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엄마의 육아일기] 평화로운, 은빛선율, 엄마

2013. 4. 1. 22:40Feature

 

평화로운, 은빛선율, 엄마


말_ 김연희



1. 자기 소개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여기 카페에 와서 골똘히 생각해보았지만 별달리 떠오르지 않네요. 잘 모르겠어요. 그저 머릿속에 몇 가지 풍경만 떠오릅니다.

하나는 한밤중에 맨발로 동네를 달리던 모습입니다. 대문을 박차고 나가서 그길로 놀이터까지 내달리며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 죽어요!” 하며 외치던 열 살의 나. 캄캄하던 이웃들의 창문이 밝아지고 사람들이 옷을 꿰어 입고 나와서 우리 집 앞에 왔던 순간.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리는 광경은 익숙하게 보았지만 그날은 정말로 엄마가 죽을 것 같아서 몹시 다급했지요.

또 하나는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춤을 추던 광경입니다. 가정환경이 나를 짓눌러서 어떻게든 기를 펴고 존재감을 느껴보고 싶었던지 나는 춤을 그렇게 췄습니다. 방 안에서 혼자 추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추기도 하고 소풍날 전교생 앞에서 추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나가서 노래 부르기도 여러 번 한 것 같고,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은 밤중에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울던 것.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시를 배우고 쓰면서 어마어마한 상실감과 슬픔이 덮쳐왔습니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이, 이 건물이, 이 거리가 세월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말할 수 없게 슬펐습니다.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작가들이 학교에 와서 강의하고 뒷풀이를 갖는 시간이 있었는데, 거기 갔다가 유난히 더 슬펐던지 친구랑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런 감정은 여전히 내 속에 차 있고 이런 뜨거움, 서러움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풍경은 첫째 낳고 아이랑 단둘이 있을 때 난처해하던 모습. 모든 것이 꿈결처럼 흘러갔습니다. 연애도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그 순간순간은 실제이고 실물인데 지나고 나니 구름 속의 일처럼 뿌옇고 뭉실뭉실하게만 여겨집니다. 어떻게 해서 첫째를 낳았는데 예쁘다, 내 아들이네, 좋네, 하는 피상적인 느낌 말고는 별 것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내 시간과 몸은 아이한테 이미 묶여버렸지요. 외출도 두 시간 이상은 못 하고 책도 못 읽고 잠도 못 자고 밥도 편히 못 먹는 상황에서 가장 불편한 건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의 서먹함이었습니다. 하루는 애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서 남편이 공연하러 갔다가 도로 택시 타고 집에 온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낯섦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 말하고 젖을 먹이고 몸을 씻기고 하면서 점차,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태어나자마자 어떤 특별한 애착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거나 초조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엄마시집에 대해서

첫째 은빛선율이를 낳고 얼마쯤 지나고부터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일 년 넘게 했고 지금은 며칠에 한 편씩 씁니다. 선율이는 참 고와요. 순수하고요. 그래서 가슴이 저미는 듯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겪게 될 온갖 나쁨과 괴로움, 슬픔들. 특히 이 세계가 지금 어떤 지경인지 선율이가 알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참으로 막막합니다.

그런데 선율이가 태어나고 내게 생긴 가장 극적인 변화는, 아무도 쉬 미워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모든 사람은 발가벗은 채로 홀로 태어납니다. 보드라운 살결에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 순수한 아기였지요. 그 시기를 뛰어넘고 바로 살인범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기를 재우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온갖 소식들이 눈앞에 뜹니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때리고 강간하고 버리고 괴롭혔다는 뉴스를 보면서, 아기였을 그 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현실이 너무 슬펐어요. 오늘은 아무도 스스로 죽지도 않았으면,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마음이 되어 하루에 한 편씩 쓴 시들이 백 편, 이백 편을 넘기면서 자연스레 시집을 펴낼 계획을 하게 되었어요. 학교 다닐 적부터 내 시들로는 정식 등단을 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어요.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종 공모에 뽑히는 시들이 내 시들과 아주 달라 보였거든요. 실제로 졸업하고 몇 년간 응시했지만 번번이 떨어졌고요. 그래서 내가 직접 출판사를 만들고 첫 책을 내 시집으로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아주 소수이긴 해도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마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지금도 내 시집을 보면 많이 서툴고 엉성하구나, 싶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쉬운 시집도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틈


더러운 것이 나오는 틈에서

네가 울면서 나왔다


거센 폭포

굉음

굉장한 낙차


높은 데서 떨어진 것이다

너는


엉덩이와 어깨에까지 퍼진

시퍼런 멍 

 

 

3. 결혼과 임신, 육아에 대해서

나는 내 남편이 첫사랑이었어요. 이렇게 얘기하니 몇몇 사람은 놀리기도 하던데, 나는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남편은 내가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불쑥 화를 내고 감정을 표출하는 내 성격 탓에 우리는 대낮에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고,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헤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지 싶습니다. 결혼은 당연한 듯이 이뤄졌습니다. 지나고 나니 좀 더 내 맘대로 결혼식을 할 걸, 하고 후회됩니다. 남편 주장대로 하동의 모래사장에서 하거나, 중환자실에 계셨던 시아버님 면회 시간에 맞춰서 병상 옆에서 짤막한 기도로 대신했다면 더 좋았을 걸 싶어요.

