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막극장을 스스로 학습했네" - 아름다운 동행

 

"천막극장을 스스로 학습했네"

<아름다운 동행>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대학로 연극인이 함께하는 단막극 페스티벌

 

글_김해진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이자 <아름다운 동행>의 예술감독인 이양구가 정리한 「“재능교육 사태”의 쟁점과 해결 방안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를 자세히 읽었다. 재능교육의 학습지 교사는 근로계약서 대신 위탁사업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 대 회사의 계약을 맺지 못하고 회사 대 회사의 계약을 맺는 셈이 된다. 그러면 회사측에선 노동3권을 보장해 줄 필요가 없어진다.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다. 학습지 교사는 이렇게 사장님(?)이 되어버리지만 월급사장도 되지 못한다. 근로제공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대신 “영업실적”에 따라서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근로내용이나 시간과는 상관없이 신규회원 모집과 회비의 수금 실적 등에 따라서만 지급된다. 회사는 학습지 교사를 근로자(노동자)로 보지 않으니 노동조합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습지 교사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려하면 “너희들은 개인 사업자이다. 사장님들이 무슨 노동조합이냐?” 라고 한다는 것이다.

헉헉…… 여기까지 이해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2007년 파업 이후, 재능교육 사태가 6년이 되어가는 이 때에 대학로 연극인들은 재능교육 해고노동자와 함께하는 단막극 페스티벌을 꾸렸다. 이름하여 <아름다운 동행>이다. 재능교육은 ‘제1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동행 대상’에서 기업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언어가 어디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느냐에 따라 얼굴이 이렇게 달라진다. 배우들의 표정이 밝다. 혜화동 1번지를 가득 채운 관객들도 미소를 짓고 소리 내서 웃는다. 밝은 기운은 밝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맞짱 뜨면서 생기는 거로구나. 내가 만난 오늘의 극장이 가는 길이다.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조명을 조금씩 달리 하면서 일곱 편의 공연이 맞물려 돌아간다. 한 팀이 공연을 끝내고 인사하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퇴장하면 곧바로 다음 팀이 무대로 들어와 공간을 간단히 변화시킨다. 짐을 풀었다 쌌다 하는 모습이 이곳 또한 천막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 연극인들은 이렇게 천막 농성을 하는 거다.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김슬기 작, 부새롬 연출)를 보면서 서커스 천막을 떠올렸다. 배우 이지혜가 광대가 되어 아코디언도 켜고 리코더도 불고 노래도 하고 재담도 펼치고, 돈을 모으기 위해 모자도 돌린다. 배우가 광대가 된다? 배우가 자신의 처지를 놀이하듯이 공연을 이어가는데 여기에서 바로 학습지 교사가 처한 현실이 드러난다. 아무리 노래를 하고 연주를 해도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돈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재주 엔터테인먼트의 김갑중 대표에게로 돌아간다. 무대에서 대표는 사다리로 표현되고 광대 이겨을은 자신이 번 돈을 사다리 아래에 탈탈 털어내는데, 이상하게도 대표는 이겨을을 사장이라 부른다. 재능교육 사태를 꼬집는 이 1인극에서 배우는 거리의 악사가 되었다가 또 자신을 ‘이사장~’이라 부르는 대표가 되었다 한다. 공연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겨을이 표정을 바꾸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되물으며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 할 때, ‘이건 노동이 아니래요.’ 라는 해고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이 겨울에 이겨을이 울고 웃는다.

 

 

“빌어먹을 년들~”

<한밤의 천막극장>(오세혁 작, 김한내 연출)에서 들었던 이 비웃는 소리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욕 들으면서 웃어보긴 처음이다. 나무판자나 버려진 밥상의 윗판을 떼어 덧붙인 무대벽에는 두 군데의 등퇴장 입구가 있는데 거기에서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이 출몰해 음산하게 욕을 퍼붓는다. 아주 서라운드 입체 음향이 따로 없다. 누구에게 퍼붓는 욕인고 하니, 천막 농성 현장의 여자들을 향한 것이다. 천막에서 지내게 된 두 여자를 끈질기게 괴롭히는 무서운 소리는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들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던 각종 소음이 내면화되어버리는 공포. 그 공포를 잊거나 이겨내기 위해 두 여자는 한밤의 천막을 식당, 까페, 극장, 잠수함으로 바꾸는 놀이를 한다. 재밌어서 웃다가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이 밤이 지나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밤은 이들을 두렵게도, 꿈꾸게도 한다.

 

 

이밖에도 판소리로 시원하게 재벌 스타일을 읊는 <다시 오적>(김은성 작, 김수희 연출),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을 읽는 여자가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혜화동 로타리>(김윤희 작, 이양구 연출),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죽여버린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이여진 작, 김제민 연출), 남녀의 역할을 바꾸어 잉여의 몸성을 놀이하는 <잉여인간>(공동창작, 김관 연출), 어릴 적에 학습지 교사를 피해 이불 속에 숨었더니 커서도 도피의 연속이네 <비밀친구>(정소정 작, 윤한솔 연출)가 공연됐다.

 

 

일곱 편의 단막극을 이렇게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도 드물지 싶다. 이제 주말 공연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추천한다. 사실 내가 재능교육 사태에 대해 뭘 알겠나. 재능교육 사태를 글로 그리고 연극으로 배웠다. 지금 중요한 건 극장에 가서 직접 공연을 보는 일이 아닐까. ‘연극이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어떤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마는, 왜 그렇지 않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 거, 그거 무서운 거다. 관객들도 이렇게 고민을 시작하는 거다. 다시. 또 다시.

 

***사진제공 - 드림아트펀드 제공  

  필자_김해진 (haejinwill@gmail.com

  소개 _ 판단하기보다는 경험하기 위해 글을 쓴다.

          공연예술을 보며 한국사회를 더듬는다. 2013년에는 인천아트플랫폼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