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야구 연극 : 정의신의 <겨울 선인장>

뜬금프리뷰(freeview)

재일교포극작가 정의신의 <겨울 선인장>

 

야구와 연극

 

                                                                                                 글_정진삼

▲영화 <머니볼>의 한 장면

 

1.

야구와 연극이라니, 뜬금없습니다. 뜬금없다는 것은 갑작스럽고 엉뚱하다는 말이지요. 연극을 이야기하는 판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야구’ 라서 그런가요. 급하게 둘의 공통점을 찾아봅니다. ‘ㅇㄱ’ 이라는 자음을 갖고 있다는 거. 프로야구와 대학로 연극, 둘다 월요일 날 쉰다는 거. 그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으니 둘은 그리 친하지 않나 봅니다. 그나마 야구를 소재로 한 연극이 있으니 여기서 시작하면 되겠네요. 뜬금없는 주제로 출발했지만, 뜬금없는 프리뷰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플레이 볼.

 

2.

야구연극을 이야기한다곤 했지만, 아는 범위 내에서 야구연극은 딱 두 편뿐입니다. 극단 드림플레이가 공연했던 <10번타자>(2008)와 극단 조 컴퍼니에서 공연했던 <겨울선인장>(2010)이지요. 야구가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 소설과 만화는 알려진 작품만 해도 여럿인데, 한국 연극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네요. 두 작품을 한 번에 다루면 한국의 모든 야구연극을 말하는 것이 되므로 <10번타자>는 거르고, <겨울 선인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와인드업.

▲야구 연극 <겨울선인장>의 포스터

 

3.

<겨울 선인장>을 쓴 극작가 정의신은 재일교포입니다. 지금이야 그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있지만, 몇년 전에 만해도 재일교포들은 한국에서 뜬금없는 존재였지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한국인 조상을 가졌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에 살지만 외국인으로 분류되는... 그 와중에 한국 사람보다 더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인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가 아닌 낯설고 모호한 존재. 이들 정체에 대한 규정보다 미정이 많은 걸 보니 갑작스럽고 엉뚱한 존재인 것이 분명하지요. 재일교포들은 최근 스포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뜬금없는’ 에서 ‘특이한’ 으로 그 존재감을 변신시켰습니다.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축구선수 정대세. 그리고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고양원더스 감독이 그러합니다. 아참, 지금은 야구연극을 이야기하는 중이었지요. 사인미스.

 

4.

<겨울 선인장>에서는 남자만 네명 등장합니다. 야구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특이한’ 것은 이들이 모두 ‘성적 소수자’ 라는 점입니다. 솔직히 고하면, 이 작품은 야구보다도 이들의 동성애 취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야구연극보다는 퀴어연극에 가까운 것이지요. 퀴어연극도 역시나 한국 연극에서 매우 희귀합니다. '퀴어' 라는 게 더 이상 뜬금없는 소재가 아님에도 이 판에서 만큼은 참 드물지요. 연극을 소재로 하는 연극은 그토록 많으면서, 야구나 호모를 다루는 연극은 별로 없다니, 참 신기하죠? 연극의 균형을 잡아주는 심판이 있다면, 가서 항의라도 해야 하는 걸까요. 예끼!

 

▲SK와이번스 시절의 김성근감독 (출처: 책<김성근이다> 본문 중)

 

5.

<겨울 선인장>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요. 등장인물인 후지오, 가즈야, 하나짱, 배양 이렇게 네 명은 고등학교시절 함께 야구를 하던 팀의 선수들입니다. 죽은 야구부 동료 류지를 위해 매년 모이던 모임이 이젠 이들끼리의 모임으로 변해버렸지요. 후지오와 가즈야는 5년이 넘은 남남커플입니다. 베양은 성적불구자이거나 혹은 모태솔로, 하나짱은 드랙(남장여자)입니다. 재일교포가 그러하듯 이들 역시 일본사회의 낯설고 모호한 존재이지요. 작품에서 하나짱은 재일교포에다가 드랙으로 나오는데, 이 정도면 ‘마이너리티’ 리그에서 4할타자는 되겠네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암담하기 그지없습니다. 농담조차 괜히 뻘줌하군요. 스트럭 아웃!