어쨌거나, 유부녀가 되었습니다. 헤어지지 않고 같은 집에 간다는 것이 꽤 신선하고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계속 같이 놀고 싶은데 남편이 공연이다 인터뷰다 해서 나가는 것이 싫었고요. (지금도 남편의 외출을 싫어합니다.) 남아도는 시간에 글은 안 쓰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인터넷을 돌아다녔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많으면 도리어 나태해지는 것 같아요. 이 시절이 가장 여유로웠던 것 같은데 나는 그저 시간을 허비했던 기억만 납니다.

임신 사실은 별 생각 없이 산부인과에 검진을 받으러 가서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배 속에 있던 아이가 가라고 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 뒤로 맨 처음 돼지갈비가 먹고 싶어서 먹은 뒤로는 쭉 상큼한 채소, 과일을 즐겨 먹었습니다. 지금도 선율이는 과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기는 조산원에서 낳았어요. 병원에서 하는 몇몇 조치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거든요. 하나님을 믿고 내 몸을 믿고 순리대로 낳아보자 결심을 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진통을 하고 자연스럽게 아기를 낳았습니다.

처음엔 아이랑 같이 지내는 것이 참 어려웠어요. 생전에 이러한 속박을 당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첫째 은빛선율이는 돌 지나고도 한참 동안 젖을 먹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나랑 거의 한 몸인 채로 살았어요. 무겁고, 너무 바쁘고. 그런데 시간이 희박해진 것이 내게는 선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아무것도 안 되겠구나 싶어서 시를 열심히 쓰게 되었거든요. 시뿐 아니라 환경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 지구의 안녕이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시 한 편과 산문 한 편을 쓰면서 아울러, 환경을 위해(혹은 덜 훼손하기 위해) 오늘 내가 한 일을 하나씩 써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둘째가 생기면서 잠이 많아져서 흐지부지되어 지금은 매일 글을 써서 올리지는 못해요. 돌아보면 아이가 나를 세상으로 끄집어내준 것 같아요. 수줍고 망칠까봐 걱정돼서 전전긍긍 갇혀 살았는데. 도리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내 손을 같이 잡고 엄마 같이 나갈까하고 세상으로 나오게 해준 것 같아요.

 

▲ 일요일 합주 중에

 

 

4. 첫 아이, 둘째 아이

생후 28개월 된 은빛선율이는 신중한 아이입니다. 아기 때부터 무엇이든 조심히, 신중히 바라보고 만져보고 먹어보았어요. 사내아이치고 놀고 어지르는 규모도 작은 편입니다. 집에서는 아빠 음악에 맞춰 춤추기를 좋아하지만 바깥에서는, 이를테면 매주 참석하는 주일학교나 아기학교에서는 입 꾹 다물고 엄마 무릎에 가만히 앉아서 주시할 뿐이지요. 지금 동생만큼 어렸을 무렵, 목련꽃과 벚꽃이 화사하게 만발한 창밖을 내다보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직 바로 서지 못해서 내가 두 손으로 몸을 잡고 있었어요. 아이에게도 뒷모습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어렴풋이 슬프고 적막하고 쓰라린 아픔을 느꼈습니다. 선율이를 키우면서 유난히 슬픔을 많이 느꼈습니다. 악인도, 슬프고 터질 듯이 기쁜 순간도, 너무 좋아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사람도, 귀퉁이가 깨져버린 이빨도 슬펐어요.

이제 막 태어난 지 다섯 달을 넘긴 평화로운이는 생기발랄한 여자아이입니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움직임이 활발해서, 말괄량이 삐삐같은 아이일까 하고 기대했죠. 침을 많이 흘리고 혀를 내밀고 열손가락을 다 맛보는 걸 좋아합니다.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면 곧잘 웃고, 엄마가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목 놓아 우는 법이 없습니다. 엄마 아빠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를 좋아하고 오빠의 움직임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봅니다. 로운이와 만난 뒤로 슬픔은 많이 줄고 대신에 앞으로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 때인가고민하며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기려는 에너지가 커졌습니다. 아이는 아직 뒤집기도 못했는데, 누워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과 계획을 할 때면 아이랑 손잡고 바깥으로 나가서 마구 활보하는 기분이에요. 소비욕이 줄었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해졌습니다.

