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8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책, 청춘을 껴안다" 

 

 

- 제8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책, 청춘을 껴안다"

<거리에서, 책과 함께>

 

글_이시욱

 

와우북페스티벌에 가는 길,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초조해하는 것은 죄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책에 관련된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어서 항상 많은 책에 둘러싸여 지내는 터이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니다.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는 책 더미가 의식되면 어느새 초조해지고 만다. 초조함의 정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언제 다 읽지?”

초조함의 강도는 책의 양에 비례한다. 북페스티벌을 꺼리는 이유다. 곧 죄책감이 될 것들을 한 무더기 끌어안고 돌아올 게 뻔하니까.

북페스티벌, 그러니까 ‘책이 주인공인 축제’니 만큼, 활기 어린 분위기 속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책은 읽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어떤 색다른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책이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북 아트 작품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북페스티벌 때마다 중노동을 감당했던 여행용 캐리어는 원래 있던 구석에 그냥 놓아두도록 하자. 마음 속 초조함도 캐리어와 함께 구석에 내려놓자. 가볍게 출발해서 가볍게 돌아오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거리로나온책-CAFE 북캉스를 찾은 관객들

서울와우북페스티벌-개막식모습

 

하지만 기대와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돌아오는 길, 두 개의 쇼핑백에 가득한, 양어깨를 내리누르는 책들은 이제 슬슬 죄책감으로 탈바꿈할 태세다. 그런데…… 이게 반드시 내 잘못일까? 내 욕망과 충동을 컨트롤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래 이건 지름신 탓이야.

일단 내 탓이 아니라고, ‘지름신 탓’이라고 말해보자. 그러고 나서 오늘의 행동을 찬찬히 되짚어보니 석연찮은 게 있다. 북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북페스티벌’ 보다는 ‘북마트’란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 지름신이 강림할 수밖에 없는 포맷인 것이다. 북페스티벌의 주목적이란 결국, 여러 출판사의 책을 한 데 모아 소비자 가격보다 더 싸게(종종 아기자기한 사은품을 얹어서) 파는 것일 테니. 축제에 참가한 출판사와 참여한 사람들은 주로 판매자와 소비자로서 관계를 맺고 소통한다. 책을 두고 오고가는 이야기는 어떤 책의 할인율이 얼마인지, 즉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가 대부분이다. 당연한 게 아니냐고?

‘싸게 살 권리’를 누리려면 ‘마트’에 가는 게 옳다. 물론 주최 측이나 출판사에서 준비한 다양한 행사와 강연들, 거리 공연들이 있다. 하지만 어쩐지 ‘북페스티벌’의 맛을 내기 위해 인공조미료를 뿌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책이라는 건 여러 번 곱씹어야만 비로소 진짜 맛을 알 수 있는—바로 그런 이유로 그닥 인기가 없는―식재료와 같아서 책 자체가 주목 받을 일은 드물다. 물론 먹지않고(읽지 않고) 진열해두는 전시상품으로서의 책이란 변함없는 욕망의 대상이지만 말이다. 책의 전시가치를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책만큼 훌륭한 전시물도 없을 터이니.

그럼 책으로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책을 사고파는 것 말고, 사서 읽는 것 말고, 그러다 어떤 작가의 팬이 되는 것 말고, 행사장에 찾아가 강연을 듣고 싸인을 받는 것 말고—이 모든 행위에서 독자가 수동적 객체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는 것 말고—과연 뭘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거리에서 말이다.

축제의 장소가 (코엑스와 같은) 실내 전시장이 아니라 거리라는 사실은 곱씹어볼 점이다. 일단 ‘탁 트인 거리’는 ‘꽉 막힌 실내’와 대비를 이룬다. 게다가 청춘의 에너지와 실험정신이 약동하는 문화예술의 거리 ……라고 알려진 ‘홍대 앞’과 ‘책’의 조합은 모종의 기대를 품게 한다. 유행과 소비의 거리인 홍대 앞 한복판에 책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는 것이나 오고 가는 사람들이 주변의 다른 가게들이 아닌 책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풍경이다. 거리로 나온 책. 거리를 품은 책.

