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전국자립음악가대회 : 2012 뉴타운컬쳐파티 51+

2012. 4. 30. 00:26Feature

전국자립음악가대회 : 2012 뉴타운컬쳐파티 51+

나름 괜찮았어, 라고 기억되기를 바라며

글_정진삼

1.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80년대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제도권 교육을 받을 무렵, 서교동에 살았었다. 졸업시험으로 배영을 보지는 않는 배영유치원을 졸업하고, 야외 수영장이 있는 서교국민학교에 다녔었다. 서교 학생들은 홍대부속국민학교 아이들과 라이벌 관계였지만, 큰 다툼없이 홍대 앞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시소, 그네 등을 함께 타고 놀았다. (그 당시 ‘홍대 앞’ 은 말 그대로 대학교의 정면을 말하는 것임) 그러니까 아주 옛날부터 홍대 앞에서 놀았던 셈이다. 가끔 책도 읽었는데, 돈이 생기면 홍대 앞에 있는 홍익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곤 했다.

 

2.

90년대가 되고나서부터, 홍대 앞에, 엄밀하게 말하면 홍대 앞 지하에 ‘시끄러운’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분명하게 말하면, 그 전부터 뭔가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우리집 주변에는 서교시장과 흙밭(지금의 주차장 거리)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주택뿐이었으나, 어느순간부터 4,5 층짜리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빌딩들의 지하는 여지없이 시끄러운 것들의 차지였고, 지하로 들어가는 벽면에는 ‘거지같은’ 낙서(그래피티)가 온통 칠해져 있었다.

 

3.

90년대 중반이 되자 평화롭고 순박하게 보낸 유년시절의 공간이, 시끄럽고, 거지같은 것들이 판치는 무분별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동네 주민으로서도 매우 짜증나는 상황이었다. 어린나이였지만 그 원흉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머리를 발갛게 물들이고, 귀에다가는 심하게 피어싱을 하고, 주렁주렁 메탈 줄을 늘어뜨린 펑크 락 밴드. 어린이들이 노는 홍대 앞 놀이터에서 기타치고 북치고 하면서 놀 땐 그들에게 한마디 충고 해주고 싶었다. 다른 데 가서 놀아요! 여긴 우리가 '노는' 데예요.

 

4.

이후에 나는 홍대 앞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곧 성인이 되었고, 이천년대가 쏜살같이 흘렀다.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된 홍대 인디씬의 역사는, 2010년대 초반 그 역사의 종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른 즈음에, 를 훌쩍 넘은 지금,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자업자득이나 고것 쌤통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춘기 시절에 내가 느꼈던 감정, 이를테면 박탈감이나 허무함을 지금의 홍대 음악인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데 가서 놀아, 여긴 우리가 '사는' 데라고!

 

5.

히틀러 시대, 나치의 억압을 피해 수많은 독일 음악인들은 그들이 혐오하고 미워하던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들은 거기서 예술이 아닌 ‘생계’를 위한 음악을 했다. 소수의 음악가만이 안정되게 헐리우드 영화음악을 작업했고, 나머지는 대학교수가 되거나, 교육기관에 들어가서 일했다. 미국인들은 독일의 순수 음악을 어려워했고, 미국인들에게 ‘대중적이지 못한’ 독일 음악가들은 음악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망명이라는 억압의 시기를 지내면서, 작곡가는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 악기 연주나 지휘를 했고, 연주자는 오히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작곡을 했다. 창작과 연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자기 포지션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헷갈리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생계를 위해 '하다보니까' 였다.

 

6.

5월 5일, 전국자립음악가대회<뉴타운 컬쳐파티 51+>가 열린다. 작년에 홍대 앞 두리반에서 벌어졌던 행사가 올해는 석관동 한예종 학생회관 일대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주최는 자립음악생산조합(공동 주최, 클럽 대공분실)이다. 자립(自立)은 스스로 확고해 진다는 일반적 의미이고, 조합(組合)은 2인 이상이 상호 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하기로 약정하는 법적인 계약을 이른다. 홀로서기 하자고 방금 말했는데, 두 명 이상 운영하자는 말이 뭔가 ‘변덕’ 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허나 자립은 태도의 문제이며, 조합은 실천의 방식이리라. 예술가의 ‘생존’ 에 대한 위대하고, 도전적인 개념이 작년에야 비로소 이 땅에 발을 내딛은 셈이다. ‘망명’ 이라고도, 혹은 ‘망했군’ 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다.

 

7.

