내게는 더 소중하고 뜨겁게 다가왔다. 이 과정 속에 내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었다. 함께 무대에 선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9 4일 우리 공연에서 나와 우리는 모두 어떤 모습일까?

 


 

가식을 벗고 나의 춤을 추고 싶다.

 

 

이제 연습은 오로지 9월 작품 공연을 위해 모든 것이 집중되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무용 안무 대신에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 동안 여러분을 전문 무용수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안무만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에 여러분 이야기가 빠지고, 내가 학교 발표회를 준비하듯 나의 춤을 주고만 있었다. 이제 우리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를 만들어 각자의 이야기가 있는 춤을 추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공연의 주제가 가식인 만큼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오디션 후 첫 연습에서 선생님이 잠깐 가식에 대해 이야기 한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나의 가식적인 모습을 생각하며 내가 얼마나 많은 가식으로 나를 포장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의 교육과 종교적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나쁜 행동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 생겨도 아파하며 성당에서 죄를 고백했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양보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항상 선함과 정의로움을 가르쳤고, 혹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되어서도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틀을 벗지 못했다.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은 내가 하겠다고 해야 할 것 같았고, 누군가 어려운 부탁을 해도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거절하지 못했던 그 순간의 나를 탓했다. 사랑을 할 때는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앞에서 질투를 하거나 화를 내지도 못하고 언제나 나는 착한 여자,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성으로서 태도를 유지했다. 그래서 이별의 순간에도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섰다. 나는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 감정을 그대로 쏟아냈을 때 그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결국 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으로 나를 엄격히 가두었지만 실은 그 이면에는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르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식은 어느새 나를 답답하게 구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가식적인 모습을 알고는 있지만 '가식'을 가식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이미 한 번의 공연을 함께 하며 서로 가까워져서 일까. 우리는 하나 둘 가식적인 모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바른 생활을 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모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강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사람, 사람들 앞에서 사교적으로 행동하고 두루 챙기지만 실은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사람,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춤추고 싶은 욕구를 감추어왔던 사람, 주목 받고 사랑 받고 싶어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 우리는 참 많은 가식 속에 살고 있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내면의 욕구와 자아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서로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래서 더 보듬어주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가식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그런 가식이 실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식을 벗은 모습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것, 또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공연을 통해 이야기해 보자고 했다.

이렇게 우리 공연의 구성이 짜여졌다. 한 명의 앨리스와 여섯 개의 각자 다른 가식, 각자 다른 자아들. 현실적 자아의 가면을 벗고 본연적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 존재의 고뇌가 우리의 춤 속에 녹아 들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듯 하다. 그리고 앨리스가 본연적 자아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생긴다. 마치 그래야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진정한 날개를 달다

 

 

서로의 가식을 터놓고 춤으로 만들어가며 나는 그 동안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작년 겨울 를 찾기 위해 참가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나는 틀에 갇히길 거부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며, 유희와 쾌락을 즐기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동안 내가 살아온 모습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결국 그 동안 나를 가두었던 규율과 원칙이 나를 포장했던 가식이었고, 내가 만든 틀이었다.

 

지금 우리는 각자 다른 가식의 가면을 쓰고, 한 명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자아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나는 한 명의 앨리스에게 있는 일부의 자아이면서, 또 내 삶에서 나를 포장하고 옭아맸던 현실적 자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나의 상처와 외로움을 담아 춤을 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와 삶을 담아 춤을 춘다. 그리고 그 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에게 소통의 몸짓으로 말을 걸 것이다.

 

춤을 추면서 많은 가식들을 벗어 던지고 나는 진정한 를 만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짜 는 무엇일까? 진정한 란 존재할까? 하지만 모든 존재의 실존적 의미는 관계 속에서 그 존재의 의미가 인식된다. 결국 라는 존재 역시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함께 춤을 추고, 조금은 부끄럽지만 가식을 나누고, 그 가식을 몸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이들과의 작업이 행복하다. 비록 를 찾는 과정이 어렵고 혼란스럽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이들과 소통하며 이제 막 진정한 날개를 갖기 시작했다.

 



똥자루 무용단 -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은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지만 우물쭈물 망설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현대무용을 알아가면서 벅참을 느끼도록 한다. 그 대장정의 결과는 9월 4일 문래예술공장에서 창작무용공연 발표로 선보일 예정이다.

cafe.naver.com/dance2011



 


필자소개 _김혜정(우물쭈물 꿈꾸는 움직임 참가자)

존재론을 넘어선 관계론을 지향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꿈 꿉니다.
하지만 너무 쉬운 소통을 경계하며 관계의 진정성에 가치를 둡니다.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만남과 소통이 있는 배움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지금은 무용공연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몸으로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