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어머니> _ 엄마, 안녕.

2012. 4. 26. 14:28Review



영화 <어머니> _  엄마, 안녕.

글 _ 리경



그녀.


이름 이소선.

소선의 아버지는 태어난 딸이 하도 작아, 작을 소(小) 자를 써 ‘소선’이라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때 차마 상상치 못했으리라. 작디 작던 소선이가 한 시대의 노동자를 품는 이리 큰 어머니가 되리라고는.

아들 전태일.

17세 때 평화시장의 의류제조 회사의 재단사로 들어가 함께 일하는 어린 여공들의 쓰린 삶을 목도한다. 그는 근로 기준법을 알게 되고, 법 준수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애쓰지만 그의 요구는 번번이 거절당한다. 분신을 생각한 그는, 밤마다 엄마에게 근로 기준법을 가르친다. 밤새도록 대화하는 게 다반사였던 모자였던지라 엄마는 다른 생각 없이 태일에게 근로 기준법을 배운다. 엄마가 근로 기준법을 다 배웠을 때 쯔음 아들 태일은 자신의 몸에 노동운동의 불을 붙인다.

별명 노동자의 어머니.

아들은 병원에 실려와 온 몸이 타고 속이 끓어가면서도 엄마를 똑바로 보며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달라 말한다. 애써 정신을 잡고 있는 엄마의 대답이 늦어지자 태일은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엄마에게 약속하라 소리친다. 그는 끝내 엄마의 약속을 받아낸다. 아들의 죽음 후 엄마는 아들의 삶을 이어 산다. 그녀는 이후 이소선이라는 이름보다 노동자의 어머니로 더 많이 불리며 새 삶을 살아간다. 태일의 엄마에서 노동자의 어머니로, 그녀의 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리 살아간다.




영화 <어머니>의 첫 장면은 그녀가 사는 동네의 모습을 비춘다. 창신동. 그녀의 마음의 고향. 그리고 이어 카메라는 키 작은 엄마의 뒷모습을 쫓는다. 다리가 시원찮아 옆 사람의 팔에 매달려 반발자국쯤 뒤로 쳐지면서도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는 엄마. 그녀의 스토리를 모른다면 그저 귀여운 동네 할머니로 보이는 그녀. 이소선. 그렇게 태준식 감독은, 차분히 그 모진 삶을 살아낸 소선의 마지막 2년간의 일상을 담아내려 한다.


그녀가 스크린에 나오면 밝은 에너지가 극장을 메운다.

누구하고나 종알종알 이야기 나누는 엄마.

자리 나면 담배를 무는 엄마.

그러다 쓰러지듯 잠든 엄마.

사람들 보기에 어떠냐고 거울 보며 묻는 엄마.

이 없이 잇몸으로 오물오물 죽을 먹는 엄마.

만나는 사람마다 밥 먹었냐고 묻는 엄마.

화투판에서 동전뭉치를 꺼내며 내가 돈 다 딸 거라고 너스레를 떠는 엄마.

농담 잘하고 잘 웃는 엄마.

그러다가도 자신의 생각을 주장할 때는 나이가 무색하게 힘 있는 엄마.



그 일상 사이로 그녀를 그녀이게 하는 장면들이 들어온다.

태일이 추모기념 날, 아들 묘 옆에서 온 사람들을 하나하나 안고 함께 밥 먹는 그녀의 모습. 엄마다.

노동자 집회에서, 파업 장에서 마이크를 통해 퍼지는 엄마의 음성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셔야 합니다.” 그 진정성 담긴 말로 깊은 위로를 전하는 그녀의 모습. 엄마다.

쌍용자동차 파업 때 평택 공장 앞에서 멀리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힘내라. 힘내라.”를 연신 외치는 그녀의 모습. 엄마다.

김진숙씨 이제 고만 내려오면 안 될까. 내려와서 하면 안 될까. 그 얼매나 힘들꼬. 크레인 농성 중인 노동자 한 개인을 걱정하는 그녀의 모습. 아, 엄마다.

영화 간간히 OST로 이아립의 노래가 삽입된다. 조용하면서도 명랑한 이아립의 노래는 평화시장과 그 곳으로 대변되는 노동자의 삶 속에 함께하는 엄마의 걸음과 닮아있다. 민중가요와 섞여 살았을 소선엄마의 삶이기에 언뜻 노래만 떼어 생각했을 때 이질적이지만, 그것은 어느 면에서 참 엄마의 느낌이다. 누구보다 드라마틱하고 누구보다 고통스럽고 처절하고 절박하고 가슴쓰린 삶을 살아왔지만 그녀는 어둡지 않다. 주눅 들어 있지 않다. 요란스럽지 않지만 밝다. 유쾌하고 힘 있다. 태준식 감독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며 몸으로 느낀 것을 담아 고른 노래였을 터, 나는 그의 선택을 긍정한다.