 

     바람 맛


후욱 -

바람을 불면

생후 7개월 된

선율이는 윗입술을

쪽쪽 빨아대며

혀를 날름거리며

바람 맛을 봅니다


바람 맛이 뭐냐고요

혀를 내밀어보세요

상큼하고 저릿저릿하고

달큰하기도 한 바람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5.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 일과

아침에 일곱 시에 일어나면 두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습니다. 간혹 찡그리고 투정하며 겨우 일어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분이 좋고 그래서 같이 웃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작은 방의 문을 열어요. 남편은 대개 잠들어 있지만 어떤 때는 깨어서 컴퓨터로 무언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밥과 반찬이 준비되면 짤막한 예배를 드립니다. 사도신경, 찬송, 말씀읽기, 서로 이야기 나누기, 기도, 주기도문의 순서로 드리는데 십 분쯤 걸리는 것 같아요. 예배 후엔 같이 밥을 먹고 오늘 서로 할 일을 얘기하고 남편은 작업실에 가고, 나는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틀어놓고 청소를 합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선율이랑 공룡 놀이를 하기도 하고 로운이에게 젖을 주며 책을 읽기도 합니다. 둘째 낳고부터는 어쩐지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서 커피도 한 잔 마시지요.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이런저런 일을 챙기다 보면 커피는 미지근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심때인데, 남편이 작업실에서 오면서 식사거리를 사오기도 하고 떡볶이 같은 간단한 것을 해먹기도 합니다. 남편이 작업실에서 방금 만든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나는 그사이에 있었던 일, 생각해낸 좋은 아이디어를 얘기해요.

오후에 두 아이와 나는 낮잠을 잡니다. 선율이만 있을 때는 이때가 가장 빛나는 자유시간이었는데! 지금은 나도 쉬어야 나머지 시간을 아이들과 즐거이 보낼 수 있어요. 잠이 안 오면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기도 하는데, 어떤 책은 읽다가 울기도 하고 격하게좋은 생각들이 떠올라서 핸드폰에다 쉼 없이 메모를 쓰기도 하지요. 남편은 우리가 자는 시간에 구루부 구루마를 끌고 홍대 앞을 돌아다니며 길거리와 사람들, 공기에게 음악을 불어넣어줍니다. 시디를 팔고 책을 팔고 사람들에게 책과 음반은 영혼의 양식입니다하며 말을 걸기도 하지요. 남편은 주로 우리가 낮잠에서 깨고도 두어 시간 더 있다가 돌아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강의를 나가거나 집에서 쉬거나 공연을 하러 갑니다. 아주 바쁘죠.

두 아이는 낮잠을 자고 목욕을 해요. 첫째는 머리감기를 싫어해서 그냥 대야에 물 받아놓고 들어가서 공룡들이랑 놀게 하다가 막판에 억지로 씻기곤 합니다. 둘째는 이름대로 목욕도 평화롭게마칩니다. 그러고 아이들과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비행기 타기 놀이 하고, 그러다 보면 해가 지고 남편이 돌아와 저녁식사를 준비합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는 구루마에서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하고 애들이랑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맛있는 후식을 먹어요. 그러고는 조금 놀다가 보면 저녁 일고여덟 시가 되어 둘째가 졸려서 칭얼댑니다. 누워서 젖을 먹이다 보면 스르륵 둘째가 잠들고 첫째가 잠들고 하루가 마감이 되지요. 둘 다 푹 잠들면 육아일기를 쓰고 글을 쓰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대개는 자꾸 중간에 깨서 호출하기 때문에 도로 달려가서 누워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백사실 계곡에서 선율이



6. 엄마로서 잘하는 것, 못하는 것

간혹 내가 다중인격인가 고민할 때가 있고,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아이에게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좋은 엄마와 나쁜(미친) 엄마 사이를 순식간에 넘나들 때도 많습니다. 나 혼자만 그런 것인가 싶어 걱정했는데, 얼마 전 다른 엄마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그렇더라고요. 첫애에게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화내고 소리 지르고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나니 남는 건 후회뿐. 그래서 이제는 너무나 많이 화가 나고 힘이 들 때는 다른 방에 가서 한 박자 좀 쉬는 편을 택합니다. 울든 말든. 이러니까 되돌릴 수 없는 을 저지르지는 않게 되어요. 내가 엄마로서 잘하는 유일한 한 가지는 함께 있어주는 것. 못하는 것은 나머지 전부입니다. , 특별히 잘해주는 것도 못하는 것도 없는 평범한 엄마가 아닌가 싶어요.

