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 몸, 빛, 망치의 관계

2012. 6. 22. 11:47Review

 

2012 제7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몸, 빛, 망치의 관계

<입을 벌리다>, <Tresuomi>

김해진

 

  극장에 들어서면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하얀 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관객들을 바라본다. 조명등이다. 보통은 무대를 향해 있는 조명기들이 이번엔 객석을 향해 있다. 안개가 가득한 곳에 우주선이라도 착륙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광원과 마주보았다가 눈이 부시면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가 하면서 기다린다. 뭘 기다리지? 습관처럼 무대에서 누군가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곧 움직이는 건 빛의 입자, 빛의 공기이다. 공간을 채우고 있던 스모그가 다른 빛깔로 물든다. 빨갛게 노랗게 또 초록빛으로. 기찻길 앞에서 신호등을 바라보는 심정이 된다. 그런데 그게 아주 느릿한 그림이다. 빛은 천천히 변화한다. 빛이 극장의 왼편 오른편에서 가로의 방향으로 물들어 오더니, 이젠 오렌지 빛이 극장을 세로로 가른다. 객석 쪽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관객은 빛을 본다기보다는 빛에 포함되는데, 전체의 그림을 보고 싶다는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고 다소 낯선 것을 경험해 본다는 입장에서는 신선하다.

<입을 벌리다>(이현지 연출, 정영두 안무, 용혜련 출연)

 

<입을 벌리다>는 몸과 빛을 만나게 하는 솔로 공연인데 무용수가 빛과 함께 움직인다는 면에서 보자면 듀엣이다. 빛이 객석에서 물들다가 사라지자 무대에 선 무용수의 몸이 보인다. 빛을 세심하게 처리해서 무용수는 그림자처럼 까맣게 움직인다. 여자의 몸이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단발머리라든가 무릎을 접어 발을 뒤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단정하다. 공간의 후면에서 빛을 머금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무대가 어두워지면 무용수는 놀이터의 정글짐 같은 구조물에서 초록색 빛과 함께 움직인다. 이때 가느다란 광선은 손에 의해 길을 가기도 하고 막히기도 한다. 놀이터에서 뭔가에 집중해 노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실은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빛 그 자체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빛을 운용하는 사람의 몸에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광선의 길을 따라간다. 사람이 구조물의 모서리에 붙은 작은 미러볼에 광선이 닿게 하자 빛은 여러 줄기로 나뉘어 반짝인다. 작은 우주쇼가 펼쳐지는 것 같다.

여자는 등을 보인 채로 모로 누워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공간이 환해서 몸이 잘 보인다. 뼈와 근육이 잘게 꿈틀거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일어난 몸은 하체에만 걸쳐있던 옷을 끌어올려 입고 무대쪽으로 와 춤춘다. 바닥을 비비는 발, 돌아가는 몸통. 복슬복슬해 보이는 의상 때문인지 새끼 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용수는 객석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시 움직여 구조물 안쪽으로 파고든다. 다시 눕는다. 시간은 또 흐르고 빛은 노을처럼 잠잠해진다. 천천히 옅어지고 어두워지는 빛 안에서 조용히 견디고 쉬고, 그저 있는, 빛과 함께 소멸해가는 소녀, 여자. 역시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는 관객의 머릿속. 그래도 서사가 아니라 시가 빛처럼 물드는 작품이다. 몸은 빛 안에 있다. 

 

▲<Hammer Work>(Sabina Scarlat 연출·출연)

 

이번에는 <Tresuomi>(벨기에 FANGULE Association)다. 세 명의 퍼포머가 차례로 나와 각자의 작품을 펼치는데 그 중에서도 <Hammer Work>는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의미와 소음들이 가로지르는 풍경을 보여준다. 여자는 까만 드레스에 힐을 신고 등장한다. 객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손에 망치가 들려 있다. 어찌된 일일까. 망치는 크기도 하다. 옷차림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망치의 머리를 깔고 앉아 치마로 망치를 덮는다. 망치의 손잡이는 미처 가려지지 않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망치의 손잡이가 치마 속에서 위로 들린다. 충분히 성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스피커에서 외화의 한 장면 같은 남녀의 대화가 들려온다. 'You have to be merciful', ‘You should.’ 등의 말이 들린다. 남자가 여자를 억압하는 어조이다. 또 전쟁통의 포화 소리, 'No, no!' 울부짖는 소리, 아이들 소리 등 극적인 소리이다. 소리가 몸과 망치에 옷을 입힌다. 그것은 뚜렷한 서사는 아니지만 응축된 정서로서 몸과 오브제에 달라붙어 장악해버린다.