 

6.

이 작품에서는 연인관계인 가즈야와 후지오의 '밀당' 이 주된 내용을 이룹니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이면 '밀고 당기기' 가 애틋하거나, 코믹하거나 혹은 흐뭇할텐데... 남남간의 사랑이야기라니... 흐뭇하지는 않고, 애틋하고 살짝 코믹합니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별을 사랑하고, 욕망한다는게 나름대로 절박한 상황일 수 있겠지만, 관전하는 쪽에서는 신기할 따름입니다. 정의신 작가는 주로 이들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통해 호모들의 삶을 디테일한 부분까지 밝혀내어 줍니다. 연애행위나 성적인 취향, 체위, 상대에 대한 질투, 그리고 게이바와 같은 업소의 일화 등을 슬금슬금 소개하고 있지요. 성적 소수자의 삶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이라는 건 아무래도 이 사회에서 한쪽의 성역할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중간은 없습니다. 세이프이거나 아웃이거나 둘중에 하나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은 남자답게 행동하는 것이 제일 어렵답니다. 게다가 ‘수컷’ 이 이들에게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빈볼에 제대로 맞아본 타자가 그 다음부터 자기에게로 향하는 야구공을 무서워하는 것처럼. 데드볼.

 

▲한국 연극 최초의 퀴어연극 <사람 밖 사람> 포스터 (출처 http://queerarchive.org)

 

7.

7년의 연애를 끝으로 결국 후지오와 가즈야는 헤어지고 맙니다. 주위의 시선, 장남으로써의 책무, 오랜 사랑의 환멸 등등. 이유야 있겠지만 결국 결혼 ‘적령’ 기에 이른 호모 커플들에게 결단의 시점이 찾아온 것이지요. 이와같이 호모들에게는 남자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는 것도 고통스럽습니다. 사랑이냐, 현실이냐 하는 고민은 누구에게라도 해당되는 문제일테지만, 동성커플에게는 그 선택이 그들의 남은 미래까지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참 비극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인, 결혼, 가족, 국가 등의 기본적인 사회 구성의 원리들은 소수자에게 힘겨운 진루의 과정일 수 밖에요. 안타깝게도 사회적인 ‘세이프’ 를 위해서라면, 그들을 지탱해왔던 ‘사랑’ 은 내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 사랑 몰라요. 연극 몰라요. 야구 몰라요.

 

8.

 그라운드 위의 멋진 플레이를 기대했다면 아쉽지만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이쯤되면 왜 연극에서 야구를 다루지 않는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지요. 스펙타클한 플레이를 수반하는 야구를 연극의 무대에서 온전히 시각적으로 재현해 내기란 아무래도 버거우니까요. 그럼에도 이 작품은 연극의 배우의 들려주기 방식을 활용하여 관객으로부터 야구에 대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이끌어냅니다. 극중에서는 여장남자 하나짱이 어린시절 첫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어린시절 소꿉놀이와 고무줄 놀이를 즐기던 하나짱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강제로 소년야구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투스트라이크 쓰리볼, 타석에 들어서서 두 눈을 꼭 감은 채 무작정 휘두르던 그의 배트에 공이 딱, 맞습니다. 잘맞은 공 쭉쭉 뻗습니다. 하늘로 하늘로, 넘어갔습니다, 홈런!  

 

▲아다치 미츠루의 야구만화 <H2>의 표지

 

9.

