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 그 여자, 은호

2012. 4. 20. 14:27Feature

 

그 여자, 은호

글_래은

오늘도 그 여자랑 싸웠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분다고 자켓을 입어야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춥지 않다고 말했다.

계속 되는 실랑이. 밖에 나가면 춥다며 내 옷을 벗어내라 할 것이 뻔했다. 난 끝까지 옷을 입어야한다고 주장했고 실랑이 끝에 결국 그 여자는 울음을 터트렸다. 난 이런 자잘한 싸움이 지겨워졌고 무기력해지고 말았고 여자가 원하는 대로 둘 수 밖에 없었다.

자켓을 걸치지 않고 집을 나선 그 여자는 바람에 몸을 떨며 후회했고 결국 내 옷을 벗겨내어 걸쳐 입고는 만족했다.

오늘 아침도 늘 그랬듯 그 여자는 눈을 뜨자마자 쭈쭈~를 외쳤다. 그 여자는 내 가슴을 쭈쭈라는 민망한 애칭으로 부른다. 7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그 여자는 내 가슴을 주무른다. 일어나면 일어난대로, 잠들기전엔 잠이 오라고, 기분이 안 좋을땐 기분 풀이를 위해, 심심할땐 심심해서. 시시때때 가릴 것 없이 집착한다. 그래, 슴가 페티쉬다.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에도 가슴을 주무르고 있다. 아픔과 귀찮음이 올라온 나는 또 신경질을 냈고 그 여자는 나를 한참 째려 보고는 총총 자리를 떠났다.

여자는 오늘도 내게 사랑을 확인한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나 예뻐?”

“나 사랑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안 이쁘지, 못생겼지, 그치~?”

자책한 적도 있다. 내 사랑이 모자르구나, 내 사랑의 방식이 잘 못됐구나, 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며.

화를 낸 적도 있다. 내 사랑을 못 믿겠냐고, 그렇게 의심스럽냐고, 날 못 믿어주는데 난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럴때면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 싫어?”

하지만 7년이나 반복된 그 여자의 확인에 이제는 흔들림 없이 말한다.

“난 너를 사랑해”

그 여자가 끊임없이 듣길 원하는 말이 이것이라는 걸 이젠 아니까.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사랑한다는 말 10번을 듣고 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쭈쭈를 주물렀다. 

 

     제멋대로이고 집착적이며 사랑에 끝없이 목말라하는 그 여자를

나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왤까... 왜지... 왜냐구?!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아닐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여자가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놀라운 인간의 성장을 목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 여자는 자라고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란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매순간 자라난다.

 새싹처럼 삐죽 돋거나 봉오리처럼 봉곳 맺히거나 꽃처럼 화알짝 피거나 

            나뭇잎처럼 짖푸르게 무성해진다.

 

       그 생명력은 늘 놀랍고 감탄스럽다. 그리고 존재만으로 아름답다.

     인간의 성장을 지켜본다는 것처럼 놀랍고 신비로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인간이 나를 사랑해주기까지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오늘도 촉촉한 눈망울로 그 여자는 내게 말했다.

“엄마, 은호는 엄마 사랑해.”

극도의 고통과 불안, 극도의 환희와 안정이 교차한다, 그 여자와 함께 있으면.

미운데 좋다. 무서운데 행복하다. 답답한데 기쁘다. 불행한데 고맙다.

음... 이래니 내가 예술을 안 할 수가 없다.

열라 유명한 예술가는 되지 않을지라도 내 삶에 책임지는 꾸준하고 성실한 예술가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여자를 만났으니 말이다.

그 여자, 우리어린이집 다니는 7살 유은호양.

 ps. 아이를 잘 키우려 하지 말고 그냥 함께 신나게 살아 가시길. 그리고 아이랑 함께 살다 너무너무 힘들고 외롭고 막막할 때는 저를 찾아오세요. 얘기 들어드리고 등 도닥여드릴께요. 댓글로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필자_ 래은

   소개_ 달과아이극단 연출. 여우비공연단 단장,성미산마을 주민.

 

 

이글을 쓴 은호 엄마는?

<고양이가 말했어><서른,엄마>의 작가이자 연출가. 지금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성미산마을축제준비를 하며 새로운 작품을 준비중에 있다. 은호덕에 공동육아를 알게 되고 마을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저 사는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동네 아줌마. 

 

(공연사진_ <고양이가 말했어>왼쪽 / <서른, 엄마>오른쪽)

<서른, 엄마> 인디언밥 공연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249  

래은작가의 딸, 은호는? 

 7세 여자아이입니다. 그림을 좀 무서울 정도로 잘 그립니다. 엄마에 대해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 "우리엄마 되게 웃겨"라고 말합니다. <서른,엄마>의 이야기를 만들게 해준 장본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