 

서울와우북페스티벌 거리도서전 풍경

▲ 거리로 나온 책-사랑의 책꽂이 (책기부 문화캠페인)

 

하지만 평소의 홍대 앞이 책과 거의 상관이 없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단적인 예로 홍대 앞에는 서점이 없다. 최근 들어 몇몇 출판사들이 북까페를 열어 문화 거점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거기에서도 사고파는 일이 주를 이룬다. 언뜻 보면 책이 중심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행사는 광고효과를 노린 일회적 이벤트일 뿐이다. 축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인 지적·정서적 포만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뿐이다.

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책은 없다. 비단 북페스티벌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진리인지도 모른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것. 그러니까 북페스티벌에 책이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럼 책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말한다.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건 쉽다고. 하지만 문제점을 넘어서는 어떤 구체적인 방법이나 지침을 제시하기란 어렵다고. “그럼 뭐 뾰족한 수라도 있어?”라는 반문과 맞닥뜨리게 되면, 문득 초조감이 밀려든다. “이 답 없는 청춘들아. 답도 없는 주제에 불평불만만 많은 청춘들아.” 환청이 들리는 듯도 하다. 주눅이 든다.

‘청춘’이라 부르지만 실은 ‘소비자’다. 단적으로 말해 (패션이 외모적 측면의 허영심을 기반으로 한다면) 책은 지적 허영심을 기반으로 하여 이뤄지는 소비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책을 진지한 태도로 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도 이전과 비교하면 현저히 드물어졌다. 처리해야할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기억하는 법보다 망각하는 법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책을 오래두고 보기보다는 한 번 재빨리 훑어보고 요점을 파악한 후 잊거나 버리는 게 미덕이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 유니클로로 대표되는 패스트패션과 삼각편대를 이루는 패스트북(fast-book)의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 청춘에게 요구되는 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 빠르기—속도에 적응할 것, 변화할 것. 나아가 속도 자체를 즐기고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 뾰족해 질 것.

그러니 책 앞에서 우리가 초조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그 책이 카프카의 소설이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죄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던, 죄의식의 달인(?)이었던 카프카를 떠올리며 몇몇 행사를 둘러보았다. 최대한 초조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 특별행사. 조영남 "천재시인 이상을 노래하다" 강연

▲웃음꽃 핀 책 놀이터-북케스터가 읽어주는 '황소와도깨비'(이익선 방송인)

우선 간 곳은 책 낭독 행사가 있는 곳이었다. 작가 자신 또는 전문적 소양을 갖춘 이가 낭독하는 행사도 있었지만 일반인들의 경우가 궁금했다.

낭독과 관련하여 카프카는 약혼자였던 펠리체 바우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낭독하기를… 미칠 듯이 좋아한다오. 청중들의 주의 깊은 귀에 대고 부르짖는다는 것은 이 가련한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오. …… 인간들을 호령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 명령을 신임하도록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알고나 있는지—신체를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쾌감은 없을 게요.”

카프카는 낭독을 ‘미칠 듯이’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낭독을 부르짖음과 호령, 명령에 비유한다. 맞다. 낭독은 단순히 책에 쓰여진 글자들을 소리 내서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낭독이란……

<어머니가 읽어주시는 동화책과 재미난 책놀이!>라는 타이틀의 낭독 행사가 있을 거라던 E구역 주변은 조용했다. 호령하듯 낭독을 하는 사람도, 낭독에 집중하는 사람도, 낭독을 들으려온 사람도 (나 말고는) 없었다. 조금은 어수선한, 그러나 전체적으론 고요한 분위기. 벤치에 앉아 기다려봤지만 낭독을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어수선함. 고요.

그럼 그렇지. 행사다운(?) 행사가 시작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지. 무늬만 행사인 행사였어. 낚였어.

하지만 난 뭘 기대한 걸까? 설마 터무니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낭독하는 카프카? 지금은 카프카의 시대가 아니다. 책을 낭독하는 것 말고도 시간을 보낼 오락거리는 많다. 책도 많다. 문자해득률도 높다. 우리는 문자에 둘러싸여 있고 문자를 목소리(육성)보다 신뢰한다. 문자강박증. 굳이 남이 낭독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바쁜 시간을 쪼개 모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딘가에 모이는 대신 우리는 책을 산다. 그렇게 내 것이 된 ‘내 책’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책을 펼친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혼자서 책을 읽는다. 아니, 책을 본다.

