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가다] 선셋장항페스티벌 공장미술제 - 장항과 공장과 미술

2012. 7. 26. 21:22Review

 

선셋장항페스티벌, 공장미술제

장항과 공장과 미술

 

글_성지은

 

  우리가 탄 차는 서울을 떠난 지 2시간여가 지나 장항으로 들어섰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좇아 장항역을 찾아 가는 길 양옆에는 페스티벌을 알리는 분홍색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흐렸던 날만큼 흐린 장항의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고, 그저 쨍한 분홍색 현수막들이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장항역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었고, 지도는 다시 장항화물역을 가리켰다. 장항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화물역은 장항역보다는 건물도 많고 바다도 가까운, 소위 시내라고 불릴만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란스러움이 있어야 할 그곳 역시 회색빛을 띄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것이 장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지난 7월 14일, <선셋장항페스티벌>이 열렸던 장항을 찾았다. 충남 군산 근처의 작은 항구도시인 장항을 ‘무경계 예술캠프’로 만들고자 한다는 이 페스티벌에는 메인 행사인 ‘공장미술제’를 비롯하여 ‘트루컬러스 뮤직 페스타’, ‘힐링 캠프’, ‘매직 믹스쇼’ 등 여러 가지 부대행사들이 열렸다. 죽어가는 장항에 문화행사를 통해 예술의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공장미술제’였다. ‘공장’에서 ‘미술제’를 연다, 그리하여 원래의 기능을 상실한 낡은 공장을 미술제를 위한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새로운 공간이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공장미술제’는 1999년 샘표 공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3회까지 진행된 후 중단되었고, 2012년 장항에서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전국의 여러 대안공간들과 백여 명의 젊은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젊은 작가와 공장의 조합은 다소 위험할지도 모른다. 혈기왕성하고 다소 거칠지만 열정이 가득 찬 젊은 작가들과 허름하지만 육중한 공간감을 가지고 있는 공장의 만남은 어울리는 듯 보이고, 실제로 작품과 장소가 서로 도와 엄청난 감성적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패했을 경우 그 결과는 참담하다. 작품과 장소가 서로를 누르고 깎아내려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꼭 허름한 공장에 어울리라는 법은 없다. 여느 예술 영역이 그러하듯 미술 역시 자본이나 유행의 힘에 이끌리기 마련이고 미래를 꿈꾸는 젊은 작가들은 세련됨과 진부함을 혼동하고 만다. 자칫하다가는 진부한 작품에 관성적인 디스플레이가 더해져 뻔한 전시를 만들고 마는 것이다. 이번 공장미술제는 이러한 전시의 특성과 더불어, 몇 년 만에 다시 열린다는 점과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낯선 지방 도시에서 열린다는 점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기대와 우려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낳았을 것이다.

  장항의 공장미술제는 총 세 곳에서 진행되었다. 금강중공업창고, 미곡창고, 어망공장창고. 모두 원래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였던 곳이 이제는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간극과 변화가 어떠할는지, 그리하여 태어나는 새로운 공간이 과연 어떤 느낌일는지 궁금해하며 제일 먼저 금강중공업창고를 찾았다.

 

 

<공장미술제> 금강중공업창고 전시 전경

 

   창고 문을 들어서자 꽤 넓고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의 끝은 열려있고 그 뒤로 창고 밖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 마치 전시공간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다. 창고의 한가운데에는 합판으로 한 층짜리 건물을 쌓아 그 위를 올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 임시건물의 벽, 내부 공간, 위 층 등 온갖 곳에 그림과 영상이 설치되어 있어, 건물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작품-동물과도 같았다. 그 주위 역시 칸막이를 설치해 작은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다양했다. 회화, 조각, 설치, 영상. 자기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 사회의 이야기. 작품들 사이사이 돌이나 진흙, 쓰다 버린 듯한 목장갑, 전동드라이버, 구겨진 종이 등이 보였다. 그 중에는 작품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도 있었다. 어떤 것이 작품이고 어떤 것이 작품이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원래 작품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지금도 작품인 것일까?

