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혁명일기> - 히라타 오리자 사용법

2012. 2. 1. 16:11Review

히라타 오리자 사용법
<혁명일기>
작, 연출_히라타 오리자  / 출연_청년단 

글 / 정진삼





1.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서 작당을 꾸밉니다. 테러 음모라고 보아도 무방하지요. 그런데 지난 세기의 사회주의자들 혹은 무정부주의자들의 비장함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평범합니다. 작금의 현실을 버겁게 살아나가는 21세기 혁명가의 실제 모습은 이러한 것일까요. 여러분은 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상 혁명은 오늘날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일반적’ 용어가 되긴 했지요. 선거혁명, 두뇌혁명, 영어혁명, 디지털혁명 등등. 허나 혁명의 가짓수가 많아지고, 요란함만이 더해지는 걸 보면 진정한 의미의 혁명 달성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나 봅니다. 
  
  작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작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히라타 오리자는 90년대 일본연극의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낸 극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그전까지의 일본 연극은 ‘리얼’ 하다는 의식보다는 과장되고 비약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지요. 그가 표방한 ‘조용한 연극’ 이라는 구어체 스타일의 연극은 관객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연극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관객들은 어떤 현상을 세세하고,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의 다양한 해석도 가질 수 있었지요. <혁명일기>는 히라타 오리자와 청년단이 주목받았던 90년대 후반 선보인 작품입니다. 
 
  히라타 오리자의 공연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약간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무대 위의 인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뚜렷한 사건과 갈등이 없는 듯 진행되는 모습이 마치 현실 그 자체 같으니까요. 특별한 체험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 극사실주의적인 묘사가 외려 관객들을 생경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놀이와 감정이 배제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것이 민망하고 어색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하여 히라타 오리자 공연에 대한 사용법을 감히 귀뜸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은 한국에서 계속 만나보게 될테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무대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관객에게 불친절한 요소들을 찾아내기, 쌍으로 이루어진 커플들을 발견하기, 그리고 마지막 대사를 주의 깊게 듣기 등등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가요. 더 뻔한 관극법으로는 두 번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렇게 빤한 ‘사용법’ 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작품이 하나의 초점으로 모아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볼수록, 다양하게 볼수록 많은 의미들을 찾아낼 수 있지요. 그의 무대는 여러 의견들이 교차되는 담론의 장입니다. 이를테면 이번 작품은 ‘혁명’ 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척점에 있는 ‘일상’ 도 조명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안에서 혁명에 대한 논의는 억지로 발전되거나 혹은 완결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스스로 결말을 상상할 수 있지요. 

  작품 안에서 해결을 보아야만 했던 관객들에게는 이러한 연극이 생소하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장면마다 나열된 의미와 화제를 구분하고 해석하고 있으면, 그 집중에 따르는 피로감도 만만치 않지요. 따라서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그림을 감상하듯,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극의 호흡을 따라가는 것이 관극의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논의의 경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잘 살펴보면,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주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특성상, 마지막에 발설이 되는 것이지요. 일러드린 점들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의미를 포착해 낸다면 히라타 오리자의 극을 보고도 재밌다, 즐겼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평범한 무대와 조용한 객석을 종내 감내해야만 하기도 하지만요. 
 
 
2.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 연극도 비슷합니다. 본격적으로 테러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지엽적인 헤프닝과 멤버교체, 딱히 토론이라고 볼 수 없는 언쟁들이 이어지지요. 중요하지 않은 ‘서론’ 이야말로 굉장히 짧은 ‘본론’ 의 순간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줍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혁명을 꿈꾸는 과격파 집단에서 그들이 준비한 테러를 앞두고 모임을 갖습니다. 평범한 부부와 찾아온 친구들로 위장한 채 말이지요. 이들은 공항 관제탑과 외교공관을 점거하여 이를 무력화시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또 다른 혁명 조직과 연계해서 합동 거사를 이루려고 하지요. 그들의 목적은 정부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깨워주려는 데 있습니다. 체제 전복이나, 민중 선동을 목적으로 했던 과거 전공투나 적군파 선배들에 비하면 무력해 보이기도 하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하지요.  
 
  이야기의 구조는 테러를 수행하기 위한 계획을 혁명가들이 수립하는 것에 일반인들이 끼어드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혁명가들은 밴드 활동을 하는 동아리로 위장했지만 그들은 실상 동아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편한 몸가짐에서  이들이 과연 혁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마저 드는 것이지요. 
 