 

 

7. 지금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

없는 것 같아요. 돈도 시간도 건강도 친구들도 모두 딱 필요한 만큼 있어요. 그래서 매순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엄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집이 좀 비좁으면 어떠냐. 곰팡이 좀 피면 어떠냐. 돈 조금 벌면 어떠냐. 너희 집이 천국인 것 같다.” 나는 내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이 많이 소중해요. 동네도 좋고 친구들도 좋고 다 좋아요.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이 좋은 것들뿐입니다. 그저 이 좋은 것들 속에서 모자란 나 자신이 한 걸음씩 성숙해가고 또 하나의 좋은 것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 상희이모네에서 로운이

 

8. 육아네트워크에 관하여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해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아이는 혼자서 키울 수가 없거든요. 적극적으로 기대고 의지해야 해요. 나는 친정엄마랑 언니한테 많은 걸 의지했어요. 헌 물건이나 옷가지뿐 아니라 오래된 지혜와 축적된 경험까지 모두 물려받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때까지 아이를 위해 산 것이 거의 없어요. 첫아이 때는 삐뽀삐뽀119를 비롯한 육아 참고서를 사거나 빌려서 읽었는데, 날이 갈수록 엄마나 언니, 시어머니께 직접 묻거나 육아 관련 사이트에 검색해보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물론, 모든 아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에 따라서 성장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가면서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이 또한 선배나 동료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진리이지요.

나는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이 서로 손을 잡고 말 그대로 우리 엄마, ‘우리 아기로 아이들을 함께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이 이뤄진다면 이 세상이 하늘나라가 될 것 같아요.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와 하늘나라다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우선 엄마들이 자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겠지요. 아이라는 새싹들이 자라나서 세상이란 숲을 이룰 텐데, 건강한 숲이 되려면 어릴 적에 엄마라는 대지 위에 튼튼하게 뿌리 내리고 양분을 흠뻑 빨아들이며 자라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무엇보다 이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어요.

 

9. 시인 엄마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해요. 이 모든 상황이. 서른세 해를 살아오면서 어느 것 하나 어리둥절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언제 태어났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그때는 왜 그랬을까, 왜 집에 안 가고 남아 있었을까……. 요즘에 가장 어리둥절한 것은 어린 내 아이들이지요. 이 요정 같은 아이들은 홀연히 솟아난 것만 같아요. 빛과 함께 어딘가에서. 내 몸에서 만들어지고 조성되었다기보다는, 우주의 먼지로서 살다가 출생과 함께 발견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엔가 남편에게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아이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 같다고. 우리 집에서.

그런데 내가 시인이라고 나 자신을 소개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분명 시를 쓰고 있기는 한데 정식으로 등단을 한 것도 아니고 시를 앞으로도 계속 쓸 것 같기는 한데 시를 쓴다고 저절로 시인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쑥스럽기도 하고.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상을 돕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무용한 존재로 살다가 사라지고 싶지 않거든요. 서로가 돕는 것이 직업 활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시를 쓰고 또 다른 글도 쓰고 책을 만들면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요. 지금의 나는 무언가 많이 미숙한, 덜 되었으나 되어가고 있는, 어쩌면 계속 덜 되었을 시인이자 엄마겠지요.

 

너의 울음


계속 우는 너를

바닥에 내팽개치다

울음 울음 울음


이 시는 이렇게 미완성

그만 쓰고

안아줘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이 시의 완성?)

10. 아기 생산, 작품 생산


첫 아기가 태어날 때 예수님 돌아가셨을 때 찢어진 성막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고통을 뚫고 화해의 길을 여셨지요. 물론 내가 겪은 고통은 거기엔 비할 바가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떠올랐어요.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 피 묻은 맑디맑은 아기. 나는 이미 이 땅 위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생산을 한 것 같아요. 어떤 걸작품도 가장 허름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 한 명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모든 인간이 제로이면서 만점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는 정말로 제로, 빵점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만점이지요.

이런 사람이 쓴 시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시는 참 오묘해요. 글도, 음악도, 그림도 마찬가지겠지요? 아무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책상 앞에 앉아 첫 말을 떼지만 그렇게 시작된 말이 나도 모르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정말로 좋은 말을 한 것 같아서 벅차지만, 그것도 한때지요. 머무르다 가는 것 같고요. 그렇게 내 시도 내 아이도 이 세계에 머무르다 가겠지요. 부디 이미 떠나온 곳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바른 방향으로, 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 출처

2 = 박종은 / 3, 4 = 원상희

 

김연희

1981년 대구 출생. 은빛선율, 평화로운의 엄마이자 한받의 아내. 시를 매일 쓰려고 노력합니다. 욕을 쓰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가끔 하마처럼 화를 내기도 합니다. 노래와 춤 실력이 좋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색깔을 좋아합니다. 둘째 낳은 뒤로 배가 좀 나와버렸습니다. 벌레를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좋아하는 영화감독은 아오야마 신지, 에릭 로메르, 자크 타티, 가와세 나오미. 오늘 아침메뉴는 된장국에 삼치구이, 김과 간장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휴업하는 대신에 친구들과 엉터리 합주를 합니다.