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비뇽페스티벌 2 _ 거리여행의 기록

2012. 9. 18. 12:09Review

 

아비뇽 페스티벌 2

 

거리여행의 기록 _ 극장 밖에 드라마가 있다,하니

리경

 

아비뇽 페스티벌.

축제에 머무는 이 마음, 여행을 즐겨요.

 

극장을 거점으로 한 페스티벌이 아닌 어느 특정한 공간에 터를 잡고 축제가 벌어지는 경우, 그 공간 전체가 극장이 된다. 일상과 일상에서 벗어난 것들이 혼재하는 또 다른 드라마의 장소를 걷는다는 것만으로, 공연의 산책자이며 여행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교황청 공연은 그리 지나가고,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나는 다시, 거리로 나선다. 



조금은 익숙해진 거리에 도착하여 어제 걸었던 길부터 걸어본다. 지나며 봤던 그 공연과 박수소리가 들린다. 발걸음이 오래 멈추지는 않지만, 어제의 기분을 되살리기에는 충분하다. 들뜬 마음에 두리번거리며 봐두었던 포스터들도 눈에 띈다. 조금 더 여유있는 걸음으로 다가가 포스터를 살핀다. 오늘은 작은 극장의 공연들을 봐볼까. 어제의 다음날, 같은 공간에 서니, 낯섦과 익숙함이 섞인다.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불러온다. 아, 여기는 프랑스 아비뇽이다. 

 


어제는 큰 공연에 시선을 빼앗겨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의 놀이 공간. 거리의 점들을 매우고 있는 사람들. 자신들 앞에 머무는 사람이 얼마이든 잠깐을 머문다해도, 자신이 관심있고 좋아하는 행위를 함께 한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 그들이 하는 퍼포먼스. 시작도 끝도 정해지지 않는 행위의 시간. 그 공간들을 거치며 나는 계속해서 정착하고 이탈하기를 반복한다.




극장 건물을 구경하고나면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눈이 간다. 골목길 극장 앞에 자리한 사람들.  짧은 여유의 시간을 즐기는 각자만의 방식. 함께 온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 다양한 모습으로 이 축제의 거리를 즐긴다. 그 시간은 공연을 위해 보내는 여분의 시간이라기보다는, 공연을 보는 시간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독립된 시간이다. 이것이 축제의 거리가 주는 자유로움이다. 




결혼식이 행해진다. 페스티벌의 거리이기에, 결혼식이 실제인지 퍼포먼스인지 묘하기만하다. 결혼식이 또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닐까 줄곧 신랑신부 하객들을 지켜본다. 장소 외에 다른 이례적인 행위도 뉘앙스도 없다. 실제 결혼일까. 후에 저들은 결혼식을 어떻게 기억할까. 공연을 한 것처럼 기억하지는 않을까.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치는 또 다른 사람들도 의도하지 않는 하객이 된다. 순간 아비뇽 페스티벌 공간 전체가 결혼식장이 되는 느낌이 든다. 거리에서 누군가의 삶의 한 페이지가 쓰여진다. 

 


조용한 골목 귀퉁이에서 다리를 쉬고 있자니 음악이 흘러나온다. 페스티벌에서 들리는 음악이 아니다.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와 행인 몇 뿐이다. 고개를 드니 그녀가 보인다. 페스티벌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일상적이고 차분한 표정의 그녀. 누군가는 이곳에 살고 있다,라고 생각하니 일상과 비일상적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누군가에게 이 곳은 그저 삶이 지속되는 하나의 현실이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사람들, 일어나는 공연들. 그리고 다시 텅 비는 거리.에서 살아가는 삶. 나는 한참을 앉아 가장 진한 드라마를 말없이 보고 듣는다.



다시 노을이 진다. 종일 걸어다니는 행위, 나는 산책자이자 여행자로서 이 공간에서 연기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나와 함께한다. 서로는 서로를 인식하며 설렘을 보태고 이 공간의 역동성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는 거리와 사람들을 관찰한다. 관객으로서 존재한다.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많은 퍼포먼스, 페스티벌 속에 현실의 한 단편을 맡긴 인생들의 퍼포먼스, 퍼포먼스 없는 산책자의 퍼포먼스까지 뒤엉킨다. 

이렇게, 어느 드라마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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