  혁명에 대한 반어적인 시선은 무대 미장센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응접실은 혁명이 논의되기에는 과하게 세련되고 안정감 있어 보입니다. 그 와중에 오고가는 것은 치열한 정신이 아니라, 칠레산 와인이 담긴 유리잔인 것이지요. 이처럼 연극의 중심에는 가벼운 파티분위기로 위장했다고 하지만, 전혀 위장한 티가 느껴지지 않는 ‘혁명’ 의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혁명의 가벼움이랄까요. 

  혁명에 관한 논의는 일반인 무리들이 찾아올 때 마다 중단되고, 연기되기를 반복합니다. 이 같은 손님맞이는 연극 속의 연극 같은 재미를 더해줍니다. 누군가가 찾아올 때 마다 그들이 벌이는 일반인 놀이와 일본인 특유의 예의 차리기는 관객의 웃음을 유발합니다. 실상 그러한 가벼움 속에서 혁명가들의 정체만이 아니라 테러의 폭력성도 그 정체를 슬그머니 감추게 되지요. 
 
  혁명가들은 일반인들의 불쑥 방문으로 강제적인 외출을 당하기도 하고, 마루의 중앙에서 밀려나 본의 아니게 그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혁명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의 등장입니다. 예를 들면, 숙청 대상인 공무원들과 대기업 직원들도 각각 사회 개혁에 대한 자기 생각을 보탭니다. 소박해 보이는 반상회의 일원은 오히려 마을의 변화를 위해 결단을 촉구하기도 하지요. 우유부단한 혁명그룹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모습이 실로 아이러니합니다. 
 
   일반인 그룹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 벌이는 본격적인 혁명 논의는 조직안의 연애문제 때문에 더욱 지리멸렬해져 갑니다. 표현이 그러했지만, 이렇게 연애에서 불거진 조직원간의 갈등은 극중에서 중요한 화두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혁명이라는 것도 인간의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 연대라는 것이 인간관계의 다른 말이라는 것, 혁명을 통해 잃어버리게 되는, 혹은 잊혀져야만 하는 가치들이 있다는 것 등등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 장면, 남겨진 동서지간의 남녀는 서로의 속내를 털어 놓게 됩니다. 아이가 있어서 버틸 수 있다는 말 속에서는 결국 어떤 존재로 인해 이 아슬아슬한 연대가 끊어지지 않고 있으며,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혁명이 달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행복이나 해방을 약속하는 혁명도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희생 비용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는 것. ‘아이’ 를  통해 절실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유대감’ 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동시대를 살아나가는 평범한 혁명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주었습니다. 
 
  일체의 감정조차 배제하려고 하는 히라타 오리자의 극에서도 말미에는 늘 휴머니즘을 발생시킵니다. <과학하는 마음>시리즈<도쿄노트> 그리고 <잠 못드는 밤은 없다>에 이르기까지, 극중 내내 복잡했던 인물들은 최후의 순간에 단순하고도 따뜻한 면모를 슬쩍 내비치지요. 이 작품에서 마지막에 남겨진 이들의 대화를 통해 관객들은 혁명가들의 삶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왜 시노다는 피를 흘리며 길거리에 쓰러져 있을까? 이들은 과연 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혁명가의 아이는 잘 커나갈 수 있을까?  


3. 
 