물론 그전에도 버젓이 ‘독립’ 이나 ‘인디’ 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자립’ 이라고 다시 말하는 것은 듣는 상대를 허망+민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그러나 분명히 ‘자립’과 ‘조합’ 은 독립예술의 사각지대를 살핀다. 자립의 대척점에 있는 말은 ‘이미, 이룬’ 이라는 뜻의 기성(旣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계에서는 오래하다 보면, 웬만하면 기성이 된다. 신진과 기성은 서로 밀고, 끌고, 당기며 그 판을 확장해나가거나, 혹은 단단한 연줄체제를 이용하여 서로서로 적당껏 먹여 살리는 시스템을 운영해왔던 셈이다. 그러나 그 ‘기성’ 이라는 것에 ‘시장’ 이 더해지면서, 상호교환이 아닌 ‘착취’ 와 ‘무시’ 의 관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젊은 엘리트는 착취당하고, 그냥 젊기만한 다양한 주체들은 무시당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독립을 한다고 해도, 그 독립이 자주독립이 아니라, 남을 무시하고 또 다시 아랫것들을 착취해야 내가 유지되는, 바베큐 독립(dog-rib)스런 개뼉다구 같은 상황인 것이다. 이럴 독립일 바에야는, 진정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가며, 조금씩 먹여 살리는 자립이 낫다. 기성이 벌여놓은 생존 시장에서 상대 혹은 동료를 다치게 하고, 자기만 살아남는 예술은 이제 그만하자, 는 것이다.

 

8.

위대하면서 도전적인 이들이기에 할-리우드가 아닌 할-렘을 선택했다. 자립을 위해, 국립의 공간을 점유했다. 그리고 이들은 5월 5일이라는 순수의 시간을 점거했다. 다음의 문제는 음악이다. 음악은 예로부터 경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언어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도 통용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문제다. 홍대(弘大)스런 음악이 석관(石串)스런 곳에서 꽃 피리라는 보장은 없다. 홍대적 다양성이 이태원 공간과 문래 공간에서 시도되고 받아들여질 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석관은 석관이다.(이 말 참 무섭구나) 그러나 무분별한 지역문화의 난립을 호기롭게 외쳤으므로, 음악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식된 홍대 씬이거나, 혹은 단발적인 행사가 아니기를! (다행히 ‘대공분실’ 이라는 기이한 라이브 클럽을 만들고, ‘칼방귀’ 라는 기막힌 음악 잡지도 만들었으니 이후의 시도도 기대된다) 아마도 그래야만 자기 동네로 스며들어온 존재들에 대해, 훗날 석관동의 어린이들도 시끄럽고, 거지같았지만... 나름 괜찮았어, 라고 말해줄 수 있으리라.

 9.

행사 당일 잡상인도 환영한다고 하니, 음악인도 예술가도 일반인도 아닌 딱히 명명할 수 없는 잉여생산자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다행히 5월 5일에 날씨는 맑다. (그리고 5월 8일은 무시무시한 ‘어버이’ 날이다) 돈을 벌자. 함께 놀자. 기성(旣成)에 대해 기성(奇聲)을 지르자. 살아남자.

 

*사진출처

사진 1. 2012년 전국자립음악가대회<뉴타운 컬쳐파티 51+> 포스터

사진 2. 2011년 전국자립음악가대회<뉴타운 컬쳐파티 51+> 포스터

- 자립음악 생산조합 홈페이지 http://www.jaripmusic.org/

사진 3. 독립예술잡지 판매처 / 오픈유어마인드 웹페이지 http://www.your-mind.com

 <<전국자립음악가대회  2012 뉴타운컬쳐파티 51+>>

 20120505

@서울 성북구 석관동 산1-5 한예종 학생회관 일대

주최 : 자립음악생산조합 | 클럽 대공분실 운영위원회

주관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동아리연합회

공식 사이트 : jaripmusic.org

“무분별한 지역문화의 난립을 위해”

/ 일정 /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제 2회 자립음악포럼>> (장소 및 시간 추후 재공지)

2012년 5월 5일 토요일 15:00 ~ 23:00 <<2012 전국자립음악가대회 51+>>

/ 장소 /

stage a | 클럽 대공분실 club dgbs | 지하 1층 | 15:00~24:00 | 동시 수용 200명

stage b | 소닉 토처 챔버 sonic torture chamber | 1층 | 15:50~21:00 | 동시 수용 20명

stage c | 영감다방 inspiration coffee shop | 2층 | 15:20~23:00 | 동시 수용 80명

stage d | 옥상 roof | 옥상 | 15:30~20:30 | 동시 수용 100명

/ 티켓 /

조합원 예매 : 15,000원

일반 예매 : 25,000원

현매 : 30,000원

*예매, 현매에 관계없이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해 스테이지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예매는 300명으로 제한합니다.