 그녀는 망치를 끌고 든다. 바닥에 놓고 기대고 몸을 뒤로 젖힌다. 러시아 붉은군대 합창단이 부르는 고양된 러시아 국가에 맞춰 공중에서 망치를 휘돌리기도 한다. 객석으로 망치가 날아들까봐 조마조마하다. 퍼포머의 몸에 망치가 매인 것인지, 망치에 몸이 매인 것인지 이제는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몸과 망치가 긴밀해 보인다. 망치를 잠시 바닥에 던져놓은 후 그녀는 인사하듯이 양손으로 치마를 팽팽히 당기기도 한다. 이때만 망치와 몸이 떨어져있을 뿐 그녀는 다시 망치를 집는다. 몸과 망치는 무척 사적인 관계로 보이기도 하고 건설을 명 받은 이의 예속된 상황으로 읽히기도 한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피지컬 씨어터가 가지는 몸의 개방성 덕분에 관객의 의미 찾기 혹은 받아들이기 혹은 발견하기의 과정은 그 어떤 것이든 자유로울 수 있다. 그 중 내가 ‘Hammer Work'에서 본 것은 여성의 몸에 덧씌어진 음악, 언어, 소리, 의상이 여성의 몸이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무엇이 몸이 되어버렸는가 하는 하는 문제. 결정적으로 망치가 그녀의 몸이 돼버렸다는 것은 망치의 감각으로 그녀가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L'autre>는 붉은 카페트 위에서 가구와 함께 움직이는 한 남자를 보여준다. 들어가고 닫고 열고 나오고 부딪치고 소리내고 객석을 보고 다시 들어가고. 그런데 가구가 움직임의 주체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물론 퍼포머가 구동하는 것이지만 가구가 사내를 삼켜버리고 입을 안 여는 듯한 부분이나 가구가 사내와 함께 카페트 위에 고꾸라진 후 계속해서 사내를 물고 놔주지 않는 것 같은, 또 사내가 그런 가구를 때리는 모습 등이 그렇다. 무대에는 남자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L'autre>(Claudio Stellato 연출·출연)

<The Immovable Traveler>(Nicanor de Elia 연출·출연)

 

 <The Immovable Traveler>는 곤봉 저글링과 춤을 엮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솔로 공연이다. 춤추고, 곤봉을 던지고 받고,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중지를 세워서 관객과 장난치듯 놀이한다. 그러다 또 장난 같았던 그 손짓들을 발전시켜 춤을 춘다. 그는 뛰어오르고 나사가 돌아가듯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가 또 튀어오른다. 그는 활기차다. 극장 천정이 저글링을 하기에는 낮은 편이라 퍼포머가 조심스러워 하는 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칫하면 곤봉이 조명기에 부딪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대 뒤쪽에 배치된 접의식 의자들 때문인지 무대는 대기실이거나 오디션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입을 벌리다>에 등장하는 서정적이고 단정한 몸과 <Hammer Work>에 나오는 망치와 합체된 몸이다. 둘 모두 여성의 몸이다. 전자에서 빛의 변화를 보며 시간과 소녀를 상상했다면, 후자에서는 구속과 건설이라는 전혀 다른 층위의 망치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의미나 이야기를 좇는 관객의 습관을 버리려고 했을 때는 두 작품 모두에서 고정돼 있지 않은 몸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_바나나문 제공 (1.2.3.4.5)]

 

  제7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극한의 신체의 움직임을 위한 솔로 공연의 향연!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은 섬세하고 파워풀한 배우의 움직임을 통해 극을 전달하는 피지컬 씨어터를 위한 축제이다. 2012년 <제7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은 솔로 공연으로 구성하여, 더욱 파워풀한 신체의 움직임을 강조하려 한다.

 신체와 오브제가 만남!

2012년 <제7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에서는 다양한 오브제와 장치들이 신체와 만나는 공연들로 구성되어 있다. Dame de Pic의 <The Scarecrow Cycle>에서는 긴 대나무를 이용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Tresuomi>에서는 박스, 천, 곤봉, 망치 등의 오브제를 활용하는 공연들을 선보인다. 두 댄스 씨어터의 초연작 <입을 벌리다>는 조명을 이용하여, 빛의 움직임과 신체의 움직임을 접목한 공연을 만날 수 있다. 창작집단 거기가면은 마스크연극 <MEN…>으로 섬세한 연기의 폭을 보여줄 예정이다. LIG 아트홀에서 초연한 바 있는 모아트의 <백(白)>은 영상과 움직임이 견고하게 만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김보라의 <혼잣말>은 라이브음악과 움직임이 만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다. 주정민은 <대화의 접근>으로 ‘대화’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을 보여줄 계획이다. 뉴라인의 <피곤한 산책>은 기억과 공간, 카메라를 통한 감각의 접근 등으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려 한다.

 관객과 함께 해 더욱 풍성한 축제!

올해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의 부대행사로는 ‘신체극’이 어렵고 낯설다는 생각을 바꾸고,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관객과 함께 하는 부대행사들로 꾸밀 예정이다. 똥자루 무용단이 준비하는 워크숍은 일반 관객들에게 신체극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게 하여 쉽고 가깝게 신체극을 만나게 하고자 한다. 올해로 3회를 맞는 “관객비평단” 역시 일반 관객의 시선으로 리뷰를 작성하고, 토론의 자리를 만들어, 신체극에 대한 친밀함은 물론 신체극을 바라보는 다양한 의견을 만날 수 있게 하려 한다. 또한, ‘몸’을 주제로 하여, 지금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몸의 신체성’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담화의 시간도 갖도록 한다. 

 피지컬 시어터 페스티벌 홈페이지 바로가기 >>> http://www.physicalthea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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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2009년) >>> http://indienbob.tistory.com/144 ,  http://indienbob.tistory.com/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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