   히라타 오리자의 사실적인 극작술은 연기술과 무대술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청년단 배우들은 일상의 대화처럼 서로 겹치며, 동시에 끊어지는 말하기를 선보였습니다. 심지어 관객들에게 등을 보이며 연기했지요.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일본인의 언어습관은 가깝고도 먼 듯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음향과 조명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 같은 극사실적인 표현과 최소주의적인 연극효과에 우리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성기웅 연출의 세심한 번안형태나 떠들썩한 연극으로 각색, 연출되는 형태와는 다르게, 한국 관객들은 <혁명일기> 관극에는 어려움과 낯설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살펴보자면 이러한 무대와 객석의 간극은 내용이나 완성도의 문제이기 보다는, 섬세하게 구축해야 할 수신 경로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무대 위 그들이 사용하는 현대적인 일상 언어들은 눈으로 읽어야 하기 보다는, 귀로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쌓아나가는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문화적 차이’ 로 크게 볼 수도 있고, 극장 내 소통문제로 한정 할 수도 있겠지요. 오리자의 극은 동시대적 주제의 공감과 눈과 귀가 경험하는 감각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 와중에 무대 뒤의 진실 혹은 인물간의 보이지 않는 심리선을 점층적으로 파악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대체로 관객들은 눈으로는 배우들의 입과 자막을 끊임없이 분리하며 보게 되고, 귀로는 소리의 발신지인 배우들의 입을 쫓지만, 그 ‘다른’ 언어를 ‘번역된’ 문자로 이해하게 됩니다. 종합적인 처리가 실시간이 아닌, 늦거나 빠른 타이밍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은 조용한 연극의 특성상 리듬이 단조로운 편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그 배우들은 주고받는 타이밍이 섬세하게 고려된 반응발생장치와도 같지요. ‘자막’ 은 이러한 장치를 보조하는 절대적인 수단이 되지요. 그런데 영화 자막을 가진 스크린과는 다르게 입체의 깊이를 가진 무대에서 이러한 반응발생은 번역 자막의 구동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감각의 타이밍과 지각의 타이밍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지요. 여기서 소통의 한계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극 메카니즘의 난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관객들은 자신의 수준을 탓하거나, 혹은 작품의 탓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장에서 그 신호의 원활함을 확보하지 못한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요. 어떤 연극이든 잘 만들어진 대로 잘 전달되어야 하는게 옳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인 협력가들이 더 애써주면 더욱 효과적인 관극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해외 공연에 대한 한국적 상연에 있어서 텍스트가 중요할수록,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 노력이 기본이 되겠지요. 자막의 정확도와 크기, 다발성이 더욱 확충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본 특유의 감추는 표현법, 그리고 일상화된 지역 자치, 과격 시위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 등의 문화적 차이도 우리와 엇갈려 더욱 극을 어렵게 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쉽게 화냈다가도 풀고, 지역 정치에는 관심이 적고, 그러면서도 과격한 시위와 강경한 진압이 곳곳에서 발생하니까요. 이번 공연에는 소통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다음에는 히라타 오리자의 극을 더욱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4. 
 
   히라타 오리자는 극중에서 혁명이라는 말을 종교로 혹은 예술로 치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혁명이나 예술 혹은 종교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그 필요를 느끼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연대를 통해 이룩해 나 갈 수 있겠지요. 물론 지금은 당사자가 그 혁명비용을 고스란히 지불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혁명가들, 예술가들, 종교인들이 존경받지도 않구요. 

  다르게 말하면, 시민 혹은 관객 혹은 교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실천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명감과 책임감이 남이 아닌 자기 몫이 된 것이지요. <혁명일기>는 그런 점에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 줍니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간 우리의 대리자로써 정치인의 온갖 행위를 당연시한 것은 아닌지, 혹은 관객으로서 우리는 무대 위 예술가들에게 그저 박수만 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이러한 문제의식이 여러분을 혁명가 혹은 예술가답게 만드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번 리뷰는 여러모로 서두와 사족이 긴 리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참여적 관심과 행동의 촉구만이 더 나은 연극을 만든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이러한 잔소리와 딴소리가 극장에서 벌어지는 혁명의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혁명만세! 



연극 <혁명일기>



공연 2012.1.12~15

러닝타임 약 95분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작/연출 히라타 오리자 

제작 극단 청년단, 아고라기획, 코마바아고라극장

 

조직은 부패한다. 혁명은 타락한다. 

그 어떤 조직도, 그 어떤 혁명도…… 


도시 근교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어느 단독주택.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은 알고 보면 큰 테러 사건을 도모하고 있는 과격파 집단의 아지트이다. 

공항 난입과 대사관 습격- 그들의 이런 계획이 만약 성공한다면 나라 전체를 뒤흔들 만한 커다란 사건이 될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의 모임을 가장하여 모인 조직원들은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논하지만,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일본 사회에서 이들 조직은 이미 존재감을 잃고 있다. 

거대한 혁명의 꿈을 꾸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하루하루는 어쩔 수 없이 사소한 일상 생활의 문제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사회 변혁의 사명과 조직의 윤리, 그리고 일상의 감정 사이에서 그들의 조직은 조금씩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