그녀는 그렇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운이 좋게, 소선 엄마 생전에 그녀를 만날 기회를 누렸다. 2011년 6월 말, 적당히 더운 오후였다. 창신동 그녀의 집에서 만났고, 영화 속의 그녀처럼 엄마는 방문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엄마는 격이 없었다. 허례허식이 없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풀어갔다. 떠올리는 게 힘들 텐데도 궁금해 하는 우리를 위해 지난 세월을 더듬어갔다. 힘이 없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엄마는 논리와 유머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다. 중간 중간 우리의 생각을 물으시기도 했다. 엄마는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세 시간 가량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보다 더 깊이 남아있는 기억은, 아니 느낌은 엄마의 품이다.



함께 간 꼬맹이들을 자꾸 안아보는 엄마. 이것저것 물으니 쑥스러워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할 줄 알아야 돼. 안 그럼 바보야.” 라고 가르치는 엄마. 돌아가려고 일어나자 다 큰 우리까지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엄마. 나는 그녀가 나를 안을 때 정말 신기하게도,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처음 만났고, 나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는 그녀지만 내가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것. 그녀의 인간애를 느꼈다. 그것이 그녀가 삶을 지탱해 온 힘이었고, 그것이 곧 그녀였다. 엄마는 자신을 높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겸손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엄마는 누구보다 자연스러웠고, 자유로웠다. 그런 엄마는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한 번의 만남에 나는 엄마에게 반했다.



그녀는 우리가 들어올 때 반겼던 것처럼, 불편한 몸으로 집 앞까지 마중하였다. 밥을 못 먹여 보내서 어떡하냐고, 잘 살펴가라고, 또 오라고, 그랬다. 나는 또 올 거라고 했다.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 가끔 그녀를 떠올렸고 함께 갔던 친구들에게 언제 또 엄마 보러 가자고 했다. 게으른 나를 탓하듯, 엄마는 7월 중순 만난지 한 달도 안 되어 쓰러졌다. 내가 다시 엄마를 만난 건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였다. 이제 엄마는 전처럼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않고 안아주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 발밑에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정신없이 내 삶을 살아내던 어느 날 아침, 엄마가 태일이 곁으로 갔음을 들었다. 엄마와의 세 번째 만남은 그녀 자신의 장례식 장이었다. 만남의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엄마의 육체적 존재는 내게서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 깊이 내게 파고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영화 <어머니>는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2009년부터 2011년의 엄마의 날들을 담는다. 동시에 영화 의 한 줄기로는 태일의 마지막 날 아침을 다룬 연극 <엄마, 안녕>의 제작 과정과 공연자들의 인터뷰를 이어간다. 영화 후반부에 엄마는 일본에서 온 교수들에게 태일과의 마지막 날들을 이야기하는데, 엄마의 증언과 공연 장면이 번갈아 나온다. 관객에게는 엄마의 이야기가 무대화되어 보여지는 것이다. 공연 무대에서 태일도 가고, 엄마의 이야기에서 태일의 숨도 다하고 나면 엄마는 여지없이 고통에 잠긴다. 하루도 아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엄마, 가슴이 너무 답답해 담배를 물지 않을 수 없었던 엄마, 엄마를 그렇게 만든 바로 그 마지막 날. 영화 속 엄마의 일상의 모습은 엄마가 아들을 보내고, 새로 태어난 그날로 회귀한다.




엄마는 자식 같은, 아니 자식인 젊은 노동자들에게 잡혀가면 무조건 이소선이가 시켜서 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엄마는 네 번 옥살이를 했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군화에 짓밟히고, 욕을 먹고, 찬 바닥에서 밤을 새면서도 노동자들의 삶에 미쳐 살았다. 엄마는 정말 사람에게 미쳐 살았던 사람이다.

엄마는 이야기꾼이다. 누구라도 엄마를 만나면 엄마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 수많은 이야기를 담기에 내 글이 짧고 얕다. 그러니 영화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를. 또 그녀의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도 그녀의 삶과 숨이 담겨있으니 읽어보시기를.



소선 엄마에게.

엄마, 사랑하는 태일하고 못 다한 대화 나누고 있어요? 배고프다 한 태일이 맛있는 거 많이 해주고 있어요? 거기는 어떤가요. 여기서는 많은 이들이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 다시 오라고는 차마 못하지요. 엄마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살아내고 가셨으니까요.

엄마의 자식들, 우리 노동자들 요즘 많이 힘들어요 엄마. 힘내라고 또 말해주세요.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태일의 삶을 엄마가 이어 살았듯, 엄마를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의 삶을 이어 살 거예요.

엄마 고마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합니다.

작은 천사. 엄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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