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좀 주세요.

2009. 4. 10. 12:3307-08' 인디언밥

물 좀 주세요.
  • 김도히
  • 조회수 915 / 2008.05.28

홍대 인디씬에서도 괴짜라고 소문난 몇 명은 끼리끼리의 원리에 입각하듯 이미 잘 아는 사이였고, 그런 그들은 꺼내자니 막막한 정도의 긴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물 좀 주소’를 앨범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한대수에 대해 무한한 경외심은 존재했으나 뚜렷한 계획은 없었다고 하니, “그냥 등산하다가 나온…”이라며 뭉뚱그려 흘린 최윤성의 작은 목소리만이 앨범의 단서였다.



<△ 최윤성>

인디밴드 스트레칭져니의 창단멤버이자 지속력이고, 또한 이번 앨범인 ‘물 좀 주소’의 제작자이자, 기획자이며 Festival Bom:에서 선보인 공연 ‘물 좀 주세요’의 연출인 최윤성.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앨범과 관련된 공연은 이후에 없을 것이라 말했다. 답을 하는 그의 목소리야말로 물을 바라는 듯 들린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공들였으나, 인디씬에서 제작된 한대수 트리뷰트앨범 이라는 의미 담뿍의 수식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니, 이 앨범은 정말 “그냥, 재미”인걸까. 플레이되는 CD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무대>

접근성에서 심각한 에로사항을 가진 석관동 예술극장은 봄(3월의)임에도, 그리고 또 하나의 봄(Festival Bom:)안에 있음에도 여전히 쌀쌀했다. 더불어 오히려 언짢고 낯설게 들리는 ‘물 좀 주세요’라는 공손한 타이틀도 냉랭한 예술극장 안에서 심드렁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식어가고 있었다. 시작은 그러하였다.

 

<△ 공연 전 무대에 오른 한대수>

한대수가 등장했다. 며칠 전 라이브클럽 빵에서 보았던 그의 12집에 실린 다큐멘터리 Way home이 떠올랐다. 끊임없이 떠도는 것이 삶인 사람. 다큐멘터리 타이틀과 그의 실제 삶은 부조화였지만 영원한 불일치마저도 음악 안에서는 가능했고, 이해됐다. 그러나 곳곳에 숨어있는 음악을 찾아내고, 그것이 삶의 재미인 그에게 이제 음악은 실험도 저항도 아니었다. 더 이상 앨범을 내지 않겠다던 그가 12집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이제 한대수는 시간과 함께 핀 검버섯에조차도 ‘활짝’이라는 긍정적 수식어가 어울릴 사람이었다.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보는 음악은 관객을 무덤덤하게 만든다. 깊게 눌러앉은 좌석은 가볍게 까딱거리는 고개의 흔들림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고,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공연을 끝내버렸다.

 


<△ 모베사운드로 앨범에 참여한 남상아>

‘물 좀 주세요’는 이틀 동안 공연되었는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남상아의 경우는 이틀 모두 출연하였고, 둘째 날 훨씬 편안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하루의 경험으로 그들이 무대에 익숙해졌거나 혹은 내가 음악을 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까. 아무튼 여기서 편안한 무대란 적어도 노래 가사를 들으려 혹은 그 속에서 ‘물 좀 주소’의 흔적을 찾으려 애쓰는 어리석음은 접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 불싸조와 구동희의 영상 '파주가는 길'>

구동희의 영상 <파주가는 길>과 함께 무뚝뚝하게 음악만 퍼부어대던 불싸조. 내내 악기만 쳐다보고 연주만 해대던 기타리스트가 꺼낸 말이라고는 고작 한대수 1집 LP에 싸인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뿐이었다. 연주한 모든 곡에 한마디의 가사도 존재하지 않음은 그들이 표현하는 음악의 강력한 순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인가 싶었고, 동시에 음악은 그저 영상의 속도감을 위한 서브텍스트일 뿐인가 의문이 들었다.

 

<△ 아주지>

<△ 무대위의 관객은 더이상 청자가 아니었다.>

아주지와 갤럭시익스프레스는 다른 방식의 호응을 얻었다.

형식상의 인터미션을 잘 넘긴 관객에게 주는 선물처럼 아주지는 무대를 클럽으로 바꾸었다. 앞의 공연이 영상, 사진 등의 인위적 장치로 음악으로의 무대예술을 보여줬다면, 아주지는 관객과의 절묘한 소통으로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것임을 확인시켰다.

 

 


<△ 갤럭시익스프레스>

갤럭시익스프레스의 개러지록은 석관동에서도 여전했다. 휑한 공기와 정적 따위 개의치 않는 기타리스트의 독특한 몸짓과 추임새는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드디어 안도를 주었다.


