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내리는 클리브랜드 - 현실과 몽환이 비에 스민다

현실과 몽환이 비에 스민다

<비내리는 클리브랜드>

극단 풍경/윤복인 연출

 

글_김해진

 

목재로 뼈대가 잡힌 집. 왼쪽에는 폭스바겐의 엔진이 해부된 차고가, 오른쪽에는 현관 벤치와 잇닿은 부엌이 있다. 차고 앞이나 벤치 위에 달린 등이 이따금 노랗게 켜진다. 오른쪽 벽면에는 문이 있다. 문이지만 열릴 수 없는 가짜 문이다. 지미와 믹, 마리와 스톰, 그리고 동수가 달리듯이 춤추면서 어딘가로 향한다. 인물들은 클리브랜드로 떠나려 하고 관객들은 이들이 사는 시간에 도착하려 한다.

클리브랜드를 검색해 보니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항구·공업 도시’라고 쓰여 있다. 항구와 공업이라. 그래서 홍수와 폭스바겐인가, 라고 생각하다 말고 재미교포 2세대라는 극작가 성노(Sung Rno)의 언어를 상상해본다. 바나나, 옥수수, 색이 칠해져 있는 진흙, 비와 태풍, 마을, 김치……. 배우를 통해 무대에 선 언어들은 수채화나 파스텔화의 재료 같다. 목가적인 스타일이다. 매력적인 포스터 그림이 공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미(김기범 분)는 홍수가 날 거라면서 정비공 믹과 함께 폭스바겐을 노아의 방주로 개조하려 하고 의대생 마리(김은혜 분)는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스톰을 치료한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몽환의 경계가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지미는 ‘바나나’라는 말을 인종차별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살며 그러한 색의 범주를 모두 지워버릴 비가 내릴 거라는 예지몽을 꾼다. 동생 마리는 아빠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며 타인을 치료하는 현실을 산다. 남매는 부유하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옥수수 공포증이 있는 믹(문종선 분)과 사고에서 살아남은 바이커 스톰(김기연 분)이 합류한다. 모두들 출구를 찾고 있다. 없는 엄마와 아빠, 할머니를 찾고 있다. 인물들이 간혹 엄마를 찾으며 앞에 서는 문은 벽이다. 열릴 수 없다. 문이 그려진 벽, ‘막힘’이 ‘열림’보다 우선한다. 그것은 뿌리가 결락된 이들의 앞에 놓인 것이고 극단 풍경의 공연에서 이 뿌리는 다만 이민자들의 정체성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혼란한 뿌리가 비를 맞으며 자라고 있다.

 

 

갈등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갈등이 비유로 변환된 연극에 가깝다. 계속해서 홍수를 기다리고(지미), 두려워하던 옥수수밭에 뛰어들고(믹), 공부하던 의학책을 불태워버리고(마리), 함께 사고가 났던 상대방이 죽었단 소식에 미친듯이 또 허망하게 웃는다(스톰). 이들은 서로에게 적이 아니다. 무대에서 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적은 모두 사라져버렸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영원한 적이 되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을 붙들고 싸우고 있다. 홍수로 대변되는 그것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그들이 정말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극단 풍경·윤복인 연출의 <비내리는 클리브랜드>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원작에는 없었던 강동수라는 인물을 넣은 것이다. 그는 양복을 입은 채로 장화를 신고 연두색 우산을 쓴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가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의 열패감과 후련함을 ‘벗어제끼고’ ‘내던지는’ 행위를 통해 표출한다. 또 극이 진행되는 내내 빨간 셔츠에 흰 양복을 입고서 기타를 연주하거나 핸드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처음에는 다른 인물들과 어떤 관계인 건지, 작가의 분신인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곧 한국사회의 청년들을 대변하는 모습이라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객석과 인물들 사이를 매개하는 그 특성이 다른 캐릭터들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동수는 극장의 왼쪽 벽 앞이나 다른 인물들의 바로 앞 정중앙에 그림을 소개하는 악사처럼 앉아 있는데, 결과적으로 다른 인물들과 관객들의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액자 틀을 의식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 틀이 보일 때마다 다른 인물들을 액자 속으로 밀어 넣게 됐다.

