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이다展" -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곳

2012. 11. 10. 23:34Review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드는 곳

"모이다展"

 

글_성지은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작게나마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아마 꽤 오랜 시간동안 글 때문에 울고 웃으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글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주었던 십 여년 전 미술학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직도 제 책상 위에는 색연필, 파스텔, 연습장 등 자잘한 그림도구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타를 치기도 합니다. 비록 음악에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 버렸지만, 아직도 밴드를 만들어 무대에 서는 상상을 해 봅니다.

누구나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트위터의 140자 안에 온갖 것들을 다 담는 친구도 있고, 자기만의 멋진 블로그를 만들어 매일 창작물을 쏟아내는 친구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만 아는 멜로디를 가만히 흥얼거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 커 버려 직업도 생활도 정해져 버렸지만, 아직도 어린 시절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가 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전시가 있었습니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이 상수역 근처 작은 전시공간인 ‘재미공작소’를 빌려 낮 두시부터 밤 열시까지 여덟 시간동안 모여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글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기타를 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모든 사람들을 모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날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보았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모이다> 전은 여러 독립출판물을 한 자리에 모은 자그마한 자립전시입니다. <미열>, <순진>, <42>, <록셔리>, <꿀>, 그리고 <퍼블리시> 이렇게 여섯 개의 독립출판물이 전시되었고, 사진작가 김상태의 <소>가 전시되었습니다. 밤에는 디제잉이나 밴드 공연 등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5월이 첫 번째 전시였고, 이번이 두 번째 전시라고 하네요.

저는 독립출판물이 궁금한 마음에 오후 다섯 시에 열리는 ‘독립출판가와의 만남’을 구경하기로 하고, 넉넉히 네 시 정도에 들렀습니다. 전시장에서 맘편히 독립잡지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쌀쌀한 날씨를 핑계 삼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전시장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며 입장료를 내니 손등에 ‘모이다’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네모난 전시장 왼편은 글쓰기대회 참여구역이라 해서 앉아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전시장을 빙 둘러보았습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여섯 개의 독립출판물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곳에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잡지를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각각 코너마다 서로 다른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발행된 권들이 모두 전시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을 사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무려 천 원 할인 쿠폰을 받았지요. 전시된 책들 사이사이에 손수 만든 예쁜 과자나, 새우깡이 듬뿍 담긴 종이컵 등이 각 잡지의 분위기에 맞게 놓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손수건이나 책갈피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각자 자기만의 색깔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전시된 잡지들은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었습니다. 우선 <미열>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에세이 잡지입니다. 그림이 별로 없는 깔끔한 표지디자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옆의 <꿀>은 주로 이야기 위주로 구성되어 있지만, ‘잃어버린 꿈’, ‘이틀 전에 죽은 이야기꾼의 책’ 등 그림과 이야기가 함께 하나를 만들고 있는 잡지였습니다. ggul이라는 알파벳으로 만든 로고가 귀엽네요. <퍼블리시>는 아이디어가 좋은 합성어입니다. ‘출판’의 publish와 ‘보다’의 see를 합친 것일까요. 볼 수 있는, 보기 좋은 책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순진>은 각 호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글과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9, 사고, 짜가 등 왠지 순진하면 연상되는 주제들이네요. <42>는 ‘사이’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어떤, 느린, 평온한, 가벼운, 다정한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와 똑닮은 이야기를 작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서도 이끌어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록셔리>는 강렬한 표지가 인상적인 잡지였습니다. 사진 위주로 구성되었는데, 락, 빈티지, 유머, 일상 등을 결합해놓은 듯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순진>과 <42> 각각 한 권을 들고, 여기 퍼블리시가 마련해 놓은 과자를 몇 개 집었습니다. 마침 사 온 커피와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리고 <순진> 중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표지에는 20년 전 찍은 그 누군가의 사진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고, 잡지 속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글로 꽉 차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틀어놓은 스피커에서는 산울림도 나오고 얄개들도 흘러 나왔습니다. 얄개들 노래를 흥얼거리며 옹기종기 모여앉아 책을 읽으니 참 묘하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읽던 중 ‘독립출판가와의 만남’을 시작한다는 안내가 들려왔습니다. 그 아담한 공간에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아직은 풋풋한 독립출판가들은 작은 마이크에 대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순서는 <퍼블리시>였습니다. 짧게 머리를 깎은 남자분이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퍼블리시>에서는 <여가생활>이라는 만화책을 내었는데, 그 만화책을 그린 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취미(?)로 시작했던 것이 회사까지 차리게 되었다고 해요. 지금은 군복무 중이고 이상형은 탕웨이라는, 소소한 대화들이 오고갔습니다.

 

 

두 번째는 <꿀>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분이 나와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꿀>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고 합니다. 출판가분의 어머니 꿈이 작가셨는데, 지금은 평범한 가정주부이십니다. 그러다 출판가분이 어느 날 어머니가 21살 때 썼던 일기장을 보게 되었고,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꿀>입니다. 이것 역시 출판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느새 4권이 나왔습니다. 이름을 ‘꿀’이라고 하게 된 이유는, 모두가 좋아하는 달고 맛있는 꿀같은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합니다. 참고로, 아직도 이 책을 어머니께 보여드리지 못했다고 하네요.

 

 

세 번째 순서는 <록셔리>였습니다. ‘록’과 ‘럭셔리’를 합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위안과 재미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자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싸구려 커피처럼 궁상맞게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잡지 <럭셔리>가 라이벌입니다. <록셔리> 출판가분께서는 화려한 피피티를 준비해오셨는데, 자신의 주 작업공간인 방, 옥상, 뒷산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혹시 박수가 나오지 않을까봐 준비한 자체 박수까지 있었습니다. 잡지만큼이나 유쾌하신 분이셨어요.

 

 

‘독립출판가와의 만남’ 마지막 순서는 <미열>이었습니다. 깔끔하고 담백한 잡지만큼이나 담백해 보이는 분께서 역시나 조용히 설명해주셨습니다. <미열>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는 잡지로, 제목을 짓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호별로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이야기를 끝내면서, 모두들 미열 나는 날들이길 바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짧은 대화 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자리를 치우며 분위기는 어수선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저는 무언가 가져가고 그래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끄는 여러 잡지들 중에 고민을 하다, <여가생활>을 집어 들었습니다. 간략한 4컷 만화에 한가하게 즐기는 여가생활처럼 한가함이 듬뿍 담긴 책이에요. 책을 사니, 포스터에 책갈피에 과자까지 듬뿍 담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여섯 가지의 독립출판물,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저녁 때 친구를 만나 <모이다전>에서 받은 책갈피도 접어보고 만화책도 같이 봤어요. 여가생활의 한가로움이 느껴져, 모처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때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 공연들도 좀 아쉬워졌네요.

<모이다전>에 모인 책과 음악들은 모두 자기 자신과 즐거움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어엿한 ‘출판물’로 자란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아마 앞으로도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까지 계속될 겁니다. 그 즐거움은 전시장을 가득 채웠고, 전시를 찾은 사람들에게도 그 즐거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전시장을 다녀오고 나서 저는 왠지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비록 모이다전에 갈 수는 없지만, 그곳을 꽉 채웠던 작고 소소한 책들을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서 제가 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일상에서 오는 즐거움, 진솔한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모두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이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즐기는 즐거움이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즐거우실 거에요. ■   

 

 글_성지은

 소개_삶은 춤추듯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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