같은 시공간을 함께 향유하는 것에 음악만큼 노련한 장르가 없다. 예를 들어 청자의 감정을 고려하여 곡이 2분 47초쯤 되었을 때 폭주하는 기타솔로를 삽입하겠다는 식의 계산이 없이도 음악은 설득이 가능하다. 홍대 앞 라이브클럽이 나름의 존재이유를 가짐도 이 설득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한 수 위이며, 적어도 그것에 유행이나 대중의 눈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을 표현해왔고, 교감한 관객들은 반응했을 뿐이다. 석관동에서의 공연 첫날, 이 소통에 성공한 팀은 아주지와 갤럭시익스프레스였다.

 


<△ 코코어와 밸리댄서>

둘째 날, 같은 이유에서의 만족은 코코어였다. 그러나 또 달랐다. 유연한 볼거리로 밸리댄서를 등장시킨 그들은 그저 새로운 공연 장치와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관객은 또다시 음악을 봐야하는 듯 했다. 그러나 한 곡이 채 끝나기도 전 상황은 바뀌었다. 음악이 주가 되어 타장르와 함께 무대에 올랐을 때, 그것은 눈의 감각을 깨움으로써 관객의 음악 동화에 활력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코코어는 몸소 전했다. 어느 순간 관객은 스스로 음악이 되어 있었고, 눈으로, 귀로, 또는 입으로 함께 밸리댄스를 추었다.

 


<△ 스트레칭져니의 최윤성>

스트레칭져니와 최윤성. 마치 원곡을 묘사한 것처럼 분위기는 흡사했으나, 기우뚱거리는 엇박자는 또 다른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순수를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채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걷고 있는 불안함. ‘물’을 원하는 간절함이 가장 쉽게 느껴지던 그의 공연을 보며, 정리할 수 없는 답과 두리번거림으로 인터뷰를 채우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 건 왜일까.

 


 

 

<△ 어어부프로젝트>

어어부프로젝트. 밤 아홉시 반에 공연 중인 무대에서 두리번거리며 족발을 찾았고, 찾았다. 그리고 막걸리를 흔들고, 오징어를 씹었다. 담배를 피웠고, 객석의 몇몇은 무대로 나가 같이 즐겼다. 무엇을? 음악을? 아니면 족발과 막걸리를? 분명 음악공연이었다. 꾸준히 생라이브의 트로트들이 나열되었고, 장구와 징 등의 리듬악기도 존재했다. 그러나 모호했다. 조건에 만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합류시킨 순박한, 아니 어쩌면 천박한 무엇처럼 느껴졌다.

 


어어부프로젝트와 백현진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아니까 물음표라도 피운 것이다. 늘 하던 퍼포먼스라고 여겨야할지, ‘물 좀 주세요’라는 타이틀에 걸쳐진 애걸의 결정체로 봐야할지, 아니면 직역되어지는 감정의 언짢음이 목적인 것인지. 순간순간 웃음소리는 들렸으나 그것이 소통이 아닌 구경의 손가락질로 느껴진 건 나만의 생각일까.

 

 


다원예술축제 Festival Bom:의 프로그램이었기에 음악 그 이상을 바랬다. 응답하듯 음악 이외의 장치들이 인스톨레이션이나 영상의 역할로 삽입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 틀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 좀 주세요’에 한대수는 없었다. 앨범 ‘물 좀 주소’의 본격 작업이 들어가던 순간 이미 한대수는 사라졌다. 무엇이 먼저인지를 따지지 않으며, 누구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저 홍대 앞 인디음악이 가진 또 하나의 실험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그들은 앨범에 담은 그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으로 공연을 행한 것이며, 그 이외의 의미는 바라지도 탐내지도 않았다.

 

인디씬에서 앨범이 제작된 것에 의미 두지 않으며, 이 앨범은 리메이크도 트리뷰트도 아니라고 최윤성은 말했다. 상징성과 영향력으로 범벅이 되어 대중음악사에서 최초의 언더그라운드라 불리는 한대수의 1집을, 자유와 저항의 음악이라 평가받는 ‘물 좀 주소’를 인디씬에서 건드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앨범을 놓고 사회가 또다시 펼쳐놓은 한대수에 대한 대단한 평가 이전에, 지금의 인디씬과 뮤지션들이 가진 이면의 ‘물’은  늘 존재했으며 동시에 음악의 진정성을 향하는 그들의 고민이 이 앨범에 담겼음을 알아야만  한다.

보충설명

아마추어증폭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갤럭시 익스프레스, 모베사운드,
마포소년소녀합창단, 불싸조, 아주지,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냉면, 판다풀
스트레칭져니, 코코어가 참여한 앨범 <물 좀 주소 프로젝트>는
핫트랙스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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