낭독 행사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리플렛에 따르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무대 위에서 낭독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어떤 식으로 낭독을 할지, 분위기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그날은 따로 일정이 있었다.

현재 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낭독을 장려하는 편이다. <말테의 수기> 일부를 (휴대폰 녹음 기능을 이용해) 녹음해본 적도 있다(해보면 재밌다!). 책을 읽다가 몰입하기 힘들거나 이해하기 힘든 대목은 낭독을 해보곤 한다. 이런 시도들을 해본 결과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낭독은 무척 힘들다!

10분. 그러니까 하루에 10분을 내서 낭독에 투자한다고 해보자. 직접 시도해보면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낭독하기에 적당한 공간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낭독에 적합한 차분한, 초조하지 않은 마음 상태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낭독을 막상 시작하면 또 다른 초조함이 찾아온다. 눈으로 읽으면 훨씬 빨리 읽을 수 있는데 내가 왜 이걸 굳이 낭독하고 있지? 눈은 입보다 빠른데.

행사다운 행사가 없을까. 걷다가 도착한 곳은 서교예술실험센터. 지하에는 아티스트 BDO와 료지(RyoG)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를 주제로 한 일러스트들이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나 혼자 뿐이었다.

 

 

세 개의 물음표를 겹쳐 만든 문양을 새긴 전시 작품 앞에서 잠시 서 있었다.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문득 내 머릿속을 일러스트화한다면 이 작품처럼 닮은 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란 뭐지? 축제란 뭐지? 낭독이란 뭐지? 그러다 문득 박완서 선생의 글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 박완서, <그 남자네 집>

명령과 호령에 비유된 카프카식의 낭독만 낭독인 건 아니다. 제대로 준비된 행사로서의 낭독만 낭독인 것도 아니다. ‘책놀이터’에서 낭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딱히 볼 것도 없었지만, 그럴 듯하게 꾸며낸 ‘볼거리’를 바라는 것 역시 뭔가 이상한 태도이긴 하다. 책을 매개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고, 모인 곳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군가, 책을 매개로 하여, 거리에서 어떤 일을 벌여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선은 그것으로 충분한 게 아닐까. 고민의 결과가 뾰족한 답이나 그럴듯해보이는 성과로 이어졌느냐의 여부는 부차적 문제다. 물론 그런 장소와 분위기가 축제 기간 동안만 한시적으로 제공되고 허용된다는 건 따로 생각해볼 문제겠다.

그러고 보니 낭독회든 전시든 행사장은 사람이 없고 조용한 반면, 책을 사고파는 ‘북마트’는 북적댔고 시끄러웠다. 북페스티벌의 양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소비행위와 그것을 촉진하기 위해 꾸며낸 볼거리와 매끄럽게 진행되는 이벤트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아닐까. 매끄럽지 않음과 어수선함과 고요를, 초조함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여유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덧붙이는 이야기. 낭독을 한다고 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해가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카프카의 작품을 낭독한다한들 카프카의 의도나 작품세계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는 여전히 남는다. 카프카가 쓴 글들은 독자로 하여금 최소한의 진지한 태도를 갖게 만드는, 해결될 가망이 보이지 않는 ‘?’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을 읽고 나서, 혹은 읽기 위해 여럿이 모인다면 어떨까? 각자가 간직한 여러 개의 ‘?’가 겹쳐질 것이다. 그것은 내가 지하전시장에서 바라보고 서 있던 일러스트 작품과 닮은 모양일 수도 있으리라.

 

사진출처 : 1.2.3.4.5.6.7.10 서울와우책문화예술센터 제공 / 8.9 필자  

 

 필자_이시욱

 소개_ 은평구에 위치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막막한 이들을 위한 독서 모임 (줄여서 ‘막독’), 고전영화 상영회 등을 기획·진행하고 있다. 

 

인디언밥 관련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558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2sangbook.com/

 

 

제8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시간 : 20120918 - 20120923

장소 : 홍대 주차장 거리, 서교예술실험센터, 대안공간, 카페 등

 

 서울 와우북페스티벌은?

이미지 및 내용 출처 : 서울와우북 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wowbookf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