 

 

실제로 동수 뒤편의 벽에는 액자가 걸려있기도 했다. 처음에는 무대 스케치였다가 극이 끝날 즈음에는 황혼녘의 풍경으로 바뀐다. 동수와 인물들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기도 하고 서로 겹치기도 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나는 그것보다 지미와 마리는 엄마, 아빠와 도대체 어떤 관계였는지가 더 궁금했다. 체리 그림을 두고 떠난 엄마. 지미와 사냥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아빠가 왜 떠났는지는 알 수 없는 모호함. 공연이 기다림의 도돌이표였다가 잠시 ‘사냥’을 언급하고는 금세 비와 함께 해소되는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공연 첫날이라 강약 조절이 덜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조명기에는 비가 오는 효과를 내기 위해 물방울이 떨어지는 수조를 덧대어 놓았다. 무대 바닥에 빛과 함께 빗방울이 떨어질 순간을 나도 기다렸다. 마침내 비가 온다. 인물들이 클리브랜드에 가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항구도시라니까 바다로 나가게 될까. 녹슨 엔진의 폭스바겐을 타고 춤을 출 수 있을까. 신나게 달리고 튀어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들이 물에 흠뻑 젖는 상상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 상쾌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공연을 보고 난 다음 날에는 정말로 비가 내렸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극장에 남겨진 목재 뼈대의 차고와 집이 방주의 뼈대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진제공_코르코르디움]

 

   

극단 풍경 10주년 기념공연 2.

<비내리는 클리브랜드>

2012.3.22(목)~4.8(일) 정보소극장 평일8시, 주말4시, 월쉼

작|성 노(Sung Rno) 번역|윤지은 연출|윤복인

출연|김기연, 김은혜, 김기범, 강동수, 김준원,

        문종선, 박지인 

 

무대|김혜지 조명|류백희 작곡|최정우

사운드디자인|강은아 안무|하미희

조연출|김예은, 양종민 일러스트|조철륭

사진|정상진 기획홍보|코르코르디움

 

 공연줄거리

 사이에 낀 존재.

 미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랐지만 미국사람으로도 또한 떠나간 한국 사람으로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주인공 지미와 마리는 사회적인 정체성의 흔들림과 더불어 가족, 즉 본질적 주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어릴 적 그림 한 장을 남겨두고 집을 나간 엄마, 아이들의 양육을 마치자 또다시 홀연히 사라진 아버지.

 사라진 부모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지미는 이 암울하고 혼란한 상황을 정리해줄 큰 홍수가 올거라

 믿으며 자신의 폭스바겐을 노아의 ‘방주’로 만드는 작업을 하며 비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마리는 장남으로써의 역할을 저버린 오빠로 인해 모든 짐을 짊어지고

 일주일전에 집을 나간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고속도로를 헤메고 다닌다.

 사회적, 가정적으로 존재의 정체성 문제에 직면한 지미와 마리. 그들의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라진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 노란 옥수수에 구토와 현기증을 느끼는 믹과 자신이 동양인임을 강하게

 부정하는 스톰이 동행하게 된다.

 

 ■ 작가 성 노(Sung Rno) 극작가, 시인, 연출가, 카피라이터

 

 물리학자 아버지와 연극평론가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하버드대 물리학과 졸업 후 

 연극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브라운대에서 극작을 전공하며 진로를 바꿨다.

 현재 한국계 미국 극작가로서 뉴욕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2009<이상李霜, 열셋까지 세다> 공연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주요작품

 <CLEVELAND RAINING><GRAVITY FALLS FROM TREES><NEW WORLD><PRINCIPIA>

 <DRIZZLE AND OTHER STORIES> < wAve><INFINITUDE><GALOIS>

 

  1. 리뷰를 쓰고 다 넘기고 나서도
    공연을 머릿속에서 다시 보고
    머릿속에서 리뷰를 다시 쓰고 덧붙이고 빼고...그러다 다시 원래의 원고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게 작품과 대화하는 제 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지미와 마리 남매의 부모에 대해서 거듭 생각합니다.
    무대에 등장하지 않지만 남매를 강력하게 구성하는 존재.
    이민자로서 그들은 이미 한 번 떠난 사람들이고
    떠나간 곳에서 또 떠납니다. 자식의 곁을 떠나고 서로의 곁을 떠나고.
    어쩌면 그들이 왜 떠났는가라는 개연성보다는
    떠나는 행위 자체가 대물림된 이들의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삶이 잇따른 '떠남'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것도요.

    위의 리뷰에서는 공연을 통해 느끼고 받아들인 것에 한정해 쓰려고 했었는데요.
    대본을 읽고 생각한 몇 줄 또한 나누고 싶어
    후기처럼 덧붙여 봅니다.

    - 자기 글에 댓글다는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