***예매는 공식사이트(jaripmusic.org)를 이용바랍니다. 예매페이지 바로가기

****조합원 예매/현매가는 4월 24일까지 가입한 조합원에 한해 적용됩니다.

/ 라인업 /

ㄱㄴㄷ순

기린 / 김대중 / 김목인 / 나후 / 눈뜨고 코베인 / 더 베거스 / 도그스타 / 더 히치하이커 / 로보토미 / 룩앤리슨 / 마이티 코알라 / 몸과마음 / 블랙 메디슨 / 비둘기우유 / 빅베이비드라이버 / 서울메탈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 스칼드 / 스컴레이드 / 스테레오 베이 / 스팀보이즈 / 악어들 / 얄개들 / 엘파트론 /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 위댄스 / 쾅프로그램 / 크라이스트퍽 / 트램폴린 / 파렴치악단 / 파인드 더 스팟 / 피기비츠 / 해일 / 화교문화 / 헬리비전 / CR 태규 / Cunttlefish / maundrie fox / SSS

/ 기조 /

>>우리는 부족하다.

2010년 2월, 일군의 음악가들은 동교동 삼거리에서 재개발과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던 철거농성장 두리반을 돕자며 <<자립음악회>>라는 타이틀의 공연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반. 2011년 6월, 두리반이 마포구청과 건설사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아낼 때까지 <<자립음악회>>는 총 50회가 열렸으며 그 외에도 탈핵, 평화, 빈곤 등 다양한 주제로 크고 작은 공연들이 열렸다. 특히 첫 해의 5월 1일, 그리고 두 번째 해의 4월 29, 30일에 열린 공연 <<51+>>에는 수많은 음악가들과 수천의 관객들이 참여했으며, 두리반 농성을 알리고 실질적인 승리로 이끄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자립음악회>>를 꾸려 나간 음악가들 중 일부는 음악가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협동조합인 ‘자립음악생산조합’을 결성해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두리반의 승리로 인해 한 주기가 끝났다. 흔치 않은 승리를 경험하며, 많은 것이 변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실은 거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옳다. 아직도 재개발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저항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홍대앞의 월세는 여전히 높고, 영세한 클럽들은 여전히 어렵다. 음악가들에게 할당된 공간이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조합을 결성한 음악가들이 “경쟁이 아닌 상생으로”란 구호를 외친 것이 무색하게, 매스미디어에선 이전보다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을 독려하고 있다. 심지어 밴드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프로그램마저 생겼을 정도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아직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뀌어야할 것은 산적해있다. 우리는 부족하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는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홍대앞을 조금 더 살기 좋고 안정적인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조합을 결성한 음악가들은 대신 홍대앞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2011년 중순부터 우리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함께 <<클럽 대공분실>>이란 이름의 공연장에서 다양한 공연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조합의 이름을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것들이 생성되고 있다. 2010년 문을 연 한남동의 바 <<꽃땅>>에서는 2011년 중순부터 정기적인 공연을 개최하고 있으며 2011년 7월 문을 연 문래동의 <<로라이즈>>에서도 마찬가지다. 폐관된 <<라이브클럽 SSAM>>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옛 운영진들이 용산에 새로운 공연장 <<전자쌀롱>>을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물론 이것이 조직적인 움직임은 아니며, 각기 다른 이유에서 홍대앞을 벗어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음악가들과 공간들이 홍대앞을 벗어나고 있는 하나의 경향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며,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한다.

이상이 2012년 5월 5일, 세 번째로 열리는 <<51+>>의 주된 테마이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시도들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주길 바란다. 다른 방식의 음악이 태어나고 다른 방식으로 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길 바란다. 특히 집중되지 않은 새로운 공간들의 필요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 이번 <<51+>>에서, 우리는 예년과 같이 쉽게 록 페스티벌에선 볼 수 없는 특별한 음악가들을 초청했다. 또한 <<클럽 대공분실>>이 있는 지하층만이 아닌 건물 전체의 구석구석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어떤 공간은 굉장히 쾌적한 반면 또 어떤 공간은 굉장히 좁고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에게 이것이 흔한 불쾌가 아닌 특정한 경험으로 다가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시한 테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진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더 많은 공간과 다양한 방식들이 공존하는 씬을 원한다. 우리의 시도는 계속 된다. 무분별한 지역문화의 난립을 위해.

/ 비고 /

1) 음악가는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합니다. 2010년, 2011년에 이어 2012년 역시 총 수익금의 40%를 참여한 음악가/밴드에게 평등하게 배분합니다.

2) 스탭 역시 노동의 댓가를 받아야합니다. 우리는 자원봉사자를 쓰지 않습니다. 총 수익금의 10%를 참여한 스탭에게 평등하게 배분합니다.

3) 포스터, 팜플렛 및 디자인 총괄로 디자이너 썽킴 씨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