야구는 남성적 스포츠이면서도 동시에 섬세함과 유연성, 균형감각 등의 여성성이 요구되는 종목입니다. 가끔 경기를 보면 전혀 스포츠 선수답지 않은 곱상한 얼굴이나, 혹은 유연한 몸을 가진 선수들이 나오지요. 그들의 아름다운 몸은 오로지 야구에서만 허용된 외양일 것입니다. 엄청난 체력을 기르지 않아도, 무자비한 파워를 지니지 않아도, 정교함과 스피드를 가지고 승부를 볼 수 있는 것이 야구니까요. <겨울 선인장>의 야구는 그런 점에서 나름의 개연성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져야만 하는 종목, 머릿속에서 쉽게 상상되는 운동의 이미지. 유니폼에서 평상복으로 변신하는 과정 등 성적 소수자의 삶과 야구의 일상이  서로 맞물려 실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관객들은 이러한 리얼리티 속에서 야구와 동성연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10.

정의신의 작품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입니다. 이들로  타석을 짜면, 1번 여성, 2번 신체장애인, 3번 성적 소수자, 4번 타자 재일교포, 5번 어린이, 6번 부락민, 7번 떠돌이 예술가, 8번 백수, 9번 대머리 등이 될 수 있겠지요. 선수들은 그들을 차별하는 사회에 맞서 분노와 울분과 체념의 타격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를 무너뜨리기엔 쉽지 않지요. 배려의 손 화장이나 희생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도 상대의 ‘차별과 억압’의 막장야구 앞에서는 무기력한 것 일 뿐. 그나마 무승부가 최선의 플레이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포기하는 와중에도 정의신의 연극에선 꼭 희망을 말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겨울 선인장>에서는 베양이 그러하지요. “용기와 희망과 얼마 안되는 돈과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짱의 쐐기포. “약간의 섹스도 포함시켜 줘.”

 

▲롯데 자이언츠를 다룬 다큐영화 <나는 갈매기>의 한 장면

 

11.

신성한 야구를 통해 뜬금없이 동성연애자들의 이야기를 하다니, 마초+남성+야구광의 입장에서는 분개할만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갑작스럽고 엉뚱하게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두개의 세계가 주어졌을 때부터 존재했던 사람들인 것이지요.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런 점에서 <겨울 선인장>은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이해와 공감의 여지를 줍니다. 무엇보다 연극과 야구가 더블 플레이를 통해 이런 멋진 승부를 보여주다니 놀랍습니다. 그러고보면, 괜찮은 야구작품들은 뭔가 진지한 메시지를 한가운데 직구로 던져주네요.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를 통해 ‘자본주의’ 를 말하고 있고,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H2> 역시 야구를 통해 ‘첫사랑’ 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야구연극인 <겨울 선인장>도 분명 퀄리티 스타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앞으로도 유망한 야구연극과 퀴어연극이 계속해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파이팅!

 

12.

재일교포 학자인 서경식은 ‘희망’과 ‘절망’과 이란 단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희망(希望)에서 ‘희’ 는 희박하다 할 때 희(希)자이고, 절망(切望)에서 ‘절(切)’ 은 전혀 없다는 뜻이라는 설명이지요. 즉, 자기가 생각하기에 희망이라고 해도 소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면서, 고통스러웠던 재일교포의 삶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정의신이 연극에서 말하는 희망 또한 그러하겠지요. 거의 없지만, 완전히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9회말 투아웃에 지고 있는 팀이 결코 승부를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언제 상연될지 모르는 기약도 없이 진행한 정의신의 야구 연극<겨울 선인장>의 프리뷰였습니다. 연극의 내용을 자세하게 밝히지 않은 점, 본문에서 소수자에 대해 경망스럽게 표현한 점 등, 다소 뜬금없이 전달되었더라도 봐줄만한 실책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야구가, 그리고 연극이 공용어입니다.

 

 

<겨울 선인장>의 작가 정의신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재일교포 연극인입니다. 2008년 연극 <야끼니꾸드래곤> 으로 한일양국에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현재 남산예술센터에서 상연중인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의 작/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작으로는 <쥐의 눈물><적도아래 멕베스><바케레타> 등이 있습니다.

 

정의신 사진 캡쳐, (출처 : 예술의 전당 월간정보지 2011년 2월호)

 <바케레타>공연리뷰바로가기>>> http://indienbob.tistory.com/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