 

  아마도 그런 모호함이 공장에서 열리는 전시의 매력일 것이다. 화이트큐브에서는 어떤 물건이든 놓기만 하면 작품이 된다. 그렇지만 어두운 공장과 같은 곳에서는 어떤 작품이든 그저 작품인 것만은 아니게 된다. 공간은 작품에 간섭하고 작품은 주위 사물들과 함께 공간 안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작품은 살아나고 어떤 작품은 죽으며 어떤 작품은 변화한다. 그렇게 해서 작품과 공간이 서로 다른 것으로 바뀌어 무엇인가가 생겨난다면, 그것을 비로소 성공한 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강중공업창고에서 보여준 공간에 대한 고려는 미곡창고에서 더욱 드러났다. 세 군데의 전시공간 중 가장 넓고 큰 미곡창고에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그래서 복잡하게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다.

 

 

미곡창고의 외부, 내부 모습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공간 특유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아직 덜 마른 페인트, 본드 냄새가 코와 눈을 찔렀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공간은 말 그대로 미로를 품고 있었다. 이리저리 작품을 찾아 다니다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보았고 어디를 보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상만이 빛나고 있는 어두운 공간에서 길을 잃을 때면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소리를 따라갔다. 그렇게 무작정 좇아가면 한 켠에 마련된 오프닝 무대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알록달록한 설치작품들이 오프닝이라는 축제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금강중공업창고의 전시가 창고 자체, 그 쓰레기까지도 활용했다면 미곡창고의 전시에서는 커다란 회색 공간을 수십 개의 작은 공간들로 나누는 자유로움이 돋보였다. 창고 내부를 온전히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디스플레이는 창고의 외부까지도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언뜻 보면 다 찢어진 플랜카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글귀를 담고 있는 작품이 창고 전면에 걸려 있었고, 창고 뒤편에는 비닐과 pvc가 구조물을 형성하고 있었다. 창고 안팎을 돌고 나니 머릿속은 온갖 작품들과 그것들이 뿜어내는 각각의 기운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미곡창고는 겉과 속을 채우는 작품들로 들썩거리고 있었다.

 

 

어망공장창고 전시 전경

 

  마지막 어망공장창고는 세 전시공간 중 가장 작고 아담한 곳이었다. 또한 공간의 구획이 가장 단순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범상치 않았다. 아주 세밀하거나 기괴하거나 기발한 작품들이 걸려있었고, 이들은 전시장 벽에 군데군데 남아있는 낙서나 공장시설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비린내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초현실주의 작품과 같은 의자, 악취의 근원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는 박제된 새, 기괴한 모습의 남녀가 있었고, 소름끼치는 돼지나 인물들, 세밀하게 손으로 그려낸 환상의 세계도 있었다. 전시장 중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전시를 다 보고나서는 괴물처럼 생긴 환상의 생물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쬘 수 있었다.

 이렇게 2012년 공장미술제를 둘러보았다. 많은 작품을 보았기 때문에 본 것들을 일일이 다 끄집어낼 수는 없지만, 전시를 통해 지금 여기 젊은 작업들의 흐름을 거칠게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회화의 본질에 맞게 열심히 그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개념이 주는 통찰력과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사실을 포착하려 애썼고 누군가는 환상을 실재로 만들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누군가는 타인의 세계를 풀어내었다. 누군가는 지나간 기록을 불러오고자 했고 누군가는 앞으로 나타날 기록을 만들었다.

 

 

장항

 

  아마도 이 날이 요 근래 장항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나타났던 날일 것이다. 세 집 건너 한 집이 폐가이고, 흔한 구멍가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장항에 한 무리의 젊고 늙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선셋장항페스티벌은 회색빛 장항을 과연 자유로운 예술캠프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을까? 공장미술제는 회색의 공장을 톡톡 튀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장으로 탈바꿈 하는 데에 성공한 것일까? 적어도 내가 겪은 공장미술제에서는 공간의 특성과 작품의 특성을 고려한 노력이 보였다. 작품들의 완성도도 높고 참신함과 예민함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있었다. 공장미술제를 통해 낡은 공간을 다시 바라보고 젊은 작가들의 날카로운 감수성과 힘을 볼 수 있었다. 이 전시는 장항을 찾은 타지 사람들에게는 회색을 배경으로 한 한낮의 축제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공간을 내어준 장항 사람들에게도 그저 짧은 꿈이 아닌, 계속 이어질 축제가 되었기를 바란다.

 

사진 1,2,3,4,5,6,9 = 성지은

7,8 = 김한결

 

 

글_성지은

소개_삶은 춤추듯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